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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 열두번째이야기.
아르바이트
"안녕히계세요.."
"현세, 오늘 어디 아프니? 말도없고, 기운이 없어보인다.. 집에가서 푹 쉬고 내일 보자."
아프냐고요? 글쎄요.. 기운이 없어보인다고요? 글쎄요..
그게 아니라 그냥 녀석과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서 고개도 안들고 책상에 머리를 쿡- 박아두고 그림이나 열심히 그린 것 뿐인데요.
예예, 전 오늘 내내 가시 방석에 앉아서 코끼리 한마리를 끌어안고 있었던것 과 같은 기분을 마구마구 느끼며 그림을 그렸어요.
그냥 괜히 민망하네요.
화장실을 갔다오고나서 녀석에게 딱히 말을 건낸건....하나도 없구요, 녀석도 저에게 딱히 말을 안거는 걸 보니까 제 답변을 기다리는가봐요.
간혹 그림을 그리다가 슬-쩍 앞을 보면 녀석도 괜히 제 눈치를 살피는거 있죠.
그래도 눈빛은 '빨리 말해!' 딱 이 눈 빛이였단 말이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드로잉북을 수십 번도 넘게 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귀는게 말이죠.. 그.... 사라랑 사라 남친 처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자... 이 말이잖아요 ..그쵸?
맨날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면서 갑자기 이건 무슨 말인구요.
에이, 모르겠어요! 생각하면 할 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벌렁벌렁 요상한 느낌이 드는것이... 딴 생각으로 넘겨야 겠네요.
상화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요? 녀석.. 또 술 먹고 있는 건 아니겠죠? 아주 대학생 되더니 술 살이 포동포동 하루가 다르게 붙어가고 있던데 말이예요.
"다녀왔습니다"
집에들어서자,
.........또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거실엔 불이 꺼져있고, 안방에는 불이켜져있고... 아빠 신발, 엄마 신발.. 두 신발 모두 가지런히 놓여있는걸 보니.. 두 분다 안방에 계시나봐요.
"현세왔니...
...잠깐 좀 들어와 볼래?"
어두워요.
굉장히 어둡네요.
엄마의 목소리 말이예요.. 이미 제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긴 했나봐요.
뭐 뻔하죠.. 이젠 자동적으로 말안해도 알겠네요. 몸이 길들여지고 있나봐요. 이 망할 놈의 집 구석에 말이예요.
방안에 들어서자 아빠의 모습도 보이네요.
침대에 앉아있는 엄마, 그리고 화장대 옆 작은 서랍에 기대어 서있는 아빠.
아무래도 또 기분 나쁜 소리들을 들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또... 또 말이예요.
"현세야"
"네"
"그림...잘되가니?"
"...그냥..뭐"
엄마가 그림에 대해 갑자기 물어보시네요.
이런 숨막히는 분위기의 두 사람 사이에서 듣는 이야기가.. 고작 그림이라니요. 대체 이번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걸까요?
"엄마, 아빠가 말이다..."
"....그만해! 내가 돈 벌어 올테니까"
"...당신이 돈 벌어온다고 그 말한게 어디 한 두번이야?! 이젠 지쳤어. 나 혼자 버는 것도 이젠 한계라고!"
"현세 그림 그만두면 얘는 이제 뭐하라고!! 우리 때문에.... 얘 앞길 까지 막을 셈이야?"
"왜 우리때문이야! 당신때문이지!"
한 쪽 귀에서 왕왕왕 또 다른 한 쪽 귀에서 왕왕왕
귀 아프다...
귀가 아프네요.
나는 투명인간으로 변해버린 것 처럼 그렇게 두 분이서만 또 대화하셔요.
그것도 아주 무섭게.. 고함을 지르시면서 말이예요.
어릴 적 부터 꼬박꼬박 듣던 증오의 목소리들이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무섭고, 무섭고....슬프네요.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으신 건데요."
참다, 참다.. 제가 입을 열었어요. 그러자 두 분이 모두... 절 바라보시네요.
