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 점에서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도
동학사 비구니 스님들도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인데
멀고 먼 서울 여의도까지 와서
연꽃지화로 감싼 촛불을 들고
황교수를 위해
KBS의 추적 60분 방영을
작은 소리의 염불로 촉구한 것은
비구스님들과 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나의 눈에는
부처님의 참 뜻을 아는 학인스님들 같았다.
비구 스님들은
스스로 권위만 있지
실질적으로 내용이 없는 것 같았다.
운문사 학인 스님들은
불교가 수행자와 중생은
둘로 있지 않다는 것을
교리 공부를 통해 잘 안 것 같다.
중생들 속에서
깨달음을 피워낸다는
아름다운 의식이 투철했다.
이 대승불교의 참다운 면목의 뜻이 아닌가 ?
그 것이 동사섭이 아닌가 ?
그 것이 깨달음의 본질에 맞는 처신이 아닌가 ?
중생 밖에서
깨달을 구하는 자는
켤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왜냐 ?
우리가 예불분을 보면
중생과 불이이기 때문에
중생의 무명을 타파하기 전에서는
성불할 수 없다 하고 때문이다.
보살에게 제도할 중생이 남아 있는 한
성불이 아닌 것이다.
돈오돈수란
중생은 없고 부처만 있는 경계에 드는 것을 말한다.
평등함을 성취하고
법성의 원만함을 투철한 경계에 듦을 말한다.
그러므로 짓는 곳이 법을 나투는 곳이요
어묵 동정이 모두 법의 투철한 제시가 된다.
이 것은 쓸 법
저 것은 몹쓸 법이 나뉘어 있지 않는 경계일 것이다.
붓다가 된다는 것은
탐진치 삼독이 다한 것을 말한다.
중생의 번뇌가 다하지 않았는데
보살이 어떻게 열반에 들겠는가 ?
수행자연 하면서
무엇을 수행해야 하는지
개념도 없는 비구스님들을 보면서
과연 수행자의 길을 바로 걷고 있고
그런 수행자들을 리더하는 소위 큰 스님이란 분들이
수행자들을 제대로 리더하고 있는가
재고할 여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겉은 깨달은 사람들이지만
속은 수행착과
아상에 깊이 몰두 하고 있는 것이다.
독림운동을 한 한용운 스님이나
중생제도에 열을 올렸던
경허만공 백용성 스님 비구대처 당시
산문의 산적한 문제에 직접 개입했던 큰스님들
이 분들이 다 수행을 망친 분들이라고 공언한 것이 아닌가 ?
서산 사명 스님은
불교 혈맥의 정통에 든 분들이다.
우리의 불조는 어떤가 ?
모두 중생제도에
평생을 바친 분들이다.
가장 근본적인 본보기인 부처님은
팔만 사천 법문을 열어
모든 분야 모든 계층의 중생을 위한
법익을 펼쳤다.
오늘 날 수행자는
앉는 것만을 수행으로 여기고
생각을 고루하게 하는 데 근본을 두고 있으니
지혜는 떠나고
중생의 이익을 도모할 방편이 바닥이 나는 것이며
중생들부터 중생들의 이끗이나 탐하는
몰상식한 수행자들로 비추어질 것이다.
첫째는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면서
전혀 중생을 제도할 근거인 정보를 취하지 않음이며
둘째는 선방에 앉아서
조사스님들이 번뇌가 보리라는 것을 근거하지 않고
생각없음으로서 결과를 삼으려 하는 것이요
셋째는 공상의 귀굴에 빠져
이 것도 무시하고 저것도 무시하는 것으로서
초연을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육사외도의 상착에서 벗어나겠는가 ?
수정도 역시 입정과 출정으로서
상호 병통을 제하는 것이 정도인데
하물며 일정한 수행상에 머물러
스스로의 견장으로
제대로 된 수행을 장애 하니 어찌 바르게 수행한다 할 수 있는가 ?
중생이 부당한 함정에 빠져 고음을 내며
구해달라고 하여도
버리고 가서 수행하는 자들이
무슨 도를 얻겠는가 ?
욕정을 버리고
출가의 모습을 보임에
출가본연의 목적이 자리이타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일진데
어찌 중생과 수행자를 둘로 나누어
수행함이 본연이 될 수 있겠는가 ?
대승 경전 어디에도
중생의 번뇌가 다하지 않았는데
열반에 드는 보살을 말하지 않고 있다.
돈오돈수란 병이
오늘날 대승이 아닌
대승이라 자부하며
비난하는 소승으로 가게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 보아야 한다.
