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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신 12:29-13:5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30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12:29-13:5 / [우상숭배를 본받지 말아라] 이제 여러분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의 원주민들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 주셔서 여러분이 그들을 멸절시키고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게 하실 것입니다. 30) 여러분은 여러분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풍속을 따르지 않도록 주의하여 어느 누구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땅의 족속들이 본래 어떻게 그들의 신을 섬겼는지 물어 보고서 그들의 풍습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31)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그런 식으로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더럽고 흉악한 짓들을 그들의 신들에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식들까지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바쳤습니다. 32)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한 모든 계명을 그대로 지켜 행하고 어느 것 하나도 더 보태거나 빼지 마십시오. 13:1) [우상숭배자들을 청산하여라] 여러분 가운데에서는 예언을 받았다거나 꿈을 꾸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 여러분 앞에서 무슨 이적이나 신기한 일들을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2) 그들이 여러분에게 예언한 그 이적이나 신기한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그들은 여러분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섬기자고 유혹할 것입니다. 3)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그런 예언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이 과연 마음을 다 바치고 정성을 다 쏟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따라가며 그분만을 경외하십시오.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며 그분의 음성만 듣고 그분만 따르며 의지하십시오. 5) 여러분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여러분을 유혹하고 주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길에서 떠나게 하면 그가 어떤 예언자나 꿈꾸는 자라도 철저하게 죽이십시오. 그런 죄악은 여러분 가운데에서 깨끗하게 제거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경험하게 될 많은 것 중에서 우상들에 대해 특별히 당부하고 계십니다. 당시 그곳의 우상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그 지역의 우상들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면 우상에 쉽게 물들어버릴 수도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경계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상을 탐구하지 말라(29-31) “탐구하다”라는 말에는 따르다는 의미와 예배하다, 찾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각 지역에 그곳을 다스리는 신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역을 다스리는 신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큰 해를 입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상과 우상의 문화에 물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와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상하게 하거나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일들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을 취할 권한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어떤 우상의 문화와 가르침은 겉모습이라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고 가감하지 말라(32-13:5)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분의 말씀을 전할 뿐 사람들을 현혹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일수록 진짜인 것처럼 보여야 하므로 더 그럴듯해 보이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꿈꾸는 자의 말”이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유혹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포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특별한 기적과 능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능력을 자랑하시며 사람들을 유혹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늘 가까이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것이 능력 있는 성도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적용: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고 도전하고 계십니까?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는 당신의 삶을 성숙하고 능력있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게 될 많은 것들은 그들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과 시선을 빼앗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에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 설 교 >
이단을 경계하라
신 13:-15 / 박봉수 목사
이솝 우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생각이 납니다. 늑대가 손쉽게 양을 잡아먹을 궁리를 합니다. 양으로 위장을 하고 양무리 속으로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양의 탈을 쓰고 양 가죽 옷을 입고 양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양들이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몰래 양들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녁이 돼서 양들이 우리로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갔습니다. 이제 힘들이지 않고 양들을 마음껏 잡아먹을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양치기가 양 한 마디를 잡으려고 우리에 들어왔습니다. 이 늑대를 양으로 알고 끌고 나갑니다. 이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잡았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영적 환경이 이와 같습니다. 이단들이 점점 지능화하여 한국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이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신천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84년 이만희라는 사람이 만든 이단입니다. 최근 급속도로 세가 확장되어서 이미 신도수가 5만을 넘어섰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만희는 자신을 “보혜사”라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신도수가 144,000이 되면 자신과 그 추종자들이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신도들은 빨리 그 수를 채우고, 자기들이 그 수안에 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도에 매달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의 교인들을 전도 대상자로 삼고, 기존 교회를 전도의 장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아예 전도라는 말 대신 “포섭”이라는 말을 쓰고, 교회를 “추수밭”이라 부르고, 전도자인 자기 신자들을 “추수꾼”이라 부릅니다. 기본 전도 전략은 이렇습니다. 우선 기존 교회에 새신자로 위장하여 등록합니다. 그리고 몇 년 열심히 교인처럼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서서히 본색을 드러냅니다. 성경공부를 미끼로 교인들을 하나씩 끌고 갑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도권의 어떤 대형교회는 수백 명이 신천지로 넘어가기도 했고, 지방의 한 중소형 교회는 아예 교회 전체가 신천지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에서 신천지 추수꾼들이 정체가 드러나면서 교회가 큰 충격에 빠지고 또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신천지의 훈련 내용 가운데 깜짝 놀랄만한 것이 있습니다. “모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짓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존 교회에 들어가서 은혜 받은 것처럼, 방언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체를 숨기라고 가르칩니다. 교묘하게 거짓말하고 연기하는 것을 훈련시킵니다. 한 마디로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환경은 무척이나 어둡고 혼란스럽습니다. 갖가지 이단들이 일어나 신자들을 미혹하고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다. 진리 가운데 굳게 서서 믿음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는 모세가 출애굽 2세들에게 남기는 유언적인 설교입니다. 특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라고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거짓 선지자나 꿈꾸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용어로 이단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모세는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출애굽 2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 생길 일들을 예견하고 미리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단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단을 만나게 될 것을 예견하고 경계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진 출애굽 시절부터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이단이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이단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단은 무엇인가?
