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휘 _ 강 석 희
지휘자 강석희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다. 동아음악콩쿨, 중앙음악콩쿨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창악회, 아시아 작곡가 연맹, 미래악회 등에서 여러 창작곡들을 지휘하였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지휘연구원에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그라쯔 국립음악원 지휘과에서 Martin Turnovsky를 사사 하였고, 오스트리아 짤쯔부르크 국립음악원 모짜르테움에서 관현악지휘(Michael Gielen) 및 합창지휘(Walter Hagen-Groll)를 전공하며 두 과정 모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여 디플롬 및 Magister를 취득하였다.
그는 Budapest Symphony Orchestra, Nuernberger Symphonker, Romania Oltenia State Philharmonic Orchestra, KBS 교향악단, 수원시립교향악단, 서울시교향악단, 부천시립교향악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 원주시립교향악단, 제주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교향악단, 충남도립교향악단, 바로크 합주단 등 국내 유수 교향악단과 앙상블을 지휘하였다. 오페라와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음악을 소화해내는 그는 섬세한 지휘와 탁월한 곡의 해석력을 지닌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수원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단국대학교 교수, 한국음악협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사단법인 한국지휘자협회 이사, 전주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재직하고 있다.
바이올린 _ 김 남 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인이자 존경받는 교육자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은 국내 문화계의 선두에서 예술문화발전에 이바지해 오고 있다. 1974년, 오랫동안 수상자가 없던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국제무대에서도 명성을 떨친 그녀는 이 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국내외 정상급 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뛰어난 음악성과 탁월한 연주력을 인정받았으며, 뉴욕 카네기홀, 링컨 센터의 알리스툴리홀, 워싱턴의 케네디 센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동경 야마하홀 등에서의 독주회로 세계무대에서 청중과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광복 30주년 음악회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주요 음악축제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온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은 대한민국 음악제,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음악제, 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음악제, 호암아트홀 개관기념 음악제, KBS홀 개관기념 음악제, LG아트센터 개관기념 음악제, 광복 50주년 기념음악회,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실내악축제 등을 통해 꾸준한 연주를 선보여왔다. 1998년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회’(5회), 1999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회’(3회), 2000년 ’로맨틱 소나타 연주회’(4회)를 통하여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다시 한번 큰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국제콩쿠르의 심사위원 및 국제 뮤직페스티벌의 초빙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그녀는, 사라사테(스페인), 차이코프스키(러시아), 시벨리우스(핀란드), 퀸 엘리자베스(벨기에), 파가니니(이탈리아), 쾰른(독일), 하노버(독일), 티보바가(스위스), 대만, 싱가폴, 도쿄, 서울국제(전 동아, 한국) 등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적인 음악 아카데미와 대학들에 초빙교수로 초청을 받기도 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은 난파음악상(1980), 음악 동아 올해의 음악상(1985), 채동선 음악상(1987), 한국음악평론가상(1989), 옥관문화훈장(1995), 대한민국 예술원상 음악부문(2008)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6년에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수여하는 금호음악스승상과 2013년 대원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대원음악상 특별공헌상 수상함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은 경희대 교수 및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93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으로써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인이자 예술인으로써 클래식 음악과 기초예술문화의 저변확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첼 로 _ 박 상 민