스님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
그 자체가 불능이라면
신도들을 앞세워 그렇게 해야 마땅함에도
이를 궁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무슨 도를 얻겠는가 ?
얻는 게 있다면
시은을 빌미로 중생을 착취하고
앉는 것을 끊임없이 하여
그렇게 연습하지 않은 사회인들보다
앉아 있는 것만 오래 잘하는 것뿐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출가를 하고
그 것으로 중생을 속여
중생의 이익을 탐하고자 한다면
참다운 대장부 본연을 얻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없잖는가 ?
허공을 잡기 위해
허공 속에서 헤메이는 중생들을 위해
할을 할 만한 기량크고 통큰 수행자는
저 작은 시골 가람의 운문사에만 있단 말인가 ?
부처님은
어떤 중생의 이익도
저버린 바가 없었다.
아니 신통력으로 자신을 열어놓고
자신의 구원을 외치는 중생을 위해
모든 방편을 나투어
제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이 나툰다는 천백억 화신은
차별없이 자신이 필요한 곳에
나툰다는 서원의 철칙을 보인 것이다.
깨달았다고 법상에 올라가
할을 내지르고 방을 휘두르면서도
그 것에 재가 되고 회가 된 듯 하니
어찌 그 도인이라는 말이 타당하겠는가 ?
부처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모래로 공양물을 지어 받들어 올리면
그 아이에게 수기를 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부처님보다 법력이나 행력이 높은 자들이
없을 진데 어찌 그로서
행의 길을 열고 언로를 트는데
그리도 인색할 수 있단 말인가 ?
이 모두 경전을 등지고
스스로의 아상을 쌓는 간화결에
몰두 한 병폐라 아니할 수없다.
황교수는 불자였고
아주 성실한 과학자였다.
황교수팀만으로 한 연구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공동체세포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나타났다.
갑자기 매국언론이 덤벼
황교수의 비리를 캐 황교수를 죽이겠다고 덤벼
공갈협박으로 취재를 해대더니
이와 유사한 포털언론사와
일부 언론사가 대놓고 황교수 죽이기에 동참하여
황교수를 죽이기 위한 행보에 온갖 정신을 다 쏟았고
본색을 드러내듯
카톨릭은 교황이란 자까지 나서서
황교수 연구를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세상에 부작용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부억칼은 어떻게 쓰며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군대는 어떻게 조직하며
농약이나 이런 것은 어떻게 살포하며
부자용 때문이라면
부작용 그 자체인 재앙 많은 지구에서는 어떻게 사는가 ?
입으로는 천국을 말하나
행으로는 지옥을 담고 있는 자들이다.
우리의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가 하는 말이 있다.
한 번 쯤 전화하고 돌려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정부와 언론사가 짠 듯이
사안을 조사할 수 없는 자격도 없는 자들을 앞에 내세워
조사쇼를 벌이고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처벌하고 징계하고
황교수 죽이지 못해 환장한 듯한 狂手를 두었다.
황교수가 언론에서
문제가 됨에도
국민들 대부분은 황교수의
성실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연구재연을 통해
변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함에도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듯이
나라에 온갖 장애를 지었던 자들이
집권한 후 그런 여론을 무시하였다.
지작있는 국민들은 이들의 음모의 저의를
의심하고 의심하게 된 것이다.
국민들을 도탄에 잠기게 했던 뜻이 무색하게
민주 민주 하며 외쳤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국가의 존립에 소중한 국부도 안중에 없었고
황교수 죽이기에만 몰두 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국민들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
1. 총괄책임자의 입장을 살펴보자.
총괄책임자라고 해도
황교수는 유전공학자로서
수의학 관련 분야에서만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쌓아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려운 복제들을 성공시킴으로
최첨단의 의술이라 할 수 있고
꿈의 의술이라 할 수 있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수립을 위한 연구를
미즈메디 측과 같이 하게 되었고
정부는 난자 관련하여
미즈메디 측이 담당하기로 하는 것을
허가하여 황교수의 연구를 허가하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그에게 유래가 없는
요인급 경호를 국정원 직원이
직접 맡게 함으로서
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황박사는 책이나
여러 언론의 힘으로 일약
화면이나 지면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연구를 하였는데
다른 연구원들보다 일찍 출근하였고
새벽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때도 비일비재하였다.
‘황우석 패밀리’의 강성근 이창규 이병천 교수(왼쪽부터)가 2일 도립(倒立) 현미경을 통해 체세포를 관찰하며 배양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철민기자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黃禹錫·51) 교수는 자신의 연구팀을 ‘패밀리’라고 부른다.
