@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박스컵). 말레이지아 전 1:4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3골의 소나기 골.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
가 데뷔.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기록.최고 권위
축구전문지 'KICKER' 선정..주간 베스트11.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결정 골. KICKER 선정 이주일의 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쿠데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차범근 선취 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 푸르트 3:1로 승리.
@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밤. 최고 시청률.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 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 (106골/218경기)......
<안티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다만 한국인의 기상과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고 축구에 대해서 세계정상에 우뚝 서고 축구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차범근씨는 "왜" 조추첨자로 선정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차범근이 한 일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에서 기막히게 묘사를 해놓았기에 이를 인용한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 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 차범근이 한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에 선정한 위인이다.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의 아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로 선정했다.
그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 바가 없다.
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태풍군은 한 인터넷까페에 차범근씨의 사진과 함께 이런글을 올려놓았다.
저 뒤에 망치들고 계시는 저분 저분이 바로 우리 감독님 이시다.우리 다칠까봐 망치들고 얼음 깨는 저분.
저분이 바로 세계속의 갈색 폭격기 우리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저기 작은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봐 묵묵히 얼음을 깨고 있는 허리숙인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묻어버린 ..
그를 버린 한국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차범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