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아나키즘 (Anarchism and Other Esssays)
엠마골드만 저,
김시완 역,
도서출판 우물이 있는 집(2001).
세상에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 있다.
아나키스트로서 20세기 미국 정치사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긴 엠마 골드만, 그녀는 학술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아나키스트이며,
여성 정치범으로서는 최초로 구속된 이력까지 갖고 있다.
이 책은 엠마 골드만이 쓴 아나키즘의 고전으로,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나 삶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깊은 사유가 담겨 있는 사상서이자, 동시에 탁월한 대중 선동가로서 골드만의 열정에 찬 목소리를
들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아나키즘은 단순한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유명한 아나키스트이자 엠마 골드만의 평생의 동지였던 알렉산더 버크만은 아나키즘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무엇이 아닌지부터 밝혀야겠다고 하였다.
버크만에 의하면 아나키즘은 파괴, 무질서, 혼란이 아니다. 아나키즘은 강도질이나 살인이 아니며 또한 전쟁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미개 사회나 야생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오히려 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버크만은 말하고 있다.
아나키즘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자유에서 찾고자 하는 일련의 사상적, 행동적 경향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위적인 제도와 거대 조직은 타기의 대상이 된다. 엠마 골드만은 그러한 개인의 자유와 여성의 해방을 위해 일생동안 온 몸으로 투쟁했다.
전쟁과 징병제도를 반대하고, 언론의 자유를 외쳤으며, 여성의 진정한 영혼의 해방을 주장했다. 그녀는 강연, 집필로 바빴으며, 투옥되고, 추방 당하기도 하였다. 1940년 뇌졸증으로 쓰러질 때까지 인간의 자유를 문제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자 여성이었던,
그 엠마 골드만의 생애가 뜨겁게 펼쳐진다.
- ■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엠마 골드만
엠마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은 학술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이다. 청중을 격동시키는 특유의 연설로 유명하고, 미국 아나키스트 회의 대표를 지냈으며 미국에서 정치범으로 구속된 첫 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러시아 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1887년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일어난 시카고의 헤이마켓 폭탄테러사건에 자극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골드만은 실업자가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음식마저 제공받지 못한다면 식료품을 훔쳐도 좋다는 주장에서부터, 징병 제도
반대, 산아제한 권장, 언론의 자유, 특히 정치적, 사회적 권리의 남녀 평등 등을 역설하다가, 뉴욕에서 체포되어 1년간 투옥되었다. 그 후 아나키즘, 여성의 권리,
그 밖의 민감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강연 및 집필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결국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16년 산아제한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고, 이듬해 반전활동을 하다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나키스트 버크만과 함께 러시아로 강제송환되었으나,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골드만은 소비에트정부에도 반대하여 이후 영국,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살았다.
1936년 에스파냐 내란이 일어나자 에스파냐의 아나키스트를 도와서 활약하였다.
만년에는 스페인에서 강연과 기금 모금 활동을 통해 반
프랑코 운동에 전념했다. 1940년 캐나다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시카고의 헤이마켓 아나키스트 묘지 근처에 묻혔다. 저서에 《러시아에 대한 나의
환멸:My Disillusionment in Russia》과 자서전 《나의 생애:Living My Life》 등이 있다.
번역 : 김시완
1987년 건국대 영문과 졸업한 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에서 국민윤리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인간사랑), 『변화하는 세계체제: 탈아메리카와 문화이동』(백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논쟁』(현대미학사),
『미래의 원시사회』(영림카디널, 공역) 등이 있다.
- ■ 목차
아나키즘: 그것은 진정으로 무엇을 옹호하는가
다수와 소수
정치 폭력의 심리학
감옥: 사회범죄와 교화의 실패
애국심: 자유에의 위협
프란시스코 페러와 근대학교
청교도주의의 위선
여성 인신매매
여성 참정권
여성해방의 비극
결혼과 사랑
현대연극: 강력한 급진사상 전파수단
엠마골드만의 생애
- 역자후기
- ■ 기타
나는 무엇보다 어떤 것이 아나키즘이 아닌지를 말해야겠다. 아나키즘은 파괴, 무질서, 혼란이 아니다. 아나키즘은 강도질이나 살인이 아니다. 아나키즘은 모든 것에
대항하는 전쟁이 아니다. 아나키즘은 미개사회나 야생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정반대이다.