45명 패밀리의 보스가 황 교수라면 이병천(李柄千·40) 강성근(姜成根·35) 이창규(李昌奎·38) 교수는 중간보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황 교수의 수제자인 이병천 교수는 1999년 2월 황 교수를 도와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킨 주역으로, 이 패밀리의 ‘성골(聖骨)’로도 불린다.
다른 두 교수는 황 교수가 연구 영역을 넓히면서 영입된 케이스. 강 교수는 수의생물공학이 전공. 원래는 수의학과의 다른 스승 밑에 있었지만 박사 과정 4년 동안 무려 4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부지런함에 반한 황 교수가 영입했다. 이창규 교수는 농생명공학부 소속이다. 그는 유전자에서 특정 부위를 제거하는 ‘녹아웃 기법’의 권위자다.
세 사람에게는 ‘황우(黃牛) 사단’의 다른 식구들과 마찬가지로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다. 원래 일요일은 돌아가며 쉬도록 돼 있지만 일이 너무 많아 쉴 수가 없단다. 이들은 3·1절에도 세 군데의 세미나에 참석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해야 했다.
“사흘 이상 연휴가 아니면 쉴 수가 없고, 도축장이 문을 열면 일해야 한다. 그런데 도축장은 추석, 설날 연휴에 더 바쁘기 마련이니 우리에게는 명절도 없는 셈이다.”(강 교수)
이들은 황 교수의 출근에 맞춰 오전 6시 출근하고 곧 이어 30분 뒤 회의를 시작한다. “7시부터는 각자 연구에 들어가지만 황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2시간 동안 영어 공부를 한다. 3년이 넘은 일이다. 황 교수는 일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고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영어 실력도 상당하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는가.”(이창규 교수)
퇴근 시간은 대개 밤 11시. 몸살기가 생겨 어쩌다 일찍 귀가하면 부인이 “저녁 들고 다시 나가느냐”고 물을 정도다. 자정 무렵에 근무 중인 연구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도 낯익은 풍경이다.
이들은 해외 학회에 참석할 때에도 일절 다른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일에 매달린다.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사태 이후 공항 검색이 심해진 탓에 이제는 불가능해졌지만, 그 전까지 이들은 미국 출장 때마다 컵라면과 110V용 냄비, 쌀을 꾸려 갖고 다녔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학회 전날 밤 또는 학회 당일 아침 일찍 ‘싸구려 호텔’에 도착해 컵라면에 공깃밥을 먹고 학회장으로 향했다. 요즘도 ‘인스턴트 쌀밥’을 갖고 다닌다.
‘중간 보스들’은 요즘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일부 시민단체나 윤리학자들이 제기하는 비난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18세기에는 착상 이후의 배아를 ‘생명’으로 봤지만 지금은 그 기준이 수정란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 처음 성공했을 때 종교계에서는 경악했지만 지금은 어떤가. 중요한 것은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다.”(강 교수)
이병천 교수는 “요즘 하루 3, 4건의 격려 전화를 받는 것이 큰 힘이 된다”며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난치병에 걸린 중학생 아들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했는데 최근에는 황 교수 팀의 연구가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곁들인다고 전해 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이들의 가장 큰 부담이다. 이병천 교수는 “박사 과정 때 아내에게 ‘교수만 되면 해외학회 때 꼭 한번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면서 ‘이들의 부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했다. “안사람들끼리 서로 친하다 보니 남편들 모두가 일에 묻혀 산다는 것도 알고, 딱히 비교할 다른 대상도 없기 때문인지 큰 불만은 없는 듯하다. 패밀리의 아내들은 가장(家長) 역할을 겸해야 하므로 강하게 살아간다.”황 교수는 이 부인들을 위해 연말에 식사 자리를 마련해 “남편을 1년만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 부인들은 ‘1년 약속’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남편들의 연구가 과학 발전과 질병 퇴치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에 짐짓 모른 체하고 속아 넘어간다.
▼이병천
△서울대 수의학과 졸, 동 대학원 박사 △미국 미네소타대 박사 후 연구원 △일본 도쿄대 외국인 연구원 △현 서울대 수의학과 부교수
▼강성근
△서울대 수의학과 졸, 동 대학원 석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의학 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후 연구원 △현 서울대 수의과학대 동물병원 수의학과 조교수
▼이창규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졸, 동 대학원 석사 △미국 텍사스 A&M대 박사, 동 대학 박사 후 연구원 △현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조교수
그렇듯 연구에만 몰두한 사람들이
언론의 말장난에
하루 아침에 사기꾼으로 몰렸다.
황교수는 총괄책임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은 총괄책임자가 아니었다.
언론에서 뛰운다고
평생 힘없어 소외되었던 과학자가
하루 아침에 권력의 상위권에 들어갈 수 없다.
