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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29.
● 제III부 제1장 이토카즈(*糸数)에 대한 선망
1944년 4월까지의 전투는 나카가미(*中頭)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윽고
주전장(主戦場)이 남부 끝자락인 시마지리(*島尻) 쪽으로 옮겨갔다. 일본군은 주요 전비를 착착 시마지리 끝쪽으로 옮겨 갔다. 우시지마(牛島) 사령관은 미리 오키나와 결전이 시마지리에서 행해질 것을 예기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시마지리가 주전지(主戦地)가 된다는 것은 오키나와전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中頭: 오키나와 본섬 중남부 지역 *島尻: 오키나와 본섬 최남단 *糸数: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난조시 다마구스쿠 아자이토카즈에 있는 길이 270m의 자연 동굴로 '이토카즈벙커' 라고도 불림)
시마지리가 주전장(主戦場)된다는 것은 하에바루 병원으로서는 부상병을 시마지리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 된다. 그곳에 야전 병원을 차린다면 그 이후의 부상병 운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이토카즈라는 작은 마을이 병원의 소재지로 선정되었다. 히메유리대의 25명에게 이토카즈 전근이 명령되어 도쿠야마(徳山) 선생님과 다마나하(玉那覇) 선생님이 인솔자로 결정되었다. 4월도 끝나 가는 어느 날 오후, 우리는 학생 25명의 송별식을 거행했다.
여학생 25명과 인솔 선생님 두 명이 본부 벙커 앞에 집합했다. 학생들은 배낭과 구급상자를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있었다. 남겨지게 된 학생들, 간호사, 군인, 장교, 서서 걸을 수 있는 부상병들이 모두 벙커 밖으로 나와 송별식에 참석했다.
먼저 점호가 있었다. 인솔 선생님이 이름을 불렀다. "넷"하고 학생들의 높은 목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학생 대표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고친다(東風平) 선생님에게 보고했다. "학생 전원 집합하였습니다. 우리 25명은 도쿠야마, 다마나하 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이토카즈로 출발합니다."
고친다(東風平) 선생님이 병원 본부 벙커에서 나와 있었다. 나는 고친다 선생님의 스다일을 알기 때문에 송별식을 엄숙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선생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을 때,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고친다 선생님, 제발!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적이 다시 쏘기 시작할지 모르니까.” 다행히 고친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짧았다. "차렷! 고친다(東風平) 선생님에게 경례! 좌향좌! 지금 출발! 이토카즈를 향해 전진!" 그녀들은 훌륭했다. 24시간의 훈련 덕분에 제국 군인 못지않게 늠름해져 있었다.
송별식이 진행되는 동안 배웅하는 사람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히메유리대가 걷기 시작하자 전원이 한 명도 남김없이 박수를 치는 바람에 분위가가 갑자기 밝아졌다. "잘가요, 학생들 몸조심하세요. 잘 가세요, 도쿠야마 선생님. 잘가세요, 다마나하 선생님"
박수는 예정에 없는 행동이었다. 어깨에 힘주는 군의관이나 도도한 장교들까지 열띤 손뼉을 치고 송별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여학생들이 육군병원 사람들에게 유능한 일꾼임을 인정받는 한 증거이기도 했다. 히메유리대는 군인들의 신뢰와 칭찬을 획득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혀 생각치 못한 것이었다.
감격의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은 것은 고친다 선생님뿐이었다. 고친다 선생님은 왜 저런 표정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배웅하는 사람은 이토카즈로 향하는 학생들이 언덕을 유유히 올라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지자 공기가 차가워졌다. 갑자기 함포가 2~3백 미터 앞에서 폭발했다.
적이 친구들을 "죽음의 여정"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함포가 갑자기 멈췄다. "이토카즈는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라고 후지무라(藤村) 간호부장이 물었다. 별로 멀지 않습니다. 아마 50킬로미터 정도일 거예요" 라고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다지 멀지 않다고? 그렇네요,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은 확실하네요. 하지만 저 소리를 들어 보세요."
후지무라 부장이 귀를 쫑긋 세웠다. 함포가 다시 시작되었다. 25명의 학생과 2명의 선생님은 함포가 떨어지는 곳을 향해 똑바로 걷고 있었다. 함포가 또 멈췄다. "조심 또 조심해!" 위생병이 손으로 나팔 모양을 만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항상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고, 아주 엉뚱한 말을 꺼내 여학생들을 놀리는 위생병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 얼굴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듯해 보였다. 이토카즈로 가는 히메유리대(姫百合隊)는 잠시 걷기를 멈추었다.