--- 알렉산더 버크만
아나키즘은 학설이 아니다. 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경향이다. 이 경향은 계속해서 혁신되고 발전하는 수많은
길을 가지고 있으며, 내 생각에는 인류의 역사가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노엄 촘스키
정부란 비록 최근에 등장한 것일지라도 낡은 전통의 산물일 뿐이다. 정부의 순수성은 매 순간 상실된다. 정부는 단 한 명의 살아있는 사람의 힘과 활력도 없는 무생물체다. 법이 인간을 정의롭게 만들지 못한다. 법은 정부를 존중하게 만드는 수단일 뿐이다. 법은 매일 부정의를 집행한다.
--- 데이빗 소로우
- ■ 출판사 리뷰
▶ 전세계에 아나키즘이 몰려오고 있다
최근 세계 지성계에서는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과 모색이 급증하고 있다. 국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국가에 대한 불신은 곧 세계질서에 대한 불신이다. 세계는
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국가주도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력에 불과하고, 끝없는 국가간의 경제 경쟁은 지구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시킨다. 국가는 불평등을 생산하고 그 불평등의 구조를
자신의 존립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성격이 아무리 선량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독재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국가는 전쟁을 일삼아 세계평화를 해치고
자신의 국민과 다른 나라의 국민을 죽인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폭력이다. 그러므로 근대성에 대한 성찰은 필연적으로 아나키즘적일 수 밖에
없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반국가주의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 많은 환경론자들 상당수가 생태아나키스트들이고, 국가의 권력을 벗어나 집단 촌락을 형성해 사는 사람들 역시 아나키스트들이다.
▶ 아나키즘은 무엇을 반대하는가
모든 인위적인 권위에 저항하는 아나키즘은 크게 4가지를 반대한다.
첫째는 신과 교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럽을 지배했던 카톨릭 교회이다. 아나키즘은 카톨릭 교회의 신적
권위를 부인하고 거기에 도전했다. 이때는 종교개혁의
산물인 개신교도 아나키즘과 일정한 동맹상태였다.
둘째는 국가이다. 국가는 아나키즘의 주된 적이다. 아나키즘의 이러한 면모가 부각되어 흔히 '무정부주의'라고 부른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절대왕정에 대한 저항에서는 아나키즘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이 연합하였다.
셋째는 자본가 세력이다. 부르조아 의회와 국가와 언론이 아나키즘의 타도 대상이 되었다. 이때는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힘을 합쳤다.
넷째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당을 만들고 새로운 권력을 세우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은 사회주의를 경멸했다. 새로운 권위를 세운 사회주의는 아나키즘 입장에선 단지 타도 대상일 뿐이었다.
실제로 인민 해방의 기치를 내걸고 권력을 잡은 사회주의 정권은 강력한 권력과 권위체제를 구축했다.
▶ 왜 '저주받은' 아나키즘인가?
주지하다시피 아나키즘은 급진적인 이념이다. 급진적인 이념이 대중이나 보수진영에 소외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진보진영에서조차 소외되었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 역시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적 실체라는 것을 안 아나키스트들이 사회주의자들에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은 여성해방론자들에게도 소외되었다. 여성해방론자들은 남성을 주적으로 삼고 여성의 참정권 쟁취와 경제적 독립을 추구한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남성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여성의
참정권 행사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참정권의 효과 자체에 대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를 해도 내각만 바뀔 뿐 '억압적
권력'인 정부의 실체는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아나키스트들은 항상 소수그룹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소수그룹이라는 사실은 '제로섬 게임'인 정치투쟁에서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수적 열세에 놓인 아나키스트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정치적 희생양이 되기에
알맞았던 것이다.
▶ 세금만 걷고 전쟁만 일삼는 국가를 반대한다!!