그후 오히려 질시의 대상이고
타도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에게 어떤 권력변동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분석하면
더욱 더 그런 것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를 뛰운 것은
영웅심을 부추켜
계략에 의해 황교수의 기량을 빼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황교수는 수의학자다.
다만 복제소나 복제개 복제돼지등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난자와 체세포 핵을 다루는 기술이
세계 독보적인 수준에 이르렀을 뿐이다.
사람의 난자도
여타 고등 동물의 난자와 다르기는 해도
큰 맥락의 메카니즘에서는
같기 때문에 그 기술을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줄기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보고
그를 총괄책임 자로 지정한 것 뿐이다.
그러나 황교수의 식자영역은
체세포를 분리하고
핵이 제거된 난자핵에 치환삽입하여
복제배아를 만들어 배반포까지 배양하는 것이었다.
수정난 줄기 개발을 해 본 경험이 있다는
미즈메디 측은 배반포에서 내괴를 꺼내
배양과 체세포복제배아 줄기 세포주 수립과
여타 나머지 과정을 맡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황교수는 경험이 전무한 배반포 이후
줄기 수립에 관련한
명목상의 지위는 있으나
사실상의 지휘권이 없는 것이다.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 것은 명목만 총괄책임자이지
공동연구에 있어
파트별 책임 연구를 했다는 것임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왜 황교수가 맡아서 하지 않고
통제나 지휘가 불가능한 부분을 책임지고 파면당해야 하는가 ?
이 것은 서울대 징계위나 서울대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판이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결국 황교수를 죽인 것이 된다.
소송을 해도 명예는 회복 될 수 있으나
징계정지 가처분 신청후
연구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법률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다.
2. 황교수의 책임부분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
한 마디로
황교수는 책임부분을 초과 달성했다.
첫째 제공한 난자중 쓸모있는 것을 선별해
연구에 써서 101개의 배반포를 수립하여
미즈메디 연구원에게 배양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4년 논문에서
NT1b는 분명한 줄기세포였고
이는 연구의 성과의 대표적 증거로 삼을 만 하다.
둘째 난자 수급 부분에서도
세계 유래가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황교수는 난자를 공급해 주는 일을
일부 직접하였고
그의 리더쉽 덕분에 연구원들도
적극적으로 난자를 제공하면
연구혼을 불태게 했다.
난자를 가지고 하는 연구에서
정부가 승인했다.
난자를 써도 된다는 연구였다.
약간의 분별이 필요를 요하지만
그 부분은 미즈메디와
한양대 윤리위가 맡아서 하는 부분이었다.
다소 방법적인 부분에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왜곡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난자란 것을 사용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 다 따지면서
어떻게 연구를 할 수 있는가 ?
그리고 언론에서 제기한 것은
황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한양대 윤리위와 적출 시술자인
미즈메디의 문제였다.
황교수는 이들이 통과시킨 난자를 취득하여
연구실에 공급이 되도록 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오히려 연구자의 입장에서
난자의 확보가 연구성공의 중요변수였기 때문에
황교수를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여기서 황교수에게
부처님과 같은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연구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연구를 방해 하는 목적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황교수가 스님인가 ? 아니다.
연구소에서 평생 연구에만 몰두한 사람이다.
어찌 윤리만을 전공한
스님들과 같을 수 있겠는가 ?
카톨릭이 연구윤리를 제기하였지만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페이지 짜리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90만명 이상을 살육하고 있다.
페이당 9명 꼴이다.
2만 페이지 성경책이라 치고 보아도
페이지당 4.5명을 살육한 것이 된다.
그 것도 정당한 죽임이냐면
자신의 믿지 않는다고
그 모두 공갈협박용으로
저주하여 죽인 숫자요
자신이 죽인 것이라고 공언한 인간도살내용이 다다.
그런 것을 경전으로 삼는 자들은
어떤 윤리관도 제시할 수 없다.
성경을 불태우고 나서야
우리가 옛날에 비록 그랬지만
지금은 바르게 살고 있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면 혹 모르겠다.
그렇게 사전 작업을 했다면
윤리기준을 제시하는 데 하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갖 흉악범죄를 의로 묘사하게나
당연한 살인과 범죄로 묘사한 내용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읽게 하고 그 속에서 삶의 영감을 얻게 하면서
무슨 윤리를 논할 자격이 있겠는가 ?
그리고 윤리라 함은
인간사회의 전통상
삶과 관계상의 부딛힘 속에서 자연스레 수립된
계약의 습관이라 할 수 있는 의식성 윤리이다.
