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TV화면에서 수많은 스타들이 명멸했다. 최근에는 이 스타의 범주가 끝도 없이 넓어지고 있다. 유명 가수, 탤런트, 코미디언 등 소위 연예인 외에 교수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연예인 못지 않게 대중성을 획득하며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평범한 주부, 중국요리집의 배달업 종사자도 방송을 통해 만인의 연인·친구가 된다. 어떻게 보면 누구라도 스타가 될 기회가 열려있는 듯 하지만 사실 이들은 ‘엄선’된 사람들이다.출연자가 필요한 모든 프로그램의 PD들은 ‘사람 찾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또 나름대로의 노하우와 원칙을 갖고 있다.과감한 신인 기용으로 알려진 KBS의 윤석호 PD. <내일은 사랑> <사랑의 인사> 등에 당시 신인이었던 박소연, 김지호, 배용준 등의 연예인들을 기용했다. 그는 여느 PD들처럼 감각에 의존한다고 말하지만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첫째도 둘째도 무조건 ‘차별성’이다. 신선함은 물론 기존의 연예인들이 갖지 않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그는 이것을 “화면이 꽉 차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카메라로 그 연기자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줌인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사랑의 인사>를 제작할 때 야외촬영을 나가면 뭐 <경찰청 사람들> 같은 거 찍으러 온 줄 알아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얼굴들이기 때문이죠. 방송이 연습도 아닌데 검증받지 못한 신예를 기용하는 건 사실 모험입니다. 하지만 신인은 백지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연출이 무궁무진 가능하죠. 칠하는 대로 색깔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PD의 역할은 거기서 끝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죠.”SBS의 김혁 PD는 개인 음반을 냈을 정도로 가요에 일가견이 있다.“현재는 팀장으로 현업에서 물러나 있지만 현업에서 뛸 때에는 스타성을 갖춘 사람들이 눈에 보여요. 그것도 마치 신들린 것처럼 확실히 말이죠.” 김혁 PD는 1집 음반을 냈다가 실패해 방황하던 신인가수 김건모의 노래를 우연히 듣고 <꾸러기대행진>에 고정패널로 전격 캐스팅했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가수’였다는 것이다. 탤런트 김희선의 경우도 사진 한 장으로 캐스팅한 케이스. “시대에 따라 시청자들이 원하는 스타들이 있어요. 여자 연예인을 예로 들면 고현정 스타일의 동양적이면서 이지적인 매력을 갖춘 연기자에서 동그란 눈에 도발적인 매력을 갖춘 고소영, 청순하면서도 만화적인 심은하 등으로 변해왔죠. 지금은 가수 김현정처럼 시원스럽고 청량한 매력이 어필하는 것 같습니다. 시대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MBC의 정인 PD는 완전한 뉴페이스라기보다 소위 ‘중고(中古)신인’의 발굴에 능한 케이스다.“연극, 영화나 단역 등을 통해 오랜동안 연기경력을 쌓고 자질이 뛰어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연기자들이 있어요. 우리 방송계가 스타급 연기자들의 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들은 충분한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죠.”최근 종영된 미니시리즈 <내일을 향해 쏴라>의 유오성이나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 같은 연기자들이 그랬다. 정인 PD는 탄탄한 연기력을 기반으로 한 안정성에 유의한다. 또 기성 연기자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서울의 달>에서 백윤식, 김용건 등의 탤런트는 기존의 고정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해 세간의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KBS의 양기선 PD는 “PD가 스타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타가 프로그램 한 편을 위한 도구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는 <슈퍼선데이>의 인기 코너였던 ‘금촌댁네 사람들’에서 임창정, 정선희 등을 ‘키운’ 셈이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냐는 질문에 양기선 PD는 “대화”라고 답한다.“예능 PD에게 연예인은 재산이죠. 대사 하나, 아이템 하나가 그의 자질과 장점을 빛나게 해 주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스타성을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은 PD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PD와 연예인 간에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죠. 그 연예인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그 스타성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가장 적절한 곳에서 가장 빛을 내죠.”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사람 찾기’ 외에 지난해부터 유행하고 있는 ‘명강사 찾기’도 스타발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구성애의 아우성>은 그 절정판이라 할 만하다.맛깔나는 명강연으로 심야시간 시청자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던 황수관 박사. 그를 발견했던 SBS의 강관선 PD는 강연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을 처음으로 도입해 돌풍을 몰아왔다.“황수관 박사의 강연 프로그램을 하면서 몸에 좋은 약이 달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습니다.”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던 소리꾼 김준호,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명강사 구성애를 찾아낸 최병륜 PD는 한사코 자신에게 “운이 따라준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을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는 것이다.“<구성애의 아우성>은 주제의 민감함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제는 ‘성’이라는 주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으면서 현장성에 기반해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고 강연하고자 하는 내용도 본인들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것들이기 때문에 이 분들이 TV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이미 유명한 사람들이었고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오던 사람들이었지만 방송은 그들에게도 기회가 됐다. 단지 유명세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해오던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매체, TV를 만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최병륜 PD는 이러한 ‘돗자리 펴기’가 참으로 보람된 것이었다고 말한다.PD는 스타를 키워야 한다. 스타를 키우고 발굴하는 PD들의 공통점은 실험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만큼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강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