홉스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연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으므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을 제한하고, 국가에 그것을 양도하여 복종한다는 '사회 계약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와 계약을 한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국민의 일원으로 정해져있었고, 다른 국민을 죽이기 위한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으며, 일부 기득권층만 살찌우는 세금납부를 강요받았다. 국가는 부자와 권력층이 국민의 피를 빨기 위해 만든 정치적 결사체일 뿐이다.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 국가는 자유의 적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도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국민과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싸움이 아니고,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전쟁도 아니며,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미국정부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싸움일 뿐이다.
▶ 아나키즘은 몽상이고 폭력적이다?
흔히 아나키즘은 낭만적이기는 하나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실천적 계획이란
이미 실재하거나 아니면 현 상황에서 이행될 수 있는
계획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을 수용할 수 있는 계획은
잘못되고 어리석은 계획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현실적인 것은 새물로 옛 물을 떠내려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나키즘은 정말 현실적이다. 다른 어떤
이념보다도 아나키즘은 잘못되고 어리석은 현실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이념보다도 새로운 생명을
세우고 유지하는 이념이다. 또한 아나키즘은 폭력과 파괴를 일삼기 때문에 위험하고 사악하다고 한다. 사회에서 정말로 폭력적인 것은 파괴와 폭력이 아니라 무지다. 파괴적인 세력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어떻게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잡초와 쓴 뿌리가 자라는 토양을 제거해 결과적으로 건강한 과실을 맺게 하는 것이
아나키즘이다.
- ■ 미디어 리뷰
에머슨은 "모든 정부는 본질적으로 독재"라고 말했다.
국가가 자행하는 전쟁은 물론,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반생태적행위도 아나키즘에 대한 경도를
부추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 꼽히는 엠마 골드만(1869~1940)의 저서가 국내 처음으로 소개됐다. 미국에서 정치범으로 구속된 첫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그는 전형적인 아나키스트의 모습을 "어떤형태로든 반란의 정신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정치ㆍ사회적 폭력과 여성해방 문제 등을 선동적이고도 대중적 문체로 풀어 보여준다.
--- 한국일보 01/12/07 하종오 기자
미국에서 활동한 러시아출신의 20세기 대표적인 여성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1869~1940)의 <저주받은 아나키즘>(Anarchism and other essays)이 출간됐다. 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구속된 여성정치범이면서 열정적인 대중연설가로 아나키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골드만은 아나키즘을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출하려는
철학”이라 정의한다. 아나키스트들이 거부하는 것은 `인간 마음의 지배자인 종교, 인간의 욕망을 지배하는
소유욕,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정부'다. 그리하여 이들은 국가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 찍혔다. 미 맥킨리
대통령의 암살사건의 배후자로 몰려 구속되는 등 골드만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아무런 연관없는 사건에 단골
배후자로 지목받았다. 사회주의자 또한 이들을 비난했다. 여성주의자들 역시 “여성이 진정한 의미로 인간이
되어야 여성해방이 가능하다”며 보통 선거권 요구를
중요시 않았던 골드만을 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국가 자체가 의문시되면서 아나키즘은 생태운동 등과 결합하며 다원주의적 사고의 하나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1910년 출간됐던 이 책은 9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나키즘이 “미천한 지위로부터 인간을 부축해 세우는” 빛나는 철학임을 웅변하고 있다.
--- 한겨레 01/12/08 김영희 기자
지난 세기 대표적 무정부주의자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나키즘의 고전. 원제는 'Anarchism and
Other Essays'. 교회와 자본가 세력,사회주의 등에 대해 반대하는 격앙된 목소리가 생생하고, 요즘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확신과 웅변조를 접해볼 수도 있다. 지은이가 여성이기 때문에 초기 여성학의 사상도 담겨있다. 미국에서 정치범으로 구속된 첫 여성이기도 한 골드만(1869~1940) 은 러시아 태생. 반전(反戰) 운동 때문에 러시아로 강제송환됐으나 소비에트 체제에도 반대했다. 스페인내전에도 개입했다.