인간이 서로 비추어 보고
인간다운 삶의 조명에서 나오는 것이 윤리인진데
윤리가 정신분열병적인 계시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 것을 윤리로 내세우려면
적어도 모든 사회적 비판을 수용하여
걸러낸 후 윤리로 내세울 수 있으나
비판의 필요조차 없는
흉악범죄로 구성된 내용을
인간윤리적 기준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카톨릭이든 기독교든
대사회적인 윤리적 지평을 열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혼란만 가중하는 엉터리 윤리로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다.
이들은 완고하고
협착증 같은 인위적 정신병을 가지고 있어
머리 쪽수로 말하려 하지만
그 집단 자체가
근본적으로 윤리문제의 범주에서 벗어난 집단이다.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세째 황교수는 줄기세포 수립에 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고
엄청난 성과를 달성했다.
일부는 황교수 죽이기 음모자들의 음모라 분석되고 있는
줄기세포 오염사고로 줄기의 행방이 묘연하기는 해도
서조위 조사결과보고서를 보면
2,3번 줄기세포는 완벽하게 테라토마 실험까지 끝내고 있었다.
연구의 기록의 신빙성은 100%다.
왜냐면 실패한 내용과 날짜까지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기록들도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진실한 기록이기 때문에
줄기 세포의 존재여부와 관계없이
복제배아 줄기 세포 수립에 관한
무형의 원천기술이 있다고 봐야 되며
일번 줄기세포는 원천기술존재의
입증 가능한 증거로 삼기에 충분하다.
오염 사고후에
이미 논문의 심사종료일을
얼마남겨 두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약간의 당황하고
혼란스런 상황을 엿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의 콜로니 단계까지 간 것 하며
2,3번 줄기의 테라토마 실험을 마친 것 하며
연구기록의 100% 신뢰성 있음을 인용하면
원천 기술이 있다고 판정하는 것은
아주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기술이란 무형적 존재이지
유형적 존재는 아니다.
실험기록의 진실성이 확인된 만큼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도
줄기세포의 원천기술이 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나
구태여 그 증거를 요구한다면
NT1b라고 하는 줄기세포를 증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이 활용가능하느냐 못하느냐는
나중에 연구로 밝힐 수 있는 부분이다.
그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 단계까지만이라도
조건부 원천기술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 조사위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처녀생식 주장을 해
매도하는 추태를 보이며
황교수 연구팀에게
원천기술을 입증할 줄기세포가 없다고
국민의 눈과 귀를 우롱하듯 선포했다.
서울대 조사위가 엉터리로 말을 꾸며내어
매도한 내용을 보면
배양을 맡았던 초보연구원인
미숙련공 이유진이 미성숙 난자를 가지고
핵치환 연습을 하다가
불완전 탈핵상태로 있던 난자에서 빠져 나왔던 극체가
재 유입되어 배아를 형성하여
우연잖게 줄기세포가
수립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
줄기세포라는 것이 쑥닥쑥닥하면
만들어지는 것인가 ?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전기 자극을 준 사람도 있어야 되고
이들 주장대로라면
처녀생식 줄기 수립
메카니즘을 실제 연구로
통달한 사람도 있어야 한다.
처녀생식에 있어
화학 요법처리를 해야 함에도
이런 능력은 이유진이나
유영준은 불가능했던 일이다.
배양에 있어 마의 장벽이라
일컫는 6, 8세포기를 넘기는 문제도
처녀생식의 경우 수정난 배아나
체세포 배아에서 있어야 할
각인 유전자의 존재 여부에 관련된 배아 형성 매카니즘상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문제도
태산같은 난관이 있는데
사람 난자 처녀생식에 관련해
전문가들도 이룩한 적이 없는 처녀 생식을 들어
처녀생식이 아니란
싸이언스와 시벨리호세 교수등 세계 굴지의 과학자들의
판정을 뒤집어 엎고
초보연구원의 거짓 진술을 믿고
얼토당토않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또한 황교수에게는 실제로
처녀생식 줄기를 수립할 수 있는
가치도 없었고 자격도 없었다.
이를 목적으로 연구를 했다면 모르지만
처녀생식 줄기는 보편적 의술에 해당하지 않고
황교수는 애초에 체세포복제줄기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시작한 연구팀을 이끌었다.
복제배아줄기를 개발하기에도
너무나 아까운 시간을
처녀생식으로 농간을 피웠다는 말은 말이 안된다.
처녀생식의 경우
각인유전자 결함으로
이를 보완할 대체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전혀 불가능하다.
