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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재형 동기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교정본을 올립니다.
추후도 추가나 교정할 것이 있으면 올려 주세요.
서울의대 졸업 45주년 기념 하와이 여행.
하와이 빅 아일랜드에서 2017년 9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국내외 동기부부 41명이 같이 여행을 즐겼다.
2017년 9월 30일-하와이 여행 첫째 날
인천공항이 몹시 붐빈다하여 우리 부부는 삼성동 공항 터미널에 왔다. 의외로 수속은 간단하게 끝이 났으나 즉시 셔틀버스를 예약하였어도 무려 한 시간이나 지나야 출발하는 편이다. 올림픽도로의 반포부터 여의도 구간에는 오늘 저녁에 불꽃놀이 축제가 있어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차가 밀린다. 공항게이트에 기다리고 있으니 동기 들 부부가 속속 모여 든다. 그 중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석 정우동기는 external device가 보안 검색 중 금속 탐지기에서 걸렸다고 투덜투덜 댄다. 이럴 때는 진단서가 필요하다.
긴 시간의 탑승 끝에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 하였다. 바깥의 날씨는 역시 열대지역이라 더운 날씨이다. 여기에서 일단 짐을 찾아 다시 국내선에 부쳐야 한다. 이를 잊고 있다가 짐을 늦게 찾아 애 먹은 동기도 있었다고 미리 도착한 동기가 알려와 그대로 하였으나 우리가 가는 곳은 Big island라 국내선으로 바꾸어 타야 한다. 제 2 건물인데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하여 헤매다가 우리를 찾으러 온 체포조가 출동하여 포박해 가듯 한다. 잠시의 비행 끝에 코나 공항에 도착하였다. 짐을 찾으니 임 종윤 동기의 가방이 파손되어 일단 클레임을 하기로 하고. 문제는 가방이 견고한 플라스틱 가방이었는데 깨어지고 속에 든 내용물까지 쏟아져 내려 일부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여행 중 가방 파손과 가방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는 나도 남의 일같이 않았다. 준비된 버스를 타고 배산 임수가 아니라 뒤는 경관 좋은 골프장, 앞으로 모래밭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보이는 Hapuna beach prince hotel에 도착하다. 체크인을 하고는 welcome drink로 열대 주스 한잔을 들고 카드 키와 저녁 식사를 안내 받았다. 짐을 정리하고 있으니 맛있게 생긴 환영 초콜릿 접시를 메이드가 들고 온다.
환영 리셉션이 열려 미국 동기들이 준비한 일정표가 뒤에 들어있는 명찰과 프로그램 등 행사용품과 색이 다른 모자와 등산용 스카프까지 선물들을 한 보따리씩 풀어 놓는다. 동기들만의 공간, 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홀에서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그리고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 곳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동기들이 오랜만의 해후를 만끽하였다. 이어서 계속된 저녁의 파티는 자리를 옮겨 치즈와 와인이 준비된 공간에서 정식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미주 동기회장 회장 석 창호동기의 인사말과 동기들 각자 근황 소개와 각자 건배사로 끝내었다.
