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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약기운이 아직 덜 가신 것 같다.
"$%^$#%"
주변의 상들이 이렇게나 몽롱하게 일그러져 있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욕조에 잠겨 익사하는 꿈. 벌써 13번째다. 한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세번 꼴로 이렇게 익사하듯 잠들고 부활하듯 깨는게 반복되었다. 그리고 항상 눈을 뜨기 직전의 순간, 어떤 남자의 모습이 스친다. 그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구멍 뚤린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내 볼위에 피로 시뻘건 무늬를 남겨놓는다. 그리고 환청이 찾아온다.
그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침대 아래의 거울로 얼굴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내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세세한 부분까지 보지는 못하지만.
“@##@!$”
이 환청 뭔가 사람 목소리 같기는 한데 뭔소린지는 알아먹을 수가 없다. 결국 짐승의 울음소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소리는 그 가치를 잃는다.
그것은 마치 숙취와 같다. 약을 진하게 빤 다음날은 반드시 찾아와 쾌락과 고통의 등가교환이라도 외치듯이 내 목을 졸라댄다. 그리고 그것이 물러나고 나면 나는 그 고통이 준 억울함을 보상받기 위해 더 진하게 약을 빤다. 선순환이다.
“긴급.@!#바다!@#배 13척!@#절벽!@#”
환청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들은 것을 조합해 보자면 섬을 나가려던 배들이 갑자기 이유 없이 절벽 쪽으로 방향을 틀며 모두 뒈졌다, 그런 내용인 듯 했다. 딱히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뉴스다. 대략 한 달쯤 전부터 일 거다. 육지로 가는 배들이 하나같이 절벽을 향해 방향을 틀기 시작했던 때가. 배들은 아무 이유 없이 전등에 홀린 오징어들처럼 절벽에 몸을 던졌다. 파도의 흐름변화나 기계이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몸을 던지고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것이 몇 번 반복 된 뒤, 이 섬을 떠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졌고, 저렇게 삶에 싫증나 죽음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만이 배위에 오르게 되었다.(오히려 승객의 숫자는 늘어난 것이 아이러니긴 했지만)
“$#.....”
환청이 점점 사그라져간다. 나는 기분좋게 기타를 챙겨서 바깥으로 나간다. 탁한 바람이 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하악,하악.”
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긴데, 옛날에...그러니까 80년대였나? 아니면 70년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시 이 나라의 대통령은 김영삼이란 사람이었고 그는 항상 제주도 주민들에게 연설하며 다녔다고 한다.
“제주도를 강간 특구로 만들어야합니다 여러분!”
하지만 제주도는 강간 특구 대신 관광 특구가 되었고 그의 아름다운 꿈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50년 뒤, 꿈은 이루어진다는 30년 전의 문구처럼 제주도는 강간특구가 되었다. 한 남자의 작은 소망이 현실로 다가오는, 제주도는 그런 감동의 현장이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강간 특구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 다른 풍경은 아닐 것이다. 이젠 제주도 어디를 가든 몸 하나에 팔 네 개, 다리 네 개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난교 특구,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특구인 건 맞지만.
고개를 든다. 흙빛 하늘, 흙빛 구름, 흙빛 태양이 나를 내려다본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숨 막히던 푸른 하늘은 서서히 탁하게 변해갔고 맑은 공기엔 먼지가 섞였다. 어떤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이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마음에 든다. 내 구릿빛으로 탄 피부와 검은 점들이 푸른 하늘도단 지금과 훨씬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아악! 아악!”
“헉, 헉.”
역시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흙빛 하늘은 이런 풍경에도 더 잘 어울린다. 뭐랄까. 이런 풍경에 푸른 하늘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숨 막힐 정도로, 그래서 이렇게 살짝 인공적인 하늘 빛이 내게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으으.”
신음이 먼지들을 타고 울려퍼진다. 나는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노래를 부른다. 신음을 반주삼아, 흙빛을 백라이트 삼아.
