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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을 실천하는 이경욱 서초구의원
이경욱서초구의회(열린우리당) 예결위원회 부위원장은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도 인간미가 물씬 풍겨 나는 구수한 동네아저씨다. 땅끝 마을이라는 해남(화산면 마명리출신)에서 농사일을 하는 5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는 인사말로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있는 고향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손위 형제들이 많아서인지 활발한 성격이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려운 집안 환경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당시의 많은 가난한 젊은이들이 그래 했듯이, 야간열차를 타고 맨손으로 서울 서초구에 상경하여, 신문배달, 음식점허드레일등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하루하루 희망을 쌓아 가던 중, 불의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얼굴의 흉터와 우측 시력(시각6급)을 잃는 불상사를 당하였다. 20세인 1975년, 가장 힘이 되어주고 있는 아내를 만나 방배동에 작은 식당을 개업한 후, 20여 년간 동일지역에 자가건물을 구입하고 '우정갈비'를 운영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열악한 환경 때문에 중단한 학업에 대한 후회가 남아, 늦은 나이(43세)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입검정고시시험을 위하여 지금도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출마지역(방배본동, 1동, 4동, 반포본동, 2동)인 서초구내에서 21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연소통장업무를 맡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다. 힘든 식당 일을 하면서도 동네노인정 정기위문, 독거 노인 음식제공, 불우이웃 주택수리 등 나눔의 삶을 꾸준히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행을 솔선수범 한 이 의원은, 1999년, 2005년 서울시장 표창을 수상하였다. 이 의원의 나눔과 봉사의 삶이 지역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위의 권유로 2002년 서초구의원선거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과분한 지지와 성원을 받았음에도 낙선하였다. 낙선의 아픔을 뒤로 하고 선거 다음 날부터 충실한 일상생활로 돌아가며 지지해준 지역주민들의 감사의 마음과 뜻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생활했다. 마침내 2006년 5,31지방선거에 재도전하여 작은 꿈을 이루었다.
'인생의 출발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근면성실함과 부지런함.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과 짧은 학벌. 30년 간 몸담고 자수성가 하게 된 제 2의 고향인 서초구민들의 밑거름이 되겠다'면서 '지역의 현안들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4년 뒤 모든 주민들의 격려의 인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점 부끄럼 없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 구의원 급여 100%를 지역의 발전과 주민을 위해 환언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애향심이 강한 이 의원은 1998년 김길진 전 화산면장으로부터 수상한 감사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화산면사무소 김태수계장으로부터 '독거 노인 등 힘이 부치는 노인들의 큰 빨랫감이 문제'라는 고향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전해 들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힘겨운 시절이었지만 대형세탁기(130만원)를 구입하여 희사했다. '화산면사무소 트럭에 세탁기를 싣고 면내 노인들의 큰 세탁물을 세탁한다'는 면민들의 칭찬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한다. 지난 추석 때는 화산고구마 200박스를 서초구청, 동사무소, 지역주민들에 판매하기도 하였다. 다가오는 28일, 29일 양일간 서초구청광장에서 개최하는 '해남농수산물 직거래장터'에서 "제2고향인 서초주민들에게 해남농수산물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판매하는데 톡톡히 한몫을 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운다. "가난하고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날 때의 마음을 잊지 말고 귀향은 않더라도 가끔씩은 고향을 방문하기 바란다"는 말로 많은 향우들에게 애향심을 강조한다. |
첫댓글 11월 24일 해남신문기사입니다. 이번 행사에 박병길 서초구청예산계장과 향우들을 위해 활동 많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