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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문보기 글쓴이: 거슨옹
안녕하세요,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학생입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독일 유학생 네트워크’에 ‘다다다’님께서 우울증에 관련된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공유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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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면 울어도 돼>
안녕하세요 베를린에서 처음 겨울을 맞습니다 걱정했던것만큼 독일의 겨울이 춥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이곳의 혹독함은 추위가 아니라 다름아닌 기나긴 밤이라는걸 이제서야 알것같습니다 타지에서의 긴장, 향수병, 적은 일조량. 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당연히 우울증이 많을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대한 이해는 너무 부족한거같아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다소 글이 과격할수있으나 이해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우울증과 힘겨운 사투중인 분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지인분들께 드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우울까지도 -지인편
0. 말하지마세요. 입금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대부분의 말은 안하는게 낫다는 말을 드립니다.
상상해봅시다. 망한 수능, 입대 전날, 바람핀 애인을 목도. 여러분은 당황할 것이고 안절부절하다가 힘내 좋은 날이 올거야 라고 말하겠죠. 힘이 날까요? 안납니다.
이건 마치 명절날 친척들의 덕담과도 같은겁니다. 사실 서로 할얘기가 없어서 얹는 말이지만 역사상 덕담이 기분 좋았던 적이 있던가요? 짧을수록 좋은 축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힘내라는 말도 쌓이면 없는 힘을 내라는 건지 짜증스럽기만합니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이냐
1. 입금을 해주세요
숫자로 사랑을 보여주세요. 돈이라는건 사실 많은걸 할수있습니다. 우울할때 초밥은 약입니다. 맛있는거 먹고 스파라도 가고 마사지라도 받으면 괜한 위로 한마디보다 더 큰 도움이 됩니다. 당장 생활비가 없는데 입금 알림을 보면 그만큼 걱정이 덜어져요.
2. 밥을 사라
입금은 너무 정이 없는거같아서 정서에 안맞다 하시면 밥을 사세요. 초밥이나 그리운 한식을 추천합니다. 대신 말은 함부로 얹으시면 안되고 듣기만 하세요.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고생했어 잘버텼다 이런 공감만 나타내시면 됩니다.
3. 집안일의 요정 도비
더 친한 사이시라면 설거지 방청소 빨래 환기 같은 집안일을 도와주세요 100퍼센트 사람이 살곳이 이미 아니게 되어있을 것입니다. 우울증이 오면 가장먼저 위생이 무너집니다. 생각보다 청결은 개인의 기분에 연결이 많이 되어있어서 정리정돈된 방, 따뜻한 샤워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줄수있습니다
친구를 욕실에 넣었다 꺼내서 병원에 데려가면 수퍼그레잇입니다
이거는 기본편이구요 심화편 만약 친구가 자해를 한다 자살사고가 심하다 했을 경우를 알아봅시다
이지경이라면 무조건 평소에 다니는 병원이 있어야합니다. 아직까지 없다면 바로 병원에 가도록 합니다. 비상상황 시에 연락할 핫라인이 필요합니다. 담당의나 지역 긴급 전화번호를 알아둡니다. 사실 이정도 중증에서 지인이 할수있는건 많지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자해 자살 충동이 들때 혼자 두지않는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울은 굉장히 무거워서 개인이 다 책임질수있는것도 아닙니다. 본인도 우울하다면 트리거가 눌려서 같이 휩쓸릴수있으니 주의해야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자가 결코 될수없다는 것도 기억하세요. 구원은 자신만이 할수있습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다 지나가는 일이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김난도의 후예입니다
-운동을 해라 : 중증 우울증 환자는 침대밖 거동조차 불가능합니다 한국에 있다면 높은 확률로 운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어렵습니다 정보가치 없는 말은 하지않도록 합니다
-햇빛을 쐬라, 못자면 자기전에 우유마셔라, 핸드폰을 그만해라: 손을 들어보세요 그 손으로 스스로 딱콩을 때려봅시다 듣는사람이 그걸 모를까 생각해봅니다
-약 끊어라 의존성만 높아진다 : 의사입니까? 전문가입니까? 약사입니까? 간호사입니까? 책임질수있습니까? 병리적인 현상과 약제 메커니즘을 모두 이해하고 있습니까? 가장 위험한게 의사와 상의없이 단약했을 때입니다. 왜 암환자한테도 의지랑 운동으로 이겨내라고 해보시지요. 암못지않게 사망율이 높은게 우울증인데 왜그렇게 감히 함부로 안일하게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정도 무지는 죄에요.
