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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경계하라
신 13:6-18
6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7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8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9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10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11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주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13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14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 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15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16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17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18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신 13:6-18 / 여러분의 친형제나 아들딸이나 품에 안긴 아내나 가장 친한 친구가 여러분도 모르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모르던 다른 신들을 섬기러 가자고 가만히 여러분을 유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7) 여러분의 사방에 둘러 있는 족속들, 곧 땅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멀고 가까운 모든 족속의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그들이 여러분을 유혹할 것입니다. 8) 그러나 여러분은 그런 꾐에 넘어가지도 말고 그들의 말을 듣지도 마십시오. 그런 자는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그런 자의 목숨은 아깝게 여기지도 말고 그의 죄는 숨겨 두지도 말며 9) 용서하지도 말고 고발하여 죽이십시오. 처형장에서는 고발한 자가 맨 먼저 돌을 던지고 온 백성이 이어서 돌을 던지도록 하십시오. 10) 그런 자들은 반드시 돌로 쳐죽여야 합니다. 애굽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여러분을 주신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도록 여러분을 유혹한 죄 때문입니다. 11) 그러면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 소문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며 여러분 가운데에서 다시는 그런 흉악한 일을 저지르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12)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어 살게 하실 성읍들 가운데 어느 곳에서 소문이 들려 오기를 13)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서 전혀 쓸모없는 인간들이 나타나 여러분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섬기러 가자고 온 주민을 유혹하였다고 하면 14)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조사하십시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실제로 그토록 더럽고 흉악한 일이 벌어졌으면 15) 그 성읍의 주민을 몰살시켜 버리십시오. 그 성읍에 사는 사람과 짐승을 모조리 칼로 쳐죽이십시오. 16) 여러분은 그 성읍의 모든 전리품을 광장에 모아놓고 성읍과 함께 불질러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바치는 완전한 번제물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런 성읍은 영원히 돌무더기로 만들어 다시는 재건하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17) 여러분은 완전히 불질러 버려야 할 그 전리품 가운데에서 어느 것 하나도 빼돌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제까지 명한 것을 여러분이 모두 그대로 실행하면 여호와께서 성읍을 멸하던 그 분노를 그치시고 주께 충성하는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며,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대로 여러분을 큰 민족으로 키워 주실 것입니다. 18)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고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한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언제나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옳게 보시는 일만 행하면 주께서 틀림없이 여러분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강한 영향력이 가족과 친한 친구에게로 부터 올 때가 있습니다. 본문은 이에 대한 경계를 세우고 있습니다.
너와 생명을 함께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6-11)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경고합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자 해도 그를 따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다른 모든 신들은 거짓된 신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섬기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관계를 신경 쓰지 말라 하며 무서운 심판을 명합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덮어 숨겨주지 말고 용서 없이 돌로 쳐죽이라”(8-10)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우상 숭배에 대한 미혹을 받았다면 그가 먼저 돌을 던져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는 일에 앞장서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진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벌이지만,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만큼 우상숭배를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거짓된 우상을 따르게 하는 모든 미혹을 거부해야 합니다. 가족과 친구가 은밀하게 다가와 미혹해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가족과 친한 친구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혹에 넘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12-18) 한 성읍 전체가 미혹에 넘어가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경우를 이야기 합니다. 이 일의 시작은 성읍 안에 사는 불량배로부터 일어납니다. 불량배는 사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쓸모없는’, ‘비열한’이란 뜻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사람들을 죄악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로 인해서 한 성읍이 우상 숭배 빠졌다면 단지 소문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서운 심판이 있을 만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님을 떠난 사실이 확인되면 그들이 살았던 성읍과 사람과 가축까지 모두 진멸하고 탈취물까지 불살라 조금도 손대지 말아야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거룩한 전쟁을 일으켜서 심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7-18).