이런적이 처음이거든요. 전 매번 두 분이 싸우실땐 아무 말 못하고 다 듣고... 그냥 어린애 마냥 20년 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기만 했거든요.
근데 처음이네요. 두 분의 말을 끈고 제가 먼저 입을 연건말이예요.
곧바로 아빠께서는 고개를 돌리시며 화장대에 올려져있는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는 밖으로 나가버리세요.
이제 엄마와....저... 단 둘이만 남았어요.
오늘은 유난히도 두려워지네요. 엄마의 입에서 나올 말들이..
"너도 알다시피......"
"하시고 싶은 말씀만 딱 집어서 간단하게...... 말씀해주세요. 오늘 몸이 안좋아서요. 죄송해요."
"........"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냐고요."
"...너 학원비 내줄 형편이 안되"
"......."
"애초에 재수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너도 알잖아. 아빠 저렇게 되시고, 엄마가 나가서 돈 조금 버는걸로는..."
"끈을까요?"
"..."
"학원 끈을까요?"
"....미안하다."
"네, 알겠어요. 저 이제 나가봐도 되죠? 안녕히주무세요."
그냥 짜증났어요. 어느정도.. 이 말이 언제 나올지 궁금하긴 했었어요.
애초에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미술은 돈이 많이 들잖아요. 학원비도 비싸고 재료도 비싸고... 근데 우리집은... 돈이 없네요.
그럼 난.. 미술을 하면 안되는거네요.
결국 원인 제공은 모두 나였네요. 내가 미술을 한게 잘못이고, 내가 재수를 한게 잘못이고... 참
아예 내가 태어난게 잘못된거라고 그러지 그래요?...
방으로 들어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어요.
미술하면 다 돈 많은 부자인줄 아는 인간들도 있데요. 징하죠? 하고싶은 걸 한다는 것은 말이예요.
막상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나온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에 걸리는거 있죠?
설마.. 나 정말 그림 안그리게 되는건 아니겠죠?
..........
아침에 일찍 집을 나왔어요.
가방에는 mp3와 선크림, 머리묶을 고무줄, 천원짜리 지폐 세장이 달랑 들어있어요.
책이들어있어야 할 가방은 이렇게 텅 비어있고... 제가 향하는 곳은 도서관도 아니예요.
공부해서 뭐해요. 지금 미술 때려치면 대학도 어짜피 못갈건데 말이예요.
엄마, 아빠 두 분다 어제와 오늘 아침 모두 말이 없으세요.
미안하다고... 그냥 해본 소리였다고 말씀해주셨으면 난 지금 도서관을 가고 있을거고, 좀 이따가 미술학원도 갔었겠죠?
"저기.. 죄송한데, 아르바이트 구하신다고 해서 전화드렸거든요."
'어제 이미 다 뽑았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pc방 한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뒤져 벌써 12번째 통화를 걸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네요.
뭔 놈의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이렇게 어렵답니까?.. 통화 요금만 아까워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할인마트, 서점, 고깃집, 아이스크림가게... 다들 가족들이 꽉꽉 찼다고 절 밀어내버리네요. 개 집이라도 좋으니 들여주면 감사할텐데 말이예요.
'1시간 정도 후에 면접보러 오실래요? 이력서도 지참하시고요.'
장차 2시간동안 pc방에서 담배냄새를 꾸역꾸역 마셔가며 드디어 저에게도 기회란게 오는군요.
이력서는 어떻게 작성하는 건가요? 인터넷에 나와있는 양식을 뽑기는 뽑았는데..
학력이랑... 자기소개랑.. 자기 소개는 고3때 수시원서 넣는 친구들 쓰는거 옆에서 좀 보기는 했는데..
.........
".....이게 이력서인가?"
"네!...아...저 제가 아르바이트는 처음이라서요.. 이력서 양식뽑아서 그냥 있는 그대로 썼는데.."