■환우와 지인 모두 알아야 할것
우울증과 우울감은 다릅니다
시험 못봐서, 차여서 우울할수있죠. 인간은 다 그럽니다. 그건 우울감이라고 합니다.
우울증은 달라요. 일상적인 우울과 무기력이 곳곳에 침투해있는겁니다. 사실은 무기력증이 더욱 맞는 표현이에요. 사실 우울하지도 않은 경우가 더 많거든요. 감정이 마비되서 뭔가를 느끼는것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여럿일수있어요. 유전일수도 환경일수도 트라우마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학 환원주의적으로다가는 결국 호르몬의 불균형이라구요. 그래서 약물로 호르몬의 균형을 찾아줘야합니다. 그리고 환경적인 문제라면 상담을 병행하는거고요. 최소한 우울증에 대한 이해는 하고 갑시다.
■ 그대 탓이 아니야 -환우편
1. 응급실의 하찮은 상처
저는 스무살때 심한 우울증이 왔었습니다. 자해로 응급실에 갔을때 너무 죄송했어요 코드 블루가 울리는 그 전쟁통에 내가 스스로 낸 한심한 상처를 들고 갔다는게 너무 창피스럽더군요 며칠은 못잔게 분명해보이는 정형외과 당직의 분을 봤을때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하니까 퉁명스럽게 왜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그냥 이까짓 작은 상처로 와서 죄송하다 했습니다. 그리고 해주신 말씀이 지금껏 잊혀지지 않아요.
의사에요? 누가 큰 상처 작은 상처 판단하죠? 그리고 작은 상처가 큰상처 되는거에요. 이건 작은 상처도 아니고요.
그제서야 저는 제 상처를 직시할수있었습니다
이깟 우울증 하나 못 다스리는 나약한 내가 아니라, 썩고 곪아들어가는 상처도 방치하고 나를 돌보지 않는 나를 그제서야 봤어요.
여러분이 힘들어하는건 나약해서가 아니에요. 그냥 그럴수있는거에요. 그러니까 조금더 관대하게 자기를 보듬고 보살펴주세요. 잘 버텼다고 수고했다고 이태까지 잘해줘서 고맙다고 스스로 궁둥이도 두드려 주세요. 살아서 이 글을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2. 정병러라는 굴레
전 처음 우울증이라는 걸 자각했을때 스스로 정신과에 갔습니다. 편견이 없는 편인데도 처음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을때의 그 좌절을 기억합니다 누가 자유로울수있겠습니까 내가 미친건가 싶고 많이 슬펐죠.
근데 여자분들 알지않나요. 호르몬 새끼가 악랄하기가 얼마나 그지같은지. 단거 생전 안먹는데 어느날은 상자채로 들고 퍼먹는 나를 봅니다. 다 죽이고 싶어서 진지하게 성격파탄자일까 고민하면 생리전날이고요. 호르몬의 농간이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도파민 세로토닌 이런애들 때문에 죽어나는 거에요. 그니까 약물 처방받으면 훨씬 나아요. 기억력 감퇴하고 시간관념 없어지고 집중력 떨어지고 사회성 떨어지고 감정 마비되고 무기력하고 죽고싶고 그게 전부 그새끼들 때문이에요. 그니까 그만 자기탓하고 병원가요.
그럼에도 저는 우울증으로 약을 쓰는데 계속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조울증이었던 거죠. 우울증으로 발병했는데 조울증이었던 케이스가 간혹 있습니다. 조울증은 처음 잡으면 완치가 가능합니다만 재발하면 사실상 평생 가져가야하는 병입니다. 처음엔 완치의 희망으로 버텼는데 재발하고 나선 또 많이 절망했죠. 저는 평생 관리할 생각을 하고있어요. 그래야 하고요. 다만 병이 나인지 내가 병인지를 모르겠을땐 나를 잃은 기분이더라구요. 난 이제껏 강렬하고 톡톡 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 조울증 때문이라면 조울증이 없는 난 뭐야? 누구야?
아실거에요. 갈수록 빛바래져가는 기분. 세상은 색깔로 가득 차있는데 나만 무채색으로 멈춘 기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거같고 우울증이 없던 내가 너무 낯설고. 근데 제가 다년간 생각한 바로는 결국 그 구획을 나눌 필요가 없더라구요. 기쁘다고 해서 히스테릭하게 기쁨의 감정을 제외했을때 내 모습이 뭔지 생각하지않잖아요. 우울한 것도 나고 밝은 것도 나인거에요. 그냥 그렇게 별거 없어요. 우리의 목표는 요동치는 감정들과 무너진 일상들을 잘 다스리고 착실히 기능해가는 거에요. 그렇게 별거 없게 살수있는 팁들을 공개합니다. 진심 이건 정신건강의학협회에서 배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온갖 서적과 논문과 세미나와 각종 환우들의 경험담과 셀프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보입니다.