적용: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가족과의 관계 속에 친밀한 친구와의 관계 속에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샘을 막고 마음을 부패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틀에 따라 경건한 삶이 나오기도 하고 죄악 된 삶이 나오기도 합니다. 경건의 삶의 틀이 나오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부패를 막아야 하며 그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 설 교 >
누구 너희를 꾀더냐
신 13:13-15 / 이성희 목사
마술은 인간 역사에 오랜 예술의 한 장르입니다. 동시에 마술은 기독교사에 큰 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마술사의 마술을 보노라면 때로는 눈가림인지 아니면 귀신의 힘인지 분간하기 힘든 때도 있습니다. 1920년대 헝가리 태생 미국인인 해리 후디니라는 유명한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마술사로는 단연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가장 이름이 알려진 마술사일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제트기가 사라지게 하고. 자유의 여신상이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통하는 마술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는 마술사가 아주 인기 있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은결, 최현우, 오은영 등 신세대 마술사들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마술의 세계란 아는 사람에게는 싱거운 일이며 눈을 잠시 속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신기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술이란 그 비밀을 몰라야 재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전에 마술의 요령을 가르쳐 주는 TV 프로가 있었습니다. 그 마술사가 다른 마술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심지어 살해협박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마술의 비밀을 알면 마술사들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마술은 눈가림입니다. 분명히 눈속임인데 뻔히 알면서도 동작이나 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이것이 마술의 묘미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마술사는 빌립이 사마리아에 전도하러 가서 만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라 다니며 표적을 보고 놀랍니다. 그 때 베드로가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냅니다. 베드로가 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받기를 기도하였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본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돈을 주며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안수할 때에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책망합니다. 그 때 시몬은 잘못을 깨닫고 “주께 말한 것이 임하지 않게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마술사는 성령의 감동도 마술로 생각합니다. 돈으로 성령의 감동을 사려고 합니다.
마술은 현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령강림도 마술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눈가림으로 속이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성령의 강림을 알지 못합니다. 신앙의 세계는 신앙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 것도 신기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도 모르면 신기하고, 이상하고, 마술처럼 생각합니다.
마귀는 꼬이는 자입니다. 유혹하는 자입니다.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왠지 아십니까? 그것이 마귀의 일이니까 그렇습니다. 마귀는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유혹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헬라어의 ‘페이라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시험하다는 말(test)과 유혹하다(tempt)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시험하십니다. 마귀의 꼬임은 그 목적이 넘어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그 목적이 훈련하여 든든히 서게 하는 데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유혹은 아담의 공명심에 대한 꼬임이었습니다. 지음 받은 인간이 지으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유혹입니다. 인간은 그 때부터 칭찬과 사람의 찬사에 중독 되어 있습니다. 뱀이 꼬인 것을 잘 보세요. 뱀이 얼마나 영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와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보다 감각으로 들어오는 유혹에 약합니다. 마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는 뱀은 아담이 없을 때 하와에게 다가갑니다. 아담이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아담이 하와 옆에 있었더라면 뱀도 감히 꼬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셋째는 눈으로 꼬임을 받게 합니다. 넷째는 먹는 것 즉 식욕으로 꼬임을 받게 합니다. 먹는 것은 누구나 가장 유혹 받기 쉬운 부분입니다. 다섯째는 과다한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꼬임을 받습니다.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는 지식의 욕망은 유혹의 이유입니다. 대개 유혹이란 거의 이런 유형들입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 친구네 집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늘 졸라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친구가 자기 집에 아무도 없다고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던 날이 왔다고 환호하며 여자 친구의 집에 갔습니다. 가서 벨을 눌렀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안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 기다리던 나머지 완전히 꼬임에 빠진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보았는데 누가 너를 꾀더냐고 합니다. “꾀더냐”는 말은 “에바스카넨”이란 단어인데 이 말은 신약에서 이곳에만 기록된 단어입니다. ‘중상함’이란 뜻입니다. “누가 마술을 피우더냐?”란 뜻입니다. 마술사가 눈으로 사람을 응시하면서 주문으로 미혹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눈 뻔히 뜨고 있는데도 속이려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사탄의 전략은 뻔히 아는 것을 가지고 우기고 속이려는 것입니다. 속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보기를 바랍니다.
첫째, 눈에 보이는 것도 부인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바울은 말합니다. “밝히 보이거늘”이란 말은 ‘프로에그라페’란 말입니다. ‘분명히 표시되어 지다’, ‘확실히 보여지다’란 뜻입니다. 불을 보는 듯이 명확하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명약관화’(明若觀火)와 같은 의미입니다.
