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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전에..
소재가 민감합니다..'주류'가 주소재이지만 불건전한 내용은 아닙니다..ㅠㅜㅜ
시간순서가 마구잡이로 바뀜으로 주의바랍니다..(현재-과거-현재-과거...-현재)
생소한 용어로 읽다가 머리가 뽀개질수도 있습니다..밑에다가 용어정리를 쫙해놓았습니다..ㅜ
문제가 생길시에는 자삭하겠습니다..
드 림 Dream
"큐라소 칵테일, 있나요?" "네, 과일 리큐어는 어지간한 건 다 있으니까요. 뭘로 드릴까요?" "드림, 레드 큐라소로 만들어 주세요."
드림을 주문하는 손님은 꽤 오랜만이었다. 희미한, 그러나 결코 탁하진 않은 카운터의 주황색 조명등 아래에서도 반듯한 행색이 뚜렷한 그 손님은 나이가 꽤 어려 보였다. 아무리 늙게 보아도 대학을 이제 막 졸업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혼자 온 것일까, 따라온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게 표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잠시 손님의 얼굴을 살펴보다 행여 눈이 마주쳐 손님을 언짢게 할까 이내 고개를 돌려 선반으로 향했다. 수많은 리큐어들의 사이에서 레드 큐라소를 찾는 일은 쉬웠다. 두툼하고 묵직한 유리병 너머에서도 선명하게 부상되는 붉은 빛. 역시 이탈리아의 위험한 태양 아래 자라난 오렌지의 향기와 빛이다. 드림-Dream-.., 깊이 있는 진홍 속에서, 코르크 마개를 열지 않았는데도 느껴지는 블러드 오렌지의 향에 나는 잠시 정신이 아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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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만큼 하고 싶은 일은 커녕 소소하게 즐기고 있는 취미조차 하나 없었다. 그런 상황 속의 나에게 나의 평생을 걸어 낼 진로라는 것의 개념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에게 있어 학창시절의 목적이 되는 목표는 더 높이 올라가는 것 뿐이었다. 지금 가능한 것보다 더 높은 성적, 지금 가능한 것보다 더 높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 지금 가능한 것보다 더 높은 무엇인가를 향해. 그것은 그 때의 부모님과 학교에서 그들이 학생들에게 끝없이 가르쳐온 것이었고, 나는 그에 순응함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에 거부감을 보이며 다른 무엇인가-각자가 생각하기에 나는 이것을 위해 살아간다 라고 그들이 생각했던 것들, 자잘한 수집품들에서부터 취미나 외모 꾸미기나 게임이나 연애등-를 찾아다니는 나 이외의 수많은 급우들을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일관하며, 더 놓은 곳으로 향함을 나에게 명령한 그들-학교와 부모님-이 나의 모든 미래를 책임져 주리라 생각했다.
* * *
큐라소. 증류주에 오렌지의 과피를 침지시켜 달콤함과 향을 돋군 오렌지 리큐어로, 무색 투명의 화이트, 숙성시켜 주황색을 띤 오렌지, 화이트 큐라소에 쓴 맛을 내는 색소를 탄 레드와 블루, 그린 큐라소가 있다. 그 중에서 드림을 만들 때 쓰이는 것은 오렌지 큐라소나 레드 큐라소인데, 나는 단연 레드 큐라소를 즐겨 사용했다. 눈으로 전해지는 향취에 시신경이 턱 막혀버릴 만치 강한 원색의, 그러면서도 맑게 흐르는 붉은 빛이 나를 들뜨게 했다. 이번에도 피할 수 없이 숨막히는 가시광선에 나는 즐거워지고 말았다. 셰이커를 흔드는 나의 양손이 여느 떄와 다르게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런 감각에 취해 본 것이 얼마만인가. 셰이커 속에서 잘 섞인 브랜디와 레드 큐라소를 칵테일 글라스에 조심스레 옮겨 붓고, 그 위로 아니스 리큐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한 방울 일지라도 원래는 아니스 리큐어 또한 셰이크해서 내놓은 것이 정식 레시피지마는, 나의 사사로운 고집과도 같은 자존심으로 나는 아니스 리큐어를 글라스 위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드림을 완성해 내었다. 글라스에 어리는 아니스 향의 파문에 나는 드림을 주문한 젊은 손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젊은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 칵테일 글라스를 받자마자 잔을 단숨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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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진학한 일류 명문 대학이었음에도, 나는 어딘지 잘 스며 들지 못한 채 떠다니는 캠퍼스의 부유물이었다. 