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까지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선거를 치르면 여당에 유리하다. 그런데 집권 2년도 되기 전인 이번 총선 결과 는 이례적이다. 안된 말이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파면에 가깝다. 호남 정계에 밝은 지인이 이낙연 같은 거물이 어떻게 10%대 지지율에 묶여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 명료하게 답했다. “윤석열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윤석열 심판’이 가장 큰 선택요인이 됐다. 그 안에서도 투쟁성이 두드러진 후보들이 거의 살아남았고, 지독한 막말과 편법대출로 지탄받았던 김준혁 양문석까지 고지를 넘었다. 윤석열 심판 공약만으로 3당을 꿰찬 조국혁신당의 기막힌 성공은 말할 것도 없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이준석도 윤 대통령과의 당돌한 맞짱으로 평가받은 셈이고, 기억엔 없지만 안철수가 “대통령에게 쓴소리했다”고 강조한 것도 난적 이광재를 제친 요인이 됐다. 대통령에게 욕하고 대든 경력이 여야불문 가장 유효한 전략이었다.
양당의 의석분포가 21대 국회와 비슷하니 윤 대통령의 통치여건이 별반 달라진 것 없다는 애처로운 자위론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결정적 차이는 공천권이나 주요 보직 임면권 등에서 비롯되는 장악력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정치적 성장동력으로 삼는 현상이 여권 내부에서 일상화할 것이다. 함께 미운털이 박혀 급해진 검찰도 더는 호락호락하게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는 복수의 칼을 가는 거대 야당진영에, 안으론 영(令)이 서지 않는 여권진영으로 둘러쳐진 포위망에 갇힌 형국이다.
물론 출구가 전혀 없지는 않다. 대신 국민의 마음을 돌려세우면 된다. 민심은 늘 출렁이는 법이므로. 지지율을 크게 높이면 정치적 권위도 회복할 수 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여기 전제는 철저한 반성과 자기쇄신이다. 그에 대한 반감은 정책보다 독선, 오만, 불통, 불공정과 같은 정의적 요인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런 모습을 보여야 내각을 전면개편하거나 나아가 거국내각을 꾸려도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관건은 부인을 포함한 주변 문제에서부터 공정을 세우고 국민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못 되면 식물대통령이 될 것”임을 일찌감치 인식하고도 내내 표 떨어지는 언행만 거듭했고, 보수언론에서조차 안타까운 고언을 수없이 쏟아냈는데도 오불관언이었던 그다. 비로소 그 쓰디쓴 후과를 받아 든 지금, 윤 대통령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이준희 한국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