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언영색〔巧言令色〕🦜
: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얼굴빛
-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공교로운 말과 좋은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巧言令色 鮮矣仁)」
쉽게 말해서, 말을 그럴듯하게 잘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脾胃)를 잘 맞추는 사람 쳐놓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眞實)된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인(仁)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공자처럼 이 인에 대해 많은 말을 한 사람이 없지만, 공자의 설명도 때에 따라 각각 다르다.
그러나 여기에 말한 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질다는 뜻으로 알면 될 것 같다. 어질다는 말은 거짓이 없고 참되며, 남을 해칠 생각이 없는 고운 마음씨 정도로 풀이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과 교묘(巧妙)하게 한다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差異)가 있다.
교묘하다는 것은 꾸며서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뜻이 있으므로, 자연 그의 말과 속마음이 일치(一致)될 리 없다.
말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진실되지 않음을 말한다.
좋은 얼굴과 좋게 보이는 얼굴과는 비슷하면서도 거리가 멀다.
좋게 보이는 얼굴은 곧 좋게 보이려는 생각에서 오는 얼굴로, 겉에 나타난 표정(表情)이 자연(自然) 그대로일 수는 없다.
인격(人格)과 수양(修養)과 마음씨에서 오는 얼굴이 아닌, 억지로 꾸민 얼굴이 좋은 얼굴일 수는 없다. 결국 「교언(巧言)」과 「영색(令色)」은 꾸민 말과 꾸민 얼굴을 말한 것이 된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참되고 어질 수는 없다. 적다고 한 말은 차마 박절(迫切)하게 없다고 할 수가 없어서 한 말일 것이다.
우리 다 같이 한번 반성(反省)해 보자.
우리들이 매일같이 하고 듣고 하는 말이 「교언(巧言)」이 아닌 것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우리들이 매일 남을 대할 때 서로 짓는 얼굴이 「영색(令色)」 아닌 것이 있을지?
그리고 우리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이 어느 정도로 참되고 어진지를 돌이켜 보는 것이 어떨까?
《논어》 자로편에는 이를 반대편에서 한 말이 있다. 역시 공자의 말이다.
「강과 의와 목과 눌은 인에 가깝다(剛毅木訥近仁)」
「강(剛)」은 강직, 「의(毅)」는 과감, 「목(木)」은 순박, 「눌(訥)」은 어둔을 말한다. 강직(剛直)하고 과감(果敢)하고 순박(淳朴)하고 어둔(語鈍)한 사람은 자기 본심(本心) 그대로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꾸미거나 다듬거나 하는 것이 비위(脾胃)에 맞지 않는 안팎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남을 속이거나 하는 일은 없다. 있어도 그것은 자기 본심에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인(仁)」 일 수는 없지만, 역시 「인(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ㅡ『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 고사성어』 中에서...
✳️<말 많은 사람이 불편합니다>
https://youtu.be/M27gQv0k4yc?si=TWWPaOx8MOM6moCI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 또 다른 사로잡힘 아닌가요?>
https://youtu.be/qATg3r4yE7Y?si=J9OVqhgX6IoxCWZt
✴️<저의 말투로 상대가 기분 나빠지거나 상처를 받습니다>
https://youtu.be/96kxW-0wP68?si=qt491S4BEJa5SA0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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