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잘 맞는 대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대회가 있는 법이다. 동아마라톤은 의외로 인연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서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라톤은 좋은 것이여~’ 소리가 나온다.
물론 끝나고 나서 느끼는 것이지만... 동아마라톤의 잘잘한 몇 장면들.
1. 마라톤대회는 ‘평등세상’
클럽 집결 장소인 교보문고 정문 앞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니 이미 많은 회원분들이 모였다. 올 들어 가장 많은
20명이 넘는 대부대다.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마라톤대회는 평등세상’이다.
바로 자신이 달고 있는 배번 때문이다.
배번에는 명예의 전당부터 미참가자 그룹인 F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상대방의 배번만 봐도 “저 사람은 서브3네” “저 사람은 나보다 조금 늦게 뛰네”를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자신의 기록이 반영이 안된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의 배번을 단 경우도 간혹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의 재산을 배번으로 만든다면, 혹은 자신의 직위를 배번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이런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과연 달고 다닐 수 있을까. 누가 무슨 일을 하든, 얼마나 돈을 벌든, 전혀 상관없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다.
2. 옷가지 주워가는 아줌마들
지난해 달림이들이 벗어던진 옷가지들이 4톤이 넘었다든가. 불우이웃을 돕겠다고 나름 좋은 옷들을 가지고 나오는
달림이들도 무지 많은 모양이다. 화장실을 늦게 갔다 오는 바람에 관람객(?)들 맨 옆에 서게 된 나는 출발 직전
몇 몇 아줌마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어머, 이건 짝퉁이 아니고, 진짜네”
“이거, 내가 먼저 집은 거예요”
“무슨 소리에요. 내가 저사람 입고 있을 때부터 봤는데”
짝퉁이 아닌 오리지널 브랜드의 구제품을 건지기 위해 아줌마들이 죽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줌마 한 명은 아예 커다란
비료 포대를 갖고 와서 주워담고 있었다. 다른 두 아줌마 역시 그보다는 작지만, 쇼핑가방 같은 걸 준비해왔다.
혹시나 전경들이 말려주지나 않을까 해서 눈짓을 해봤지만, 그들은 동상처럼 앞만 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는 달림이들이 벗어던진 옷을 ‘날치기’해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원이라도 세워야 할 판이다.
3. ‘역지사지’는 정말 어려워
마라톤 코스 어딘가를 지나갈 무렵이었다.(워낙 정신이 없어서 어디를 지나가다 일어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다. 어디서나 이런 일은 일어나니까..)
한 눈에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짐을 실은 자전거꾼이 길을 건너기 위해 대기하다 못해 경찰에게 큰 소리로 항의했다.
“먹고사는데 방해 되게 이게 뭐하는 짓이요” 하지만 자전거꾼의 항의는 "워"하는 야유와 함께
"무슨 소리야, 저 사람 잡아(건너가지 못하게 잡으라는 뜻)”하는 몇몇 달림이들의 외침에 묻히고 말았다.
서울 시내를 마라톤 코스로 뛴다는 것은 달림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다. 자동차가 없는 서울 시내를
언제 뛰어보겠는가. 하지만 나들이객들에게는 마라토너들이 꼴불견일 것이다.
자전거꾼처럼 자신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면 원망은 더할 수밖에 없다.
문득 떠오른 생각. ‘역지사지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든 사람이 마라톤을 뛰면서 기다리는 자동차들을 유유히 제치고
지나가보든가, 마라톤 대회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몇 십분 갇혀 있어본다면 역지사지는 저절로 될 것 같다.
**동아마라톤은 끝났지만,,, 모두들 즐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