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님이나 다른 기사님들 싫망하실줄 모르겠으나 다른 시각을 가진 김 수영씨의 글을 소개합니다.
판금갑옷의 무용성
유럽의 기사군이 갑주를 통해 방어력을 확보한 군대라고 규정하기 보다는..
무거운 갑주와, 기존 기동성의 포기를 통해 가장 황당하고 어이없는 전술을 사용한 군대라고 규정하는 것이 명확합니다. 이것은 동양우위론의 편견이 아닌, 서구 유럽의 수많은 전쟁사 연구가, 전략가, 장군들이 지적하고 비웃었던 것들입니다.
기사군은 전술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술을 운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집단훈련과 명령체계조차 잡혀지지 않았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의 기마군과 같이 개인적 용맹을 통해 친분으로 이어진 몇몇만이 이어져 싸우는 행위는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군대라는 집단으로 운용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중갑주는 화기와 궁시, 파이크로 인하여 기마군의 존재가치가 완전히 상실된 이후에나 보편화된 갑주입니다. 판금갑옷인 풀플레이트나 하프플레이트류의 갑주는 이미 그 존재가치를 상실해가던 시대에서 통용되던 갑주였습니다. 무게는 60kg에 이르렀고, 한번 쓰러지거나, 지형조건이 나쁜경우에는 전투가 불가능했으며, 승마하기 위해서는 기중기가 필요했고, 이들을 지탱하기 위한 벨기에산 말은 속보이상의 기동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들은 오랜시간동안의 전투행동이 불가능했기에 사자왕 리처드가 얻은 사막의 기마궁수들과에서의 전투에서의 승리에서도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즉 전과확대가 불가능했습니다.
기마군은 몽고기병, 영국 장궁병, 셀주크 투르크의 기마궁사, 스위스 장창병과 핼버디어에게 잇따라 패배했으며, 전술적 가치가 상실되었습니다. 기마군의 전성기는 중갑주를 입고 돌격하던 시대의 것이 아니라, 사슬갑주와 창으로 무장하고 바이킹의 방패-벽을 꿰뚫던 시대의 것입니다. 중세초기에서나 이러한 기동성과 충격력을 가진 기병의 운용이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중기병의 운용에서 서양에서 존중받을 예는 중갑주로 무장한 기사군이 아니라, 규율과 전술적 행동, 그리고 이성적인 지휘로 유명한 비잔틴의 중기병입니다. 이들은 용맹할 뿐만 아니라, 명실공히 군대라는 집단으로 부끄럽지 않은 병과입니다.
또한 실지로, 동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던 병과는 중기병이 아닌 경기병입니다. 폴란드 경기병, 후사르라고 불리던 이 경기병은 활과 세이버로 무장했으며, 판금갑옷보다는 라멜라나 사슬갑주로 무장한 것으로 압니다.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수많은 제후와 왕들이 고심했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