나는 대학이 나에게 있어 목적 그자체이길 바랐고, 그 이상으로 내가 찾는 것은 그 앞에 더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캠퍼스의 학생들은 그 앞까지 손을 내밀어 뻗어, 흔들리는 버스 안의 손잡이 같은 사회에 제각각 잡기 편한 것을 찾아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흔들림 속에서 내가 잡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울렁거리는 사회의 방향에 여기저기 부딫히고 있었다. 그러자 부모님은 나의 손을 잡아 끌어 경영학과에 나의 손을 묶어주었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단단한 매듭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괜찮을 거라며,작게 웃어 보였다. 나는 거기에 감사를 표하고, 묶인 손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더 이상 중심을 잃고 부딫히진 않을 것이리라고, 그것에 나는 안도하였다. 이제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었다. 흔들리는 버스의 손잡이를, 하고 싶은 일 따위를 더 찾아 헤메기에는 나는 지나치게 안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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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뇨, 지금은 됐습니다." 아무리 짧은 시간 내에 몇 모금으로 끝내는 쇼트 드링크 칵테일이라지만 저렇게 급히 들이키는 건 좋지 않을 터이다. 한 잔 더 달라고 했다면 말릴 목적으로 질문했기에 다행이었다. 나는 손님이 나이가 어린 것도 있고 해서 급성 알코올 섭취쇼크를 염려해 소다수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혼자 오셨나요, 아님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대개는 최장 40분 정도까지 길게 마실 수있는 롱 드링크를 주문해 오래도록 앉아 있거나 쇼트 드링크라도 입만 홀짝이며 시간을 때우는 게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또한 처음 맞이했을때의 행색에서 이 손님은 전혀 누굴 기다리는 낌새가 아님을 바로 알아챙 나였음에도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그저 심심해서나 의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젊은 손님이 어째서 혼자 여기 이 바에 찾아와 드림을 주문해 마셨는지에 대한 속사정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별로 딱한 사정 없이, 다만 지나던 길에 목을 축이고 싶은 거였을 수도 있지마는, 이것은 바텐더로써의 직감이 발동하여 툭 튀어나온 나의 무의식이었다. "하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전혀 아닐텐데." "아니라면 아쉽게 됬네요. 두 분이셨으면 두 잔을 팔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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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영학과는 그렇게 들어간 거야?" 오랜만에 집이 비어 나는 여자친구에게 찾아오라는 연락을 하였다. 그녀는 바로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렇지 뭐. 근데 그냥저냥 나쁘지 않아." "에이, 그럼 재미없잖아. 그런건 너가 직접 고르는 쪽이 좋지않아?" 그녀 앞에 가지런히 뒹구는 빈 맥주캔 몇 개가 나의 주장-정확히는 부모님의 주장이라 할 수 있는-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뭐 어때. 어차피 돈만 벌 수 있으면 되지. 딱히 하고 싶은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경영학과면 잘 들어간 거지. 어차피 다른 과도 재미 없긴 마찬가지 아냐?" 어느새 내 말투는 쏘고 있었다. 살짝 오른 취기. "아냐, 재밌는 과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 미대였으면 사진과라도 했을 텐데..., 여기 심리학과도 재밌긴 한데, 교수님이 너무 귀찮게 굴어." "둘 다 재미 없잖아. 사진과도, 심리학과도." "너한테야 그렇겠지, 최소한 그 두개는. 그치만 잘 찾아보면 들고 싶은 과 하나쯤은 있을텐데? 경영학과야 돈은 잘 벌긴 하겠지만..." "하나씩 다 봤었어. 