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괴롭히지 않고
자기 마음도 바르며
스스로 힘써서
선근(善根)을 하더라도
부처가 되지 않는 일도 있느니라.
예컨대
좋은 종자(種子)를
나쁜 논에 심으면
종자조차도 없어지는데다가
도리어
손해(損害)가 되며,
진실한 마음일지라도
공양(供養)을 받는 사람이 나쁘다면
공덕(功德)으로 되지 않고
도리어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일이 있노라.
구보니부인답서(窪尼夫人答書)
어서 1486쪽
젊은날의 일기
1950년 10월 9일 (월) 흐림 –22세-
하루하루가 격무. 형편없는 이내 몸.
그러나 대원(大願)에 서신 선생님의 고뇌를 안다면 고통스럽다는 말 따위는 하면 안 된다.
스승보다 편안히 지내려 한다면 그것은 나쁜 제자다.
젊은이여.
태평양의 유유한 물결을 알라.
깊은 산의 엄숙한 경지를 알라.
태양의 혁혁한 정열을 알라.
단풍의 우아한 색채를 알라.
젊은이여.
이들을 잊지 않고 끝까지 사는 것이다.
이들을 느끼며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이다.
젊은이여.
오늘의 싸움에 용감하여라.
내일의 이상을 축복하라.
과거의 꿈을 깨끗이 잊어라.
미래의 꿈에 일어서라.
젊은이여. 나아가라, 나아가라.
영원히 앞으로.
1시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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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9일 (금) 가랑비 –25세-
하루 종일 심신이 모두 고통.
내 자신의 신심, 향상이 있을 뿐. 내 자신에게 준엄한 수행을 시키는 것이다.
빗속에서 M씨 친척의 새집 구입 교섭으로 요코하마시 중구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요코하마에서 미각(味覺)을 즐겁게 했다.
금요 강의. 〈개목초〉 ― 두통으로 강의가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선생님의, 온 생명으로 외치는 기백에 눈물이 글썽였다.
선생님 부디 앞으로 30년, 장수해 주십시오. 일본을 위해, 동양을 위해.
저는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기원하겠습니다. 단지 기원. 기원
귀가 길에 오래간만에 제1부대 반장 회의를 실시했다.
투장(鬪將), 결연히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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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0월 9일 (토) ~ 11일 (월) –26세-
8일 오후 8시 50분발, 야간열차에 승차 ― 우에노 역. 센다이(仙台) 지도를 위해서다. 열차 안에서 충분히 잠을 잣다.
제6회 센다이 지부 총회는 훌륭했다. 하지만 S지부장의 우쭐하는 모습이 좀 염려가 된다.
5천 명 결집이라고 한다. 스포츠센터를 가득 메운 느낌이다.
참석 인원 ― 선생님, 이사장, F지부장, I여사, M씨, A군과 나였다.
제2차 모임 ― <일본 남아의 노래> 지휘를 선생님께서 지명하셨다. 2번 반복하니 몹시 지친다.
선생님께서는, 다이사쿠는 허약한데 이렇게 힘을 다 써 버리면 오래 살기 힘들다고 슬픈 듯이 측근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제목을 올려 숙명을 타개할 뿐.
9일 ― 오전에 부대 간부 면접. 오후에 지부 총회.
10일 ―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아오바(靑葉) 성지(城址)에서 13부대 운동회.
오후, 선생님의 법화경 강의.
심원한 불법의 진수를 학회원 1000명은 어떻게 들었을까.
종료 후, 센다이의 번화가를 나 홀로 걸으며 여관으로 돌아왔다. 번화가인데도 거리에 물건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11시 28분, 준급을 타고 귀경. 선생님을 위해 표를 끊어 놓은 침대차에 대신 가서 쉬라고 하셔서 혼자서 쉴 수 있었다.
아침에 도착한 우에노에서는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메구로의 자택까지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고 나는 그대로 출근하였다.
그런데 너무 일찍 출근해 버렸다.
이 3일간의 투쟁도 역사에 남는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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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0월 9일 (일) 맑음 –27세-
정말 추워졌다.
일본 알프스(혼슈의 히다 산맥 · 기소 산맥 · 아카이시 산맥의 총칭)에 첫눈이 내렸다는 신문기사.
10시부터 강의. 〈현불미래기〉. 400여 명 참석.
종료 후, 질문회.
오후 2시부터, 〈묘미쓰상인어소식〉.
4시 30분, 종료.
6시부터 지부장, 간사, 부대장과 함께 〈신 · 헤이케모노가타리〉를 관람했다.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꿈과 건설, 영화(榮華), 쇠망을 생각한다.
이곳저곳 일본을 돌아다니며 수행한 권력극의 배우.
특히 청년기를 소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理想), 용기로 가득 찬 전진.
그러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만년의 인생이다. 주의해야 한다. 주의해야 한다.
8시 20분발, 야간열차 ‘묘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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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9일 (수) 맑고 때때로 흐림 –29세-
몸을 소중히 해야만 한다. 미래까지 힘을 축척할 수 없는 나.
오전 ― 추계 본부 총회 준비를 위해 고라쿠엔경륜장에 갔다.
회장 취임 ― 7년째의, 참성증상만(僭聖增上慢)의 폭풍우를 느끼는 요즈음.
8시부터 본부에서 어서연구회. 〈관심의 본존 득의초〉 〈성인지삼세사〉.
오늘도 선생님을 뵙지 못해 허전하다.
닛쇼 은존 예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젊은 후배와 함께 돌아왔다. 즐거운 동지들.
가을밤, 고요하다. 아내와 함께 늦게까지 뒷마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피리가도 불고 싶다. 거문고 소리라도 듣고 싶다.
〈남자부의 발걸음〉을 집필 완료.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