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단추

[덕유]

                                    빨간단추

                                                                                   방화자

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이었다.

열 한시가 가까워 질 무렵 이튿날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상점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6층에 올라가 머물고 있던 엘리베이터를 내려 타고 보니 이게 웬일인

가. 바닥에 만원 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다. 돈! 이걸 어떡하지. 머뭇거리

고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11층에 빨강 불을 켜고 순식간에 올라갔다.

우유를 사 가지고 온 시간은 불과 4~5분 정도 지났는데...우선 만원을 집

어들고 집까지 올라 왔지만 돈을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는 고민이 시작되

었다. 바닥에 그냥 놔 둘 걸 그랬나. 주인을 어떻게 찾아야하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해 졌는데 옆에 있던 남편은 웬 횡재냐며 껄껄 웃었

다..

만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주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많

은 돈도 또 아주 적은 돈도 아니다. 쌀로 치면 반말 값이 조금 넘는 돈

이고 라면으로 치자면 한 상자 값이다. 그런데 눈에 띄었을 때 못 본 것

처럼 냉정하게 돌아서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견물생심이라고 우선 집

어들었지만 아예 모른척 한 것보다 마음이 더 혼란스럽고 괴롭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튿날로 미루기에는 왠지 골칫덩이를 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머물렀던 6층의 양쪽 두 집중 한집을 지목하고 내려가서

물어보았더니 그 댁의 아들이 바로 돈의 주인이라고 했다. 다행이 곧바로

주인에게 되돌려 주고 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그가 가령 돈

의 주인이 아니라고 해도 내게서 돈이 떠났으니 후련했다. 그 순간에는

돈이 지폐로서의 가치보다는 눈에 뛸 때 순간의 기쁨과 주인을 찾을 때까

지의 괴로움을 번갈아 가며 안겨주던 요지경 같은 존재였다.

만원으로 인해 10여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고민을 하다보니 돈의 가치

관에 회의가 생겼다. 견물생심은 어디에서 왜 오는 걸까. 집착과 욕망에서

초연해 질 수는 없는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어느 장군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주인을

찾아 돌려준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니 갑자기 먼 옛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의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에 있었던 일로 짐작이 된다.

우리 집 윗집에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언니가 살았는데 우리보다는

넉넉한 살림이어서 내가 못 보던 물건들이 그 집에는 많이 있었다. 어느

날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반짇고리에서 단추를 꺼내

어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얀 단추, 검정 단추, 빨강 단추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얼마나 예뻤던지 갖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와이셔츠 단추정도의 크기였는데 빨강 단추가 유난히 내 눈길

을 끌었다.

어찌된 셈인지 빨강 단추 하나를 입에 물고 집에까지 도망치듯 달려왔

다. 아마 그 언니 모르게 슬쩍 입에 넣은 것 같다. 손바닥에 꺼내놓고 신

기한 듯 가지고 놀았는데 잠시 후 윗집 언니가 들이닥쳐 나를 마구 다그

쳤다. 단추를 내어놓으라고 하며 가재처럼 옆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겁에

질린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이 부동 자세로 굳어버린 눈사람 같

이 서 있었다. 어린 마음에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으며 나 스스로를 용

납을 못하고 죄라는 굴레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이 일은 내게 처음

이자 잊을 수 없는 악몽과 같은 사건이 된 셈이다. 수치스럽던 죄책감이

커다란 상처가 되어 어른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내 삶에 알게 모르게 반작

용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돌이켜보니 오늘날까지 자신에게 스스로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 본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단추 사건이었고 또 한번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적

표를 받고 큰 충격으로 자괴감에 빠졌던 일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성인

의 시각으로 본 단추 사건의 실수는 하찮은 일로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

으나 내 기억 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그 사건

은 항상 어린 나를 긴장 시켰고 그래서 더 더욱 명료한 성격으로 나를 변

모 시켰을 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만원으로 팔자에 없는 걱정까지 사서

할 정도로.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물건이 없어졌다 하면 괜히 상관도 없는 내 얼굴

이 붉어지고 가슴이 콩콩 뛰기도 했다. 그 원인은 바로 단추 사건으로 인

해서였다.

얼마만큼의 무게로 다가와 어떤 방향으로 느끼느냐에 따라서 한 번의

실수는 긍정적인 삶의 발판이 될 수도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잘못 될 수

도 있다.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 그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올바른

판단과 생각을 탄생시키는 훈장님의 엄힌 채찍이 되기도 한다. 이 만큼

살아오는 동안 어른들께 꾸중들었던 일도 많았고 스스로 잘못을 느낄 때

도 있었지만 큰 충격을 받아 자기 스스로 마음 깊이 느끼는 자괴지심 이

야말로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약이 되고 교훈이 된다고 생각된다.

한 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과오를 덮어

버리기 위해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말은 용

기와 꿈을 주는 어쩌면 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가장 위

대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용서와 이해의 뜨거운 정이 담겨져

있고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는 희망의 빛이 서려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병가상사란 말은 스스로 느꼈던 자괴감과 같은 차원의 심리 상태 이리라.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로 남에게 상처가 되었을 때 아파 오는 마음이라던

지 아주 적은 것이라도 본의 아니게 해를 끼치게 되었을 때의 가슴앓이는

아마도 단추사건으로 생겨난 반작용 적인 양심의 울림이리라. 이런 경우

를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인가.

                    1999.

[춘자]

한 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과오를 덮어

버리기 위해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말은 용

기와 꿈을 주는 어쩌면 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가장 위

대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용서와 이해의 뜨거운 정이 담겨져

있고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는 희망의 빛이 서려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병가상사란 말은 스스로 느꼈던 자괴감과 같은 차원의 심리 상태 이리라.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로 남에게 상처가 되었을 때 아파 오는 마음이라던

지 아주 적은 것이라도 본의 아니게 해를 끼치게 되었을 때의 가슴앓이는

아마도 단추사건으로 생겨난 반작용 적인 양심의 울림이리라. 이런 경우

를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인가.

[명월]

병가상사란 말은 스스로 느꼈던 자괴감과 같은 차원의 심리 상태 이리라.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로 남에게 상처가 되었을 때 아파 오는 마음이라던지 아주 적은 것이라도 본의 아니게 해를 끼치게 되었을 때의 가슴앓이는 아마도 단추사건으로 생겨난 반작용 적인 양심의 울림이리라. 이런 경우를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