1017년 10월 1일-하와이 여행 이틀 째
아침을 해변의 식당에서 처와 둘이서 먹는다. 앞의 수영장에서는 벌써 수영복차림의 젊은 남녀가 물속에서 놀고 있고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풍경이다. 음식은 뷔페식으로 잘 차려져 있었고 우리 옆 테이블까지 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쪼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오전 골프팀은 벌써 나갔고 주일 아침이라고 김 현배동기와 박장로가 이끄는 예배 모임이 있었다. 점심은 Sunset cruise에서 멀미를 대비해서 나는 거의 안 먹었다. 또 하나 식성이 좋은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주는 대로 다 먹었다가는 돌아오면 체중이 보통 몇 킬로가 늘어나니까. 오후는 모두 같이 4시에서 8시까지 Sunset Dinner Cruise이다. 졸업 20주년 제주 기념행사 때 풍랑이 세어 거의 대부분이 멀미를 한 서귀포에서 탄 작은 배와 달리 오늘은 그래도 큰 배이었다. 승선을 기다리는 동안 여승무원이 시원한 물들을 연신 날라 준다. 배에 올랐더니 뚱뚱한 마오리 아가씨의 춤과 원주민 아저씨의 구수한 노래를 메들리로 들려준다. ticket 한 장에 칵테일 한잔이라 술이 부족한 김 광현은 자기 돈으로 산 와인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런데 쉽게 넘어가면 안 되지요. 자리를 옮겨 가며 바깥 경치도 구경하며 어울려 사진도 찍으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지나다가 호텔로 돌아온다. 오늘 저녁 행사는 황 순재의 전각 강의와 이어진 노래방이다. 정년 후 취미로 시작한 전각은 이미 수준에 올라 전번 함춘 미전에도 출품하여 구경한 적이 있다. 미국의 동기가 준비한 노래방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마이크로 졸업 35주년 알라스카 크루즈처럼 다들 닦아온 솜씨로 노래를 불렀다. 오늘 최고의 가수는 박 재형, 김 성숙의 듀엣으로 고향의 노래와 가지산 억새를 불렀고 앙코르 곡까지 척척 받아 물방아를 부르는데 아마도 노래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지 않았던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음이 잘 맞았다. 내 노래실력을 평소에 아는 나의 친구 어느 동기가 내가 부르면 자기도 부르겠다고 하였다가 그래도 직원들 따라가 배운 솜씨를 발휘하여 나 훈아의 사랑을 불러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2017년 10월 2일-하와이 여행 3일째
하와이 섬 일주 관광이다. 아침 식사는 우리 호텔보다 한 단계 높은 Mauna Kea beach hotel로 같은 체인 호텔인 모양이다. 커다란 앵무새 쌍이 지키는 정원을 지나 바다에서 일찍부터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아하게 식사를 즐긴다. 오늘은 관광 팀과 골프 팀 모두가 같이 출발하는 섬 일주 관광이다. 아침 7시 30분에 시내 관광시작으로 6시까지 밖에서 보내고 와서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자마이카 블루 마운틴, 예맨 모카와 더불어 세계 3 대 커피로 이름 난 Kona coffee 농장을 들린다. 코나란 겨울철에 하와이 제도를 엄습하는 바람이다. 프랑스 남부에 불어오는 건조하고 찬 북풍으로 특히 론 강의 델타 지대에 강하게 불어오는 미스트랄이나 우리나라의 새바람처럼. 커피 열매를 보며, 또 커피를 맛보며 나올 때는 한 보따리씩 선물로 산다. 다음 여정을 가는 길에 숲속을 어정어정 걸어 다니는 야생의 칠면조들을 보았다. 도착한 Black sand beach는 마치 제주도의 무슨 해수욕장처럼 검은 모래가 깔려 있다. 사진을 각자, 부부끼리, 단체로 바다를 배경으로 찍으며 모두들 즐거워한다. 버스는 달려 자꾸만 높은 곳으로 이동하더니 닿은 곳이 Mauna Loa 화산이다. 화산의 분화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이를 배경으로 다시 단체사진을 찍었다. 점심은 버스 속에서 미리 주문을 받는다.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와 자그마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하나 같이 너무 양이 많다. 1인분으로 둘이 먹어도 남을 정도. 나는 처와 하나를 시켜 둘이 나누어 먹었다. 식사 후 레인보 폭포를 구경하고 용암으로 이루어진 튜브를 걸어 들어가 반대편으로 걸어 나온다. 튜브와 굴의 구별은 끝이 뚫려 통하면 튜브이고 막혀있으면 굴이라고 누가 말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버스는 쵸콜릿 판매처를 들러 시식용 초콜릿을 맛보며 또 선물로 사기도 하였다. 특히 결혼한 자식들이 있는, 즉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 녀석들 주느라고 많이들 샀었고 이는 다음에 방문한 마카다미아 공장에서도 마찬가지이었다. 나는 와사비가 들어간 맵싸한 마카데미아를 나의 맥주 안주로 샀다.
저녁 식사 후 행사는 고 석환 부인인 수원대 최교수의 지도로 춤 강습이다. 준비 체조로 몸을 풀고는 가장 기본인 왈츠로 시작한다. 역시 알라스카 크루즈에서 한 것처럼. 그때는 김 재석이 강사이었던가? 모두들 열심히 따라하나 몸치인 나는 구경만 한다.
