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30분에 시작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보고 나오니 4시 20분을 지난다.
직장생활하는 여성이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기도 한 이야기다.
한볕이 생각이 많이 난다.
그가 겪었을 이야기를 나를 닮아선지 통 안하니 그의 손바닥을 보며 나 혼자 짐작만 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조금 더 알 듯도 하다.
애비로서 그의 삶에 개입도 않고 도움도 안준 난 참 비정하다.
4시 반이 지나 용추골 주차장에 닿으니 몇대의 캠핑카도 있고 막바지 어른 피서객도 보인다.
배낭에 스틱을 딛고 산으로 접어드는 날 쳐다본다.
절골을 지나 발원지 쪽으로 올라간다.
숨이 막힌다.
물없는 발원지를 지나 평평한 길을 걸으며 건너다 본 제암산 봉우리 앞쪽으로
억새 등 가을 꽃이 보인다.
능선에 서니 득량만이 가깝고 시원한 바람도 분다.
힘이 빠진다. 소나무 사이의 데크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신다.
책을 꺼낼까 하다가 참고 정상을 올라간다.
아무도 없는 정상은 파랗다.
월출산 천황봉이 뾰족하고 그 앞으로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 으선이 펼쳐진다.
제암은 뾰족하고 일림은 품이 넓다.
천관산 왼쪽으로 장흥의 바닷가로 솟은 손들이 뾰족하고, 그 뒤로 약산도와
가보지 못한 생일도 백운산이 보인다.
그 뒤로 청산도인 듯 흐릿하고 왼쪽 용두봉 적대봉 너머로 거문도도 보이는 듯하다.
동그란 유주산 앞에 지죽도가 안장처럼 보이고 그 뒤로 여수의 섬들도 보인다.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고 일어선다.
바보의 퇴근 시각 전에 귀가하긴 글렀다.
건너 제암의 바위를 보며 북쪽으로 본다.
키를 훌쩍 키운 억새 등이 바람에 이파리를 진국 병사의 장창처럼 휘날리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서두른다.
달리듯 내려오니 6시 반이다.
7시 5분쯤이 일몰이다. 정상에서 못 보았으니 장선포쯤에서 보자고 운전을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