이단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하이레시스”(hairesis)입니다. 이 말의 원 뜻은 “분리”, “분열”, “논쟁”, “부조화”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 동사 “하이레티조”(hairetizo)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선택하다”, “부조화가 일어나다”, “분리하다” 등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이레시스라는 말은 한 공동체 안에서 부조화를 일으키고, 선택을 강요하고, 분열을 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이단이라는 한 자어 표기는 다를 “異”와 끝 “端”을 씁니다. 처음은 같아 보이는데 나중에 가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같이 출발했는데 나중이 달라져서 부조화가 일어나고, 결국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이단의 정체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이 말씀 안에서 이단의 정체와 관련해서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단은 기독교 안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1절에 ”너희 중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단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습니다. 이단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말합니다. 출발은 정통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내용이나 주장하는 교리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왜곡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신천지 이만희, 베뢰아의 김기동, 구원파의 박옥수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성경중심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교회의 체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다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이단은 무엇인가 보여줍니다.
1-2절에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이단자들은 여느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이적과 기사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단은 여느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베뢰아의 김기동은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을 쫓아내면서 많은 병자를 고칩니다. 교인들이 다른 목사들의 말보다 김기동의 말에 더 권위를 두게 됩니다. 또한 구원파의 박옥수나 신천지의 이만희는 성경을 독특하게 가르칩니다. 정통 신학으로는 말할 수 없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꿰맞춰서 교인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줍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불러 모읍니다.
셋째, 이단은 결국 다른 믿음으로 끌고 갑니다.
본문 2절에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이단자들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단의 가장 큰 문제가 이것입니다. 결국은 올바른 믿음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예를 들어 신천지 이만희는 자기가 보혜사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명석이도 자기가 재림 예수라 주장하는 것이고, 통일교의 문선명이도 자기를 신격화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이 하나님이고, 그가 죽은 뒤 그 부인이 하나님 어머니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따르는 사람들을 올바른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나가게 하고 맙니다.
이단은 왜 생기는가?
우리 몸에 암이 생기는 과정을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① 개시단계(initiation)로 체내에 들어온 발암물질이 그대로 또는 대사 활성화되어 세포 내로 들어와 세포내 유전자에 손상을 주는 단계입니다.
② 변이단계(mutation)로 세포내 유전자가 손상을 받은 조직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변이세포가 되는 단계입니다.
③ 촉진단계(promotion)로 변이된 세포가 전암세포(前癌細胞)로 변하는 과정이다. 아직 정상세포로 돌아갈 수 있는 단계입니다.
④ 진행단계(progression)로 전암세포가 암세포로 진행되는 단계이다. 이제 일단 암세포가 되면 정상세포로 회복은 불가능하게 되고 암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일단 외부에서 발암물질이 체내에 들어옵니다. 유전자에 손상을 주어 세포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건강한 사람들은 면역기능을 통해서 손상받은 세포들이 정상세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정상세포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세포들이 암세포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이단이 생기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우선 미혹하는 영들 때문입니다.
딤전 4: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미혹하는 영과 귀신이 있어서 성도들을 계속 흔든다는 것입니다.
이점은 창 3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저 에덴동산의 하와에게 뱀이 찾아왔습니다. 하와를 미혹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미혹하는 영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마치 발암 물질이 체내에 들어와서 몇몇 세포들이 변이세포로 그리고 전암세포로 나아가 암세포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제 다른 세포들에 전이시키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미혹하는 영들이 창조 초기부터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했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말세를 향해 나아가면서 더욱 이 미혹하는 영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다음으로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초대교회 시절에도 이단들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영적 지도 하에 있던 건강한 교회들에는 이단들이 일어나지 못했고, 일어났어도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초대 예루살렘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가 진리 가운데 굳건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균형있게 든든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은 다릅니다. 갈 1: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 교회에 이단이 생겨났고, 많은 교인들이 여기에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같은 영적 지도자가 이끌어주지 못하면서 급속도로 영적 건강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면 미혹하는 영이 들어와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가게 됩니다. 행여라도 이단이 생겼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단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본문은 우리가 이단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이단을 경계하라
본문에서 모세는 거짓 선지자가 일어날 것을 미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저들을 경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한기총을 필두로 한국 교계는 최근 이단 경계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이단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이단은 다음 몇 가지입니다. 무료성경신학원이라고도 하는 신천지, 성경세미나를 벌이는 구원파 박옥수, 하나님의 교회라고도 하는 안상홍 증인회, 통일교 문선명 집단, 기독교 복음 선교회의 정명석, 왕국회관이라고도 하는 여호와의 증인 등입니다.
