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영역
김정진
수은이 손바닥을 통과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어?
멀리서 본 그들은 마주 보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본 그들은 서로의 반대편을 보고 있었습니다
수은의 밀도는 손보다 높아서 손바닥에
수은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박수를 치면 수은이 손바닥을 통과한대
벽에 머리를 박던 남자가 벽을 통과하듯이
그 말을 들으니 피가 무거워집니다
바닥을 통과할 것 같아요
잘못 본 거겠죠 너무 빠르게 옆으로 흘렀거나
장외로 튀는 공을 놓친 변명이겠죠 깜빡하는 사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거나 하는
잔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게
귀신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바닥을 통과하면
어디로 나오게 되는 겁니까
먼지보다 조금 큰
모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손으로 쓸어보면 다만 만져지는데
이 부스러기들은 무엇의 흔적입니까
잠시, 실례, 하겠, 습니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내가 한 적이 없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어 생각하지 않을 틈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무엇입니까
알코올은 잔보다 불분명하고
손은 책상을 통과하지 못하고
잔은 알코올보다 불투명하고
수은은 아크릴을 통과하지 못하고
알코올은 잔에 담긴 채 위태롭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눈사람의 입속에서 발견된 농담을
손가락을 비틀어 만든 개의 머리를
암막 커튼을 둘러싼 외로움과
심장이 뛰고 있던 베개를
자꾸 몸속을 흘러다니는 이 물질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 물질은
물질의 감정은
—《시로 여는 세상》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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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 1993년 전남 광양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재학중. 2016년《문학동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