"안녕, 위생병님." 멀리서 외치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 빨리 돌아와." 위생병이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네, 돌아올게요. 분명 돌아올께요". 줄을 서서 서 있던 가장 후미의 학생의 모습이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모두는 한동안 벙커 밖에 선 채로 있었다. 서로 할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2주가 지났다. 이토카즈에서 소식이 왔다. 모두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크게 기뻐했지만, 반면에 부럽기도 했다. 이토카즈의 병원은 분명 좋은 곳일 거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장은 우수한 사람이고, 게다가 오키나와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간호사들은 상냥하고 유능한 사람들이고, 히메유리대는 우대받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부상병도 적어 오히려 환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모두가 이토카즈로 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부상병은 입원하자마자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게 되고 풀이 빳빳한 잠옷을 입고 깨끗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이었다. 하루 세 번의 식사는 솜씨 좋은 취사 담당이 주방에서 지휘하고 있으며, 식사는 상에 올려 운반된다고 한다.
밥은 밥그릇에 담겨 젓가락을 곁들여 내놓는다고 한다. 하에바루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치스러운 모습이 우리 귀에 들어왔다. 병원은 얼룩 하나 없이 언제나 청결함이 유지되고 있으며, 검은 연기가 나는 석유 램프는 사용되지 않고 그 대신 촛불을 켠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 전등이 들어온 것 같다. 전시에 있어서의 전등은 의외의 것이었다. 이토카즈에 간 친구가 부러웠다. 자신들은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녀들만 여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 불공평하게 여겨져 화가 나기도 했다.
5월 중순에 들어 하에바루의 환자 일부를 이토카즈로 이동시키는 것이 결정됐다. 오키나와 전지역에서 매일같이 들어오는 부상병을 수용할 침대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내일 오후에 들것에 실린 환자가 올 테니까. 빨리 해 달라" 고 전언자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는 내 귀에 입을 대고 "이토카즈로의 이송환자 결정권은 당신들에게 있다. 나라면 귀찮은 사람들을 이토카즈로 보낼 거야. 머리가 이상해진 환자들나 손이 많이 가는 환자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번 이동이 절호의 기회다." 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석유 램프 아래에서 이토카즈행 환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나는 변기를 들고 이침대에서 저 침대로 뛰어다니고 있을 텐데, 환자들은 그날 밤에 한해서는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다. 그들 또한 이토카즈 행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토카즈가 별천지라는 것도.
그들은 무서운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처럼 누구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동자 명단을 만드는 책임자가 나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평소와 달리 얌전히 있는 것이 서글펐다. 모두가 이토카즈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에바루에 남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대부분이 나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아무리 상처가 아파도 이토카즈까지 남의 도움 없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만약 행실이 좋아 그에 대한 보상이 이토카즈 행이라면, 그날 밤만은 그들에게는 모두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들 중에 젊은 방위병이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고 오키나와 출신의 청년이었다. 다리뼈가 부러져 있었지만, 항상 얌전히 누어 있어서, 불평 하나 하지 않았다. 그의 예의 바름은 제국 군인으로 훈련되었다기 보다는 그 자신의 심성 때문인 것 같았었다. 그는 칭찬할 만한 환자였다.
나는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동 명단에 올라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언자가 충고해 준 것처럼 나는 손이 많이 가는 환자의 이름을 나열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책임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 날에는 명단을 군의관에게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명단 작성을 서둘렀다.
이토카즈의 이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토카즈까지 들것에 실려 가는 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반복되는 폭격이나 함포 사격으로부터 계속하여 몸을 보호해야 했고, 그것은 매우 신경 쓰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 출신의 방위병은 이토카즈에 갈 처지가 못 되었다. 다리 뼈가 나을 때까지는 그를 움직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본심을 말하자면 오키나와 출신의 방위병은 전혀 손이 가지 않는 편한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이동명단에 올린 환자는 다리를 흔들어대며 고함을 지르는 땜장이 출신의 환자였다. 나는 그를 한눈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빴다. 내가 침대 사이를 둘러보고 있는데, 때마침 오키나와의 소년병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하고 그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네"라고 대답하고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뭔가 필요해요, 변기예요?" 라고 물었다. "아니오"라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가 변기를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전속 돌보미가 전쟁터에서부터 딸려왔기 때문에 변기를 나에게 의뢰할 필요가 없었다. "뭔가 필요한 게 있어요?" 나는 상체를 숙이고, 맑고 정직해 보이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뭔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바로 짐작했다. "이토카즈에 가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카즈 이동은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군의관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부목에 다리가 붕대로 둘둘 감겨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부어 있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라고 그는 확신차게 말했다. "그래요?... 내일 군의관이 오시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라고 얼버무려 넘겼다. 물론 나는 그의 이름을 명단에 적어 넣지 않았다.