이런 이단 집단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대해 말한다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면 안됩니다. 그들의 정체가 확인될 때까지는 섣불리 문을 열어주거나 대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은 철저히 훈련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씀 가운데 서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철저하게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강단을 통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교회 내의 성경공부, 말씀 훈련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 외부의 성경공부나 훈련에 참가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주의 종들과 상담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보면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전염될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우선 이단에 빠진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단임을 알려주고 돌아설 것을 권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내쳐야 합니다.
여기서 어설프게 사랑을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암세포가 발생되면 수술해서 단호하게 잘라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세포에 전이되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빠진 영혼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영향을 받게 될 공동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단은 나도 모르게 내 주변 가까이까지 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우리 가족 가운데 그리고 우리 교우들 가운데 이 이단에 빠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이단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우리의 영적 건강을 잘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말씀과 기도로 강건해야 하겠습니다.
분별의 지혜
신 13:1-18 / 양인국 목사
1. 지혜들 가운데 중요한 지혜는 분별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열심을 가진 사람이 분별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할 때 그의 열심은 무모한 일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지도자의 권고나 가족들의 권고 그리고 불량배들의 강압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분별하여 정로(正路)로 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13장을 통하여 분별의 지혜가 어째서 필요한지 그리고 이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2.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영적 지도자들이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며 권고할지라도 그것을 분별하여 따르라고 말씀하셨다(13:1-5).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스라엘 가운데서 “선지자” 혹은 “꿈꾸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시의 말씀을 받은 자들로 인정된 자들이다.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는 수단들 가운데 하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것이다. 물론 초자연적인 일들이란 이적과 기사를 말한다. 그러므로 선지자 또는 예언자들이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하며 메시지를 전할 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들의 메시지를 경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경우에도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지도자로서 가지고 있는 권위나 이적과 기사도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절대적 척도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적을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말씀의 판단에 따라 참과 거짓으로 구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족들이 인정에 호소하며 권고할지라도 그것을 분멸하여 따르라고 말씀하셨다(13:6-11).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하나님은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 중에는 가족이나 찬구 등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그들이 인정(仁情)에 호수하며 권고할지라도 분별하여 따를 것을 말씀하셨다.
여기 “네 어머니의 아들” “자녀” “아내”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 등은 혈육관계 또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과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이방신들을 숭배하도록 미혹한다면 관계를 끊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혈육 또는 친구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힘 있는 사람들이 강요할지라도 그것이 거짓이라면 따라서는 안될 것을 말씀하셨다(13:12-18).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 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여기 “불량배”는 “불량한 자” “악을 행하는 자” 등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힘을 가지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량한 자들이 거짓을 강요할 때 힘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강요를 거절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들의 거짓 강요에 따라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성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강요에 의하여 거짓에 따라 행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도 용납해서도 안될 것을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지도자나 혹은 혈육 그리고 힘 있는 사람들 등 어떤 사람이 권고할지라도 그것을 분별하여 거짓일 때는 따라서는 안될 것을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진리에 기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과 화가 모두 진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은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반면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을 용남하거나 또는 거짓에 따라 행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의 길로 행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분별의 지혜를 얻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시의 말씀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식에 기초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을 때 언제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는 말씀들을 살펴볼 때 다음의 두 가지 사실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하심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즉 하나님은 제한 없는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속성과 인격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뿐이심으로 우상숭배를 하도록 유혹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는 것처럼 말하거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하심과 사랑을 의심하게 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알수록 분별의 지혜도 더할 것이다.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도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자이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면 모든 사람은 연민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지 사람에 대하여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또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의 권고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미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바로 죄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여기 죄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하나다. 왜냐하면 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계시의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이 어떤 곳인지 말해 준다. 계시의 말씀이 세상에 대하여 무엇보다 먼저 말해 주는 것은 세상은 낙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에 살도록 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낙원에서 추방하셨다. 그때부터 인간은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낙원이 아닌, 땀을 흘려 수고해야 먹을 수 있고 여름과 겨울, 추위와 더위, 밤과 낮이 있는 고난의 장이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이와 같은 고난을 허용하신 것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깨닫게 해 주심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 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은 고난의 장인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있을 때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낙원을 약속하거나 또는 현재의 사회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할 때 우리는 이런 것들이 모두 “참”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것에 따라서 세상은 낙원이 아니라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낙원으로부터 추방하여 세상에 살도록 하신 것은 고난을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되찾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라는 지식을 가지고 분별할 때 거짓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10장1-3절의 말씀이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으나 분별의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반(反)하는 삶을 살았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불행은 당시 이스라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에 있었고, 오늘의 우리 시대에도 반복이 되고 있다.