역시나 옛날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옛날일은 아니다. 한 한 달쯤 전? 그 정도의 일이다. 그 때 나는 애완동물로 레밍을 키우고 있었다. 레밍, 쥐의 일종으로 활동적이고 단순하며 맹목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을 유리통 안에 넣고 길렀다. 그리고 그것의 습성을 고려해 안에 쳇바퀴 하나도 넣어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 벽을 긁어대며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렇게 며칠 뒤, 내 꿈속에 가시관을 쓴 사내가 찾아왔고 나는 식은 땀에 젖어 깨어났다. 약기운이 빠지고 주변의 형체가 안정감을 되찾자 나는 레밍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찾아 나섰다. 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밍은 싱크대의 고인 물에 코를 박고 죽어있었으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시침이 자정을 넘겼다. 이걸로 이틀 연속 지각인가. 나는 다시 기타 케이스를 메고 집을 나섰다. 땅은 잠든 사이에 비가 온 듯 축축했고 곳곳엔 웅덩이가 들어앉았다. 몇몇 웅덩이는 쥐들이 코를 박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쥐들은 하나같이 팔다리 없이 몸통만 남아있다. 잘려진 단면들에는 피가 쉴새없이 뿜어져 나와 웅덩이를 붉게 물들인다. 그것들은 모두 옆으로 난 두 눈의 눈동자를 하늘로 치켜들고 있다. 그리고 떨리는 입으로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떤다.
"@!#이것@!##"
잠깐, 아주 잠깐 그것들의 소리를 알아들은 느낌이 든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기분이 나쁘다.
“널 사랑해~ 시간이 흘러도~”
내 고용주는 노발대발하며 나를 자를 거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어찌됐든 일단은 들여보냈다. 자르든 말든 일단 오늘치 공연은 마쳐야 하니까. 나는 과연 짤리게 될까? 모르겠다. 생각하지 말자 .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거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
“널 사랑해~시간이 변해도~”
지고 지순한 사랑노래에 그들은 손을 흔들며 열광한다. 어찌 보면 상당히 모순적인 광경이다. 이미 이 땅 위에 그런건 사라졌으니까. 그럼에도 이 노래를 부르고 듣는 이유는 이 노래가 아무 뜻도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려 가요의 후렴구처럼. 이 노래도, 우리의 성행위도 아무런 무게를 가지지 못한다.
“고마워~”
노래 한곡이 끝나자 관중들이 박수를 친다. 나는 기분 좋게 주머니에서 마리화나를 꺼내 핀다.
“후욱...후욱...”
그렇게 한 대를 다 피고나자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 전 한곡 더하고 물러가겠습니다.”
다시 기타를 튕긴다. 평소보다 더 좋은 소리가 난다. 역시 약의 힘은 위대하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입 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잠시 뒤 환청이 찾아온다.
“!@#$#”
나는 얼굴을 찌뿌리며 연주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어지러운 머리, 일그러지는 공간, 흐릿해지는 코드, 떨리는 손가락, 그 속에서 오직 환청만이 더욱 더 선명해져만 간다.
“이제@#”
나는 최대한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나 잘 되지 않는다.
“이제...모두...끝”
균형 감각이 사라지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이제...모두...끝이다.”
환청이 벽에 부딫히며 끊임없이 진동한다. 청중들은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중 어떤 한 여자아이는 무대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내 탁해진 눈을 응시한다. 나는 그 애에게 내가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애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 애는 엷게 미소 지으며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이제 모두 끝이다. 변함없는 친구여.”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한다.
“이제 모두 끝이다. 아름다운 친구여.”
마이크를 타고 목소리는 넓게,넓게 퍼니다.
나는 휘청거리며 무대를 내려왔다. 고용주는 딱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지금 나는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로위에 손을 뻗고 있다.
내 온몸을 쥐어짜는 고통, 이 고통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안다. 그 답은 모르핀이다. 방 한쪽 구석에 무덤처럼 쌓아 둔 모르핀은 나를 재우고 이내 편안하게, 죽은 듯이 잠들 수 있게 해주리라.
“어디로 가시죠?”
나는 택시기사에게 내 짐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 그리곤 지갑에서 5만원권 두 장을 그에게 던지고 말한다.
“최대한 빨리 밟아.”
그는 잠시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면서 답한다.
“네, 그러죠.”
창틈으로 미세하게 먼지들이 새어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데 감각들마저 예민해지니 죽을 맛이다. 어서 빨리...약을...
“도착했습니다.”