전부 재미없는 것들이야." "그래?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없고... 브랜디있어?" "양주는 안 마셔. 집에 부모님이 계신데." "그럼 잠깐 기다려. 편의점 갔다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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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신가요. 정작 아쉬운 본인은 저입니다만, 다음에는 꼭 누구라도 데려 오겠습니다." 젊은 손님은 레드 큐라소의 색소 맛 때문인지 , 아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유감인지 쓰게 웃었다. "꼭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한 잔 더 손님께 팔면 되죠." "이렇게 맛있게 해 내시니 지금 제가 한 잔 더 사죠.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지금은 그냥 계세요 천천히 주문 하시면 그때 내려오겠습니다." "네, 그러죠." "여기..롱 아이스 티요. 체리빼고." 젊은 손님과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테이블의 다른 손님들의 주문이 기다렸다는 듯 하나씩 들어왔다. 이것은 나의 바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지키는 암묵적인 관습과도 같이 자리잠은 법도덕이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다음 주문을 위해 선반으로 향하려다 젊은 손님이 무언가 말을 건네려는 눈치를 알아채고 손님의 눈을 마주보았다. "아이스 티도 파나요? 홍차는 메뉴에 없었던 듯 한데." "아, 롱 아일랜드 아이스드 티 말씀입니까? 하하, 그건 큐라소 칵테일의 이름입니다. 홍차는 재료로 들어가지도 않는데, 아이스 티의 색깔과 맛이 난대서 붙여진 이름이죠. 롱 아이스티는 이 롱 아일랜드 아이스드 티를 여기 바에서 짧게 줄여서 부르는 호칭으로 제가 메뉴판에 걸어 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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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랜만에 센 걸로 마셔 보자구." 편의점에 다녀온 그녀의 오른손에는 하얀 비닐 봉투가 걸려 있었다. 그 속에서 하나씩 모습을 보인 것들은 굵직한 두 병의 양주와 그에 비해 아담한 체형이 가련해 보이는 소주 한 병이었다. "그게 다 브랜디야?" "이거? 소주도 증류주잖아. 나머지 두 개는 리큐어야." "그렇게 말해도 난 몰라. 너처럼 허구한 날 술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도 참 이쁘게 한다. 원래 술 잘 모른다고 그러는 사람이 더 많이 마신다더라?히히." 두툼한 유리 너머, 동공을 찌를 듯 깊은 붉은색과 가벼운 부드러움으로 충만한 채 흔들리는 초록색, 그렇게 두 병이 있었다. " 얘네들은 뭐야. 왜 이렇게 많이 사왔어? 이걸 언제 다 마시려고." "걱정 마, 최소한 취해서 쓰러져 자진 않을 테니까. 가만 보기나 해." 그녀는 작은 것 하나, 큰 것 둘 해서 병 세 개를 모두 오른손만으로 경쾌히 오픈한 후, 맥주컵에 소주와 빨간 액체를 가득 한 컵 가득 붓고는, 초록색의 액체는 티스푼에 위태롭게 옮겨 따랐다. 그것은 티스푼 째로 맥주컵 안에 던져졌다. "뭐야, 왠 칵테일을 만들어." "자, 받아. 마셔봐, 이거 맛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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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그러고 보니 마셔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다른 바에서 절임 체리가 얹어진 아이스티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마 롱 아이스 티인가 봅니다.향이 참 좋죠. 여기는 이제 겨우 두 번째 온 가게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그는 내가 내놓은 소다수를 잠깐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2차라는 게 아니라, 이 가게는 이제 두 번째로 와 봤다는 말입니다. 혼자 온 몸에 2차일 리는 없죠." "처음이 아니셨군요. 제가 먼저 알아채야 했는데, 이미 오셨었던 손님도 기억 못하고,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많은 손님들을 하루 종일 맞으실 텐데, 그 중 한사람을 딱 두번 보고 기억하기란 힘들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나는 손님의 말을 들으며 아이스 픽을 들어 얼음을 잘게 부수었다. 