특별히 오늘의 사회에 거짓이 난무(亂舞)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분열과 갈등으로 혼란한 것도 분별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별의 지혜가 없다면 이와 같은 불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분별의 지혜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계시의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 세상에 대한 지식을 통해 분별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에게 분별의 지혜를 주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정에서 직면하는 모든 일을 분별함으로 오직 주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거짓 예언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신명기 13:1-5
지난 5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수는 약 5천 2백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점을 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역술인들과 신내림을 받고 굿을 하는 무당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몇 명이나 될까요? 지난 2017년 통계를 보니 백 만명이 훌쩍 넘습니다. 한국의 그렇게 교회가 많다고 하지요? 그러나 개신교에 종사하는 목회자의 총 숫자는 20만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역술인과 무당이 백만명이 넘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숫자 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집에서 굿을 하고, 점을 보러 다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해가 거듭할수록 돈을 주고 굿을 하고,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를 보니 먹고 살기 어려워질 때, 즉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같이 코로나로 인해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 자녀 교육에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노후가 염려인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것이죠. 찾아가는 사람들의 소득을 보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구별 할 것 없이 점집을 찾아 갔습니다. 이처럼 무속인들과 역술인에 대한 수요가 해마다 늘어나자, 아예 역술인을 키워내는 학원들까지 등장하여 성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몇 백만원에서 천만원 단위로 돈을 내면 신내림을 주기도 하고, 신내림 굿을 하는 강의를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지난 2012년도에는 아예 무속인 역술인 자격시험까지 생겨났습니다. 한국에는 교회가 많다고 기도의 손을 놓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도 한국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악들이 전국에서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한국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길에 빠지는 것일까요? 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주고 굿판을 벌리고, 값비싼 돈을 주고 돼지 피로 쓴 부적을 사고, 점집에 찾아가는 것일까요? 지금도 이 세상에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들을 속이고 마음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이러한 더럽고 악한 거짓 영들의 역사에 속지 말 것을 경계 했습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신 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여기 보니 선지자가 등장 합니다. 이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 입니다. 그는 ‘꿈을 꾸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꿈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행위를 말합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이와 같이 꿈을 꾸는 선지자가 등장하여, 사람들 앞에서 이적과 기사를 보여 줍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불가능한 놀랍고 신기한 일을 행한 것이죠. 우리는 여기서 악하고 더러운 영들에게도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더러운 영들이 가진 능력과 힘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작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볼 때는 신기하고 놀라운 이적과 기사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이 기적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2절 입니다. “(신 13: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이들은 여호와가 아니라 다른 신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자고 제안 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고,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자녀들도 더 잘 되고, 결혼도 좋은 배우자 만나고, 취직도 승진도 남들 보다 빨리 할 수 있다는 식의 거짓 유혹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을 달콤한 거짓말로 유혹하는 것이 사단과 그의 졸개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 입니다.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에 빠집니까? 분명 어떨 때 보면 정신 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는 정신이 멀쩡하고 말을 해보면 상식이 분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귀신의 꾀임에 넘어갈까요? 사단이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니까 때문이죠. 2절 후반절 보니까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이 말한 바대로 이뤄진다 할지라도’라는 뜻 입니다. 이는 사단 역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바로 앞에서 이적을 행할 때 애굽의 마술사들도 모세가 행하는 기적을 따라 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자, 마술사들도 자신들의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었습니다. 모세가 나일강을 피로 바꾸자, 애굽의 마술사들도 그대로 했습니다. 모세가 강과 못에서 개구리 떼를 불러 오자, 마술사들도 그리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탄의 세력에 서 있는 짐승, 곧 사람들의 오른손과 이마에 666이란 표를 주는 짐승이 등장합니다. 이 짐승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죽게 되었던 상처를 고치고, 큰 이적을 행하고, 심지어 하늘로부터 불이 땅에 내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짐승을 경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사탄과 더럽고 악한 그의 졸개들에게도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절 말씀에 모세는 이러한 경우일지라도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경계 합니다. 3절 입니다. “(신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성경은 분명하게 눈에 보이는 이적과 기사만 보고 진리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의 가르침이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하기 위해서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그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떤 이가 죽어가는 이를 다시 살리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이적과 기사를 펼친다 할지라도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고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그는 분명한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3절 마지막에 보면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고 거짓되고 악한 영에 사로잡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의도를 통해 주의 백성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실 것을 말해줍니다.
예를 들어, 지금 코로나로 인해 비즈니스가 파산 직전이고, 가정에서는 폭풍과 같은 어떤 문제로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한 여자 집사님이 계시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분의 지인이 어느 날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있잖아. 내가 용한 점집 하나 소개해 줄께. 너도 한 번 갔다 와봐. 지난 번에 내 친구들도 너랑 비슷하게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 점집 갔다 온 후로 비즈니스도 신기하게 잘 풀리고, 다 좋아졌어. 그 뿐만 아냐, 그 점쟁이가 사람 과거도 기가 막히게 맞추더라니까? 내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것들을 술술 다 이야기 하더라고. 얼마나 용 한지 몰라? 혼자 가기 그러면 내가 같이 가 줄께.” 교회 다니는 집사니까 평상시에는 이런 말 들었으면 콧방귀를 뀌며 일언지하에 거절 했을 터인데, 지금 마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에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바라 썩은 동아줄이라도 있다면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인 거죠. 그래서 몰래 친구 따라 점집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리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거에요. 이게 다 뭐라고요? ‘시험’ 입니다.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거짓 선지자들, 점쟁이, 박수, 무당들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서 기웃거립니다. “언제 저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까?” 기회만 엿보고 있는 거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며, 우리의 삶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인내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내 삶을 맡기며 나아가야 합니다.
