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 등산화가 안보이네, 어디로 갔어요?"
나는 아침 일찍부터 신발장을 열고 등산화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한 평도 안된 신발장안에는
등산화가 없다. 20년 전에 신었던 둔탁한 등산화를 기억하고 찾는 것이다.
오늘 시산제는 지난해 9월 경성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고 첫 산행이다. 클럽의 산악회 파트에서 실시하는 시산제다. 지난달 시산제를 갖기로 했으나 산악회장의 부친상으로 인해 한 달 연기돼 오늘 산행을 갖게 된 것이다. 계획대로 지난달 시행했으면 오늘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차마 오늘은 빠질 수가없었다. 지난달에는 중학교동창친구들 모임과 겹쳐 있어 아내가 참석하기로 했던 산행이다.
나는 등산해본지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 30여 년간 축구에 미쳐 있었으니 등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휴일 이사할 때도 이사는 내 팽개치고 공만 찼으니 산행은 꿈도 못 꿨다. 지금도 축구화는 다섯 켤레나 있어도 등산화는 한 켤레도 없다.
난, 등산 부적격자다. 사흘후면 세 번째 갖는 갑상선동위원소 방사성치료를 위해 식이요법 중이다. 십여 년 전에 다친 왼쪽무릎의 인대.연골 파열과 오른쪽 발등을 치료 중이다. 90kg 넘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축구를 과격하게 즐겼던 탓이다. 젊음이 영원한 줄 만 알고 거나하게 먹고 마셨던 탓이기도 하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지난1월 중이염 수술을 받고 관리 중에 있다. 토요일 종일수업을 받고 일요일 등산하기에는 피곤이 누적된 상태다.
처음 갖는 시산제 행사에 몇 번인가 불참할까 고민하다 산행을 택했다. 바쁜 생산공장을 운영하면서도 산악회총무를 맡고 있는 총무의 열성에 그만 손을 들었다. 말없이 리드하는 회장도 나를 꼼짝못하게 만든다.
시산제를 지낼 곳은 양평군에 있는 청계산이다. 등산동호인이 아닌 클럽모임의 산행이라 청계산 중턱 해발 507m의 형제봉을 목적지로 정했다. 정상이 아닌 중간봉오리로 결정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총무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 같다. 버스에는 회원들로 가득 찼다.
이호근산악회장은 경성 산악회의주제인 "다 함께하는 산행,즐거운 산행,맛있는 산행"을위해를 홍보하며 오늘하루를 보람되게 보내자고 역설한다. 총무도 한층 고무되어 회원들께 감사하다고 연발한다. "돈 내라고 하면 낼 자신은 있는데, 마이크 잡고 도저히 말을 못하겠다"고 더듬거린다. 회원들은 격려하며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박장대소다. 터프가이 총무가 온순한 반달곰으로 변한다.
산행을 위해 버스에서 내린 나는 운동화를 단단히 고쳐 맸다. 아픈 무릎을 감싸기 위해 축구할 때 사용하는 무릎보호대를 착용했다.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뒷 처지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시산제 지낼 준비인원만 남겨 둔 채 산행이 시작됐다. 등산초보인 나는 앞선 회원들의 등뒤만 따라갔다. 부근에 무었이 있는지, 경관이 아름다운지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몸은 불편했지만 우선 처지고 싶지 않았다. 꾸준하게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 뒤 받쳐 줘 '형제봉'에 무사히 도착했다. 정상에서 마시는 신선한공기는 평소 느끼지 못했던 상쾌함을 선물했다. 사람들은 이 맛에 등산하는 모양이다.
'형제봉'에서 꿀맛처럼 즐기는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서둘러 하산 길이다. 정신없이 산을 오를 때는 몰랐으나 내려올 때는 문제가 생겼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질은 땅을 밟고 '어이쿠!'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매끄러운 운동화와 무릎부상은 더욱 브레이크 밟기 힘들어졌다. 뒷 따라 내려오는 부인회원들을 뒤돌아보며 간격 맞추고. 제 몸도 못 가누는 초보산악인이 보디가드 하느라 제 길로 내려오지 못하고 기어이 길을 헤매는 상황이 발생했다.
올라 갈 때 못 봤던 거북이가 어디서 나타났다. 약수터이다. 거북이는 몸 속에 찌들어 있는 독소를 비우고 가라 하는 듯이 함박 웃음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년만년 거북이 입에서 쏟아지는 생명의 약수물 거나하게 500CC! 한 잔 들이켰다. 온몸이 상쾌했다. 십 년 먹은 채증이 쑥 내려간 느낌이다.
오솔길 고즈넉한 풍광에 취해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순간 네비게이션이 떠올랐지만 우리는 맨몸이었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 곳 저 곳을 헤매며 동네 한 바퀴를 누비고 다녔다. 대낮인데도 사람찾기가 로또 맞추기 같다. 사람은 간데없고 동네 개들만 여기저기서 "이 길이 아니라고."짖어 된다. 동네 개들도 오랜만에 사람들을 구경하는 냥 합창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한적한 동네에서 힘겹게 마주친 촌로를 찾아 길 물어 보는 재미도 동심이다. 어차피 잃어버린 길, 운동이나 실컷 하자고 서로를 위로한다.
뒤 늦게 시산제 행사장에 도착하니 제사상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돼지님도 우리보고 방긋 웃는다. 동료들은 산신령님께 엎드려 정성을 다해 절을 한다. 1년 내내 회원들의 건강과 사업.가정에 행운이 함께 해 달라고 주문했다. 돼지머리를 보고있자니 '돼지처럼 살이 많이 쪘다'고 연신 했던 지난 추억이 떠 올려진다.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무등 타고 산행했던 돼지머리는 팔자가 좋아서인지, 하산 할 때도 무등 타고 내려온다. 부디 복 돼지꿈 많이 꿔 부자되기를 바랬다.
뒤늦은 점심시간. 장소를 옮겨 한우고기 식당으로 이동했다. 산에서나 식당에서나 나는 맛있는 음식 한 점도 먹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싸가지고 간 식이요법 도시락으로 혼자 때우자니 서글프기도 했다. 모두가 지난날의 몸 관리 못한 나의 업보다. 먹음직스런 육회를 처음 먹는다는 부인회원들 틈에 끼여 모퉁이에 털썩 자리잡았다. 침이 넘어갔지만 어쩔 수 없다. "뷔페에서 먹는 육회 맛과는 비교할 수없고 미용에 좋다"고 거드니, 소주 한잔에 육회 한 입 가득 채운다. 내일은 무척 예뻐지길 바랬다.
동료들은 나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측은하게 보이는 나에게 생고기를 시켜 주었다. 천일염 들어가는 음식 못 먹는다는 죄로, 혼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결례를 범했다. 많이 먹고 힘내라고 주위 살피며 챙겨 주는 동료애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신선한공기를 들이마실 수있는 낮은 산의 등산 기회가 생긴다면 또다시 산행에 동참해도 될까? 고민하게 한 하루였다. 금새 정들었던 형제봉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한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부상병동인 난,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2010. 3. 31
김재덕 지대위원장 김학찬 회장 이창운 1부회장 이상길 3부회장
이삼헌총무 김희균재무 김영진산악대장 지용선산악회부총무 등
모든임원이 참석하여 산악회 행사가 아니라 클럽행사인 듯 착각하게 했습니다.
경성 라이온스가족 여러분!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구구절절 구수한 냄새에 취했습니다,수고많이 하셨습니다
늦게나마 좋은글 처음처럼 계속 유지하시고 항상 건강이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