--- 중앙일보 01/12/08
아나키즘…왜 다시 주목 받는가
1996년 필자를 비롯한 한국의 제3세대 아나키스트들이
펴낸 ‘아나키·환경·공동체’는 한때 무덤에서 잠자던 이념으로 치부되던 아나키즘이 왜 다시 새롭게 주목받는가를 사상사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생태주의, 자유교육, 미학과 예술론의 차원에서 논의했다. 이를 전후하여 다양한 주제를 다룬 아나키즘 관련 서적이 잇따라 등장한다.
아나키즘의 역사에 관해서는 무정부주의 운동사 편찬위원회의 ‘한국 아나키즘 운동사’와 오장환의 ‘한국 아나키즘 운동사 연구’를 뒤이어 이호룡의 역작 ‘한국의 아나키즘’이 최근 출간됐다.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아나키즘 운동의 성공과 좌절을 분석하고 그 특성을 구명한 이호룡은 면밀한 사료수집을 통하여 근대 한국아나키즘의 기원을 1880년대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둔다.
한편 조광수의 ‘중국의 아나키즘’과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의 지평을 동아시아로
확대하면서 노자의 무위 정치사상을 재조명하고, 한·중·일 아나키즘을 비교한다. 역사소설가인 이덕일은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통하여 아나키스트 독립투사들의 빛나는 발자취를 더듬고 있다.
생태주의의 확산은 아나키즘의 부활에 기폭제가 되었다. 북친의 ‘사회생태론의 철학’은 에코아나키즘을
개척하는 선구자적 업적이나, 구승회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에코필로소피’를 통하여 마르크스, 니체, 요나스, 북친의 생태철학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공동책임이라는 보편적 거시윤리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김경복은 ‘한국 아나키즘 시와 생태학적 유토피아’에서 신채호, 권구현, 김화산, 신동엽의 시에 담겨있는 아나키스트 심미론을 분석한다.
아나키즘의 찬란한 불꽃은 반국가주의에서 타오른다.
세계의 양심으로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촘스키의 ‘불량국가’는 각종 국가폭력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흥미롭게도, 최근 대표적 자유주의자인 조지프 나이조차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라는 책을 쓸 만큼 국가권위는 추락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국가권위의 정당성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볼프의 ‘아나키즘-국가권력을 넘어서’(원제는 아나키즘의 변호)가 출간 30여년 후에 다시 소개되고 있다.
1960년대 상황주의자들의 새로운 생활양식 창조(반문화와 반권위)를 열창하는 ‘섹스피스톨즈 조니로턴’의 펑크음악에 열광하든지 아니면 보다 차분하게 박홍규의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에 빠져들어 삶의 예술화와 자연화를 음미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나키스트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엠마 골드만의 ‘저주받은 아나키즘’을 빠뜨린다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 골드만은 학술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직접행동파로서 반전운동 및 징병제도 반대, 산아제한 권장, 남녀평등을 주창하여 미국에서 정치범으로 구속된 첫번째 여성으로, 시민권을 박탈당한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여성해방론은
기존의 페미니즘과는 달리 여성의 정치참여가 갖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고, 억압적인 국가-정부 체제의 본질을 바꾸어야만 진정한 남녀평등과 인간해방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란 "어떤 형태로든
반란의 정신에 민감한 사람"(본문 74쪽)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이 기나긴 저주의 겨울밤을 새로운 반란이
시작되는 축복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
--- 조선일보 책마을 01/12/08 김성국 교수(부산대 사회학과)
20세기 초 중국 상하이. 검은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눌러 쓴 청년들이 걸어온다. 얼굴에는 허무와 우수가 드리워져 있다. 눈초리는 매섭고 날카롭다. 그들을 감싼
공기가 심상치 않다.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하다.