사탄은 뻔히 보고, 아는 것을 가지고 꼬입니다. 더 간절히 알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사탄은 접근하여 유혹합니다. 아예 열심이 없고 간절한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사술과 거짓을 가지고 정말인 것처럼 꾸며대며, 사랑을 홀리게 하는 것입니다. 순진한 믿음을 거짓 진리로써 꾀는 것입니다. 인조진리로 참 진리를 꼬이고 말장난으로 진리를 호도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요한복음 14:9의 말씀처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답하십니다. 이미 보고 있는 것도 신령한 지식이 없으면 알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져보고야 믿겠다고 하던 도마에게 예수님은 요한복음 20:29에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도마는 보고야 믿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고 복인데 보아도 믿지 못하고 부인하게 하는 것이 유혹이고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아도 예수님의 구주성을 모릅니다. 이들은 다 얼마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으로 돌변했습니다.
교회사에서 ‘가현설’(假顯說)이란 이단 사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구레네 시몬인데 사람들이 너무 슬퍼한 나머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착각했다는 설입니다. 분명히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는데 구레네 시몬이 대신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환각상태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을 듣고 고대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4:37에는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고 합니다.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힘겹게 노를 젓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오시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자 마태복음 14:26에는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이라고 합니다.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각이란 전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시험에 들기 아주 쉽습니다.
미혹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꼬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대개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유혹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는 유혹입니다. 셋째는 사탄을 믿게 만드는 유혹입니다.
여러분, 사이비 이단을 보세요.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누가 봐도 뻔히 알 일을 가지고 유혹에 빠집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데도 꼬임을 당합니다. 이런 꼬임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열심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탄의 꼬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꼬여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꼬임입니다. 미혹하는 자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보는 듯이 믿는 사람을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기도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절실한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시험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가사에 보세요.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시대에 이 눈에 아무 증거 없지만 믿음만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게 합니다.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합니다. 사탄의 제일 큰 꼬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육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합니다. 다시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라고 합니다. 어리석다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아노에토이’란 이 말은 ‘아 노에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노에오’는 안다는 말입니다. 헬라어에서 ‘아’는 반대 의미를 표시합니다. 이 말은 도덕적 판단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음이란 무엇입니까? 판단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판단력 없느냐? 보고도 모르냐?”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지은 사람이 육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창세기 6:3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한탄입니다. 하나님의 실망입니다. 사탄의 끝없는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육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시작한 삶을 육체로 마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보세요. 사울은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기스의 집에 가서 아들 사울을 봤을 때 하나님께서는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삼상 9:17)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을 때에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삼상 10:6)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육체로 마쳤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죽이고 백성들이 환호하자 사울은 시기가 가득 차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은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니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삼상 19:6)고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9:9에는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라고 합니다. 금방 마음이 변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악령이 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악령이 접하면 육체로 끝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신접한 자에게 묻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육체로 끝난 것은 악령의 꼬임 때문입니다. 사탄의 꼬임은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까지도 육체로 끝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꼬인 사탄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육체적 고통을 말했을 때 아마 사탄은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끝나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장난입니다. 육체로 끝나게 하려고 사탄은 지금도 수많은 영의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우리보다 훨씬 열심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도 적어서가 아닙니다. 이단들도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하였지만 사탄의 꼬임으로 육체로 마칩니다. 박태선이나 문선명을 보세요. 원래는 영으로 시작하였지만 육체로 변합니다. 이제는 종교집단이라기 보다 거대한 경제 집단으로 변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초기에는 부흥의 역사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육체로 마칩니다.
교회의 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이 극대화되어 마지막에는 육체로 마칩니다. 교회 분쟁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입니다. 목사와 교회 혹은 교인과 교인의 문제를 보세요. 교회 안에서의 허니문이 지나면 인신공격, 비난, 거짓비방, 사방으로 편지 보내어 창피주기, 심지어는 조폭 동원하기 등 인간적인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교회가 육체로 마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기독교 학교도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학교가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장사를 하고 이속 챙기기를 합니다. 무늬만 기독교이고 알맹이는 없는 학교들이 비난을 받습니다. 이런 학교가 사학법 재개정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학교들입니다.