맥주컵 두 개를 이어 놓은 높이 정도에 유리의 그루터리를 조심스레 키워낸 듯 곧게 솟은 원통 모양의 콜린즈 글라스에 부순 얼음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제가 카운터의 바텐더인 이상, 인연이 있는 손님들을 기억해야 하는데, 전 아직 많이 모자라군요." "인연이야 언제부터 생기든 상관 없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기억하시면 되죠." 드라이 진, 보드카, 화이트 럼,데킬라, 화이트 큐라소, 레몬주스, 그리고 콜라가 차례대로 얼음의 사이사이를 훑어 내려 가며 콜린즈 글라스의 벽을 긋고 천천히 차올랐다. 티스푼으로 가볍게 저어주니, 얼음과 얼음이 글라스의 내벽과 부딫혀 오롱오롱이며 울었다. 셰이커에 넣고 흔들어 섞지 않는 이유는, 콜라의 탄산 손실 때문이었다. "기억하지 못하셔도 되긴 합니다. 저같은 지나가는 손님이야 많을텐데...," 넘칠 듯 떠오르는 아슬아슬한 얼음 조각들 위로 나는 레몬 슬라이스를 하나 얹었다. 그 외에 달리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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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하게 후각을 적시는 오렌지의 향에 나는 마음이 동했다. 시력을 달아오르게 하는 붉은 액체의 흐름. 나는 글라스를 잡았다. "어때?맛있지?" 심록의 허브, 오렌지의 과피에서 풍기는 신선한 향, 조금 강한 알코올. 단편적인 감각들의 페이지 하나하나를 묶어 낸 한권의 책. 들뜬 기분에 덮는 마지막 책장은 애를 태우는 미각. 감질이 돈다. "맛있다. 뭘 어떻게 한 거야? 그냥 그렇게 적당히 섞으면 되는 건가?" "이건 편법이야. 원래는 호박색 브랜디를 쓰는게 맞고, 섞을 때도 따로 섞는 통에 넣고 흔들어야 되는데." "그렇군,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맛있네. 이 칵테일, 이름이 뭐야?" "꿈." "응?" "이 칵테일의 이름은..." 드림Dream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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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아이스 티, 나왔습니다. 손님." 나는 테이블의 손님에게 서빙을 하러 가면서도 눈으로는 젊은 손님을 돌아보고 있었다. 나와의 대화가 끊길 떄마다 나른하게 흔들리는 눈빛이,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낀 반듯하게 절제된 인상을 조금씩 풀어페치고 있었다. 현실에서 켜켜이 쌓아온 허물들이 이곳에서 하나하나벗겨지며 나타나는 사람들의 진실된 모습들. 나는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선물 상자의 포장을 벗기는 그런 쾌감이 있었다. 비록 추할지언정, 가식 없이 진면을 드러낼 수 있는, 약한 모습조차 허용되는, 화내고 보채며 우는 모습이 오히려 어울리는 이 곳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다. 억눌려왔던 모든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이 곳은. 나는 서빙을 하며 테이블의 다른 몇몇 손님들의 말상대를 잠시 해주고 카운터로 돌아오는 중에 나 쪽을 돌아본 채로 있던 젊은 손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뒤로 튼 고개의 시선이 나를 다급히 찾고 있었음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찾으시는 것이라도?" "당신이요. 당신, 왜 내 말을 자꾸 끊어요. 대답을 좀 해 보라구요." 나는 젊은 손님이 나를 찾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의례적인 것 뿐이었다. 의례적이어야만 했다.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나와의 모든 인간관계는, 바텐더와 손님이라는 관계의 영역을 넘지 말아야만 하였다. 그들이 가게를 나와서 무슨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이 아무리 카운셀러에게 구원의 손을 뻗어도, 그것은 일시적으로 환상 속에 조성된 것임이, 바의빡, 현실으로 문을 열고 나감과 동시에 깨닫게 된다는것을. 결국 이곳은 잠깐의 도피처일 뿐이다.사람은 어쨌든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유난히 마음이 끌리는 이 젊은 손님에게조차도, 솔직한 한명의 사람으로써 다가서서는 안 되었다 이 정해진 선을 넘은 관계는 끝에 가서 손님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 버린다.
