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 칼럼] 그래야 우리의 축구가 발전하니까.
우연히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봤다.
한국 초등학생이 가장 되고 싶어하는 직업이 운동선수라고 한다. 그것도 7년 연속으로 말이다. 운동선수가 12.9%로 1위를 차지했는데, 2위와 3위를 기록한 의사(6.1%), 크리에이터(4.8%)와 격차도 제법 컸다.
요즘 대한민국 230만 초등학생들에게 축구는 참 익숙한 것이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매체를 통해 스타 선수의 소식을 보고, 특별한 놀이인 온라인 게임에서는 현재의 호날두와 그 시절 호나우두가 공존한다. 무엇보다 동네마다 축구 아카데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2010년을 전후로 전국에 축구 아카데미 붐이 일었다. 이때부터 태권도장에 집중됐던 유소년 체육활동이 실내외 축구장으로 확장되면서 축구가 어린이 뿐 아니라 모두의 삶에 더 가깝게 들어왔다. 한국의 출산율은 해마다 감소하는데, 유소년축구 등록선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 인구 문제가 아카데미 시장에 커다란 고민거리가 되겠지만,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한 ‘축구가 익숙한 세대’들이 한국 사회 전체에 축구를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사고,방법 그리고 문화까지.
축구가 익숙한 세대들은 과거 세대와 다르다. 이는 비단 축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사회적 및 국제적 현상이다. “옛말에 틀린 말 없다”라는 인생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선배 세대가 말하는 “나 때는”은 요즘 현실에서 종종 외면 받는다. 그래서일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서른 즈음에 축구행정가로 활동하신 한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너 축구 좋아하니까, 축구 일 오래하고 싶지? 그럼 이건 꼭 기억해. 앞으로 일하면서 만나는 너의 후배들은 무조건 너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해야돼. 때론 그게 아닐지라도, 그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일 해. 그래야 모두가 함께 일하기 편해지고, 너도 오래 할 수 있어.”
축구도, 사회도, 세상도 다 격동기인 것 같다. 축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 들도 너무 빠르게 바뀐다. 플랫폼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솔루션도 바뀌는데, 나의 경우 해마다 해왔던 일을 반복해서 하는 탓인지 갈수록 두뇌회전이 느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어쩌면 내가 소속된 회사와 구단의 구성원들이 젊기에 더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로 인해 우리 집단의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세계적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한국은 지옥 같았다‘(과도한 경쟁 풍토에 의해)라는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사실 우리 모두 인지하는 현실이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방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갈수록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 될 세상에서, 좋아하고 뜻이 있는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꾸준하게 하고 있는게 기본이지 않을까?
피아니스트는 전문직이고, 그 중에서 임윤찬은 프로 중의 프로다. 분야는 다르지만 나의 일터인 양천TNT FC에는 ‘프로’를 목표로하는 ‘미생’들로 가득하다. 선수, 지도자, 프론트 모두 각자의 삶과 경력에서 ‘프로’를 지향하며 묵묵히 땀흘리고 있다. 프로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라고 한다.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을 뜻한다. 즉, 축구 활동하면서 동시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음인데, 이는 우리 구성원들에게 우선적인 목표가 된다. 이것이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설정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참 쉽지않다.
서두에 언급한 ‘축구가 익숙한 세대’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부는 알면서도 외면한다. 과정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부터 결과를 걱정한다. 꾸준함과 노력의 기준을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다. 실천은 적게하지만 사례는 많이 찾는다.
‘나 때’와는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니, ‘나 때’는 고사하고 불과 3년 또는 5년 전과 비교해도 시장의 상황이 다르다. 축구로 한정해보자.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프로에 입성하는 스토리는 이제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해마다 K3,K4리그에서 검증된 선수가 수십명씩 K리그에 진출하고, 그들 중에 국가대표가 나온다. 심지어 K5리그에서 일본 J리그1으로 직행하는 사례가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변화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변화의 중심에는 ‘축구가 익숙한 세대’들이 있다. 축구팀도 많아졌고 직종도 확대됐다. 게다가 이제는 해외로 시선을 확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조금만 영리하게 노력하면 축구는 삶에서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축구는 세상에서 정말 작은 부분이지만, 감사하게도 세상이 축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축구에 뜻이 있거나 축구와 살아온 사람들이 앞으로 노력하고 용기를 내면 축구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
연말이 다가온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자연스럽게 다음과 내년을 준비한다. 언급한것처럼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트렌드의 속도를 추가한 건 ‘축구가 익숙한 세대’들이다. 지금이 다소 어둡고 혼란스럽더라도, 묵묵하고 꾸준히 조금 더 힘을 내면 좋겠다. 선수든, 행정이든, 어떤 직종이든 축구가 좋아서 레이스를 시작한 사람들이, 아직 실패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멈춰버리는 것을 올 해 몇 차례 보았다. 그게 참 아쉽고 안타까웠다.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되어 꿈꾸게 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현상이다. 만약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다른 것에 관심이 생겨 꿈의 방향을 재조정 한다면 그것 또한 좋다. 최초의 꿈이 프로라면, 안돼도 괜찮다. 꾸준하고 치열하게 그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 과정에서 분명 값진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즌은 토너먼트가 아닌 리그고, 우리의 레이스는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다. 이번 시즌 못하면 다음 시즌에 나아지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옛 말’이고 ‘나 때는’에 해당하기에 글을 적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지만, 그저 어린시절부터 축구에 익숙함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좋아하는 축구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축구가 발전하니까.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