교회봉사도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육체로 변하여 끝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번 미국에 갔을 때에 우리 교회 계시던 주성염 목사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미국 어느 한인 이민교회에 혼자 된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교회를 섬기면서 뭘 봉사할까 하다가 강대상을 닦아야겠다고 작심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시간만 되면 교회에 와서 강대상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가 미국교회 예배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미국교회 장로님이 교회에 올 때마다 이 부인이 강대상을 닦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항상 부지런히 강대상을 닦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교회 장로님은 돈이 많은 홀아비였습니다. 그 장로님은 한인교회 목사님께 그 부인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얼마 후에 결혼하였습니다. 혼자 된 부인이 완전히 팔자가 펴졌습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여성도들이 서로 강대상을 닦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 봉사도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면 안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된 일을 육체로 마치려고 하는 유혹은 언제나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일이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된 봉사가 육체로 마치면 하나님의 일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4:10을 보세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성령으로 시작한 일꾼들이 끝까지 머물지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되어 교회를 섬기던 일꾼들이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육체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것이 육체로 끝나는 것은 사탄의 꼬임입니다. 이런 유혹은 사탄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유혹입니다.
결 론
알렉산드리아의 키루스는 정욕의 유혹을 받지 않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혹을 받지 않는 까닭은 이미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자리에서 죄와 싸우지 않는 사람은 이미 육체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은 유혹의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가장 큰 유혹은 유혹이 전혀 없는 것이다. 가장 큰 공격은 공격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수 없이 많은 유혹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동시에 지금도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꼬임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물리치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라고 꼬입니다. 사탄은 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육체로 마치게 합니다.
이런 유혹의 시대에 믿음의 확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고 꼬임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13:6-18
최형절 목사
신명기 13장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길로 빠지도록 유혹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5절은 '선지자와 꿈꾸는 자'로 대표되는 종교지도자들의 유혹에 대해 증거했다면, 본문 6~11절은 가족과 친구, 12~18절은 불량배의 유혹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3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세 영역은 종교, 가정, 성읍입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들은 유혹의 통로가 되는 여러 관계를 대표합니다. 유혹의 접점은 이적과 기사와 같은 매력적인 종교적 현상, 거절하기 힘든 가족 관계의 친밀함, 불량배의 공공연한 선동입니다.
가족과 친구의 유혹(6-11절)
(6-7)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종교지도자에 이어서 가족은 유혹의 두 번째 통로입니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맺어진 혈연관계의 친밀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신명기에서 전제하는 가족의 본질은 언약 공동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정의 성격과 역할이 규정됩니다. 그렇기에 가족 간 친밀함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욱 견고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안에서의 친밀함 자체가 유혹자가 노리는 취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가족이라는 친밀함 때문에 예배의 기쁨을 함께 누리던 가정이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가족 구성원을 셋으로 구분합니다. 형제, 자녀, 그리고 아내입니다. 여기에 가족과 같이 가까운 친구를 추가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매일의 일상을 같이하는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구성원들을 동일하게 수식하는 단어는 '네'입니다. '네 형제', '네 자녀', '네 품의 아내,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는 이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를 강조합니다. 모세는 이 네 부류를 통해 누구에게나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자고 꼬드길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유혹은 더욱 은밀하게 다가옵니다. 은밀한 유혹의 목적은 다른 신들을 섬기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영원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친밀함 속에 은밀히 찾아온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세는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요청합니다.
(8)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친밀함 가운데 은밀히 우상숭배에 대한 유혹으로 다가온다면 '따르지도, 듣지도, 긍휼히 여기지도, 애석히 여기지도, 숨기지도 말 것'을 명령합니다. 이는 친밀함 속에서 은밀히 다가오는 우상숭배의 유혹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보이지 않는 몸속의 암이 빠르게 퍼져나가듯이 은밀한 가운데 퍼지는 죄의 확장을 단호하게 끊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단호하게 말씀하시길 "아버지나 어머니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의 친밀함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닌, 가족의 친밀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9-11)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범죄자를 돌로 쳐서 죽이는 형벌은 성경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신명기 17장 6절에서는 이런 경우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이 필요하다고 증거합니다.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 마음 아픈 것은 죄인에게 첫 돌을 던지는 사람이 죄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용서 없이 죽이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진다는 것이 오늘날 받아들이기 어려운 잔인한 형벌이지만, 이 형벌이 잔인하고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만큼 은밀히 다가온 우상숭배의 유혹이 잔인하고 무거움을 방증합니다.
