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농부의 아들이다!
어렸을 적, 눈이 녹으면 냇가에서 파릇한 미나리도 뜯고, 햇살 좋은 가을 오후엔 집안 마당에서 콩 수확을 위해 긴 막대를 휘두르기도 했다.
나의 시골 생활은 이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학습의 장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중계동 104마을은 그러한 세상으로의 통로, 나아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자 재료였다.
그곳에선 죽음과 삶이 공존했고, 하루를 마감하는 노을과 모든 생명에 에너지를 흩뿌리는 아침 해가 떠올랐다.
여기저기 허물어져 내동댕이쳐져 있는 차가운 벽돌 부스러기들과 하얀 눈 아래 몸을 숨겨 그 추태를 보이지 않으려는 슬레이트(석면)와 지붕의 천막들 그리고 그 새까만 벽돌과 슬레이트 사이에서 빼꼼이 고개를 내밀어 올라오는 이름 모를 잡초들, 쓰러져가는 담벼락의 그늘진 그곳을 끈질기게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들이 있었다.
처음 104마을에 들어섰을 때, 코를 파고드는 케케한 냄새와 가느다란 몇 개의 쇠 파이프에 의지한 채, 담벼락이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에 ‘사회적 접근’으로 관점을 달리해야 하는가 라는 내적 갈림길도 있었지만 사실, 그러한 공간이 냄새나고 보기 불편한 현재 우리 인간들의 치부일지라도, 역설적이게도 그곳은 가녀리지만, 아름다운 새순이 올라오는 원초의 대지이기도, 그 순이 자라 찬란한 꽃망울을 터트리는 완벽한 자연의 터전이기도 하다.
사라짐은 죽음이 아니고 다음 세대로의 전달자(Transfer) 역할을 하며, 그 진리는 우주의 빅뱅(Big bang)이 일어난 이후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현재 104마을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과 흔적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조각들을 뇌리에 깊이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며 작업을 진행하였다.
아스팔트, 벗겨진 페인트의 벽, 전통가옥의 기왓장 그리고 나무와 꽃등의 질감, 모노톤(흑백)에서의 단순화된 오브제(Object)들은 분명 사물들의 본질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작가 개인적으로 가장 익숙하고, 작업에 거리낌이 없는 필름이라는 매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내면의 작업에 몰입하게끔 귀한 용기와 현안을 주신, 저의 어머니에게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이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