1987년 세계적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사상 최초의 최연소 종신단원으로 입단하여, 수년간 미국을 비롯한 유럽각국에서 많은 연주활동을 해온 첼리스트 박상민은 줄리아드 음대를 3년만에 졸업하였고 메네스 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콩쿠르 에서 최고상을 수상함으로써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4회 협연하였으며, 뉴저지 주지사로부터 음악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레이건 대통령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백악관과 케네디 센터 등에서 연주하였고, 미국 뉴저지 상, 하 위원 들로부터 공로상을 받은바 있다. 미국을 주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링컨센터 와 케네디 센터 등에서 초청 독주회를 가졌으며,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줄리아드 오케스트라, 알라바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다. 첼리스트 박상민은 미국에서 Hartwick summer music festival 초빙교수, Rowan University 초빙교수를 역임한바 있으며, 코리안심포니 수석단원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하여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수원시향, 부산시향, 대전시향, 광주시향, 코리안심포니 등과 협연하였고, 비르투오조 현악4중주 단원, 예음 실내악단, 뉴아시아 쿼르텟, 화음 실내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연주회를 해왔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우수한 재원들로 구성된 KNUA String Ensemble을 구성하여 국내 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 일본 등지에서의 초청연주를 통해서도 많은 호평을 받는 등 끊임없이 다양하고 깊이있는 실내악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그는 서울 스트링 쿼르텟 리더, 첼리스타 첼로앙상블 리더, 서울 스프링 실내악축제 첼리스트, 대관령 국제음악제 교수진, Lasen String 후원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program
J. Brahms / Tragic Overture in d minor, Op. 81
브람스 / 비극적 서곡
J. Brahms /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브람스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I . Allegro
II. Andante
III. Vivace non troppo
J. Brahms /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브람스 / 교향곡 2번 라장조, 작품. 73
Ⅰ. Allegro non troppo
Ⅱ. Adagio non troppo
Ⅲ. Allegretto grazioso
Ⅳ. Allegro con spirito
Program note
J. Brahms / Tragic Overture in d minor, Op. 81
브람스 / 비극적 서곡
“비극적 서곡”의 스케치는 1870년 이전에 이루어졌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딸 율리에 슈만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1869년 율리에는 백작에게 시집갔고 브람스의 상처는 컸다. 고통스런 그의 마음은 ‘알토 랩소디’란 명곡을 낳았다. “비극적 서곡”의 재료가 적혀 있는 스케치 수첩의 대부분은 ‘사랑의 노래’ 와 ‘알토 랩소디’를 위한 스케치가 차지하고 있었다. 서곡의 재료와 ‘알토 랩소디’가 브람스의 심리적인 면을 반영했으며, 당시 브람스의 심경은 ‘사랑과 슬픔’ 혹은 ‘사랑의 슬픔’으로 묘사할 수 있겠다. 1871년에 작곡된 ‘운명의 노래’에는 ‘알토 랩소디’의 영향이 남아 있다. (연주시간 : 약 12분)
J. Brahms /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브람스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1885년 브람스는 교향곡 4번을 완성하고 나서 곧 다음 5번 교향곡 구상에 들어갔는데, 1887년 여름에 이 곡은 교향곡이 아니라 파격적인 이중 협주곡으로 탄생했고 브람스의 교향곡은 모두 4곡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과 브람스는 20대 초 젊은 시절에 만난 뒤 평생지기로 지냈다. 가끔 음악을 놓고 사소한 다툼을 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곡이 작곡되기 7년 전의 일. 요하임은 메조소프라노 가수인 아내 아말리에와의 사이에 둔 여섯 자식 중 막내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이혼소송을 냈고 여기에 브람스가 끼어든 것이 큰 빌미가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브람스는 요하임과의 관계 복원을 위해 여러 모로 애를 썼다. 바이올린 소나타 2번과 3번을 작곡했던 것도, 5번 교향곡으로 구상하고 있던 악상을 이중 협주곡으로 형식을 바꾸었던 것도 요하임과의 멀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요하임의 조언을 구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회복되었고 ‘더블 콘체르토’는 요하임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단지 친구와의 화해 목적만으로 ‘더블 콘체르토’를 썼다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가 아닐까.
브람스는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에 관심이 컸는데, 말년에 역량이 성숙되자 이런 형식의 곡을 작곡하고자 한 자신의 의지를 이루어낸 소산이었을 것이다. (연주시간 : 약 50분)
J. Brahms /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브람스 / 교향곡 2번 라장조, 작품. 73
교향곡 1번에서는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브람스는 교향곡 2번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더 많이 보여 주고, 극적인 것보다 서정적인 이상을 더 강조했다. 사실 교향곡 2번은 가장 브람스다운 네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당시에는 ‘목가적’ 혹은 ‘빈 풍의’ 교향곡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두 가지 평가 중 첫 번째는 정확하다. 자연에 대한 사색도 작품의 한 가지 주제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음악에서 자연을 상징하는 요소들(호른 소리, 새 소리 같은 플루트나 클라리넷 등)이 풍성한 화음들 사이에 숨어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어두운 면도 있다. 브람스도 인정했듯이 감상적인 면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활달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1악장은 왈츠와 비슷하지만 간혹 분위기가 불분명할 때도 있다. 주로 애수에 찬 트롬본의 소리로 표현되는 이런 부분들은 불협화음 카논이 되어 곡의 전개를 돕는다. 2악장은 폴리포니가 비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이끌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분위기는 가벼워진다. 다음으로는 가볍고 우아한 멜로디와 자극적이고 빠른 춤곡이 번갈아 나오는 인테르메조가 이어진다. 피날레는 브람스의 관현악 작품 중에서 축제의 환희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부분으로 강약과 신바로크의 선형이 종결부를 훌륭하게 마무리 했다. (연주시간 : 약 4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