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비단 펼친 듯 펄럭이는 고운 능선… 오르는 재미 있네
문화일보 기사 입력 2014-03-07 14:03
남양주 = 박광재 기자]
어쩌다 보니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은 이번 주에도 스키장 뒷산에 오르게 됐다. 지난 2월 보름 동안 러시아 소치에서 벌어진 지구촌 최대 겨울 스포츠 축제인 ‘2014 소치동계올림픽’의 여운 때문인 것 같다. 엄홍길(54·밀레 기술고문) 대장은 지난 2월 “소치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선전과, 4년 후 한국이 개최할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자”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발왕산(發王山·1458m)행을 제안했다. 엄 대장은 “올림픽 무대에 6차례나 도전한 이규혁의 의지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의 경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여자 쇼트트랙 500m 경기에서 두 차례나 넘어졌다 일어나며 동메달을 따낸 후 연이어 금메달 두 개를 따낸 박승희 선수의 투혼에서는 수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끝내 히말라야 고봉에 올랐던 나를 비롯한 산악인들의 노력과 도전정신이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고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엄 대장이 이번 주 ‘몰입과 기원의 겨울산’으로 추천한 곳은 포천베어스타운 리조트의 뒷산으로 알려진 경기 포천시와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주금산(鑄錦山·813m)이다. 녹아가는 겨울과 움트는 봄을 맞으러 가자면서.
잘못 발음하면 ‘죽음산’이 되지만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다. 오히려 ‘아름다움’ 때문에 주금산으로 이름 붙여졌다. ‘불릴 주(鑄)’에 ‘비단 금(錦)’을 쓴다. 산 아래에서 보면 산세가 비단이 펄럭이는 듯해 ‘비단산’으로도 불렸음을 감안하면 ‘비단을 녹인 듯 결이 고운 산’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산 남동쪽 아래 수동면 비금리(내방2리)의 ‘비금계곡’에서 유래한 산이름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비금계곡이 주금산보다 앞서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주금산은 수도권의 알려지지 않은 ‘명산’이다. 잘난 산세에 비해 비교적 등산객이 적은 건 서울에서 가깝지만 교통이 그다지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천, 가평, 남양주의 경계에 있어 어느 자치단체의 중심과도 가깝지 않다.
산의 서쪽인 포천시 내촌면 토박이들은 ‘독바위산’이라고도 부른다. 장독처럼 생긴 큰 바위가 서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기 때문이다. ‘끝물’스키를 즐기던 이들은 ‘베어스타운 뒷산’ 정도로 여긴다. 정상 북서쪽 기슭이 베어스타운스키장이다. 주금산도 지난번 발왕산처럼, 제 이름보다 스키장 뒷산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주금산은 옛적엔 불기산(佛岐山)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가평군 상면 상동리에 불기골, 불기마을, 불기고개가 있다. 예전에는 불기고개를 혼자 넘어선 안 된다고 할 만큼 여우나 늑대가 많은 첩첩산중이었다. 가평군지를 보면, 상동리의 ‘돌아우마을’은 혼자 고개를 넘는 선비를 “돌아오우, 돌아오우”하고 애타게 불렀으나 그냥 넘었다가 ‘짐승밥’이 됐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경칩(6일)을 사흘 앞둔 지난 3일 찾은 주금산은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었다. 북서쪽 사면의 잔설은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을 대변했고, 산의 남동쪽 코스의 진달래, 철쭉은 가지 끝에 망울을 머금고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러나 산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엄 대장은 “사실 이즈음의 산행이 ‘어중간’하면서 힘들 수 있습니다”며 “겨우내 얼었던 산길이 녹아 내리면서 질퍽거리는 데다, 특히 낙엽이 쌓인 길에서는 눈길을 걸을 때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고 간절기 산행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했다. 그는 “일교차와 계절 변화에 신경을 써, 등산복을 착용하고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 자체가 변하고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또 신체적으로도 잔뜩 움츠려 있다 나서는 초보 산행자들에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고 조언했다.
주금산은 운악산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주능선에 자리하며 남동쪽으로 서리산(832m), 축령산(879m)으로 이어지고 서북쪽 산자락에 베어스타운스키장과 수동천 상류의 비금계곡이 있다. 주금산은 산세가 아기자기하다. 짧지만 정상까지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을 타야 한다. 능선에 주름이 많기 때문이다. 주금산 전체는 육산이지만 정상 부근으로 가면서 바위봉우리와 돌길이 이어져 주의해야 한다. 등산로는 단조롭지 않고 아기자기한 편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남양주시 수동리 비금계곡이나 포천시 내촌면과 가평군 불기고개에서 오르는 코스 등 3∼4개 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요즈음은 주로 비금계곡에서 시작한다. 서울에서 바로 오는 버스편이 있는 데다 몽골문화촌도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골문화촌은 남양주시와 몽골 울란바토르시가 교류협력 차원에서 2000년에 개관했다. 지금은 커다란 몽골민속예술공연장도 들어서 있는데 그 우측으로 난 길이 주금산의 들입목이자 비금계곡 입구다. 동남쪽 능선을 타고 바위봉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바위봉을 거쳐 남쪽 능선을 타고 시루봉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과 정상에서 사기막 평사교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포천시 내촌면에서 오르려면 사기막 평사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합수곡에서 계류를 건너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가파른 돌길과 폭포를 거쳐 왼쪽 능선길로 고개에 오른 뒤 억새풀밭을 지나 남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른다.
하산은 정상에서 암릉 서쪽을 따라 암봉 남쪽 밑 신선당을 지나 능골로 내려가거나 남동쪽 능선길을 따라 비금리로 내려간다. 어떤 코스든 3시간 정도면 왕복이 가능하다.
이날은 시간을 더 단축하기 위해 불기고개에서 곧바로 치고 올라 정상에 오른 뒤 비금계곡 쪽으로 하산했다.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여러 등반 코스가 있지만 주금산의 들입목은 비금리 입구로 잡는 것이 좋아 보인다. 한 시간 정도 오르면 주금산 8∼9분 능선 공터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500m 정도. 이 공터가 주금산에서 가장 유명한 ‘독바위’와도 가까이 있고 정상보다 훨씬 경관이 좋아 사실상 정상 대접을 받는 곳이다. 이날 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인지 주변 경관이 훤히 들어오진 않았지만 국사봉과 운악산, 서리산, 축령산, 천마산까지 이곳에서 바라보인다.
주금산행의 백미는 ‘독바위’다. 3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독바위는 마치 거대한 항아리를 엎어 놓은 모양이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이즈음의 독바위는 더욱 고풍스럽고, 기(氣)를 ‘팍팍’ 느끼게 한다. 예전엔 덕암(德岩)이라 불렸다는데 그것이 독바위로 바뀐 것 같다. 주금산의 또 다른 이름이 ‘독바위산’일 정도로 이 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주금산 정상에도 어김없이(?) 두 자치단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운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나중(2006년)에 세워진 포천시 간판을 단 표지석이 크다. 여기서 북서쪽 능선을 타면 베어스타운으로 가는 하산길이다. 그러나 몽골문화촌으로 다시 가려는 이들은 정상 눈도장을 찍고 독바위 갈림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예전에 군부대 터와 폐벙커를 지나 동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가평군 주금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