"아아, 제가 많이 필요하셨군요. 절 필요로 하시는 손님이신데도, 무례를 끼쳐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선을 넘기기로 하였다. 이번 한 번 만은.
* * *
"얘야, 이게 다 뭐니?" 도서관에서 주류학 서적 몇 권을 대출해 집으로 가져왔다. 작은 동네 도서관이었기에 그것들은 전문서적이라기 보다는 취미나 교양서적 정도의 수준에 있는 책들이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무었이든 좋으니 일단 시작해보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기에. "주류학 입문, 칵테일 레시피, 리큐어와 칵테일 사전. 보시는 대로요.." 책들은 단연 부모님의 눈에 띄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눈에 잘 뜨이도록 화려한 표지 면을 위로 해서 책상에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정도는 나도 알겠다만, 왜 이런 걸 읽고 있는거냐. 이번 학기의 네 성적이 D학점까지 떨어진 것은 기억하니?" "네, 제 성적인데 제가 잘 알죠." "너가 요즘 강의도 자주 빠지고 돌아다닌다고 교수님께 들었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거야?" "...," 아직 확신 할 수는 없었다.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손을 뻗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큰 자기발전이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지 않니. 학비가 얼마인지는 아냐?" 아직은 그뿐이다. 지식도 없고 열정도 없다. "남들은 못 들어서 눈 빠지게 재수하고 아르바이트 하는데. 너는 다 갖춰 주었는데도, 왜 끝에 가서 망치려 하는거냐." 그러나 이 만치 나를 움직이게 했다는 점에서, 오른손의 매듭을 풀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그뿐이더라도, 많이 늦었더라도, 크지않더라도 그것은, 나의- "꿈입니다."
* * *
"저, 한 잔 더 주세요. 제가 아까 한 잔 더 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흐흥...," 그 동안 의식에 닿지 않던 홀의 웅성거림이 선뜻하게 귓바퀴를 훎는 것이 느껴졌다. 젊은 손님은 조금 취한 듯. 차분했던 어조에 부스러기처럼 유감스럽고 애상적인 표정이 끼어 어눌한 말투가 되고있었다. 나는 젊은 손님이 그 다음으로 무엇을 주문할 지 물어보지 않고 바로 말없이 선반으로 향했다. 젊은 손님의 목소리가 설탕절임 체리처럼 뭉글뭉글 했다. "그렇죠.아하하, 세 잔 째도 제가 살까요? 제가 두 명 더 데려올 것을 대신해서 지금 세 잔을 미리 사겠다 이겁니다." 나는 마카다미아 리큐어의 병을 열었다. 화악 풍겨 올라오는 이국적인 견과류의 향. "그러면 더 데려올 필요도 없겠죠? 저 혼자 세 명 것을 다 마신다면..." 초코시럽이 잘 섞인 블랙 생크림을 띄웠다. 그 위에 조심스레 폭 묻어 얹은 큐빅 애플 젤리. "그러면, 다 되는 겁니다. 저 혼자 다 적당히 해치우면 되죠. 혼자 있어도 뭐, 제가 알아서 하면 되니까 혼자라도 좋은 겁니다." "받으시죠." "잠깐...네?" "터닝 포인트 Turning point 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전환점."