황교수팀은 처녀생식 줄기확립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 것은 황교수의 줄기세포가
체세포복제배아 줄기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세포질이 미량이라
불완전한 극체가 정자의 역할을 대신하여
난자의 핵제거 시
불완전 탈핵으로 상당량이 소실된 잔핵질과 만나
배아를 형성했다고 보는 견해는
조사위가 엉성하게 말장난으로
음모공작의 일환으로
자신들의 의도적 왜곡을 대충 두들겨 맞추려 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하고서 조사를 했다고 할 수 있는가 ?
정부에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면
서울대 조사위와 징계위를 조사하여
징계를 재검토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순리가 될 것이다.
힘 없는 과학자라고
이와 같이 학교권력을 쥔 주류들의 횡포를 방관한다면
그 것을 막아야 할 관련자들은 직무유기를 한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이를 방관한다면 우리나라 학문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대 조사위가 말도 안되는 말을 한 것이다.
이로서 자격도 없는 자들이
조사위를 구성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얼마나 국가 망신을
민족망신을 한 것인가 ?
서울대 조사위의
처녀생식은 원천적으로 부정된다.
극체는 성숙 난자와 유전자가 같다고는 하지만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나
핵에서 분리되어
난구 밖으로 척탈(斥脫)되는
메카니즘상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배아 형성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
일종의 쓰레기이다.
그리고 또
그런 극체가 난모와 재결합을 해도
정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배아형성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그 당시 난핵은
불완전 탈핵의 잔핵질이다.
이 또한 엄청나게 손상을 입은
난모세포란 뜻이다.
이 두 볼완전이 결합하여
정상적인 처녀생식에서도
각인유전자의 결함 때문에
배아체 형성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재각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엄청난 손상을 입은 2n의 난모세포가
불완전 1차 극체와 다시 만나
배아를 형성하고
테라토마의 단계 실험까지 마칠 수 있었다는 얘기는
바로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조사를 한답시고 조사결과를 날조한 것이 된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바로 날조 조작이라고 한다.
황교수의 논문의 문제라고 지적된 것은
사실상 조작이라 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황교수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논문 기술 기법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얼마든지 용인 가능한 것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교수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서울대는 원천기술이 없다고 중상모략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처녀생식 주장을 펼친 것이다.
체세포복제배아줄기 수립은
사실상 처녀생식배아 줄기 수립과
원리적으로 동일한 의미선상에 있다.
정상적인 세포질을 전제할 때
1차 극체가 환원되면 체세포와 동일한 상태의
교차결합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우리같은 생짜들이 보아도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기는 해도
이론적으로 배아 형성 메카니즘상
발생하기 불가능인 것이다.
서울대 조사위의
유전자 지문 검사의 경우
미국 사이언스가 MIT와 공동으로
처녀생식을 가리기 위해 15개 마커의 시료를
검사한 것이나
서울대 조사위에서 48개 검사를 해서
8개의 동형접합을 가려낸 것은
처녀생식 줄기냐 아니냐를 가리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검사방법이다.
더욱이 연구를 성공시켰던 경험이 없는 사람인 경우에는
다양한 개연성 때문에
원천적으로 이론적인 설득력이 없다.
검사기술이나
장비면에서 더욱 월등했을 미국에서
48개 시료 검사를 할 줄 몰라
검사하지 않았겠는가 ?
그 것은 처녀생식을 가릴 수 있는 근거를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더욱이 숙련공인 박을순 연구원이
모니터를 보면서
탈핵과 극체의 제거를
염색하여 확인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것을 조사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조금만 신경을 써도 알아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로 핵치환을 맡을 만한 자격도 없었던
이유진의 말을 증거삼아
처녀생식 판정을 했다는 것은
이들 서조위와 징계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황교수 죽이기 음모자들의
선봉대 역할을 했다는 증거로 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우수 학교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에 관련된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조사하여
처벌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4. 논문 조작에 대하여
사실상 위에서 언급한대로
조작이란 의미가 학문적 범죄행위에 들려면
황교수에게 원천기술이 없어야 한다.
원천기술이 있다면
조작이란 말은 타당하지 않으며
다만 서술의 방법이 다양했고
증거를 보이는 방법이
황교수가 줄기를 성공시키기는 해도
아직 많은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잇어
연구 초기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첫째 NT1b는 원천기술의 좋은 증거이다.
둘째 미즈메디는 아직 밝혀 봐야 알겠지만
1500개에 이르는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를 수립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수정란 배반포나 체세포복제 배반포나
세로 내괴를 추출하여 배양하여 줄기세포주를 수립하는 과정은
같은 방법으로 가능하다.
물론 수정란이 가지고 있는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해 줄 때 건강한 줄기세포가 자랄 것이다.