나는 몸을 거의 끌다시피 해 집 앞으로 간다. 곧, 계단이 나를 기다린다. 진짜 죽을 맛이다.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오른다. 호흡이 가빨라진다. 어지럽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방안으로 들어간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거의 반쯤 기듯 모르핀을 향해 간다. 손을 뻗어 주사기를 꽉 쥔다.
팔꿈치를 더듬어 정맥을 찾아내고 거기에 주사기를 꼽는다. 나른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환청은 사라진다. 대신 환시가 찾아온다. 검은 구멍이 천장위에 나타난다. 토끼굴, 토끼굴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것은 토끼굴이다.
뚝, 뚝. 그 안에서 피 몇 방울이 떨어진다. 그것은 빠르게 말라붙어 내 얼굴 위에 피딱지로 늘러 붙는다. 나는 계속 그 구멍만을 쳐다본다. 구멍의 시꺼먼 벽안에 선명한 붉은 글씨로 무언가가 써져있다.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그것을 읽는다.
“이제 모두...끝이다. 아름다운 친구여.”
가시관을 쓴 남자의 상과 함께 눈을 뜬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복 수 있는 것은 오직 희미한 형상들뿐이다. 몸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이대로 영원히 굳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 했다.곧 내 다리는 움직이기 시작했고(후들거리기는 했지만) 손에 다른 섬세한 감각들이 돌아오지 않을 뿐 팔 역시 휘두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조금만 있으면 손가락은 부드럽게 푸릴 것이고 나는 평소처럼 밖으로 나가 기타를 튕기고 여자를 꼬셔먹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걸리는 것은 내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이 두부 덩어리 같은 것이다. 분명히 어제까지 없었던 것인데. 하필이면 제대로 볼 수도 없는 탓에 뭔지 식별하기도 힘들다. 뭐지? 왜 이런, 그것도 상당히 큰것인데 어떻게 내 침대 위에 놓여져 있는 거지? 일단 그것이 뭐든 간에 나는 짜증을 내며 내 머리를 벽에다 몇 번 쎄게 박는다. 그러자 내 눈은 점점 제 초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것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냥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는 것만을 알게된다. 그것은 두부가 아니었다. 바로 어제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이던 여자아이였다.
“너, 이름이 뭐야?
“......”
“집은?”
“.......”
나의 질문에 그 애는 줄곧 침묵으로 답했다. 이렇다 보니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몸을 벽에 기댔다. 한참의 생각 뒤에 나는 그 애를 책임질 수 없으며 책임 질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애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응?”
그 애는 나를 살짝 놀란 듯 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나와 그애는 서로를 잊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 애에게 5만원권 두 장을 준 다음, 문을 닫았다. 그 애는 문을 몇 번 쿵쿵 두들겼지만 곧 조용해졌고 나는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기타를 잡을 수 있었따. 흙빛 하늘, 흙빛 햇살, 탁한 공기,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리고 그 완벽함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마지막 퍼들, 마리화나를 꺼낸다.
없다. 마리화나, 모르핀, 코카인....내가 그토록 열심히 모아두었던 약들이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사라져버린 내 자식들을 찾위해 분투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싱크대를 뒤적여보기도 하지만 꽁무니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온 집안을 뒤집어엎는다. 허나 결국 그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확 죽어버릴까? 아무 생각 없이 베란다의 창문을 열고 울타리를 향해 걷는다.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다. 마치 내 창문에 셀로판지라도 붙였던 듯 하늘은 숨 막히도록 푸르다. 푸른 하늘, 흰 구름, 프리즘처럼 투명한 태양빛과 맑은 공기에 나는 압도되고 만다. 오늘의 하늘은 아찔한 푸름이 넘쳐흐르며 신선한 바람을 토해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겐 이미 이질적으로 변해버린 이 풍경의 한 가운데에는 내 약봉투를 손목에 걸치고 울타리 위에 앉아있는 그 애가 있다.
“너, 도대체 뭐야?
그러자 그 애는 시원하고 섬뜩한 미소를 내게 보이며 답한다.
“신.”
신, 터무니 없는 말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끔찍하리만치 투명한 하늘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약봉투를 아무렇게나 던진 다음 내게 다가온다. 그녀의 한 걸음, 한걸음에는 마치 하늘을 받치는 듯한 무게가 실리며 내 심장을 짓누른다. 그녀가 내 턱을 그녀의 손가락으로 살짝 올리고 말한다.
