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군대를 꼽는다면 고대 서구 세계 정복했던 로마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군은 무자비해서 적군에게는 더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파괴자이면서도 문화를 널리 보급했던, 서구 문명의 초석이었다. 그처럼 막강했던 군대가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통치되었으며 그리고 어떻게 멸망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로마군의 역사를 담은 4부작이다.
1부 : 이웃나라 그리고 세계로 로마 제국의 발전은 많은 부분이 그 군대의 덕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수행 방식을 알기 전까지 로마는 이탈리아의 작은 농촌에 불과했다. 로마는 기원전 600년 경부터 100년 동안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후 로마는 공화국이 되어 원로원에서 군사를 비롯한 중요 사안을 결정했다. 로마에서는 지주들만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초기 로마군은 그리스군을 모델로 삼았다. 로마는 켈트족에 패한 후 군사 전략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로마군의 기본단위는 군단이었다. 기원전 270년이 되자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거의 대부분 손에 넣었다. 로마는 시칠리아와 코르시카, 사르디니아까지 정복했지만 카르타고는 용맹한 전사 한니발의 지휘 아래 반격을 해왔다. 한니발은 로마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자 로마는 전면전을 선포했다.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몰아내는 데 15년이 걸렸다. 기원전 73년에 ‘스파르타쿠스’라는 노예가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 원로원은 ‘크라수스’에게 진압명령을 내렸고 스파르타쿠스는 죽임을 당했다. 군대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면서 로마 시민들은 지주이든 아니든 군에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로마군대는 직업 군인의 군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로마군은 정복지를 넓혀가면서 그에 따라 부도 쌓아갔다. 병사들은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장군들에게 충성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카이사르의 정복 전쟁은 9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2부 : 로마인 대 로마인 기원전 55년, 현재의 프랑스와 벨기에인 ‘골’을 정복한 카이사르는 로마로 진군해서 역사를 완전히 바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전에 영국부터 공격할 생각이었다. 첫 번째 공격에 실패한 카이사르는 이듬 해에 다시 대군을 이끌고 영국을 공격했지만 그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공격 실패 말고도 카이사르가 영국을 떠나야 할 이유는 또 있었다. 골족의 반란 소식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골족와의 전투에서 760명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은 카이사르가 골족을 무릎 꿇게 만든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50년까지 서유럽 원정으로 큰 재산을 축적했다. 카이사르는 집정관으로 뽑아주면 군대를 해산하겠다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일어난 내전에서 카이사르가 승리를 거둔다. 달아난 반정 주모자 폼페이 장군을 잡기 위해 이집트에 온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난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정적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후계자인 안토니우스가 뒤를 잇는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로마제국을 양분해서 지배하지만 로마는 다시 내전 상태에 빠진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대패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스스로 목숨을 끓으면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다. 그가 바로 아우구스투스다. 영국을 정복한 로마는 아라비아까지 손에 넣는다. 그러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군대 내부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로마제국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3부 : 로마군의 포위공격법 로마군의 포위공격은 로마가 적을 꺾고 제국을 다스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스인들한테서 배운 포위공격 무기 덕분에 로마는 많은 나라를 정복할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포위공격은 오늘날의 이스라엘인 주디아에서 있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굴복시키는 일에 3년이 넘게 걸렸다. 서기 100년 경에는 로마 제국이 오늘날의 루마니아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라비아까지 영토를 넓혔다. 서기 117년, 로마의 장군 하드리안은 로마 제국의 국경선을 건설했다. 바로 하드리안 성벽이다. 로마군은 수많은 국경을 지키기 위해서 해군을 이용했다. 로마의 요새는 대부분 산맥이나 강 등 전략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방어 겸 공격용 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고 성벽 주위로 깊은 해자까지 파져 있었다. 로마군 병사로 근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보통 로마 시민들보다 평균 수명이 길었다. 좋은 주거 환경과 신체 단련, 좋은 음식 그리고 의료 혜택 덕분이다. 로마군은 다양한 숭배물을 가지고 다녔다. 황제를 숭배하는 것도 로마 종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로마군 병사들은 중산층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로마군 요새 주변에는 자연히 마을들이 생겨났다. 로마군 병사들의 건축 기술은 제국의 얼굴을 바꿨을 뿐 아니라 수많은 요새나 하드리안의 성벽 등 군의 역사적인 구조물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같은 문명의 발전은 예상치 못한 위험을 불러들였다. 야만족들이 로마인들의 안락한 생활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4부 : 야만족들이 문 앞에 서기 2세기, 로마 제국은 가능한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제는 영토 확장을 위해 손에 들었던 무기를 내려놓고 자신들이 파괴했던 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요새나 성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군단마다 건축가와 측량사 그리고 기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르드’ 다리 같은 놀라운 작품도 건설했다. 일반 병사들은 건축 공사뿐 아니라 석재 절단 등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측량사, 대장장이, 위생병 등 전문기술을 가진 병사들은 허드렛일에서 면제되었다. 로마군이 보급한 문명은 건축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유럽의 포도주 산업도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서기 200년대, 로마 제국의 국경은 예전처럼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페르시아 제국 때문이다. 그리고 카이사르나 다른 제왕들이 쉽게 제압했던 야만족들이 이제는 로마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서 더 이상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로마 제국의 전략도 변했다. 예전에는 공격 일변도였지만 이제는 수비에 치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의 모양도 수비형으로 변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자금력이 약화되자 무기나 장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시민들은 군인이 되기를 꺼렸다. 서기 395년에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되었고, 1453년에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면서 기나긴 역사를 마감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의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에 기초를 두고 있다. 또한 서양 건축, 동전, 예술과 법 모두 로마 제국의 번영이 그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로마 제국은 로마 군대의 창조물이다. 로마군이 없었다면 제국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 |
첫댓글 다 동의 합니다.단 로마군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대 였다고는 할수 없죠.가장 위대한 군대중 하니이죠.
갑옷은 안입고 있네?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은 로마군을 보고 싶었는데...
맞죠!! 레기온들의 용맹은 세계최고입니다!!! 그들의 조국에대한 충성심은 대단하죠..
위대한 군대 하나 더있음 2차대전 독일군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