다음날 가장 먼저 벙커로 들어온 것은 히메유리대의 소노에(園枝)였다. 소노에는 특별 시험을 보고 견습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소노에는 매사에 열심이었고,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성격이었다. 크리스천이었다. 기독교 교리가 그녀의 그러한 인격을 형성시키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안녕하세요"라는 소노에의 밝은 인삿말이 언제나 우리에게 기대와 환희를 가져다 주었다. 소노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수술 상자를 무릎 옆에 놓고 반짝반짝 빛나는 칼과 가위를 늘어놓았다. 애교 있는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서 끊이지 않았다. 이어서 군의관과 간호사가 왔다.
군의관의 방문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군의관의 모습을 보고 환자들 중에는 자세를 가다듬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이토카즈에 누가 갈지가 결정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침대 위에 앉아 붕대를 풀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 붕대를 풀지 말아요"라고 간호사가 큰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군의관은 가위로 더러운 붕대를 잘라 새로운 붕대로 교체했다. 손놀림은 빨랐다. 안보이는 곳에서는 군의관들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지만, 일하는 동안은 열심이었고, 훌륭한 손놀림으로 차례차례 일을 처리해 나갔다. 갸름한 손끝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피아노의 달인을 떠올리게 하는 손동작이었다. 군의관 일을 하는 동안에는 누구 하나도 참견하지 않았다. 집게나 칼 소리와 가끔 신음소리가 나는 것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군의관은 땜장이 앞으로 가서 갑자기 멈춰 섰다. 이상한 인간을 보고 얼마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땡장이의 크게 부릅뜬 눈은 인간의 증오의 감정 자체를 대표하는 것과 같은 특시한 형상이었다. "이 남자는 밥을 충분히 먹고 있는가?" 군의관은 잠시 침묵한 후 겨우 입을 열었다. "네, 죽을 하루에 두 번..."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전시가 아니었다면 내 설명에 군의관은 납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합 뚜껑에 담은, 하루 두 번의 묽은 죽으로 충분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군의관은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배불리 먹고 있는 사람은 하에바루에는 한 명도 없었고, 군의관이라고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의관은 소노에(園枝)에게 가위를 달라고 했다. 땜장이의 다리 붕대를 가위로 자르기 시작하자 간호사가 빈 캔을 들고 다가갔다. 가장 안쪽의 붕대가 풀리자 구더기가 나왔다. 마치 화산의 용암이 흘러나오듯 구더기는 땜장이의 발 밑에 깔린 담요 위로 흘러내렸다. 간호사가 붕대를 풀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빈 캔을 가져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구더기를 핀셋으로 한 마리씩 집어 빈 캔에 넣었다. 세츠코(節子)와 나는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 벙커에 이렇게 구더기가 끓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땡장이의 상처는 말라서 분홍색으로 되어 있었다. "환자님, 당신의 상처는 이제 좋아졌어요." 소노에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귀띔을 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대부분의 환자의 상처 부위에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간호사는 빈 캔 속의 구더기를 몇 번인가 오물통으로 옮겼다. 군의관과 간호사와 소노에가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고 나서 세츠코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 벙커는
이(虱) 뿐만 아니라, 구더기 투성이의 벙커가 되어 있기도 했다.
벙커를 나올 때, 소노에가 우리에게 기운을 북돋우려고, "구더기는 몸에 좋은 역할을 한다" 라고 말했다. "구더기는 고름을 먹어주고 상처를 깨끗하게 하는 거야"라고 덧붙였다. 소노에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우리는 구더기가 도움이 된다는 말을 별로로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 벙커에 있어야 할까.
구더기를 버린 오물통 옆에 저녁밥이 담긴 밥통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몸이 오싹했다. 그리고 오키나와 출신의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간절해 보였다. 그러나 군의관은 지쳐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이토카즈 환자이송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토카즈 행 결정은 결국 내 의지를 따르게 되어 버렸다. 나는 오키나와 병사의 침대에 다가가 속삭였다. 들것에 실린 환자가 들어오게 되면 바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그릇에 담긴 흰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