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근초고왕에서는 근초고왕의 부인을 부여화, 위홍란 두 명으로 둡니다. 그러면서 근초고왕의 어머니 소숙당 진씨 부인을 진고도(김형일 분)의 누이로 설정하지요.
그러나 삼국사기에서는 이와는 다른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 二年, 以王舅<眞高道>爲內臣佐平, 委以政事. 冬十一月, <高句麗>來侵北鄙.
2년, 왕의 외삼촌 진고도를 내신 좌평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 삼국사기 권 제 24 백제본기 2 근귀수왕
여기에 따르면 근귀수왕의 외삼촌은 진고도로, 근귀수왕의 어머니는 진고도의 누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귀수왕의 어머니는 곧 근초고왕의 왕후이니 근초고왕의 왕후는 곧 진씨가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근초고왕의 인물 설정은 틀렸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舅 : 시아버지, 장인, 외삼촌
근구수왕은 혹은 귀수라고도 합니다.
남당유고 상장돈장에는 근초고왕의 처이자 근구수왕의 어머니를 비류왕 30년(333)조에 내신좌평으로 삼은 진의(眞義)의 딸이라고 합니다.
위의 근구수왕 2년의 기사에 나타나는 진고도는 남당유고에 의하면 장인으로 해석해야 하며, 근구수왕의 처인 아이부인(침류왕의 어머니)의 아버지라고 보아야 하는데, 남당유고에 의하면 아이부인의 아버지는 신라인 백발입니다.
진고도가 신라인 백발인지는 현재까지 자료의 부재와 해석의 난맥상이 있어 추정이 될 뿐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과연 그 당시 백제가 신라인을 왕비로 삼았을까요?
삼국사기를 보니 남당유고와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남당유고에는 길선의 딸 전씨가 초고왕과 고이왕의 어머니라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침류왕의 어머니 아이부인도 신라인 백발의 딸, 문주왕의 어머니도 신라인 출신인데 역시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삼국사기에 없는 기록을 논지로 삼은 것 같군요.
삼국사기는 근초고왕 조에 진정을 왕후의 친척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왕후는 당연히 진씨이지요. 공영방송이라는 KBS 한심스럽습니다. 세금이나 올린 생각이나 하고...
王舅는 장인인지 외삼촌인지 구별이 안되지만 남당유고는 진고도를 근귀수왕의 장인이라고 했군요. 2대가 내리 진씨로부터 비를 맞이한 셈이네요. 근초고왕의 비를 진의의 딸이라고 한 남당유고의 설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근귀수왕의 비를 신라인이라고 한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근귀수왕이 신라인 眞氏의 딸을 비로 맞아들인 것이라고 하면그 先代의 眞淨 또는 眞義는 왜 진씨가 되는 건지요.
아신왕 이후로 정권이 진씨에서 해씨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아신왕 때 고구려에 수도가 정복을 당하면서 지배층이 교체된 거죠..그러다가 문주왕이 죽고 해구가 밀려나면서 다시 진씨로 교체됩니다..
신라인 중에는 眞氏가 없는데, 아이부인의 아버지 신라인 백발이 진고도와 동일인인가에 대해 자료의 부재로 인하여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산국을 정벌한 이종은 내물왕의 2세손이고 어머니는 백제공주입니다. 그런데 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고, 이사부(태종, 세종의 아버지)는 내물왕의 4세손이며 어머니 역시 백제공주입니다. 역시 박씨 성을 하사받았읍니다.
박이종과 이사부(박태종) 모두 어머니가 백제공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보이므로 백제에서 신라로 온 사람들의 핏줄이 박씨가 아닌가 추측을 하지만 과대망상은 아닌지...
해씨는 부여씨와 마찬가지로 왕족이라고 봅니다. 부여씨는 온조계인 반면 해씨는 비류계입니다. 즉 부여계 왕족이 쭉 정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주왕 때부터 정권이 진씨 손으로 넘어갔다고 믿고 있습니다.
온조계가 부여씨고 비류계가 해씨라면..추모왕과의 관계와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추모왕은 고씨지만 사실 해씨일 텐데 비류는 몰라도 온조는 추모왕의 아들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잖아요..아 그러고보니 소서노의 남편도 해씨겠군요..그럼 온조가 나라를 세우면서 해씨성을 버리고 부여씨로 한 건가..이것 참 난감하네요..
근초고왕의 비는 "OO왕후 진씨"가 맞을겁니다. 진고도는 왕구 즉 왕의 장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