영화 ‘아나키스트’는 아나키스트의 캐릭터를 이처럼
낭만적으로 그렸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목숨도
초개처럼 버리는 테러리스트. 아나키즘 전문가인 구승회 동국대 교수(철학)는 영화 ‘아나키스트’에 대해
“아나키스트의 캐릭터를 왜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을 하위문화·저항문화·반문화의 표상으로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당신은 아나키즘을 아는가. 먹물 든 사람이라도
열에 아홉은 ‘무정부주의…’하며 말끝을 흐리고 말
것이다. 그만큼 아나키즘은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에서조차 소외돼 왔다. 그래서 ‘Anarchism and
Other Essays’가 원제인 이 책이 번역판에서 <저주받은 아나키즘>(김시완 옮김)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듯하다.
저자인 엠마 골드만(1869~1940)은 20세기의 대표적
아나키스트. 러시아 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뒤 아나키즘 운동을 펴다 투옥되고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여성이다. 그가 1910년 출간한 이 책은 난삽한 아나키즘의
개념을 비교적 명료하게 서술한 ‘아나키즘 입문서’다.
골드만에 따르면 아나키즘은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기초한 사회질서를 창출하려는 철학이다. 요약하면, 모든 인위적 권위에 대항하는
급진적 사상으로 볼 수 있다. 아나키즘은 신과 교회, 국가 특히 절대왕정, 자본가 중심의 부르주아 세력에 저항해 왔으며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또한 반대한다.
사회주의 역시 강력한 권력체제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골드만의 사자후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에 대한 관점을 보자. “노동자들은 자신의 대변자를 뽑을 수 있다. 그래서 선량한 정치가들이 의회로 진출했지만 이들의 신념이 어떻게 되었는가? 정치의 장에서는 대안이 없다. 따돌림당하거나 아니면 아첨해야 한다. 대중의 마음 속엔 정치가 뭔가 해줄 거라는
미신이 있다. 그러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속고 또 속으면서도 ‘뭔가’를 기대하는 이 땅의 유권자들 처지가 1세기 전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전지구를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전쟁에 대한 시각도
눈여겨볼 만하다. “독단과 교만과 이기주의가 애국주의의 핵심 요소다. 우연히 특정한 장소에서 태어난 자는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자보다 자신이 더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어릴 때부터 마음에 독기를 품고
어른이 되면 군비증강과 전쟁으로 이어진다”
아나키즘은 본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이상주의다. 그러나 역사상의 모든 전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겠다는 ‘헛된 시도’가 중첩돼 이루어진 것 아니던가. 20세기에 스러진 듯하던 아나키즘의 이상은 21세기 들어 세계의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생태 아나키즘’이란 새로운 형태로 다시 구현되고 있다.
<저주받은 아나키즘>은 출간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책이다. 모름지기 ‘사상의 자유시장’을 지향하는 사회라면 소수자들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니까.
--- 경향신문 01/12/08 김민아 기자
독창성 억누르는 권력을 넘어라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나키스트이자 미국에서 정치범으로 구속된 첫 번째 여성이이기도 한 저자는 1910년 출간된 이 책에서 다소 선동적이긴 하지만 평이한 문체로
아나키즘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이주민으로 1887년 아나키스트들이 일으킨 시카고의 헤이마켓 폭탄테러 사건에 자극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된 저자는 책에서 20여년간 아나키즘 운동을 하면서 대중에 제기한 의문에 답하고 있다.
가령 ‘아나키즘:그것은 진정 무엇을 옹호하는가’에서 저자는 폭력에 의존해 자유로운 능력의 발휘를 방해하는 권력제도, 즉 정부는 타도할 대상임을 역설한 뒤
개인의 잠재된 모든 능력을 최대한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이상사회를 꿈꾸고 있다. 그는 “더 이상 꿈꿀 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외친다.
또 ‘소수 대 다수’라는 제목의 글에선 다수와 대중은
절대 정의나 평등을 대변하지 못하며 개인성을 말살하고 자유롭게 표출되는 독창성의 발휘를 막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신과 교회 ▲국가 ▲자본가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도 타도 대상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성적 상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살라”는 주장에서 보듯 아나키스트인 동시에 여성의 입장에서 현대 페미니즘의
가야할 노선을 밝혀주는 글도 여러 편 실려 있다.
--- 문화일보 북리뷰 01/12/7 최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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