여기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줄기의 성분검사나 세포구성 구조를 알아내면
별로 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렵다고 해도
줄기세포를 수립한 경험이 매우 많으므로
황교수가 수립했다는 줄기들은
수립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수정난 줄기세포와
체세포복제배아 줄기가
수정난을 기준으로 볼 때
배아형성메카니즘에 따라 진행하면서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어
배양단계별로 차이가 있는 것을
극복해 줄만한 기술이 없었다면
줄기수립이 불가능하겠지만
분명 2,3번 줄기세포가 수립되었었고
테라토마 형성 실험을 완료했었기 때문에
줄기세포가 없었다는 주장은
그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요한다.
그런 노력은
황교수에게 줄기를 수립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주고
수립할 수 있고
어디에서부터 착오가 일어났는지
체크하여 그에 상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황교수가 연구재연이 이루어져
줄기세포 원천기술의 존재가 입증되면
서울대 조사위의 본분은 다한 것이다.
그러나 서조위는 음모자처럼 강박에 쌓여서
황교수의 연구를 원천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악날한 행위인가 ?
이들이 학자라면 국록을 강도질 하는 자들일 것이요
이들이 도적들이라면
바로 퇴출시켜야 할 자들이다.
황교수는 분명 줄기를 보았었고
연구기록에도 줄기 수립기록이
신뢰성 있게 나와 있다는 점은
줄기세포가 없다는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
줄기 세포는 일번 줄기수립으로도 존재하는 것이 되지만
그 나머지 수립된 줄기는 도난이나 바꿔치기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정황적 증거들을
취합인용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 조사위가 그런 도난 사건의 중심에 있다면
이들이 그런 조사를 회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오히려 황교수를 죽이기 위한
총체적 공작을 펼칠 것이다.
황교수는 여기에 대응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이 죽이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국민들만이
이런 횡포를 막을 수 있고
미래에 보장된 국부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럼에도 무지와 홍보부족으로
많은 국민들이
팔짱만 끼고 유원지나 찾고 있으니
어찌 통단할 일이 아닌가 ?
무엇보다도 이 사건에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매우 많은 국민이 결집하여 권력을 형성행사하여
무법지대가 된
황교수 주변의 관계자들을 압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매국노에 의해
전체 국민의
국가 재산권은 유린되는 것이며
국가에 대한
국민의 주권도 유린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줄기세포 자체의 생물학적 윤리성 판단
체세포를 복제하여
배아를 수립하고
이에서 줄기세포를 빼내는 일이
생명살상이라 표현될 수 있는가 살펴보자.
인간은 사회적 삶과
개인적 체성의 삶을 결과와 목적과 수단으로 하고 있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가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그 노동의 결과를 누린다는 것은
인간이 그 노동의 목적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것은 논리적으로 순환하고 있다.
목적과 수단이 교차하면서
인간의 존재가 가치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첫째 체세포는
이름을 붙인다면
독립된 인격체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결론은 아니다.
둘째 난자는 독립된 인격체인가 ?
이 또한 아니다이다.
셋째
체세포나 연구용으로 제공된 난자는
어떤 난자이며 그 난자들은
누구의 몸에 해당하는가 ?
앞서 말했듯이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면
그 것을 가졌단 제공자의 신체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 난자와 체세포의
운명에 관한 의사 결정권과
그 사용에 대한 판단권은
누구에게 있다 할 수 있는가 ?
결론은 제공자 자신의 신체 일부임으로
그 제공자의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조건만 만족할 수 있다면
제공자에게 의사결정권과 사용판단권이 있다.
제공자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면
그 스스로 둘이 결합하여
배아를 형성할 신체적 메카니즘 상에 있지 않고
단순한 체세포에 불과하고
차후 버려지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사용권과 그 것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의사 결정권은 제공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조금도 생명으로서
더 연장될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것은 사용가능한 신체요소이며
손을 써 먹을 것을 구하듯
그 난자나 체세포를 써
사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간 자유권 속에 이미 구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 그 것은 그 운명을
인간 자체의 수단적 측면에서 볼 때
숭고한 윤리정신에 기반한
타생명체나 자신이나 친척등에게
공여 가능한 체세포로 정의할 수 있다.
다른 신체부위를
본인의 동의 하에
또 그 판단불능의 식물인간 상태에서는
그 가장 가까운 인척의 동의 하에
의료용으로 적출하여
사용하고 있듯이
적출하여 사용할 수 있다.
난자와 체세포를 써
배아를 형성하는 것을
확대 해석하면
인위적 수정으로도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위적으로 하고 있는
정상적인 수정법이 아니다.