4절 말씀 봅시다. “(신 13: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모세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분만을 경외하십시오.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분을 섬기고, 그분만 의지하십시오.” 4절 마지막에 써 있는 ‘부종하라’는 말은 ‘매달리다’, ‘달라붙다’란 뜻 입니다. 혹시 늦가을 비에 젖은 낙엽이 아스팔트에 붙어 있는 것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빗자루로 쓸고 또 쓸어도 잘 안 쓸립니다. 집게로 집어도 집어도 잘 집히지가 않습니까? 낙엽이 아스팔트에 딱 붙은 거죠. 그게 바로 ‘부종’ 입니다. 그 누가 우리를 하나님 곁에서 때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께 찰싹 붙어 있는 거에요. 하나님 한 분만 꽉 붙잡고, 주님께만 매달려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부종하는 인생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분명 이 세상에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더러운 귀신들이 지금도 할 수 있는 대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들을 현혹하고 빼앗아 가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가 우리 주변을 맴돌듯이 사탄은 성도들을 넘어뜨릴 기회만 보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기적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거짓의 세력에 절대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참과 거짓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구별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눈물의 시간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하나님은 눈 여겨 보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주님께만 붙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님의 도우심만 구하십시오.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언제든지 주님 한 분만 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이비를 주의하십시오
신명기 13:1-5
성도가 최고로 추구해야 할 표적은 ‘요나의 표적’입니다. 사람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많은 표적을 행했지만 결코 내세우지 않고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마 12:39). 표적을 내세우면 사람들이 그 표적에만 이끌릴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기 뜻을 앞세웠지만 그 후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결국 요나의 표적이란 ‘자기 변화의 기적’을 뜻합니다.
하나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운 삶이 내 뜻보다 하나님 뜻을 앞세우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성도가 추구해야 할 요나의 표적입니다.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표적만 원하지 말고 극적인 기적이나 축복도 너무 원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자기 변화를 이룰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때에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나면 ‘표적의 요구’를 하기보다 ‘요나의 표적’이 생기면서 기적과 응답보다 하나님의 뜻과 영혼 구원과 선교 비전을 앞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표적이 따릅니다.
세상은 ‘표적의 요구’가 있는 사람에 의해 바뀌지 않고 ‘요나의 표적’이 있는 사람을 통해 바뀝니다. 요나의 표적이 있을 때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시몬이 베드로가 되고 사울이 바울이 됩니다. 신앙의 가중치를 ‘표적과 기사’에 두지 말고 ‘변화와 헌신’에 두십시오. ‘표적의 요구’에 매달리면 이단에 미혹되기 쉽지만 ‘요나의 표적’에 초점을 맞추면 이단이 잘 미혹되지 않습니다.
이단의 종이 된다면 얼마나 불행입니까? 바른 교회에서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며 “저 사람은 믿는 사람답다.”는 얘기를 듣기보다 늘 표적과 능력을 요구하며 집회를 쫓아다니면 어떻게 믿음직하고 책임적이고 복된 신앙이 생깁니까? 기적 집회를 쫓아다니는 부모 모습을 보면 자녀의 영적인 정서도 얼마나 불안해지겠습니까? 꿋꿋하고 신실하고 책임적인 부모의 모습을 볼 때 자녀도 안정을 찾습니다. ‘표적의 요구’를 추구하며 여기저기 떠돌지 말고 ‘요나의 표적’을 가지고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고 선교하면 그 영혼을 사탄이나 이단이 결코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 사이비 교주의 특징 >
누군가를 사이비로 판단하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필요하다면 해야 합니다.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교주는 무엇을 내세울까요? 첫째, 이적과 기사를 내세웁니다(1절). 어떤 교주는 자기 능력을 자랑하려고 이적과 기사를 드러내고 심지어는 과도하게 선전합니다. “능력의 종! 신유의 종! LA에 나타나다. 와보라.” 그런 선전 문구만 봐도 자랑과 교만이 넘치는 사탄의 종 냄새가 납니다. 그런 곳에는 가보면 사탄의 권세와 거짓으로 인한 교만한 술수에 넘어가 영혼이 노략질당하기 쉽습니다.
