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 중국역사속의 인물
서로 더불어 사랑하면 세상이 평화롭고
서로 나누어지면 세상이 어지럽게 된다
사상가 묵자의 말이다.
묵자는
기원전500년경 춘추시대에 중국에
살았던 사상가다.
겸애사상을 바탕으로
전면적인 사회개혁을 부르짖으며 귀족과 토호들의토지사유를 반대하면서
토지의 공개념과 공동체 사회의 가치를 제시했던 사람이다.
묵자의 가문은
주나라 무왕의 반란을 반대하며 투쟁했던 은나라의 제후 백이숙제의
아버지인 고죽군(君 제후=왕)의 후손이다.
재야에서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새 시대를 바라보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선비였다.
묵자는
불의와 불평등의 사회현상을 비판하면서 불의에 맞서 행동했던
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
춘추전국시대에
귀족의 편에서서 지배이론을 내세웠던 공자의 유가와는
반대편에서 오직 민중들과 함께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평등한 사랑으로 사회개혁을
주장했던 사상가다.
묵자의 기록을 보면
중국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로 묵자 및 그의 후학인 묵가(墨家)의 설을 모은
《묵자(墨子)》가 현존한다.
유가가 봉건제도를
이상으로 하고 예악(禮樂)을 기조로 하는 혈연사회의 윤리임에 대하여, 오히려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지향하여 실리적인 지역사회의 단결을 주장한다.
이름은 적(翟).
그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다.
묵자 및 그의 후학인
묵가(墨家)의 설을 모은 《묵자(墨子)》가 현존한다.
《묵자》는
53편이라고 하나, 《한서(漢書)》지(志)에는 71편으로 되었다.
최종적으로
성립된 것은 한(漢)의 초기까지 내려간다고 추정된다.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쳤으나,
중심이 되는 것은 상현(尙賢) ·상동(尙同)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 ·절장(節葬)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악(非樂) ·비명(非命)의 10론(十論)을 풀이한 23편이다.
겸애란
사람은 ‘자신(自身)’ ‘자가(自家)’ ‘자국(自國)’을 사랑하듯이 ‘타인(他人)’
‘타가(他家)’ ‘타국(他國)’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비공론(非攻論)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유가(儒家)의 인(仁)이 똑같이 사랑[愛]을
주의(主意)로 삼으면서도 존비친소(尊卑親疎)의 구별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데 반하여,
겸애는 무차별의 사랑인 점이 다르고, 또한 사랑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윽고 자신도 이롭게 한다는 ‘겸애교리(兼愛交利)’를
풀이한 것이었다.
절용은
사치를 삼가고 생산에 힘쓰며 소비를 줄이라고 설파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라는 절장론(節葬論)과 음악(音樂)을 허식이라 하여
물리치는 비악론(非樂論)으로 전개된다.
한편,
정치에 대해서는 상동론(尙同論)이 있으며, 그 기초로서
천지론(天志論)이 있다.
천지론은
절대적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천의(天意)의 존재와 거기에 따르거나
거역했을 때의 상벌을 강조한다.
상동이란
아랫사람[下]은 윗사람[上]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일인일의(一人一義) 십인십의(十人十義)이므로 방치하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락민은 이장에게, 이장은 면장에게, 점차 아래에서 위로
상동(尙同)하여 그 정점에는 최고의 현자(賢者)로서 하늘의 뜻을 받드는
천자(天子)가 있다”는 것이다.
명귀론(明鬼論)은
하늘의 대행자로서 상벌을 내리는 귀신의 존재를 주장하였고,
비명론(非命論)은 이른바 운명을 부정하지만,그 참뜻은 명(命:운명론)에 현혹되어
일상의 일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타이르는 것이었다.
요컨대 《묵자》는
유가가 봉건제도를 이상으로 하고 예악(禮樂)을 기조로 하는
혈연사회의 윤리임에 대하여, 오히려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지향하여 실리적인 지역사회의
단결을 주장한 것이다.
더욱이
10론 이외에 일종의 논리학을 풀이하는 편(編)과
비공론(非攻論)에서 출발한 방어술(防禦術) ·축성술(築城術)에
관한 편도 있다.
[출처] 묵자 - 중국역사속의 인물
[출처] 묵자 - 중국역사속의 인물|작성자 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