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나 무 2
김홍은
바람이 일면 솔바람 소리를 듣고싶고, 바람이 자면 솔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바닷가에 가면 파도소리가 좋고, 산에 오르면 솔잎에 이는 솔바람 소리가 좋다. 아마도, 소나무를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나무의 잎에서 묻어나는 청솔가지 타는 은은한 향기는 고향의 냄새가 묻어있는 것 같고, 생소나무에 배어있는 향기는 백의민족의 향내가 아닌가 싶다.
정송오죽(淨松汚竹) 즉, 깨끗한 땅에는 소나무를 심고 지저분한 땅에는 대나무를 심는다고, 소나무는 오염되지 않은 토박한 땅에서 자란다.
소나무를 바라보면 조선조 시대의 추사(秋史)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생각난다. 김정희가 윤상도(尹常度)의 옥(獄)에 관련되어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할 때 사제간의 의리를 지킨 것에 감탄하여 이상적(李常迪)에게 스산한 겨울 분위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 있는 모습을 그려준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사제간의 마음을 표현한 지조와 절개를 담았음을 어찌 높이 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림에서 소나무는 장수(長壽)를 뜻함이요, 영원을 뜻하여 송수천년(松壽千年), 송백불로(松柏不老)라하며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도 삼고 있다
중국의 재정고(梓丁固)란 사람이 어릴때, 꿈에 소나무가 배위에 돋아났는데 해몽가가 말하기를 “송(松)은 한자로 풀이하면 십팔공(十八公)이니 십팔년 후면 공(公)에 오를 것이다” 하여, 열심히 노력하니 18년 후에 재상의 벼슬을 했다고 전해온다. 이로부터 소나무의 꿈은 행운이 다가올 징조로 해몽을 한다.
조선시대에는 사람도 아닌 소나무가 정이품의 벼슬을 받아 우대를 받으며 아직도 살아 남아있다. 세조가 난치병으로 속리산 법주사의 약수를 마시러 가다가 가마가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될 때, 가지에 가마가 걸릴것 같아 임금이 “연걸린다”하고 소리를 지르니 소나무 가지가 번쩍 하늘로 처들려 무사히 지나갈 수가 있게 되자, 이를 기이하게 여겨 벼슬을 내리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
소나무를 옛부터 묘지 주변에다 심어왔고 길흉화복에 연관을 시켜 왔으며 살아생전에는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고 죽어서도 소나무로 만든 관속에 담겨 땅에 묻히는 불가분의 인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보호하려고 봉산(封山)과 금산(禁山)을 정하여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고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송금제도(松禁制度)를 법령으로 만들기까지 한것으로 보아 소나무를 귀하게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 정조(正祖)임금은 부친인 사도세자를 수원으로 이장 후, 소나무를 심고 보호 관리를 하였는데 땔감이 부족했던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를 베어가 밑둥만 남게 되었다. 임금은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나무가지에 엽전을 매달아 두었다. 정이나 나무를 베어갈 처지라면 엽전으로 나무를 사라고 하는 뜻을 담아두자 나무꾼들은 깊이 감동하여 나무를 벨 수가 없게 되었단다.
옛날에 양송천(梁松川)이란 사람이 고을 원님이 되어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목수는 상량하며 톱질을 하고, 송천은 친구와 더불어 그 아래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솔씨 한 알이 소반 가운데로 떨어졌다. 송천이 아이를 불러 동산에다 심으라며 “후일에 이 솔이 자라거든 베어다 관판을 만들거라” 하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하는 말이 “그 솔이 장대하여 열매가 맺게 되면 씨를 따다 뿌려 자라거든 내 관재를 하리라” 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목장이 말하기를 “훗날에 두분이 하세(下世) 후에 소인은 그 나무로 마땅히 두분의 하관을 짜리다.” 하여 두 사람은 박장대소를 하고 곡식 닷섬을 가져와서 그 말에 대한 상을 주니, “슬프다, 사람의 운명의 짧고 길음이 어찌 사람의 입에 있으리오” 하더란다.
성주풀이에 보면 성주신과 솔씨의 근본은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으로 성주는 천상의 천군에 있다가 하늘에서 오는 제비를 따라 제비원에 들어가 숙소를 정하고 집짓기를 원하여 제비원에서 소나무 종자를 받아 산천에 뿌리게 되어 퍼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소나무 숲을 보면 나무 밑에는 풀 중에 김의털이 잘 자라고, 나무로는 진달래, 철쭉이 잘 산다. 소나무는 언제 어디서 보나 고고하면서도 선비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은 솔잎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산촌에서는 송화가 필 때면 송화가루를 받아다 다식을 만들어 먹는다. 한가위에는 솔잎을 따다가 송편을 쪄 먹고, 푸른 솔방울과 새순으로 술을 빚고, 송진을 내어 약재를 만들고, 솔가지를 쳐서 말려 두었다가 요긴한 땔나무를 만들기도 하였다. 관솔을 따다가 밤에는 어둠을 밝혔고, 그외 황개피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소나무의 쓰임새는 이뿐만이 아니다. 함지박도 만들었고, 집을 지을 때 목재로는 제일이며 거북선도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일본의 법륭사(法隆寺)에 있는 국보1호인 불상(佛像)도 소나무로 만든거란다.