그 것은
체세포의 배양술에 불과한 것인데
초기화를 위해 배아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절급한 치료를 위해
본인들의 동의하에
인위적인 결합에 의해
줄기를 추출하는 것이다.
배아란 과정에 이른다고 해도
그 것이 정상적인 인격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적절한 임신에 대하여는
현재 유산을 허가하고 있다.
그리고 수정란을 얻기 위해
난자 적출과 정자 적출을 법에서 용인하고 있다.
이런 것이라면
인간 본연의 생명 연장권은
그 것을 희구하는 사람들 끼리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써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 연장을 실현할 권리는 보장된다 하겠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체세포를
난피에서 배양하여
자신의 치료를 쓴다는 것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고
이를 위한 난자 제공자의 의사를 차단할
권리는 국가에도 없고
종교단체에도 없다.
그 것은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 하는 것이다.
난치병 치료라고 하는 것은
생명윤리에 부합하는 제일 우선조건이다.
불교에서는 헌신을 중요수행으로 보나
이 것은 헌신의 개념도 아니요
지극히 생명이
천부적으로 얻고 있는
권리개념의 순리성에 속한다.
우리가 노동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생명의 수단적 측면성이다.
신체 생명 그 자체가 수단이란 뜻이다.
난자와 체세포를 써서
생명을 치료하는 것은
목적적 생명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서의 생명가치가 발현되는 것이 된다.
인간생명을 목적으로만 보면
인간 노동은 생명착취이다.
인간생명에는 수단성과 목적성이
동시에 가치지워지고 있기 때문에
난자와 체세포를 수단성으로 파악하면
생명 윤리에 전혀 반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안전인수는
정신병적 계시란 것의 허구성을
입증할 뿐 생명윤리의 근간이 되지 못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것마져
부정하는 뜻은 아니다.
그 저변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판단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렇다고 그 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요한다면 그 것은 생명의 치료를 거부하거나
난치병 환자를 살해하는 행위가 된다는 점에서
범죄가 된다.
난자가 변기나 생리대에 뭍여
쓰레기 통에 버려지는 것보다는
난치 병환자를 치료하는
새 생명으로 다시 의미지워진다면
난자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단 이런 관점은 임신을 위하여
배아가 된 수정란과는 달리한다.
5. 결론
황교수는 자신의 본분을 다했으면서도
서울대 조사위와 징계위원들의
악의에 찬 왜곡된 처리로 부당한 징계를 당했다.
왜 그런 악의에 한 왜곡으로 황교수를 징계했는가
그 동기야 살펴볼 필요는 있겠지만
그들의 황교수 파면조치는
사안을 바로 판단한데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국민들의
헤아리기 어려운
미래 국부의 특허권을 수호하고
이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과학자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종교를 논하지 않고
사상을 논하지 않으며
하나같이 결집하여
매국노들의 파렴치한 음모로부터
주권과 국부를 방어해야 할 것이다.
스님들은 불자이기 때문에
보호해야 하기도 하지만
황교수의 문제는
국민적 사안으로서
불자란 좋은 명분이 있기 때문에
불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불자의 이익을 수호해 준다는 차원에서
국부를 지키는 호국의 차원에서
큰 스님 작은 스님을 논하지 말고
여론을 이끌
집회의 방편을 써
국부를 수호하는 일을 맡아
호국의 보살정신을 구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첫댓글그렇습니다. 스님들께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신다면 벌써 한 쾌에 승부가 났을 일입니다. 너무도 미온적인 스님들께 참 실망이 큽니다. 그러면서도 매사에 재가자들이 포교에 관심없다고 질타만 일삼고 계시지나 않은지 묻고 싶네요. 우리 재가자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첫댓글 그렇습니다. 스님들께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신다면 벌써 한 쾌에 승부가 났을 일입니다. 너무도 미온적인 스님들께 참 실망이 큽니다. 그러면서도 매사에 재가자들이 포교에 관심없다고 질타만 일삼고 계시지나 않은지 묻고 싶네요. 우리 재가자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수차례 시간나는대로 개인적으로 참석했습니다.. 다만 저의 뇌리에는 <지율스님의 사례>가 너무 가슴 아프게 박혀 있습니다.. -&- 암튼 애쓰시는 모든 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네요. 가끔 한국 불교는 비구니 스님들에게 마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 스님들은, 지키고 싸워야 할 곳이 많거든요. 수입많은 사찰 지키거나 뺏어야 하고, 권력 지키거나 찾이 해야 되고, 말입니다.
동감입니다. 저도 난치병환자중 한사람입니다. 우리나라는 영원히 앞서가지 못하고 남의나라 꽁무니만 따라갈려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