병을 치유한다고 주장하고 사람을 손으로 쓰러뜨려서 장풍형 안수 목사로 불리는 미국의 A 목사는 각종 추문이 많습니다. 그의 책은 한때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암을 고치려면 믿음의 씨를 뿌려야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평생 저축한 돈을 받아 호화판 생활을 하면서 미국 최대의 사기꾼 목사란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한때 23,000명의 대교회를 이끌던 여자 목사와 부적절한 관계도 가졌습니다. 그 여자 목사 교회는 재정비리로 미 당국의 조사를 받고 교인이 급속히 줄다가 지금은 폐쇄되었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장풍형 안수로 신도를 쓰러뜨려 병을 치유한다면서 자신은 하룻밤에 만 달러가 넘는 호텔을 이용하며 사치를 부리면 어떻게 신뢰가 되겠습니까? 영혼이 병든 사람이 육신의 병을 치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그는 쓰러뜨리는 여자 목사의 능력을 받겠다고 그녀의 무덤까지 방문했습니다. 그런 모습만 봐도 그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능력 과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과시적으로 내세우는 곳에 가서 안수 받으면 사탄의 손아귀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둘째, 다른 세상 신을 내세웁니다(2절). 사이비 교주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합니다. 그러나 참된 능력자는 이적이 나타날 때 그 이적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자, 위대한 주의 종’이라고 칭송하면 오히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 저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능력이 있다고 자꾸 추켜세우면 저도 망가지지만 여러분도 망가집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능력자처럼 과시하는 사람을 따르면 그것은 고통과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언이 들어맞고 치유가 나타나도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야지 그것을 간증한다고 여기저기 집회를 다니며 은근히 자기가 특별한 사람인 양 선전하면 그것이 함정입니다. 그런 축복과 치유 간증을 들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축복과 치유에 집착하게 되고 자기도 그런 축복과 치유를 얻겠다고 간증한 사람처럼 모방해 행동합니다. 그런 기복적이고 계산적인 모방으로는 대개 똑같은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망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축복과 치유 간증집회는 간증하는 본인도 박수갈채를 받다가 망가질 수 있고 그 간증을 듣는 사람도 기복주의로 망가질 수 있습니다. 옛날의 많은 간증집회가 기복주의 집회처럼 되어 한국 교회와 교인을 오도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은 모두 우상이나 다른 신으로 보십니다. 축복과 치유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면 그것도 다른 신처럼 됩니다. 기복적으로 축복과 치유를 추구하면 참된 축복과 치유를 받지 못합니다. 혹시 받아도 그 축복과 치유는 영혼을 망치는 축복과 치유가 될 수 있습니다.
예언에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예언을 과시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예언의 밑밥을 던집니다. “그 중에 하나만 맞으면 그걸 내세워 거기에 걸려드는 사람 몇 명만 얻어도 내 인생 펴진다.”는 심정으로 계속 예언을 해댑니다. 그래서 어쩌다 맞으면 사람들은 9번 틀린 예언은 생각하지 않고 1번 맞아서 내세우는 예언에 현혹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능력의 예언자’라고 여기고 따라다닌다면 그 인생은 그때부터 종치는 인생이 됩니다.
거짓 능력에도 속지 마십시오. 참된 능력자가 “귀신아! 물러가라!”고 하면 귀신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되어야 하고 참된 성도와 교회에는 귀신이 감히 범접도 못해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 “귀신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다시 얼마 후에 또 그럽니다. 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능력이 없는 모습을 계속 보일까요? 그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자주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하면 없던 귀신도 자꾸만 영상에 떠올라 마음과 생각을 점차 지배합니다. 결국 “귀신아! 물러가라!”는 말로 자꾸 귀신과 연루시켜 영혼을 사로잡는 술수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 사이비 교주 대처법 >
사탄은 집요하게 영혼을 사로잡아 자기 도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탄의 도구로 활동하는 사이비 교주의 마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1. 사이비를 따르지 마십시오.
영혼에 다가오는 미혹 소리는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게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습니다(3절). 사탄의 저 단계 전략은 핍박입니다. 때로는 핍박할수록 더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고 단계 전략을 씁니다. 그것이 미혹입니다. 두려움을 주는 거짓 뉴스나 거짓 표적을 내세워 사람 마음에 침투해 미혹합니다. 그때 침투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결국 미혹당한 사람의 책임도 큽니다.
잘 속는 사람은 미혹되기도 쉽기에 사이비 신자 중에는 순진한 피해자도 많습니다. 자세히 보면 잘 속는 사람 중에 선하고 착한 사람도 많습니다. 자기는 선해서 잘 속이지 않기에 잘 속이는 사람도 자기처럼 잘 속이지 않는 줄 알고 잘 믿는 것입니다. 잘 속이는 사이비 교주가 잘 속여보지 않은 자기와 같은 사람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의 종이 된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남을 속이지 않으면서도 잘 속지 않는 지혜와 분별력을 기르십시오. 사이비 신자 중에는 피해자가 많지만 피해자의 책임도 큽니다. 호기심이 지나쳐 이상한 소리나 현상에 귀를 기울이고 눈에 보이는 축복과 기사와 너무 가중치를 둔 책임입니다. 그것도 결국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표시입니다. 응답이 늦어지고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하나님만 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굳게 결심할 때 사이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2.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십시오
인생과 영혼의 주어를 어떤 사람이나 자기로 삼지 말고 하나님으로 삼아 하나님만 전심으로 따르고 섬겨야 합니다(4절). 요즘 미국에서 가장 뜨는 목사 중의 한 명이 조엘 오스틴 목사입니다. 그는 주로 이렇게 설교합니다. “여러분들의 미래는 잘될 것입니다. 금년은 최고의 해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말이 미래를 좌우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청중에게 한 말씀으로서 “하나님을 잘 믿으면 결국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라면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번성과 믿음의 축복과 말의 축복에 대해 무수히 약속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너무 그런 말씀만 치우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전적으로 보라고 성경을 66권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 주시는 것’만 말하지 말고 ‘사람이 고쳐야 하는 것’도 말해야 하고 ‘하나님의 구원’만 내세우지 말고 ‘성도다운 행위’도 도전해야 합니다. 구원의 복음이 가장 강력하게 언급된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도 전반부에서는 구원과 관련된 말씀을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행위와 관련된 말씀을 합니다. 얼마나 균형 잡힌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만 말하지 말고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말해야 합니다. 자기 변화도 없이 받는 축복이 얼마나 위태합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모습도 없이 무작정 “당신의 내일은 잘 됩니다.”라고 해버리면 힘과 위로는 얻어도 더욱 소중한 자기 변화를 언제 이룹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말씀에 끼워 넣기는 해도 최종 목적이 사람 중심적인 축복과 번성에 초점이 맞춰지면 기독교가 ‘생각 축복, 마음 축복, 긍정의 원리’를 강조하는 뉴에이지 종교와 별 차이가 없게 됩니다.