* * *
"나가라. 딴 말 말고 그냥 집에서 나가." 알고 있다.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위해 부단한 애를 썼는지. 그러나 나를 위한 거라며 꽉 쥐고 있는 그들의 오른손과 이어져있는 것은 내 목을 죄고 있는 목줄이었다. "정 그러시겠다면, 더 여기 있을 이유도 없고. 순순히 나가도록 하죠." 나는 지나치게 쓰다듬을 많이 받으며 길러진 것이리라. 그들은 유순함을 넘어 우유부단의 병 속에 곱게 나를 흘려넣어 채우고, 마개를 막았다. "딴 말 말라고 했다. 너는 안 돼. 다른 사람은 되도 너는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 마개를 막은 그것은 향을 발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간다구요. 제가." 그러나 색깔만은 두꺼운 유리를 투과해 가시광선을 발한다. "시끄러워!" 튀기는 파편, 유리의 파열음이 쨍 하고 낭랑하게 홀 안에 울린다. 그러자 그것은 사정없이 몸을 비틀어 흘러내리면서도, 주워 담을 수 없는 향을 넓게 피어 공허 속에 퍼뜨린다.
* * *
"결국, 그렇게 저는 경영과를 중퇴하고 전부 자비로 이 바를 열었습니다. 그래도 경영과에 있었을 때의 경험 덕분에 운영에 대해서는 도움이 컸지만, 처음에 이 주류학계로 전환해 왔을 때가 많이 힘들었죠."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바텐더 같은 걸 하고 싶어서 하고 있겠냐고 동정할텐데, 당신은 정말 하고 싶었던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군요." "그렇죠. 결론적으로 모두가 힘들게, 그렇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 차고 넘치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침범한 선은, 불장난이 화마로 바뀌는 것과 같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고 번지고 있었으나, 나는 즐거웠다. 이 젊은 손님도 새벽이 그 별빛을 아침에 넘겨주며 물러날 때 쯤 되어 이 바의 문 밖을 나설때, 아마 너무나 큰 대조로 다가오는 현실을 다시금 깨닫고 절망하게 되리라는 것이 나의 처지마냥 선명히 펼쳐지었으나. 그래도 지금 이순간, 치료해주고, 구원해 주고 싶었다. 조금 더 달콤한 향으로 뇌리를 저어 주고 싶었다. 비록 흩어질 것 이언정. 지금 이 손님을 끌어올려 주는 것이 나에게도 또한 필요한 치료법이었다. 결국 모두가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모두가 즐거울 수 있으니까. 이번 한 번으로 끝낼 것이기에 괜찮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 외에 달리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고마운 사람은 저이지요. 나머지 뒤의 이 문장이 말로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그것은 진실되게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선만큼은 지키려는 것이었다. "저, 이만 계산하겠습니다. 드림, 사이다, 터닝 포인트, 전부 해서 얼마죠?" "드림만 계산하시죠." "네?" "터닝 포인트는, 제가 산 겁니다. 두 명이었으니까요. 나눠 내는 게 맞지 않습니까."
끝내 모든 것을 어깨 위에 내려앉은 벌레 털듯 내버리고 대학에 중퇴서를 제출했다. 입고 있는 옷 빼고는 가진 것 하나 없이 집을 나왔다.
*
새벽이 잠 속에서 긴 숨을 토해 하얀 아침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손님은 억지로 세 음료 모두의 값을 카운터에 던져놓고 혼자 바를 떠낳다.
*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꿈으로의 전환.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도, 그 젊은 손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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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어-양주의 종류로 증류주인 스피리츠에 과일향같은걸 섞은 술 큐라소- 오렌지 향 리큐어 브랜디-와인을 증류한양주 넓은의미로 보면 소주도 브랜디에 포함됨 아니스- 허브의 일종 마카다니아-하와이산 견과류의 일종 셰이커-칵테일 만들때 술끼리 넣고 흔들어 섞는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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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ㅜㅜ끝났네요..시험끝나자마자 마구 달려썼습니다.
바텐더에대해 써보고 싶었었습니다..그냥 물장사하는 사람이아닌 예술인(?)으로써요..
칵테일,와인에관하여 지식이 빠삭한 친구가 많이도와줬습니다..ㅜ
써보고만 싶었지..잘은 모르니까요..ㅠㅜ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쓰고도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타 난것이나 모르는 부분 덧글로 말씀드리면 감사하겠습니다..ㅜㅜ
쓴것 그대로 옮겨 쓴것이라 오타가 많이 날수도 있습니다..
왠지 쓰면안되는것을 쓴것같은 느낌이네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