1. 평상시
저는 삶에 대한 욕망이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근데 제가 스스로를 언제 죽일지 모른다는 건 엄청난 불안과 공포였어요. 그래서 건강할때 거미줄처럼 안전망을 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메뉴얼을 만들어가는거에요.
일단 평소에는 꾸준히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았습니다. 저야 조울증이라 평소에도 약을 복용해야하지만 우울증은 평소기능으로 돌아오면 약도 단약하니 걱정마세요. 약물의존성에 가장 신경쓰는건 의사입니다. 상담을 평소에 하는게 중요한건 이래서에요. 조울증 특성 중에 세상을 굉장히 극단적으로 보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간회색지대가 없다는 거에요. 이 인지왜곡을 상담으로 교정을 하는겁니다 그러면 와 망했다 죽어야지 이러던걸 와 망했다 나중에 죽으니까 괜찮아 정도로 생각할수있어요 농담입니다
2. 세로토닌계
(날아가서 다시써서 매우 화가나네요 자고싶습니다)
친구들 모두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편이라 모두 정병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지요. 그래서 세로토닌계를 만들었는데요 별거없고 5명이 있으면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멀쩡하니 멀쩡한 사람이 아픈 애를 데려다가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는 겁니다 이게 다에요
대신 서로의 감정에 휩쓸리지않게 주의하시구요 전 이 계 덕을 많이 봤어요.
3. 자해 자살사고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간목숨 질기지만 또 얼마나 가볍나요 차도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머리속을 침범하듯 지워지지않는 날들을 대비해야했습니다.
메뉴얼을 만들었습니다
1 도움 요청-친구 애인
친구 애인에게 이런 날을 위한 매뉴얼을 각기 일러주었습니다. 응급실과 각종 핫라인 번호나 내가 갑자기 연락두절되었을때 대처법, 옆에 있을때 진정시키는 법등을 미리 일러주었습니다.
2. 핫라인
문제는 너무 힘들땐 친구와 애인에게도 말하고 싶지않다는 거죠. 스스로 핫라인을 만들어두었습니다. 생명의 전화나 상담사 병원 긴급연락처 등을 말합니다
3 응급실
저는 죽기싫어하는 사람이라 정말 긴급상황일때 스스로를 살릴 대비책도 마련했습니다. 119를 부르거나 응급실에 가서 아티반을 맞는거요. 아티반은 강력한 진정제입니다. 저는 아직 다행스럽게도 응급실에 실려간적은 없으나 이 팁을 알려주신 분에 의하면 자살사고를 말씀드리고 진정제 요청을 하면 검진비같은걸 많이 뺄수있다고 하더라구요. 한국에서 응급실비용 무섭잖아요. 독일은 보험커버에 따라 응급실도 무료일수있으니까 평소에 알아보기.
자살위험은 없지만 너무 힘들때 며칠 내원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상유지할 능력이 없을때 케어를 받을수있으니까요.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언젠가 정리해서 써야지 생각하다가 썼습니다. 공유해주시면 더욱 감사합니다. 출처같은건 안밝히셔도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여라도 문제되는 내용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합니다.
이십대 초반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중반에 선 지금 무엇이 달라졌느냐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게 다릅니다. 몇번의 고비를 넘겼습니다만 그때마다 내가 포기하지않을거라는걸 이제는 압니다. 앞으로도 이런 고비들이 또 올거라는 걸 알지만 넘실대는 파도에서 앞으로는 균형을 더 잘 잡을 수 있겠지요. 이것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스쿠터를 타면서 반짝이는 베를린의 천사동상을 본 날 생각했었어요. 죽지않고 살아가면 이런 반짝이는걸 볼수있구나. 대단한 행복은 없더라도 이런 반짝임을 포기하지않고 하나씩 주우면서 살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의 앞날에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이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죽지말아요.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잘읽고갑니다 스크랩해두고 이따금씩 꺼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시간을 두고 정독하고 싶어요.
이 글을 지금 읽었습니다.
요새 우울증/무기력증인지 모를 상태에 빠진 것 같아 비스게에 검색을 하였다가 접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