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一醮終身해야
신성일 타계에 부쳐
夫婦之道 一醮終身
子之責我 愛非惡焉
부부의 도리는 한번 결혼을 하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 것이니
그대가 나를 책망하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서가 아닐 것이오.
정도전은 고려 때 元나라보다 흥기한 明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해서 전라도 나주로 귀양살이를 갔다. 당연히 가솔을 돌볼 수 없었다. 그가 귀양을 간 후 온갖 비방과 터무니없는 구설로 그의 가족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참다못한 부인이 나주로 인편을 보냈다. 위 글은 부인에 대한 답장의 일부다.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은 후 평생 해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하늘이 힘을 잃으면 불가능하다.
은막의 스타 신성일(본명 姜信永)이 81세로 별세했다. 부인은 숙명여대 가정학과 출신의 인텔리 여배우 엄앵란. 화통한 성격의 엄앵란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성일은 ‘로맨스 빠빠’를 시작으로 무려 52편의 영화에 동반 출연했고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며 스타 커플이 됐다. 이들 부부는 1978년 레스토랑을 운영할 당시 서로 대구와 서울을 번갈아가며 생활했고 1995년 레스토랑을 정리하면서 본격적인 별거를 시작했다.
고인은 지난 2011년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서 ‘애인’ 관련 사생활을 공개하며 논란이 일었고 엄앵란은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과거 신성일의 외도와 평탄치 않았던 결혼생활을 스스럼없이 발언했다. 하지만 신성일 엄앵란 커플은 쉽게 허물어질 수 없는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숱한 스타 커플들이 성격차이 등을 이유로 이혼하는 세태에서도 卒婚을 선택했을지언정 끝까지 법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고인이 암 선고를 받던 날 엄앵란은 딸 수화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 아버지는 VIP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는 거 못 본다. 왜? 내 남편이니까. 난 그걸 책임져야 한다. 돈 꾸러 다니면서 병원비 대고 자식들한테 손 벌리는 그런 배우는 싫다. 우리는 동지야. 끝까지 멋있게 죽어야 한다." 비록 한집에서 해로하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부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엄앵란은 일초종신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남편의 자존감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려 했던 그의 노력은 진한 동지애의 발로였다. 아마 고인도 부인의 이런 뜻을 저승에서도 기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