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모나리자의 미소 / 김승희
타버린 숯에서만 흘러나오는 절창이 있다
뼈를 대패로 깎으며 살아온 세월이 있다
재학아, 문재학아, 계엄군이 들어온다는 날
아들을 찾으러 도청에 나갔어요
도청에서 나를 만난 재학이가 말해요
엄마, 창근이가 죽었는데 나만 집에 가면 되겠냐고 물어요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
친구가 죽었는데 내 아들만 데리고 가면 되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도청에서 나 혼자 나왔어요
재학이는 그날 도청에서 죽었어요
(내가, 내가……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도…… 어머니일까요?)
흰민들레밭을 머리에 인 오월 어머니는
피렌체의 모나리자보다 더 아름답다
거느릴 것 다 거느리고 누리는 평화가 아니라
살아서 육탈한
그 가슴에 신에 대한 질문을 가졌기 때문에
흰민들레 같은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는
인간의 법정에서
인간의 얼굴들을 하얗게 만들었다
뼈를 대패로 깎으며 살아온 시간
움직이지 않는 절대 그날, 오늘도 그날,
그녀의 기억은 원근법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신의 법정에서 신은 그녀에게 무엇을 되돌려줄 것인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2021년 4월, 창비)
[출처] [김승희] 오월 모나리자의 미소|작성자 이랑 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