"우리 가게에서는 아가씨가 고등학교때 신문편집반에서 기사를 쓴걸 알고싶어하는게 아니라....."
"...."
"....아, 됬고... 일단 자... 카페에서 일한 경험은 있고?"
우리 동네에 이런 카페가 있었나요?
2층이라서 몰랐었나... 분위기가 꾀 좋네요. 커피향이 은은하게 풍기는게...
주인아저씨 인상은 좋아보이네요. 배가 볼록한게.. 음.. 강호동 아저씨를 좀 닮은 것 같기도하네요.
제가 가져간 이력서는 마음에 안드셨나봐요.
이력서는 아예 옆으로 치워두시고는 다른 질문만 하시네요.
"커피에 대해서는 뭘 좀 아는가?"
"그...글쎄요 학교에서 잠 깨려고 종이컵에 몇 번 타 먹기는 해봤는데.."
"그런 인스턴트 커피따윈 우리 가게에서는 취급안해!"
이 아저씨 커피에 대해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으신 분 같아요.
자그마치 20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커피에대한 요상스레한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뭐 원두를 볶아서...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야지 맛이 좋아진다나 뭐라나
모든 관심과 정성을 다 쏫아야지만 맛있는 커피를 만들수 있다네요... .뭐라는건지
"언제부터 일할 수 있지?"
"오늘부터!....오늘부터 일할게요!"
그럼....
저 드디어 일자리 구한건가요?
이런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그러니까.. 대충 서빙하고 설거지하고.. 가끔은 아저씨 커피만드시는 것도 도우면서.. 뭐 그러면 되는거죠?
...........
"어서오세요!"
가게가 조그만해서 일이야 별거아니겠지...했는데, 왠걸요?.. 돈벌기가 어디 쉽나요.
벌써 6시가 다되어가고.. 서빙만 했을 뿐인데, 다리가 저려오네요.
지금쯤이면... 학원에 애들도 하나 둘.. 차고 있겠네요.
....전해준...
아까 일 시작하기 전에 핸드폰을 꺼놨는데.. 문자 와있을까요?
걱정...하겠죠?
그냥... 그러려니하고... 저 신경도 안쓰는건 아니겠죠?
엄마아빠는요?...
학원 안간거 아실텐데.. 저 어디있는지 궁금해하고 계시겠죠?
그림..
그림 그리고싶네요.
어제 그리던 그림.. 거의 다 해서 배경 부분만 조금 더 손대면 완성이였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어요.
하늘은 어두워졌고, 10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일이 끈나네요.
첫 날부터 너무 무리했나봐요. 6시간 이상 꼬박 일하는게 어디 쉽나요?
그래도 주인아저씨는 착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어두워진 밤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있다가 핸드폰을 켰어요.
문자메세지.. 하나.. 둘...셋....넷... ... 일곱...
정확히 일곱 통이 와있네요. 그래도 혹시나 하나도 안와있을까봐 괜시리 걱정되기도 했는데 말이예요.
미니홈피 방명록에 새글이 올라왔다는 문자는 좀 안왔으면 했는데.. 1통이 와있고요,
선생님한테 한통.. '현세야 어디니?'
상화한테 한 통.. '배고파'
그리고.. 아빠한테 한 통.. '어젠 미안했다 현세야..'
...그리고..
'안오냐'
'씹냐?'
'한현세 어디냐고 지금'
'문자보면 연락해라'
이 못난 블랙난도질 녀석이 그래도 문자는 해줬네요.
내가 저번에 녀석이 안왔을 때 걱정했던 것 처럼 녀석도 절 걱정해주고있을까요?
아니려나? 그냥... 그냥 문자했으려나? 에이
집으로 걸어가는 길, 봄이 다 됬구만 왜 이렇게 날씨가 쌀쌀 한걸까요. 한 겨울 옷을 입어도 입김이 나 올 것 같네요.
개나리는 이미 폈을텐데, 이러다 눈이 내리는건 아니겠지요?
