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끝나간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폭염은 여전히 힘이 세다.
'월간 송광사'를 가지러 조계산에 가야겠다.
하마 너른 마당 가의 백일홍도 꽃이 무성할 것이다.
바보를 벌교의 사무실에 내려두고 송광사로 운전한다.
더위에 지는 건지
자잘한 일들에 매여 시간을 못 내는지
토란대 잘라 와 껍질 벗겨 널라는 바보의 명령인지
알량한 책을 읽으려는 건지
갈수록 산길걷는 일이 멀어진다.
송광사 마지막 가로대가 막힌 주차장에 차를 두고 스틱을 펴니 10시 반을 지난다.
청량각을 지나는데 여성들 몇이 웃음소리 호방하게 걷는다.
외국여성들 몇은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나란히 올라간다.
앞지르며 흘깃 비닐봉지를 살피니 과자와 음료수가 보인다.
나무그늘에 앉아 먹으려는걸까, 부처님 앞에 올리려는 걸까?
아마 부처님께 드릴 거 같다.
그에 비해 난 마음을 낮추는 절도 제대로 못하고
공양미나 초 하나도 올리지 못한다.
예당댁 어머니는 전각마다에 천원 한장이라도 올리시던데.
법당 앞에서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히는 바보에게 난
바라기만 하고 드리는 건 없으니 부처님이 당신의 소망을 들어주실까 하지만
정작 나도 부처님께 드리는 것이 없다.
늦은 능소화가 끝부분에 꽃을 달고 담장 아래로 늘어져 있다.
전각의 지붕이나 담장과 함께 꽃을 잘 보고 싶지만
그게 작은 화면에 들여다 보는 허상에만 취하고 정작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사천왕문 범종각을 지나 내려오며 월간 송광사를 챙긴다.
두께가 낮아져 있다.
현판을 또 본다.
우화각을 나와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본다.
대숲사이를 지나며 계곡 건너의 승방에 일반인 출입금지를 본다.
11시가 지난다.
그늘을 찾아 걸었는데도 벌써 땀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서니 서늘하다.
계절은 제철을 잊지 않아 변함이 없다?
날파리들도 다가오지 않는다. 다행이다.
40여분 올랐을까 마지막 너른 계곡의 작은 물 앞에서 숨을 고르며 배낭을 벗는다.
캔맥주를 하나 마신다.
굴목재까지 쉬지 않고 오를 때가 있고, 한번 또는 두번 쉴 때가 있다.
언젠가는 여러번 쉬다가 아에 오지 못하고 흙속에 묻히기도 할 것이다.
12시가 다 되어 굴목재에 닿는다.
사람이 없다.
날파리들이 달라든다.
숲길을 내려가는데 여성 두명이 모자를 깊게 쓰고 오며 날것들을 쫒는다.
원조보리밥집은 예고대로 월화 휴무다.
아랫집으로 내려가니 꼬마 하나가 나오며 '할머니 손님 왔어요' 한다.
혼자라고 말하고 막걸리 반되까지 13,000원을 이체한다.
부부가 올라와 앞쪽 평상에 앉자 난 방향을 돌려 그들을 피한다.
한 사나이가 지나가며 밥 하느냐고 한다.
밥을 먹으며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한다.
목포에서 장안으로 올라와 장군봉에 다녀와 차로 가는 중이란다.
100명산을 하느냐니 그렇단다.
삼거리로 올라가 천자암으로 길을 잡는다.
천자암봉이라도 갈까 하다가 하늘이 흐릿하니 포기하고 숲길의 옆길을 돌아 천자암에 이른다.
마당 가의 석축을 다 쌓고 마당에 돌자갈을 고르고 있다.
향나무 앞에서 물을 마시고 나무를 찍고 법왕루 옆으로 내려온다.
운구재르르 지나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이 멀다.
3.4km라고 하더니 운구재를 보니 4km다.
송광사의 밭에서는 머리에 너른 모자를 둘러쓴 이들이 나무 그늘아래에 앉아 있다.
남자 몇은 무를 속아 경운기에 옮기고 있다.
송광사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우화각 부근을 찍다가 내려온다.
3시 반이 다 되어간다.
서둘러 벌교교육장에 오니 4시다. 바보는 아직 내려오지 않아 전화를 한다.
돌아와 토란대를 같이 벗기다가 마륜애향회 해 볼라고 친구들 태우러 나긴다.
규철이는 어머니 밥 드려야 한다고 하고, 재복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출식이와 현식이를 싣고 주환이 부인이 하는 동강호프에 가 술을 마신다.
우식이까지 불러 취하고 술 안 마신 출식이가 운전하여 돌아온다.
바보는 비가 무섭게 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