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6. 주일 큐티
요한일서 5:14 ~ 21
사도 요한의 간절한 당부들
관찰 :
1) 기도의 응답에 대한 담대함
-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a. “담대함”(παρῥησία, 파르레시아)은 요한일서에서 4번 사용된 단어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심판날에 성도들이 갖는 담대함(2:28; 4:17),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갖는 담대함(3:21, 22)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b. 본 절에서도 성도들이 기도할 때 갖는 담대함은 기도 응답의 확신에서 오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요구 사항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자의 생활과 뜻이 하나님과 말씀과 뜻에 부합하도록 복종하겠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이며, 그러할 때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15절.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a.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이 말은 14절을 반복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4절에서는 기도의 간구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15절에서는 기도의 일반적인 원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b. “무엇이든지”는 14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무엇이든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주시듯이 그런 기도를 드리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c.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은 더욱 기도 응답의 확신으로 이끌어서 강화되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확신하여 “아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형제를 위하여 구할 것
- 16절.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a. 일반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죄'가 배교나 적그리스도 혹은 거짓 교사들의 죄와 같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부합되지 않는 죄를 가리키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믿는 자들이 유혹에 넘어가 범할 수 있는 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b. 사도 요한이 이 글을 쓰고 있던 당시에는 배교자의 문제, 그리고 배교했다가 다시 교회로 들어온 이들에 대한 문제, 그리고 다시 교회로 들어왔다가 또 핍박이 일어나자 다시금 배교한 이들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c. 사도 요한은 그러한 상황에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저지른 성도들에 대해서는 중보할 것을 명하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이들에 대해서는 중보할 것을 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 17절.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a.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라고 해서 그것이 허용되는 것이라는 오해의 소지에 대해서 해소하고자 이렇게 부연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b.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서 회개하지 못하는 죄가 있고, 회개가 가능한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죄 자체의 심각성이 축소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 18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a. “범죄하지 아니하는”(οὐκ ἁμαρτάνει, 우크 하마르타네이)은 현재시제로서 믿는 자가 계속 반복되는 범죄나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b.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무런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바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과 또한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짓는 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그런 범죄에 묶여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로서 성도들을 지키심으로 악한 자, 곧 사탄이 성도를 만지지도 못하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c. 주님이 성도를 친히 지켜주심에 대한 말씀은 여기 뿐만이 아니라 요 17:12; 벧전 1:5; 유 1:24에서도 동일하게 해 주시는 말씀으로서 변함이 없는 말씀입니다.
4) 사도 요한이 확신하는 것
- 19절.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a. 여기서의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탄의 세력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b. 세상, 곧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사탄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임을 사도 요한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 20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a.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의미합니다.
b. “참된 자”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참된 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음을 사도 요한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비한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c.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우리에게 친히 대속 사역을 이루어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참된 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들어가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d.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사도 요한은 도마가 했던 신앙고백, 즉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요한복음에서도 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e. 사도 요한이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신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참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지주의자들에게 대한 최종적인 공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셨다면 영지주의자들의 모든 논리는 무너지는 것이고,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영생이 있음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도 요한의 변증이기에 더 이상의 변론이 필요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5) 마지막 당부
- 21절.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a. 우상숭배에 대해서 요한일서에서는 이 마지막 구절에 단 한 번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긋나는 마무리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의 모든 본문 속에서 영지주의자들에 대하여 거의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영적 전투를 수행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갑자기 튀어나온 말씀이라기 보다는 사도 요한의 결론으로서 합당한 표현입니다.
b. 사도 요한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로서 파격적인 결론을 지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영지주의 이단에 빠진 자들에게 큰 경고를 남기기 위해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사도 요한은 기도에 대한 놀라운 담대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된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기도는 너무 초월적이어서 현실을 도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대로 구하게 될 때, 구하는 모든 것이 응답되는 놀라운 영적 비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그 모든 일들에 대한 핵심 메시지가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도 요한은 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곧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이 나눔이 죄에 대한 허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더 적극적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사탄은 성도를 죄에 빠지게 만들고 무너지게 하고자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을 때 그 범죄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4) 사도 요한의 최종적인 변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이 바른 믿음이며, 그 믿음이 이단과 구별되는 믿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5) 사도 요한의 파격적인 끝맺음은 충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충격을 주기 위한 방식을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듯이 영지주의의 이단, 그리고 앞으로 오고 오는 모든 이단들에 대해서 그 이단들의 영향에 물들지 말게 될 것을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고 글을 맺었습니다.
적용 :
1)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기도가 응답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의 대가 조지 뮬러는 그 비밀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부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 사탄이 아무리 성도를 넘어지게 하고자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호하에 있으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룰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보호 아래서 사탄의 궤계로부터 벗어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 주님의 육신이, 나의 살과 피가 되도록 그렇게 흐르게 하여야 합니다. 내 뜻, 내 생각은 모두 죽이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생각만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사고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영생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 그런 분이십니다. 나의 믿음의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고백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4) 하나님의 자녀들은 스스로를 지켜 우상, 곧 이단 사설에 빠지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진리가 바르게 세워지는 삶을 날마다, 쉼이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주일 큐티로 요한일서의 말씀을 마쳤습니다. 요한일서를 통해서도 새롭게 발견한 많은 가르침과 적용점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에스더서를 주일에 묵상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