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보내면서 새삼 세계 명작 -단테의 신곡-을 음미해 봅니다.
— 길을 잃은 인간이 다시 길을 찾는 여행 —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펼쳐지고, 그 안에 성서의 인물과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 역사 속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분들은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곡을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면,
“길을 잃은 한 인간이 어둠을 지나 다시 삶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
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7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테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1.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신곡」은 아주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Midway upon the journey of our life,
I found myself within a forest dark,
For the straight way was lost.”
우리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고, 바른 길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단테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원문은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특히 눈여겨볼 말이 있습니다.
“our life”
우리의 인생입니다.
단테는 “나의 인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어느 순간에는 길을 잃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젊을 때에는 앞만 바라보고 달립니다.
공부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고, 돈을 벌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느라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온 것일까?”
“내가 정말 원했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로 그 순간이 단테가 말한 dark forest — 어두운 숲”일지도 모릅니다.
2.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두운 숲’은 있다
단테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습니다.
그곳에서 표범과 사자와 암늑대를 만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을 만납니다.
바로 고대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 (Virgil)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안내자가 되어 그를 지옥과 연옥으로 인도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길을 잃는 순간이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잘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방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길을 한 번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길을 찾는 것입니다.
It is never too late to find your way again.
다시 자신의 길을 찾기에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이 문장을 우리 인생 후반기에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3. 지옥 —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감옥
단테가 처음 들어가는 곳은 지옥(Inferno)입니다.
그곳에는 살아 있을 때 탐욕과 욕망, 배신과 폭력, 거짓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맞는 고통을 받습니다.
단테는 그들을 만나면서 인간의 잘못된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목격합니다.
그러나 지옥을 단순히 “죽은 다음에 가는 무서운 곳” 이라고만 생각하면 「신곡」의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자기 마음속에 지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없는 욕심, 지나친 분노, 질투, 증오, 원망,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마음을 지배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마음은 평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가?”
혹시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바꿀 수 없는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용서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지는 않은가?
4. 지옥의 문에 새겨진 무서운 말
지옥의 입구에는 유명한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장을 반대로 읽어도 좋겠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살아 있는 인간의 힘이 아닐까요?
나이가 들어도 희망은 필요합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새로운 책을 읽는 것, 새로운 영어 표현 하나를 배우는 것,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이 모든 것이 삶의 작은 희망입니다.
As long as there is life, there is hope.
삶이 있는 한 희망도 있습니다.
5. 연옥 —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
단테의 여행은 지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지옥을 빠져나와 연옥(Purgatorio)으로 올라갑니다.
저는 「신곡」에서 이 부분이 우리 인생 후반기에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옥은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정화하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과정입니다.
즉,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상처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욕심을 부렸고, 때로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더라면…”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덜 미워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입니다.
It is never too late to change.
변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후반기는 지나간 삶을 후회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남은 삶을 더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6. 인생 후반기에는 ‘더 많이’ 보다 ‘더 가볍게’
젊었을 때에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돈도 더 벌고 싶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긴 세월을 살아온 뒤에는 생각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가 더 중요해집니다.
미움을 내려놓고,
욕심을 내려놓고,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내려놓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자녀의 삶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마음도 조금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The less we carry, the lighter we become.
짐을 덜 질수록 우리는 더 가벼워집니다.
어쩌면 인생 후반기의 지혜란 더 많이 갖는 지혜가 아니라 더 잘 내려놓는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7. 베르길리우스에서 베아트리체로
단테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지옥과 연옥까지 안내합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들어갈 때가 되자 새로운 안내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베아트리체 (Beatrice)입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상징한다면, 베아트리체는 사랑과 신앙, 은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테의 여행은 결국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이릅니다.
8. 천국 — 단테가 마지막에 발견한 것은 ‘사랑’이었다
「신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단테가 발견하는 것은 권력도 아니고 돈도 아니며 인간의 지식만도 아닙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사랑(Love)입니다.
신곡의 마지막 구절은 서양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 가운데 하나로 손꼽힙니다.
“The Love that moves the sun and the other stars.”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이 문장은 「신곡」 전체의 여행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단테의 여행은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