“딱 2000년 만이지? 아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는 실수를 했다는 듯 한발짝 물러나선 머리를 긁는다. 잠시 뒤, 그녀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한다.
“여기 온 건 안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야.”
내가 물음으로 답한다.
“뭔데?”
그녀는 더욱 활짝, 그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내 앞으로 다가온다.
“인류종말.”
그녀는 그 말을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나에게도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말이었다. 인류 종말이라니, 그것도 말하는 사람이 사람인데(그녀에게 이런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어떻게 흥미가 없을 수 있겠나.
나는 그녀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인류멸망, 과연 어떤 형태로 진행될까. 물? 불? 아니 다시 정정하자. 좀더 잘 어울리는 표현으로. 그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될까. 왠지 모르겠지만 훨씬 멋있고 가슴뛰는 표현이다.
“어떻게 멸망할...아니 죽게 될지 너도 궁금하지?”
그녀는 역시 신답게 내 머릿속을 꿰뚫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구했다.
“좋아.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야. 종말은 이미 시작됐어.”
나는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하늘에는 운석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내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 종말이 아니야.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죽음, 수십만년 전 짐승으로의 회귀.”
“뭐?”
점점 더 타락해져가고 윤리와 도덕적 신념은 자리를 내주지.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려. 그 결과 사회는 와해되어 버리고 뭐...말 그대로 원숭이로 되돌아가는 거야. 어때?“
“뭐가?”
“훨씬 공정한 방법이라는 생각 안들어? 선인이든 악인이든 그냥 물로 드립따 쓸어버리는 옛날 방식보다. 이거야 말로 진정 그들이 선택한 종말이잖아. 안그래?”
“...그렇군.”
그 때 나는 내심 실망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그런 시시한 방법이 아닌 자극적이고 화끈한 방식이었는데.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 찰나, 내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거야?”
그냐가 방긋 눈 음을 친다.
“역시 넌 옛날부터 참 촉이 좋았단 말이야.”
그녀가 갑자기 내 가슴에 십자 선을 긋는다. 그리고 내 두 손을 꼬옥 잡는다.
“이제 너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되는 거야.”
“뭐?”
“메시아. 구원자.”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위인이 못 돼.”
“상관없어. 2000년 전에도 너는 그랬으니까. 너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면 돼. 너를 바꾸는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네가 할 일은 가시밭길을 걸어갈 각오를 하는 거야. 그리고 그 고통에 끝에 이 세상을 바꾸고 이 땅 위에서 사라지는 거지.
“사라진다고?”
“그래 본분을 다했으니.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냐. 영혼은 여전히 남아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될거야."
"메시아..."
메시아. 그 말에 왠지 모를 이상한 기사감이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에 고개를 끄덕인 듯한 느낌. 그 느낌에 순간 고민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싫어."
나의 말에 그녀는 당황한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나는 친절한 설명을 덧대주었다.
"나는 말이지, 지금 이세상이 좋아. 먹고싶을 때 먹고 치고 싶을 때 치고. 정말 너무 좋아 미쳐버릴 것 같애. 너에게는 타락한 걸로 보일 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스러워 미치겠어.
"너...정말..."
그녀의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투명하고 맑은, 유리구슬 같은 빛... 눈물인가?
"너도 이제는 타락했구나. 뭐....이해해줄게. 나도 너한테 너무 많이 기댄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곧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에게 약간이지만 미안한 감정이 들어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야, 너."
나는 기타를 꺼내들고 픽업을 잡았다.
"노래 한곡 할래?"
그녀의 두 눈이 슬픈 빛을 반짝였다. 슬픈 아주 슬픈 눈빛이 내 심장을 관통하는 듯 했다. 나는 그녀에게 선창을 권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노래했다.
"이제 모두 끝이다. 변함없는 친구여."
나 역시 같은 선율로 그녀의 노래를 받았다.
"이제 모두 끝이다 아름다운 친구여."
그렇게 우리는 서로 노래를 주고받았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아,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나날인가.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요."
"어머니, 난 당신을 따먹고 싶어요."
"안전한 곳도, 놀라울 것도 없어. 이것이 끝."
"가야할 곳도, 사랑할 것도 없어. 이것이 끝."
"그래, 이것이 끝. 우리 계획의 끝."
"그래, 이것이 끝 우리 모두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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