2017년 10월 3일-오늘이 하와이 여행 4일째이다.
아침은 어제와 같이 오늘도 근사한 마우나 키아 호텔에서 우아하게 먹었고 골프팀은 벌써 한 바퀴 돌고 오고, 오후의 일정 사이에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 계단강의실 골방에서 즐기다가 교수님한테 혼난 마이티를 하였다. 나도 한때는 별명이 마이티 유이었는데. 요즈음은 내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이다. 그 이유인즉 전에는 안경을 쓰지 않고도 시력이 양 눈 모두 2.0, 다른 이들이 카드 정리하느라 바쁠 때 나는 양 옆 친구의 카드를 먼저보고. 한번 컨닝한 카드는 그대로 머리에 입력이 되었고, 또 묻는 세장의 카드도 잽싸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두가 되지 않으니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날도 몇 십 달러를 잃고 말았다. 점심은 일본식당에서 도시락으로 주문하였다. 멀미를 걱정하여 나는 아예 식사를 굶기로 하였다. 오후 한 시경 출발하여 lava ocean boat cruise 타는 곳까지 무려 세 시간이 걸려 도착. 우리가 있는 Kona의 반대쪽인 Hilo이다. 30년 째 분출되는 용암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육로로 걸어, 자전거를 타고 구경할 수도 있으나 바다 쪽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49인 승의 300마력짜리 엔진 둘을 장착한 보트는 파도를 맞 받아가며 타고 가면서 파도머리에서 ‘쾅’하고 떨어지면 무슨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다. 내 옆자리의 누가 ‘나 오줌 쌋어.’ 또 하나는 우리 동기 부인이 떨어질 때 같이 떨어져 버린 것. 다행히 선글라스 만 벗겨져 나가 찾았고 크게 다친 데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흘러내리는 용암을 보고 열기를 느끼고 매캐한 냄새까지 맡고, 떠다주는 따끈한 바닷물에 손도 담가보고, 바다 속으로 용암이 떨어질 때 내 뿜는 수증기까지 볼수록 장관이다. 이 여행에 참가한 우리 모두 처음 보는 광경이다. 하나 나의 불만은 단체 카톡방을 통하여 배를 타기 전 자신의 생년 월일과 체중을 올려달라는 것이었으나 이는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괜히 자신의 개인 비밀만 공개하게 된 것이다.
저녁은 Hilo 지역의 한식당 참참에서 모처럼 한식을. 며칠간 못 먹었던 한식을 정신없이 먹었다. 이날은 모두들 너무 피곤하여 그대로 각자 숙소로 바이 바이.
2017년 10월 4일-하와이 여행 마지막 날
어제는 파워 보트의 아찔한 승선과 평생 잊지 못할 용암이 흘러내려 바다로 낙하하는 광경을 보고 골아 떨어졌다. 새벽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니 멀리서 들리는 파도소리. 가까이서는 몇 종류의 새소리가 들린다. 해는 수평선너머 비상을 준비 중이다. 다음날 아침 너무 용을 쓴 탓인지 눈의 결막 하 출혈이 나타났다.
