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
2007년 파리 재정비 계획 등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 참여
청담동 디올 부티크 설계
타인과 근접성 유지하도록 사람 중심으로 건물 지어야
프랑스
국가 차원에서 건축을 부흥시키는 나라.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은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그랑 프로제(Grands Projects)'를 추진.
2007년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수도 파리를 재정비하는 '그랑 파리(Grand Paris)' 계획을 발표.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는 두 역사적 프로젝트에 참여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
그가 서울에 첫 건물을 설계했다.
청담동에 문을 연 프랑스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플래그십 스토어 '디올 서울 부티크
개장 기념으로 방한한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굵직한 정부 프로젝트를 해왔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요건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통합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사용자인 주민을 반드시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모두를 참여시키려면 속도는 더뎌진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게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 도시를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중요한 요소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 ~1965)는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도시 계획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지우라고 했다.
역사와 관계없이 주거·상업지구 등으로 구역화(zoning)했다.
대로(大路)를 만들었다.
효율적인 유토피아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을 지우는 건 큰 착오였다.
나는 도시가 지닌 역사와 이야기를 품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서로 단절된 지역들을 보행할 수 있는 작은 거리들로 연결하는 게 핵심이다
―이상적 도시상은?
그리스 신전엔 '헤스티아'(가정의 수호신이자 불·화덕·집의 여신)와 '헤르메스'(움직임·웅변·상업·사자(使者)의 신)가
나란히 있다.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이상적 도시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두 神은 이별한 상태다.
헤르메스가 헤스티아(주민)는 아랑곳 않은 채 효율만 생각해 파이프를 박고 건물을 짓는 격이다
―오픈 블록(인간 중심의 개방형 단지 개발) 이론을 만들었다.
요즘은 컴퓨터, 비행기가 있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몸'과 함께 산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집 앞 거리를 산책하고 이웃의 풍경을 보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대도시에선 이런 소소한 일상이 파괴되고 있다.
인간이 타인과의 근접성(proximity)을 유지하는 데 건축이 봉사해야 할 때다.
내 이론의 배경이다.
최근 문을 연 디올 서울 부티크. 사각 상자를 탈피해 유연한 천 모양으로 디자인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뉴욕 맨해튼에 포르장파르크가 설계한 높이 306m(지상 75층) 주상복합건물‘One 57
왼쪽으로 보이는 공원이 센트럴파.
어두운 유리와 밝은 유리를 섞어 기하학적 외관을 연출했다.
사진가 웨이드 짐머만·
사진가 신경섭 제공
―디올 매장은 어떻게 설계했나.
설계 의뢰를 받고 이 거리(청담동 '명품거리')를 걸었다.
매장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니 장식, 색깔만 조금 달리한 다른 네모 상자들이 거리를 따라 진열돼 있는 것 같았다.
생기 있는 쇼핑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유롭고 조각적인 건물로 경직된 분위기를 덜고 싶었다.
패브릭(천)의 조각가'로 명성 높았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의 정체성도 생각했다.
천처럼 유연하고 여성적인, 높이 25m의 건물이 그렇게 탄생했다
―과거 국립중앙박물관 국제현상공모에 참여해 2등으로 떨어졌다.
일제 시대의 아픈 역사가 담긴 박물관이 재탄생되는 건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라 한국 역사를 꼼꼼히 공부했다.
최종 발표 전날 심사위원이 연락해 와 내가 됐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발표에서 다른 팀이 당선됐다.
정말 아쉽고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이 발주한 프로젝트를 했다. 정치적일 수도 있었겠다.
정부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늘 '나는 건축가이지 정당의 일원이 아니다'고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좋은 프로젝트를 위해 정치인과의 협조는 필요하지만 종속되어선 안 된다.
물론 동의도 없이 정치인들은 자기네 리스트에 날 슬쩍 올려놓곤 하지만(웃음)
☞포르장파르크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인간적이고 개방적인 도시 개발을 지향하는 Open Block 이론 주창.
각기둥 형태의 조각적 건축물이 특징.
프랑스인 최초로 199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
1989년 프랑스 최고 등급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Commandeur) 받음.
대표작 라 빌레트 '음악 도시'(1995),
뉴욕 LVMH타워(1999), 리우데자네이루 '예술 도시'(2013) 등.
김미리 기자
너에게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