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왜곡일까요? 아님 압력일까요? 몇가지 지적을 하죠. 파월 한국군은 크게 두개의 지휘체계 아래 있었습니다. 먼저 주월 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 장군휘하의 비둘기, 백마, 맹호가 있고 북 베트남 국경의 다낭에 총룡 해병여단이 있었죠. 저도 참전용사를 여럿 아는데 어려서부터 그분들께 베트콩 머리를 잘라 요대에 달고 다니면서 위협을 한 뒤론 보복도 없고 작전이 편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제 눈에도 용감한 국군아저씨로 비쳐졌습니다. 이번에 구수정씨의 보도가 문제가 된건 극심한 VC로 인한 피해로 인해 주민들을 성분별로 조사 안전지대를 만드는 한국군의 Cut and Destroy작전이 미군의 search and Destroy보다 전과가 좋았다고 얘기하는데 분명히 국군이 이 안전가옥이라고 명한 자신들이 만든 안전지대 내의 촌락을 공격하고 심지어 월남군 장교의 부인을 강간도 했다는게 충격이었죠. 여기에 대해 채명신 장군도 인정하면서 하지만 파월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있었던 사건이고 태국, 미군, 필리핀등 많은 국가들이 참전했지만 한국군이 이런일을 저지르긴 처음이라 월남측에선 이제서야 한국군이 일을 치냐는 식이었다는군요. 남의 도움을 받는 약자가 할 수 있는 얘기였을겁니다.
월남, 한국전, 태평양전쟁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생존자의 변명은 자기가 잔혹행위를 하지 않으면 적이 먼저한다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의 경우는 특히 성폭행 문제가 심해서(미군의 경우에도 있긴 했지만 주로 불확정 다수에 대한 사격이 주류였는데 한국군은 양민의 여자겁탈을 주로 했답니다. 죽은 시체에서 물건 뺏는 절도하고요. 문제는 군인들의 급료문제였는데 사실 미군에 비해 형편없는 급료를 받기에(경부고속도로 비용에 써졌다는 말이 있지만 확실하진 않고)정상적으로 미군들 처럼 부대 주변의 직업여성을 상대하긴 힘들죠. 그 피해가 너무 심해서 한국에서 매매춘 여성들을 데려와 공창을 차릴생각을 했답니다. 당시의 한국군 명령체계는 문제가 있었다면 대부분 산골 무학자나 고아등 죽어도 상관 없는 사람들을 보냈고 그나마 대학출신들은 사령부 근무를 주로해서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을 전방으로 내 몰았고 문맹률이 거의 30프로를 육박했는데 새로운 미제 무기를(M-16이나 크레모아)다룰줄 몰라 안전사고도 많았답니다.
전에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얘기할때 민간차원의 범죄와 국가차원의 범죄를 얘기하시면서 그것은 다르다고 하셨는데 그럼 이 월남의 경우는 국가차원이 아닐까요? 한국, 베트남 수교시 제가 알기로도 그리고 외교통상부의 아시아과에서도 이 한국군 범죄 문제가 세상에 불거지기 전에 조속히 처리하려고 노력했고 우리는 거기에 대해 일언 반구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겨례 21의 구숙정씨와 같은 분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에 달가운 존재가 아닙니다. 아마 전쟁때 일본의 범죄를 이렇게 캐고 다니면 일본 내에서도 달가와 하질 않는단 말을 들었습니다. 두 나라가 사이가 나쁘면서도 교과서 개정하는 문부성의 새 일본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나 한겨례신문사에 방화하는 빨간 모자의 해병대 예비역(보아하니 예비군도 끝나고 군복도 뽀다구 하나 않나던데 그 나이면 자식들에게 부끄러운줄 알것이지)이나 전부 제 눈에는 유치해 보입니다. 마치 우리 어려서 마징가나 태권V가 적을 때려부수는걸 즐기는 듯한 태도입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폭력으로 인해 남에게 지대한 피해를 입히고도 이런 현실에 대해 맞설 용기도 없고 논리가 막히면 욕이나 하며 매국노 운운하는 그런 사람이 한 일 모두 너무 많다는겁니다. 월남 참전 용사중 가장 논리있게 자기를 변호하는 사람이 그러더군요. 너무 무서워서 자기가 뭘 했는지 몰랐다고요. 아니면 한국을 떠날땐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투사였는데 이제와서 자기들을 용병취급한다고요. 하지만 논리상의 오류는 여기 있습니다. 첫째 군인 각자의 생각은 어쨌던 간에 우리나라는 당시에 새로 들어선 군사정권이 공화당을 창당했고 거기에 따라 일본과도 굴욕적 외교수립(우리와 베트남처럼)울 통해 공화당 창당자금을 가져왔고 그뒤 새로 들어선 존슨행정부의 비위를 맞춰 추가 자금지원뿐 아니고 박정군의 인정을 받기 위해 파월을 개시했습니다. 흔히 외자유치를 위해서였다지만 파월장병이 가져온 달러는 생각보단 저조했고 대신 미 군수업을 한국군이 대신해서 한진같은 회사가 성장합니다. 한진은 A Frame Troops란 별명이 붙었는데 베트공의 호지명 루트를 보고 그들이 하면 우리도 한다는 식의 방법으로 밀림을 한진직원들이 지게로 짐을 나르며 개척했고 이게 나중에 대한항공의 모태가 됩니다. 전 이 철없이 까부는 한국과 잘못한걸 한국인처럼 강하게 부정하는게 아니고 애매한 표현(통석의 념이란 표현은 일본 황실에서나 쓰는 말이고 일반인은 알아듣지 못함)이나 쓰며 비겁하게 과거를 지우려는 두 민족을 보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즉 전쟁을 수행하는데 눈에 보이는 객관적 전력(무기, 병력, 기술등)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돈들이지 않고 얻을수 있는 전력인 사기, 군기등을 강조하는 비인간적 국가란 겁니다. 당시 한국전이 끝난지 13년, 5.16 이후 3년뒤인 상황에서 해외파병이란 무리를 초래했고 거기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군인, 민간인 개개인의 피해를 정부는 무시했습니다. 일본도 태평양전쟁시 중국에서도 힘든 상황에서 철강 생산 50배, 석유, 고철수입을 독점한 미국에 장기전이 될수 있는 도발을 했고 그 공백을 군인정신, 사무라이등으로 채우려했습니다.
일단 우리나 일본이나 국가의 책임 민간의 책임이란 선을 긋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가 가진 진정한 한계인 인간성 말살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비판정신 때론 아프겠지만 우리 과오를 반성하고 재 조명하고 남자답게 과오를 인정해야 하리라 봅니다.
: 어... 이건 디코에서도 한창 문제됐던 거였는데
: 정확한 것은 제가 신문이나 뉴스를 못봐서 잘 모르지만
: 참전하신 분과 인터뷰한게 왜곡되었다고 본 기억이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