오늘의 행사는 사탕수수 관개용 운하에서 카약을 탄다(Kohala Ditch Kayak tour). 이는 비골프팀인 박장로가 주선을 한 것이다. 일단 호텔을 벗어나 조용한 시골길을 한참이나 달려 정차를 한 곳은 화장실이 있는 사무실이다. 여기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허리에 안전 부이를 매고 카약을 타러 가는 다른 차를 바꾸어 탄다. 차를 타고 가며 카약 투어를 가이드할 젊은 현지 친구가 우크레레를 뜯으며 노래를 부른다. 가만히 살펴보니까 지나치는 차에 탄 사람들 보고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세워 흔드는데 이게 서로의 인사라고 한다. 바닷가 언덕위로 나와 구경을 하고는 개인 소유인지 울타리 문을 열고 차는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가 전에는 사탕수수 plantation을 한 곳. 건설한지 110년이 되었고 더 이상 그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으나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카약 투어는 11명 참가하여 세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카약 1호는 유 석희, 김 권부부, 2호는 박 재형, 안 제환부부, 3호는 석 정우부부, 윤덕기부인이다. 선두에 탄 사람은 헤드랜턴을 쓰고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불을 켜야 한다. 구아바와 바나나 숲을 지나 터널을 통과해서 나오면 새소리가 반긴다. 동굴을 10개까지는 헤아리다가 더 이상은 잊어 버렸다. 우리 바로 뒤를 따라오는 카약에는 박 재형부부가 타고 오며 둘이서 잘 아는 동요를 이중창으로 부른다. 넓고 넓은 바닷가로 시작되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부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오빠생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마지막으로 알로하오에와 석별의 정까지 노래 소리는 동굴을 튕겨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었다. 비록 엉덩이는 흠뻑 젖었지만 흐르는 물에 카약을 맡기고 5킬로 거리를 한 시간 반 동안의 뜻 깊은 경험이었다.
오늘 저녁은 마지막 날 farewell party이다.
개회사에 이어 먼저 세상을 떠난 우리 동기들을 위하여 묵념을 올리고, 정말 오랜만에 불러보아 가사도 잊어버린 서울대학교 교가를 친절하게도 프로그램 한편에 인쇄를 해두어 따라 불렀다. 미주 동기대표와 한국 동기 회장 김 상준 대신 총무 박 주철동기가 인사를 마치고는 골프대회시상식에서 이런 좋은 골프장에서 좋은 계절에 좋은 친구들과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상 받을 일이지만 그래도 성적을 보면 메달리스트는 황 순재, 롱기스트 장 병호와 박 주철 처로 역시 키가 커야 멀리 칠 수 있는 모양이다. 이어서 준비된 졸업 45주년 기념이라고 쓰인 축하케이크를 자르고 참가자 모두 함께 기념촬영을 마쳤다. 지난 30주년 기념 만찬에서 박재형 장로의 훌륭한 기도로 우리들의 3박 4일 용평행사가 아무런 탈도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지요. 다음 날 우리가 묵었던 용평리조트의 호텔은 물에 잠기고 난리가 났었지만. 오늘의 기념만찬식사도 박장로의 기도로 시작한다. 간략을 하면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생명의 근원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시고 1972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45년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고치며 도와주며 귀한 소명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함께 학창생활을 한 동기들과 우정으로 맺어주시고 사랑하는 배우자들을 만나 가정을 이루며 생명을 이어갈 자녀손도 주시고 건강과 기쁨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9월 30일부터 오늘까지 5박 6일의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에서 즐거운 재회를 하며 미주동기들의 수고로 모든 일정을 잘 마치고 이제 송별의 모임을 가지려 합니다. 국내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많지만 자유 대한민국을 애국가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가 굳건히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귀한 추억을 잘 간직하며 또다시 만날 수 있게 하시고 이시간도 즐거운 만찬시간을 주심을 감사드리오며 격려와 위로가 넘치는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하건배까지 마치고는 호텔에서 정성껏 마련한 만찬에 들어간다. 메뉴는 grilled asparagus salad로 시작하여 sweet butter을 곁들인 freshly baked dinner roll이 나왔다. Entree는 누구나 둘 중의 하나는 좋아하는, 그러나 먹보들은 둘 다, surf and turf로 오늘 surf는 beef tenderloin, 그리고 turf로 pacific lobster tail이었다. 그리고 디저트는 strawberry short cake과 축하기념 케이크 한 쪽도 맛보았다. 마지막으로 tea and Hawaiian blended regular coffee로 마감을 하였다.