소나무중에는 강원도의 금강소나무나 전라도의 춘향목이 유명하고, 숲으로는 충남의 안면도를 손꼽겠지만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淸泠浦) 소나무 숲도 빼놓을 수가 없다. 단종(端宗)의 슬픔이 서려 있는 곳으로 그 숲속을 거닐면 지난 날의 아픔이 아직도 가슴으로 안겨온다.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고 15세의 어린 나이로 유배되어 머물던 곳으로 아직도 수백년 묵은 소나무만 말없이 서 있다. 소나무 숲속에는 노산군이 소나무위에 올라가 놀았다는 육백년된 관음송(觀音松)이 오고 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비바람에 깎인 채 서있는 금표비(禁標碑) 앞에 서니 더욱 마음이 저려온다. 서강(西江)의 물은 예나 지금이나 삼면을 가로 막고 유유히 흐르는 물결소리는 노산군을 모시어다 청령포에다 가두어놓고 서울로 떠나가던 전날밤에 왕방연이 냇가에 앉아 읊었다던 시조(時調)소리같다.
『천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며 밤길 예노매라.』
노산군은 밤이와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밤은 깊어 삼경인데 달은 소나무 가지사이로 밝고 어디서 우는지 두견새 울음소리만이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으니 그 심정 오죽 하였을까. 노산군은 한많은 그 마음을 이렇게 읊어 놓았다.
『달밝은 밤 두견 울 제 수심 품고 누 머리에 지혔으니 네 울음 슬프거든, 내 듣기 애닲아라. 여보소 세상 근심 많은 분네 애어 춘삼월 자규루에 오르지마소.』
하였으며 또한 이렇게도 적어 놓았다.
「한 번 원통한 새가 되어 임금의 궁을 남으로부터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에 있도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이 깊이 아니들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이 닿지 않는도다. 우는 소리 새벽 묏부리에 끊이니 지샌 달이 희었고, 뿜는 피 몸 골짜기에 흐르니 지는 꽃 붉었도다. 하늘은 귀먹어 오히려 애닲은 하소연을 듣지 아니하시거늘, 어찌다 수심 많은 사람의 귀만 홀로 밝았는고.」라고 하였다.
청령포의 관음송아, 너는 노산군의 영혼과 함께 애닲어 솔 바람소리로 나마 오늘도 그렇게 울고 우느냐.
첫댓글 소나무에 대해서 많은 걸 알았습니다
우리에게 이익을 남기고 많은 추억과 전설을 남기는 소나무들이.....치료하기 힘들다던 재생충병에 요사이 시름한다고 하니 애처롭습니다......
교수님 어느새 문학기행 다녀오셔서, 청령포의 애절한 사연을 소나무에 쏟아 붇고 계시는군요. 단종임금이 소나무2를 읽어 보시면 그래도 나를 이렇게 애닲게 슬퍼해 주는 분이있어 한시름 놓겠다고 하시겠군요.
아침에 수필을 읽으니 마음에 와 닿는군요. 일상에 빠져 바쁠때는 미처 읽지 못하였다가 지금에서야 읽었습니다. 아마도 문학기행을 다녀 오신 후 에 쓰셨나봅니다. 소나무에 대해 많은 일화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정확한 글을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요. 교수님 글 감사합니다.
무궁무진한 소나무에 대한 지식과 벌써 써서 올리신 청령포 관음송에대한 감상을 읽으면서 감개 무량합니다. 그런 열정 언제 다 전수하시려는지요.
소나무에 대한 많은 지식과 청령포 관음송의 한 많은 노산군의 한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듯해 마음이 애절하네요.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데 사람도 강물처럼 하루도 머물지 못하고 지금도 흐르고 있답니다. 오늘의 배를 힘차고 의미있게 보냅시다.
소나무에 대한 지식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저 역사에 흐름은 모르고 생활에 쓰여지는 계열만 알고있었지요 요번 문화기행에서 많은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우리민족과 삶을 같이하는 소나무, 그림, 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문학기행은 참여하지 못했지만 교수님 글을 통해 소나무의 많은 것을 담아갑니다.
고향앞을 흐르는 물이 서강인데 서면에서 평창강과 합류가되어 청령포로 흘러들지요. 몇번이나 그곳을 다녀왔지만 단종의 애달픈 사연을 묵묵히 바라보았을 관음송에 대한 고찰은 부족했는데 교수님의 작품을 통해가슴에 담아봅니다.
김정희가 윤상도(尹常度)의 옥(獄)에 관련되어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할 때 --->옥에 관련되어... ...살펴보셨으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