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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조금만 따지고 봐도 기도는 말씀과 결코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고 사실은 애초부터 아예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의미나 역할이나 실체나 근본부터가 말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말씀대로 간구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에 의해 말씀 그대로 누리고 나타나며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참으로 말씀에 약속된 것을 위해, 말씀을 제대로 알고 깨달으며 행하고 누리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도록 구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소견이나 정욕, 세상적인 욕심이나 목적 등을 위한 간구는 응답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따지고 보면 기도 그 자체부터도 될 수 없는 것인데..
어쨌든 분명한 것은 제대로 된 기도, 곧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면서 즐겨 들으시고,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전에 응답, 예비하시는 경우는 그러한 기도의 동기와 시작과 내용과 목적 등 그 하나하나에서부터 모든 사안과 사항들 자체가 모두 다 말씀과 별개일 수 없는 것, 실상 별개이어서도 안 되는 기도인 것입니다..
특히 죄악과 세속과 불신앙들 등과 벗하고 반복하는 가운데 있어서의 무조건적인 간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 역사하시거나 그대로 들어 주시며 응답하시기보다는 사실상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오히려 막으시며 걸리고 꼬이게 하시곤 하는 것이며..
사실상 반대로 더 이상의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가장 진정하고 복된 응답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말씀으로 살고 애통해 하며 갈망하면서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간구하는 자들에게는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기뻐 역사하시지 않을 수 없는데 무엇보다 그 위치와 역할 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자 만복의 주인이시며 흥망성쇠의 주재자이시고 선악 간 심판주이시며 전지전능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며,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어 그러한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모두 실제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으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정말 응답과 실제들을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시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구원의 일들을 모두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 또한 본질적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에 그 누구보다 말씀의 신앙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그 이름으로 인한 응답들에 있어서도 합당하고 절대적이며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사실상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창세 전부터 그 백성들의 기도 가운데 예비되고 실제로 함께 하는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은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만 의미가 있고 가능하며 하나하나 모두 다 직결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진정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함께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며 완전히 단절되고 실제로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인 것이기에 십자가에서의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인해, 곧 온 세상과 전 인류보다,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대신 다 치르심으로 인한 피 권세와 구원의 역사에 의해 믿음으로 값없이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예수님 이름 가운데 약속되신 성령님의 권능, 곧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인해 실제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이 되며 말씀의 나라인 천국의 백성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 바꾸어 말하면 기도의 응답이 가능한 하나님의 백성이 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바로 그러한 말씀, 말씀의 사람, 말씀의 신앙이 모든 전제와 기준과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일들에 있어 본질적으로는 하나부터 끝까지 말씀과 모두 다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진정 말씀이 그 모든 일들 한가운데 있는 것이며..
참으로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시고 실제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분이며,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론적으로는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하며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된 자가 아니고서는 애초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고, 혹 입술로 기도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며, 실상 그러한 기도들은 소위 다른 종교나 무속이나 이단들에서 하는 기도들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말씀이 아닌 죄와 세속과 불신앙 등과 벗하고 반복하는 등과 같이 병든 신앙, 죽은듯한 신앙으로 살면서도 기도를 나름 많이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한 때에는 사실 실질적으로는 기도의 응답들이나 하늘의 힘들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고,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있어 탄식이나 심지어 가증스러움도 될 수 있는 것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날마다 순간마다 사도 바울처럼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을 수 있어야 하며, 특히 모든 기도와 간구들, 결단과 작정들에 앞서 십자가 붙잡으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하고, 진정 깨어 있고 충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각성과 자복의 기도들을 망각하거나 제쳐 두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가장 먼저 말씀으로 몸부림치는 갱신과 개혁의 갈망과 작정들부터 소중하게 여기고 가장 우선적으로 사모하면서 여러 모양의 제목들로 기도하고 간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상 가장 좋은 것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작부터 내 힘이나 세상적 방법들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과 반복하고 있는 죄악들, 은밀하게 감추어둔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키며, 그 무엇보다 평소에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주야로 최대한 많이, 진정 한 번이라도 더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감으로 인해 깨어 있는 신앙,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인데..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기도의 응답과 역사들이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히 역사하시게 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갈수록 더 넘치고 강렬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에 있어서는 다른 그 누구보다 성령 강림 사건 후의 베드로와 다메섹 도상 사건 후의 사도 바울, 그리고 스데반과 빌립 등이, 또한 구약에서는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며 범한 죄악들은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와 여호수아, 다니엘과 느헤미야 등이 실제로 죄와 세속들 등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말씀의 사모함과 가까이함과 실행함과 증거함들 등을 위해 심히 애쓰고, 더 나아가 목숨까지 아끼지 않은 대표적인 믿음의 선배들이라 볼 수 있는 것이며..
진정 그러한 믿음들, 바로 그러한 자들의 기도들과 함께 상상도 못할 하늘의 힘과 응답들이 실제하고 넘친 것을 창세기와 사도행전을 위시한 구약과 신약 성경의 구석구석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실상은 그들이 구하기도 전에 응답하기도 하셨을 뿐 아니라 사람이 못할 기적들, 상상도 못할 이적들까지도 넘치도록 보이시며 경험케 하시고 예비하신 것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 모든 이치와 원리들, 실제와 경험들 등이 참 당연하고 마땅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특히 응답과 은혜와 은사들, 승리와 복과 부흥들 등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참으로 다른 그 무엇보다 오직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역사하시고 말씀대로 다 이루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곧 바로 이 시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하고도 긴급하며, 상상하는 이상으로 절실하고도 절대적인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그러한 이치와 원리들이,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과 함께 하는 하늘의 힘과 응답들의 생생함들, 실제와 역전들의 강렬함들이 원론적으로 조금이라도 다를 수 없고 서로 간에 결코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이며, 실상 생각 이상으로 동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8월 29일(목)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