이어진 여흥의 Program을 적어 보면
1. Dance : 고 석환 부부가 먼저 애절한 가사가 눈물겨운 테네시 왈츠를 정식 무도회 복장으로 멋들어지게 추었다.
2. Duet : 우리 동기의 아마추어 가수 부부로 김 광현, 이 경희 부부의 이중창은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3. Saxophone 연주 : 백 근수 부부는 알토와 테너 두 대의 색스폰을 공수해 왔다. 호텔에서 준비가 되지 않아 마지막 날만 겨우 연주를 할 수가 있었다. 연주한 곡목은 진주만에서 진주 조개잡이, 오블라디 오블라다, 사랑의 트위스트와 마지막 곡으로 홍도야 울지 마라.를,
백 근수의 이야기는 ‘우여곡절 속에 JBL 스피커와 400W급 앰프를 단돈 $250 에 빌릴 수 있었으나 나이를 먹으니 코드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몰라 라바 크루즈에서 늦은 밤 도착해서 다들 잠자기 바빴지만 집사람과 나는 빌려온 것들을 이벤트 홀로 옮기고 연결을 하느라 새벽 1시까지 몸부림치다 결국은 실패하고 지쳐서 숙소에 가서 자고 다음날 자유시간에 놀러가지도 못하고 다시 시도하던 중 다행스럽게 작동이 되는 길을 찾았습니다. 빌린 것부터 연결, 작동에까지 나한테는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이었습니다.’
4. Dance : 김 재석 부부의 느린 4 박자인 볼레로를 Andy Williams의 우리가 다 아는 슬픈 이야기인 Love Story theme music으로 정감 있게 표현하였다.
5. 독창 : Mrs. 이종윤의 ‘석별’을
6. 백조의 호수 중에서 석 창호 부부의 엉터리 발레는 마지막 일부러 쓰러지는 장면까지 폭소를 자아내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동기들은 아직 대부분이 현역으로 일하고 있고, 참석한 국내외 동기들은 건강, 시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동기들이지요. 이와 달리 미국 동기들은 넉넉한 연금으로 대부분이 은퇴를 하고 추운 북쪽에서 내려와 플로리다의 올랜도와 LA 부근에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개업을 하는 친구들은 병원을 그만둘 때 주체 못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골프도 바쁜 생활에서 잠깐의 짬을 내어 칠 때는 즐겁지만 늘 골프만 치고 시간을 죽일 수는 없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은퇴 후 생활은 사회활동과 취미생활, 배우는 것도 좋고. 국내에서 은퇴한 우리 동기들은 한 인교는 전원생활을, 고 석환은 춤을 배우고, 황 순재는 서예와 전각에 빠져 있다. 그러면 나는 현재 임상연구 수탁 중재기관에 주 3일간 나가며 여러 취미 생활로 여유를 즐기고 있다.
45주년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이곳을 통하여 한국과 미국 동기들이 여러 정보를 주고받았고, 예를 들면 호놀룰루공항에서 짐을 반드시 찾아 다시 코나 공향으로 부쳐야 한다는 것 등. 또 여행사와도 참 아주 편리하게 이용을 하였다. 앞으로도 폐쇄를 하지 않고 계속 이용을 할 작정이다.
의사들의 모임 특성 중 하나는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행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고, 석선생부인의 맹활약으로 미팅 룸 한 곳을 잡아서 호텔의 갖은 서비스를 받으며 여러 행사를 치룰 수가 있었다. 감사에 또 감사를 표한다. 하나 마지막으로 하와이안 플루가 밀어 닥쳐 동기 들 몇 명이 고생을 하였다는 것이다.
추가를 하자면 내가 참여하지 않은 골프 후기를 부탁하였더니 ‘골프는 본질적으로 후기가 어렵습니다. 다 같이 모여 하는 활동이 아니고 각자는 다른 상황과 다른 심리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한사람이 기술하기는 무리입니다. 한 팀에서도 지옥과 천당이 같이 존재하지요. 골프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크게 기술할 게 없습니다. 그래서 "골프는 인생보다 더 인생답다".라고 하지요.’ 방 성호동기의 이 글로 가름을 하겠습니다.
45주년 행사는 기술한 바대로 성공으로 끝이 났습니다. 다음번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50주년 행사와 관례에 따라 55주년 행사가 미국에서 개최되겠지요. 아무쪼록 동기 여러분들 건강하게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보고 간 사람들은 많은데 아무런 코멘트나 추가가 없네요.
이 걸 서울의대 미주 동창회보 시계탑과 국내 서울의대 동창회보에 동시에 올려도 될까요?
또 참가자들을 거명할까요?
여러분들이 추천하는 사진 몇장을 말씀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