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풍년이 든 “그 이듬해”는 1949년이다. 1948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첫 총선거가 치러졌다. 새 국호 ‘대한민국’과 ‘헌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유엔 세계인권선언문이 채택됐고, 국가보안법이 제정됐다. 제주 4·3과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제대로 선거를 치르지 못한 제주에선 독립영화 <지슬>처럼 동굴로 피신한 사람들이 감자를 나눠 먹었다. 그들은 동굴에서 죽임을 당했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말이다.
1948년 제주는 콜레라 창궐과 극심한 흉년, 수탈로 굶주렸다. 이듬해 “감자 풍년이 들었으나/ 섬사람들은 감자를 먹지 않았다”. 여기저기 돌무덤이 생겨났고, 희생된 사람들이 흘린 피를 먹고 자란 하지감자는 웃자랐다. 생존자들은 배가 고파도 죽은 사람들이 떠올라 차마 감자를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 대신 감자로 배를 채운 멧돼지들만 “퉁퉁 살이 올”랐다. 이 시에서 감자 풍년이나 탐욕스러운 멧돼지는 은유다. 4·3 제주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