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해 이라크에 대한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파병을 요구한 미국 측 인사는 누구인지, 파병 요구를 공식화하는 문서는 있는지, 얼마나 많은 병력을 요청 했는지, 언제까지 파병을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인지 그리고 이라크의 어느 지역에 주둔 해 달라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9월 21일 현재 AP, UPI 등 통신사들은 미국이 한국, 터키, 파키스탄에 대략 4만 명 정도의 병력 추가 파병을 요구했다는 뉴스를 내보낸 상황이다. 더구나 AP의 경우 뉴스의 소스가 미국이 아니라 파병을 요청 당한 나라들로 되어 있다.
이미 한국 국회에서 의원과 외교통상부 장관 사이에 논쟁이 있었던 바처럼 파병요구가 공식적인 것인지 아직 불분명 상태다. 미국의 국방, 국무장관들은 기껏해야 1만명 정도의 추가 병력이 올 수 있을 정도라 생각하며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보도조차 있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 터키와 파키스탄에 공식적으로 파병을 요청했다면 그것은 국군 통수권자, 즉 각국의 국가 원수들에게 부탁해야 했을 사항이다.
이처럼 파병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한국에서 야기되고 있는 찬반 논란은 정도를 넘치고 있을 뿐 아니라 방법론상으로 문제가 많아 보인다.
우선 외국에 군사력을 파견한다는 것, 특히 이라크와 같이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전투가 진행 중인 곳에 군대를 파견한다는 것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결정이다. 특히 현재의 국제 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세계적 차원의 대 테러전쟁에 한국이 직접 참여하느냐의 여부와 관련되는 문제다. 이처럼 국가의 최고 수준의 정책인 전쟁과 평화의 문제인 파병 문제는 정부의 고위 정책 결정자들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수렴하여 국가 이익이라는 냉철한 기준에 입각하여 결정한 후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다. 이 세상 어떤 민주주의 국가라도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국민의 여론에 따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 절차가 거꾸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이라크에 대한 추가 파병 논쟁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라크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5월 1일 부시 대통령이 주요 전투(major combat operation)의 종식을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이라크에서는 소규모 전투(minor combat)가 지속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전쟁이 끝났다고 말 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3월 20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4월 30일까지 미군은 138명이 전사, 하루 평균 약 3.3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고, 주요 전투 종식 선언 이후 9월 20일까지 165명이 전사, 하루 평균 약 1.1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5월 1일 이후의 미군 인명 피해 중 절반 정도는 사고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전투에 의한 인명 피해다.
현재 이라크는 월남전 같은 수렁이 아니라 평화가 회복되고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 있다. 이미 이라크 내각이 구성되었고, 이라크 인들로 구성된 경찰과 군대가 구성 중에 있다. 한반도 전체의 두 배가 되는 이라크 국토 전체의 90%가 평정된 상황이다. 미군에 대한 공격과 미군 인명 피해의 약 90% 정도는 이라크 영토면적의 10%에도 못 미치는 후세인의 고향이며 바트당의 본거지인 바그다드 북부 - 티크리트 남부를 연결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전투병’ 파견은 안 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전투병이 아닌 군인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사를 보면 가장 용감한 병사, 가장 희생이 큰 병종은 의무병들이었다. 현재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는 한국군들은 공병과 의무병이지만 후세인의 잔당이 공격을 가해 오면 당연히 전투를 벌여야 할 ‘전투병’인 것이다. 앞으로 파병할 부대는 보병 위주의 부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파견되어있는 서희부대와 마찬가지로 전투보다는 평화의 구축을 주 임무로 삼게 될 것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경우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긍정적인 결정을 함으로서 기대되는 이익과 부정적인 결정을 내렸을 때 감내해야 할 손해가 바로 그것이다. 이라크에 추가 파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익은 한국의 안보를 증진 시킨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주한 미군의 철군 및 재배치가 진행되는 불안정한 와중에서 미국 측에게 우리의 안보 요구를 보다 강력하게 제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이 이라크 파병을 거부하기로 결정 한다면 그 다음 다가 올 손해는 구체적으로 열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번의 결정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보다는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 만약 미국의 공식 파병 요청이 있고, 우리가 그것을 공식으로 거부한다면 그 경우 미국은 북한 핵 문제 및 주한 미군 재배치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더 이상 심각하게 고려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경우 우리는 이미 多者化된 한반도 문제의 해결 구도에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지렛대마저 잃게 될 것이다.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말의 본 뜻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첫댓글문득 어제 저녁에 이라크파병은 부시대통령의 재선가능성과 연계해서도 계산을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미국의 경제상황을 보면 부시의 재선이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부시의 재선가능성이 낮다면, 파병을 하더라도 그 규모를 대대적으로 낮춰서 파병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
첫댓글 문득 어제 저녁에 이라크파병은 부시대통령의 재선가능성과 연계해서도 계산을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미국의 경제상황을 보면 부시의 재선이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부시의 재선가능성이 낮다면, 파병을 하더라도 그 규모를 대대적으로 낮춰서 파병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
인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