'야!!'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너 왜 오늘 안왔는데"
"내 마음이다."
'재수생이 학원을 빠져? 미쳤냐?'
"......응 그래 미쳤다 어쩔래"
집 문앞에 도착해서 한 참을 서성이다가 결국은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버렸어요.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고작 한다는 짓이 전해준한테 전화질이라니.
그냥 궁금해서 하는거예요. 오늘 학원에선 뭘 배웠으며... 그냥.... 그냥 뭐 그런거요
근데 녀석의 목소리가 한 마디 한 마디 들려오면 들려올 수록 왜 기분이 이렇게 더 우울해져가는걸까요? 글쎄.. 서럽기도하고..
'..너... 나때문에 안왔냐?'
"..그래 너 때문에 안갔다"
'.....아 됬다, 없었던 걸로 해줄테니까 내일부터 나와'
"뭘 없던 걸로해"
'너 내가 사귀자고하니까 싫어서 그러는거 아니야! 됬으니까 내일부터 나와'
"....내일도 못나가. 그리고... .. 너 안 싫어 임마"
'..왜 내일도 못나오는데'
"..그냥"
걱정하고있는거 맞죠? 녀석... 지금... 오늘 학원안나와서 저 걱정했던거 맞는거죠?
이와중에 나 왜 웃음이 나오는걸까요? 쓰디 쓴 웃음이네요. 좋은건지... 슬픈건지...
'너 무슨 일 있냐?'
"....."
'야, 한현세'
"얌마! 나 없어도 그림 열심히 그려라! 넌 열심히하면 꼭 좋은 대학 갈거야 임마! 공부열심히하고! 너 경쟁자 한 명 줄어서 좋겠다!"
'너 뭐라고 그러는거냐?'
"나 이제 학원 안간다고요~ 아, 그 지긋지긋한 입시 미술 안한다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너 장난하냐?'
"장난은 무슨~ 진짜야 임마! 넌 꼭 올해 원하는 대학 붙어라! 알았지?!"
'야, 한현세!'
두 눈동자에는 눈물을 한 가득 머금고서는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려버렸어요.
와.. 기분 참 이상하네요.
유치원 때부터 였단 말이예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거 말이예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 즐거웠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되었데요.
그 이유가 말이죠.. 단지 .. 그 망할 놈의 돈 때문이라네요.
뭔 놈의 세상이 이렇게 잔인하답니까? 잘나가는 부잣 집 자식들 한테는 껌 값일 돈 몇 푼때문에 난 꿈을 접게 생겼네요.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네요.
어제만 해도 저는 분명.. 그림을 무진장 열심히 그리고 있던 것 같은데 말이예요.
너무 늦게 들고와서 죄송합니다 ㅠ_-흐흐흐흑흑흑
시험기간이라서 이래저래 정신이 없네요.
ㅠ_-죄송해요...
첫댓글 ㅠㅠ 넘 슬퍼요.... 담편 기대할께요....
네넴 너무 늦게 들고왔죠 ㅠㅠ 흑흑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ㅠ_-♥ 빨리빨리 연재할게요
오랜만이네요! 기다렸어요
ㅠ_-시험기간이라...흑흑 죄송해요. 셤끈나면 폭풍연재할게요 ^_^ㅋㅋㅋ
이럴수가....ㅠㅠ다시현세미술하겟죠ㅋㅋㅋㅋㅋㅋㅋ담편기다리고있을게요~해준아위로해줘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술...다시...하겠죠?! 해야되요 암암 ㅋㅋㅋㅋ 해준이 빨리 데리고올게요 ㅋㅋㅋ
ㅠ ㅠ,,,,,,, 미술하는데 돈 진짜많이 들어서 힘들긴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담편기대요ㅋㅋ
흑흑 그치요... 이놈의 미술은 뭔 돈이 그리도 많이 들어가는지 ㅠ_- 감사합니다 빨리빨리 연재하겠습니당 ㅋㅋㅋ^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