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불을 지피며
김신용
다 탔구나
너무도 황홀한 焚身이구나
네 몸 태워 덥힌 방구들에서 언 몸 녹이며
우리는 긴 겨울을 나고 있지만
너는 무덤 속에서도 살아 오르는구나
네 몸 가둔 감옥이 도리어 생명의 집이었구나
어두운 압제의 세월은 너의 쥬라기
풀잎의 목숨, 땅에 묻어
어둠 속, 온몸 곡괭이가 되어 갱도를 뚫는 몸부림 앞에
너는 불꽃으로 일어나
한 그릇 밥의 의미를 소중히 익게 하는구나
제 몸 태워 끓이지 않는 밥은 먹지 말라 하는구나
그러나 이 겨울이 가면
꺼진 아궁이 속, 망각의 앙상한 두개골만 남아
세상의 기억들은 너무도 쉽게 잊나니, 봄이 와
저 잎새의 푸르름이 너의 불꽃으로 더욱 푸르러지는 것을
너무도 쉽게 잊나니, 이 땅에
수없이 되풀이될 사슬의 겨울, 그런 겨울은 가고
온 세상, 하얀 눈의 겨울
고드름 열매 따뜻이 익는 그런 겨울을 위해
다 탔구나
너무도 눈부신 焚身이구나
― 김신용 시집, 『몽유 속을 걷다』 (실천문학사 / 1998)
김신용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몽유 속을 걷다』『환상통』『도장골 시편 』『부빈다는 것 』『잉어 』『바자울에 기대다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 』『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 장편 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기계 앵무새』『새를 아세요』. 산문집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떨어져 있네』.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한유성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제6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등 수상.
2026년 1월 향년 81세를 일기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