연출가가 공격대상의 흠되는 부분만 편집해 보여주는 것을 ‘악마의 편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편집한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 오스틴 목사를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공격방식도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스틴 목사가 그런 소리를 들을 빌미가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믿음생활의 초점을 ‘자기’로 삼지 마십시오. 성경에는 사람의 축복과 번성에 대해 얘기한 본문도 많지만 다른 진리의 말씀도 많습니다. 치우치면 안 되기에 설교자는 말씀 준비가 힘들어도 성경 전체를 골고루 강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성경 66권 전권 강해>를 집필하면서 다른 성경연구가들의 견해를 알려고 주석은 참고하지만 본문과 관련된 남의 설교는 거의 참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목회 초기에 자료가 부족하고 설교 경험이 적었을 때는 1년에 천 권 읽기를 목표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면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강해 말씀을 좋아하는 목사님들이 많아지면서 지금처럼 검색어 하나로도 설교 표절이 샅샅이 검색되는 시대에서는 남의 설교를 참고조차 하면 안 되겠다고 여기고 지금은 참고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로 어떤 성경 본문은 한국어 설교는 물론 수많은 영문 설교 중에도 전혀 설교되지 않는 본문입니다. 그런 본문은 대개 강해가 어렵거나 흥미롭지 않거나 특별한 임팩트가 없다고 외면되는 본문입니다. 그래도 그런 본문들까지 강해설교를 만들다 보면 시간은 많이 들지만 그때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씀을 볼 때 치우치지 않아야 균형 잡힌 바른 신앙생활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면서 사람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축복뿐만 아니라 자기 변화도 추구해야 이단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3. 사이비의 흔적을 없애십시오
모세는 그런 거짓 선지자와 꿈꾸는 자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5절). 그 말씀을 지금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워서 종교적 사기나 종교를 빙자한 범법을 명백히 행하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와 뜻있는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합니다. 또한 바른 기독교 리더들이 사이비 교주를 잘 분별하도록 지속적으로 그 폐해와 거짓을 알리고 교육하고 계몽해서 거짓된 사이비의 자취와 흔적과 영향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이비 교주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돈의 탈취입니다. 선한 일이 돈을 통해 이뤄질 때가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선한 방법으로 돈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특히 악인이 돈을 다 가져가서 악행에 사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성도들은 열심히 땀과 지혜와 창조성을 발휘해 경제적인 실력자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다만 거짓으로 돈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또한 거짓으로 돈을 탈취하는 사이비에게 넘어가도 안 됩니다.
고 비용의 푸닥거리를 하도록 영혼을 두려움과 저주에 빠뜨리는 무속인에게 속지 말아야 하듯이 기적과 표적을 내세워 영혼을 사로잡고 믿음의 씨를 뿌려야 한다면서 돈을 뜯어내는 종교인에게 속지 마십시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요새 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리더를 불신합니까? 선지자를 뜻하는 프라핏(prophet)이 이익을 뜻하는 프라핏(profit)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목회자의 책임도 크지만 특히 사이비 교주들이 교회 이름을 내걸고 그렇게 물을 흐려놓은 것이 결정타가 되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선지자 프라핏이 이익 프라핏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진짜 선한 하나님의 일에도 눈을 감는 것입니다. 악에 미혹되는 것도 잘못이지만 선을 추구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기에 분별력이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권세가 없는 사람의 영적인 권세를 무조건 믿지 말고, 영적인 권세가 없는 사람의 영적인 행동도 무조건 믿지 마십시오.
