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
루카 24,13-35
희망의 보루였던 스승께서 그토록 처참하고 참담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하시다니!
스승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제자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극도의 실망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순간을 맞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앞에서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미련도, 더 이상의 희망도, 더 이상의 후회도 없는
그야말로 자포자기의 상태, 그것이 제자들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동네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찼던 지난 추억들을 하나하나
지워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스승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상 그들에게는 더 이상 의미 없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엠마오로 가는 그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절망과 좌절감 속에
빠져 버린 두 제자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시기
위해 그들을 만나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이렇게 같은 길이었지만 목적은 그렇게 달랐습니다.
두 제자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깊은 시름을 안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전혀
기대치 않은 순간에 그렇게 부활하신 분을 만났습니다.
그러고는 그분과 함께 엠마오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동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조차도 없었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주실 때에야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부활하신 분을 만났지만 그 순간
“그분께서는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루카 24,30-31).
제자들에게 실망과 좌절의 쓰디쓴 맛을 보게 하신 스승 예수님과
그들의 여정에 함께하고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같은 분이십니다.
두 제자는 그야말로 절망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을 부활하신 분으로 만나는
충격적인 순간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체험의 첫 순간은 이렇게 생각과 관념, 상식과 논리를 뛰어넘는
모습으로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온전히 은총 안에서 이루어진 예수님과의 충격적인 만남을 통해
그분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분이시라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당신을 믿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심으로써,
그들 안에 자리하고 있는 불신의 어둠을 몰아내고 욕심과
이기심으로 범벅된 자기중심적인 삶을 청산하도록 이끄십니다.
또한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찬 시선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여정에 함께하십니다.
따스한 봄볕을 피부로 느끼며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듯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대교구 안병철 신부
첫댓글 부활신앙은 우리들이 많이 묵상해야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