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섬은 필리핀 중부 네그로스섬의 북동쪽 끝에서 7km 떨어져 있고, 네그로스 오리엔탈의 수도인 두마게테에서 30km 떨어져 있는 화산섬이다.
"Apo"라는 이름은 "손자"라는 필리핀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바로 건너편에 필리핀 제2의 도시 세부가 있는 세부섬이 있다.
아포섬은 스쿠바다이빙의 성지다.
아포섬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관의 갈림길이었다.
아포섬은 나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일본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를 하다가 때려 치고, 중장비 임대업으로 돈을 벌었다.
중장비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기사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을 책임자로 맡기고 월급을 100만원 더 주었다.
그리고 동남아와 태평양 섬들로 스쿠바다이빙을 하면서 놀러 다녔다.
그러다가 아포섬이 마음에 들어 필리핀 맥주 회사 임원의 별장 중에 하나를 장기 임대해서 스쿠버리조트를 만들었다. 1 년중 우기만 빼고 두마게테에서 살았다.
두마게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아포섬이 있다. 아포섬에 자주 갔다.
아포섬 바로 앞은 세부섬이고, 세부섬에서 배로 조금만 가면 바탕카스와 시밀란섬을 비롯한 스쿠바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했다.
그러나 내가 아포섬을 사랑한 이유는 다이빙 포인트 보다 아포섬에 살던 소년 때문이었다.
우기가 막 끝나고 다시 마닐라에 입국을 해서 택시로 호텔로 갈 때였다.
마비니 거리를 막 지났을까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놀랍게도 아포섬의 소년이었다. 거지 차림의 아이는 외국인이 택시를 타고 지나가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왜 아포섬에서 마닐라까지 와서 거지가 되었을까?
아포섬의 북쪽은 수심이 얕고 바위가 많아서 초보자 교육 장소와 스노클링으로 좋았다.
그곳은 관광객들이 들어오는 입구여서 아포섬 여자들이 토속 수공예품을 팔기 위해 작은 亂場이 항상 있었다.
여자들의 뒷산에는 원숭이가 울었고, 그 밑의 해변이 그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들의 가옥 구조는 방가로를 세울 때처럼 기둥을 세우고, 그 위 대나무 평상을 만들고 대충 집을 지었다. 방가로 밑은 그들이 키우는 닭, 돼지, 개들이 살았다.
식사 시간이면 방가로 밑에 야자나무 숯을 피우고, 말린 생선을 야자나무 숱으로 굽거나, 낮에 막 잡은 생선을 요리하고, 밥과 함께 먹었다.
그들의 삶은 항상 캠핑이었다.
사람들 옆은 항상 동물들이 있었다. 거의 같이 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먹다 버린 것들과 음식물 찌꺼기가 동물들이 먹어 치워서 남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 제로였다.
낮에 고기를 잡아 오는 것은 소년이었다.
녀석의 몸집에 맞는 작은 방카 보트를 저어 가까운 근해에 나가서 나무로 만든 작은 수경을 쓰고 머리를 바닷속에 집어 넣고 물속을 내려다 보면서 낚시를 해서 고기를 잡았다.
물속이 너무나 맑아서 고기들이 노는 모습들이 전부 보였다.
고기를 많이 잡지도 않았다. 그날 먹을 양 만큼 잡고 남으면 말렸다. 냉장고가 없으니 당연했다.
말린 고기는 두마게테 시장에 가서 팔아서 쌀을 사왔다. 그것이 그들의 경제 생활의 전부였다.
소년은 하루 종일 야자나무 흔들의자에서 놀았다.
소년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포섬 북쪽 물 속은 바다로 조금만 나가면 수직 절벽이 펼쳐졌다. 수중 절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했다.
절벽의 중간에서 중성부력으로 멈춘 채 오리발 끝을 잡고 가부좌를 틀고 바닷속을 감상했다.
중성부력을 맞추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에도 억압받지 않고 진정한 자유였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겨우 시간 강사 자리를 잡아서 돈을 벌다가, 그것 마저 여의치 않았다.
먹고 살 길이 막연했다. 첫째 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막 둘째가 태어났다,
그러다가 이종사촌 형이 중장비 임대업 사무실을 했었는데, 나도 형과 같이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운이 좋아 대박이 났다.
그리고 아포섬에 갔다. 천국이었다. 아포섬은.
아포섬에 가서 앞으로는 멋대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 비록 생활에 찌들어 삶이 힘들지라도 마음 만큼은 그렇게 살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물속의 자유를 물 밖에서도 느끼기로 했다.
소년처럼 자유롭고 여유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희망했다.
중성부력의 자유로움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중성부력이 왜 수 많은 별들 중에서 지구의 물속에서만 해당 되는지 불만이었다.
아포섬의 소년이 마닐라로 와서 거지가 된 것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천국의 아포섬으로 갔는데. 소년은 아포섬에서 지옥의 마닐라 마비니 거리로 왔다.
소년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섬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돈 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돈을 벌어서 아포섬으로 왔고, 소년은 돈을 벌기 위해 아포섬을 떠났다.
소년은 아무 잘못이 없다. 소년이 거지가 된 것은 소년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중장비로 돈 번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다.
필리핀의 돈이 한국돈에 비해 터무니없이 평가 절하 된 것은 필리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잘못은 그들이 살고 있는 아포섬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