이단의 판별 기준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異蹟)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13:1-3)
유독 개신교(천주교와 분리한 의미)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왜 그리 이단이 많느냐? 이단이 많은 것을 보면 기독교가 엉터리가 아니냐?"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런 지적을 받으면 괜히 부끄러워하고 뭔가 자신마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는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그렇게도 없어선 감히 신앙인은커녕 종교인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을 필두로 다른 종교인들과 비교해 보면 압니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적 계명과 사상을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자기 생각을 믿는데도 그 생각에 자기 생명마저 걸 정도입니다. 반면에 개신교는 우리의 아바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범사를 인도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개신교 신자가 자기 신앙에 자신이 없다는 말은 자기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닌가 의심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그런 지적에 반발할 논리도 충분히 있습니다. 가짜가 많이 붙는다는 뜻은 바로 그것이야말로 진짜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가짜에는 절대 가짜가 붙지 않습니다. 음식점 이름 앞에도 심지어 원조, 진짜 원조, 옛날 원조 등등 유명 음식점을 흉내 내려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말 진짜는 그런 수식어를 구태여 붙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가짜가 많이 생기는 것을 속으로 반깁니다. 자기 음식점이 더 유명해지며 오히려 진짜임이 증명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전혀 엉터리인 것과 너무 진짜와 같아 잘 분간이 안 되는 것(似而非-비슷한데 아닌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이단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주와 성관계를 맺어야 구원을 얻는다, 재산을 몽땅 팔아서 교회에 바쳐라, 특정날짜에 지구 종말이 온다 등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곳은 전자에 해당됩니다. 반면에 신구약 성경의 일부를 빼거나 비슷한 내용을 첨가해서 가르치는 곳이 후자인데 이 경우는 어지간히 성경을 알아도 그 분별이 힘듭니다.
본문은 왜 개신교에 이단이 많은가 또 그 판별 기준이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선 신자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고 그런 이단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신자가 진짜를 제대로 알아보는지 테스트하려고 진짜를 많은 가짜와 섞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짜가 너무 엉터리가 되면 안되고 오히려 진짜처럼 보여야 하니까 가짜도 이적과 기사들이 그 말대로 이뤄지게 해 놓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단을 직접 만들고 또 그들로 이적을 일으키도록 하신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본문의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사단의 영에 지배 받는 복술자나 무당을 말합니다. 사단의 종들도 사단의 능력에 조종당하기 때문에 기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 때까지 사단을 지상에 남겨둔 뜻은 신자가 당신을 제대로 사랑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신자를 유혹하고 방해하는 도구로 쓰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뜻 봐선 본문 설명만으로 이단을 구별해 낼 재간이 도무지 없습니다. 이적과 기사가 말대로 이뤄지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받지 않고는 사단과 그 종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소개하는 자를 배척하라고 말하고 있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로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의 이름을 들먹이면 쉽게 가짜라고 판별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씀을 적용하면 만약 이단부터 먼저 믿은 자에게는 진짜인 개신교도 본래 알지 못하던 신에 해당됩니다. 또 오늘날의 이단은 더욱 교묘하여 경전, 계명, 교리, 예배나 기도의 내용과 형식이 다 경건하고 특별히 구원의 원리에서마저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니 더욱 판별이 어렵습니다.
그럼 오늘 날의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은 그 정답이 본문에 정확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짜와 진짜를 구별 못하는 위장물로 이적과 기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럼 신자가 그 위장물에 가장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그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적과 기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단에 쉽게 넘어가고 그것과 상관 없이 하나님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이단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사이비 가짜가 아닌 도무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가짜에도 멀쩡한 사람들마저 쉽게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지성과 교양이 풍부해도 결국 인간이 바라는 것은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안위뿐인데 그들에게도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선 이단들에게 이적과 기사가 더 많이 일어나거나 그들 스스로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답은 나왔습니다. 이단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습니까? 이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이 다 이단입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여전히 정통 개신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가장 많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교 체계나 가르침을 가지고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신학적 지식이 풍부하지 않고는 어지간해선 그 분별이 힘듭니다.
대신에 자신부터 과연 이적과 기사를 하나님보다 좋아하는가, 혹은 이적과 기사를 주기 때문에 하나님을 좋아하는가 진지하게 따져 보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정통 개신교 교회 안에도 이단 신자가 많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종교가 이단인가 아닌가는 전문 신학자들의 연구에 맡겨두면 됩니다. 신자가 자꾸 그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 것은 스스로 이적과 기사를 소원하고 있거나 아니면 괜히 자기 신앙을 자랑하고픈 교만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진짜는 진짜일 뿐입니다. 구태여 진짜라고 자랑하지 않아도 되고 나아가 가짜더러 가짜라고 비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진짜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여 주면 됩니다. 나아가 진짜는 정말 자기가 진짜인 줄 본인은 압니다. 가짜만이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립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에 우리 전 생애를 걸고도 남을 만한 확신을 이미 심어 주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더 이상 진짜에 대한 의심도 없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알아 보려고도 않습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관심 밖이며 오히려 복음 안에 들지 못한 자들에 대한 애끓는 긍휼만 생길 뿐입니다. 이단을 구분하는 기준은 오직 십자가 보혈의 필터를 통과했느냐 아니냐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은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이적과 기사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그분을 갈망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