우리는 자칫 구약 시대의 무서운 형벌에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 형벌을 명령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백성의 순결함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찾아온 우상숭배의 유혹에 단호하게 죽음의 형벌을 내려야만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라는 죄의 무거움과 심각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호한 형별을 통해 거룩한 두려움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시는 죄악의 길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안전장치가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이라는 친밀한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무거움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부모와 자녀, 배우자와 친구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친밀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고 풍성하게 하는 거룩한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은밀하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력한 죄의 통로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가정은 참으로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면 우상이 되기에 그리스도를 경외하여, 거룩하고 순결한 가정과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불량배의 유혹(12-18절)
(12-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주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12절부터 18절까지는 성읍 곧 도시 공동체가 배도한 경우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공동체 전체가 악한 자들의 선동에 넘어가 우상 숭배에 빠질 경우 거룩한 전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읍의 반역 사건은 그에 대한 충격적인 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성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과 그곳에서의 거주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할 때, 한 성읍의 배교에 대해서 이스라엘 전체는 소문을 듣는 대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몇몇 '불량배'에게 있습니다. 이들은 성읍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종용하고, 온 성읍이 그들의 말에 따라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성읍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이 불량배들은 누구인 것입니까? '불량배'의 문자적인 뜻은 '벨리야알의 아들들'입니다. '벨리야알'이란 사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도 하며, '쓸모 없는' 혹은 '비열한'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온 성읍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숭배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자들입니다. 과연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온 성읍의 사람들이 설득될 정도로 영향력과 언어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자'라는 악한 자들의 선동이 온 성읍을 우상숭배의 길로 빠지게 한 것입니다.
(14-16)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 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한 성읍이 거짓 불량배의 선동으로 인해 우상숭배에 빠진 이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 상세한 조사를 통해 분명한 사실로 입증되어야만 했습니다. 단지 소문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온 성읍이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로 확인해야 합니다. 준엄한 처벌이 예상되는 심각한 사건이기에 그에 맞는 엄정한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의 반역죄가 확실한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판결은 배도한 성읍 전체를 진멸 아래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며, 다른 신들을 섬기는 죄는 가증한 일이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 중에 제거해야 하는 악이기 때문입니다.
'성읍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전체 주민을 가리킵니다. 그 안의 가축을 포함해 산 것은 다 칼로 진멸하고 나머지는 태워야 합니다. 돌이 아닌 칼로 죽이는 것은 진멸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들을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이방인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한 성읍을 향한 심판이 가혹한 이유는 그만큼 우상숭배가 어떤 경우에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악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17-18)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진멸할 물건에 조금도 손을 대지 말라는 명령은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는 아간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탐욕으로 진멸할 물건에 손을 댄 아간은 결국 자신이 진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멸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그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자비를 더하여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번성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한 성읍을 진멸했을 때 자연스럽게 인구가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구가 증가되는 것을 통해 순종은 약속을 성취하고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은혜의 수단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명령에 순종할 때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 신명기에 나타난 명령과 약속의 특징입니다. 순종의 기본적인 요건은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혹한 진멸의 목적인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할 수 있도록 백성의 삶을 순수하게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벌이라도 바로 받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비의 손길을 펼치실 것입니다.
함께 살펴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하나님을 떠나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삶을 살고, 세속적인 가치관에 탐닉되어 죽음의 행렬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와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만져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걸음을 걷게 하셨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오늘도 죽음과 진멸의 통로가 아닌, 생명과 구원의 통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부적인 요인이 더 큰 위협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일들이 참 많음을 고백합니다. 친밀함으로 은밀하게, 혹은 영향력 있는 사람의 선동으로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유혹할 때에, 주님의 말씀 안에서 거룩한 두려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을 떠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깊이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가 이 땅에 생명과 구원의 통로로 살아가는 길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의 인생을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을 따라 영원한 생명의 걸음을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가족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친밀함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2. 친밀한 관계일수록 그 유혹이 은밀하다는 것을 통해 회개해야 할 은밀한 죄는 무엇인가요?
3. 우상숭배를 향한 하나님의 단호하고 엄중한 형벌이 무엇을 방증하나요?
4. 거짓 선동을 하는 불량배와 같이 말씀보다 탁월한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는지 묵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