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렘31:10-14
성도님은 신세대입니까? 쉰세대입니까? 쉬어진 음식처럼 몸에서 쉰내가 난다는 비아냥과 자조 섞인 말로 쉰세대라고 합니다. 패배주의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때가 늦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참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수가 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이제는 희망이 없구나” “이제는 다 끝났구나”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구나”“이제는 회복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 시대 때 이스라엘 나라가 그랬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때가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인 므나셋 때입니다. 그가 약 20살이 되던 때 요시야 왕 13년 즈음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나라가 잘 되는 것같았습니다. 모든 부정 부패가 살아지고 백성이 자유롭게 신앙생활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요시야가 모처럼 차지한 독립을 앗수르가 제기함으로 므깃도에서 애굽 군대를 저지하다 그만 전사하고 만 것입니다. 이 때부터 유다 나라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아하스가 등극하였지만 애굽왕 느고가 3개월 만에 폐위시켜 버렸습니다. 여호야김을 세워 친 애굽 정책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유다도 쳐들어와 여호야김 왕으로부터 충성 서약받고 다니엘을 비롯한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 버렸습니다 이 때 에스겔 등 만여명의 사람들이 잡혀갔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 보며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50년 동안 예언을 합니다.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의 불법과 악행을 강력히 비판하고 눈물을 흘리며 백성들과 함께 회개치 않을 때에는 남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렘25). 아브라함을 통하여 갈데아 우르 즉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선택받은 민족이 된 나라, 애굽의 포로 생활에서 모세를 통해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거주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나라가 이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일부는 애굽으로 도망을 가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회복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을 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경제를 회복시켜 주시고, 신앙을 회복시켜 주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시고, 상한 마음을, 생기를 잃은 가정을, 무너지는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포로에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자유를 잃어 버렸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아들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남편을 딸을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애국심을 가지고 투쟁을 하다가 애굽으로 도망간 사람들 전쟁으로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은 사람들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례미야를 통하여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10절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무리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징계로 흩으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모으시게 할 것을 믿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를 보면서 두려워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평안을 회복해야 합니다. 염려에서 확신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의심에서 신뢰로, 불신에서 믿음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질투에서 칭찬으로 불평에서 감사로 무익에서 유익으로 속박에서 자유로 포기에서 열망으로 회복되시길 축원합니다. 11절 속량하시고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속량하신다는 것은 해방시키시고 자유함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속하신다는 말씀은 값을 지불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회복시켜 줄 것을 예언합니다. 31절 이 예언은 새 언약에 대한 예언입니다. 34절. 예수님 안에서 죄를 사해 주시고 다시는 죄를 기억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세력에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시고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노예로부터 죽음의 노예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롬 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34-32)“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는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자유가 없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우리 인간이 슬픔과 고통을 당하며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야 합니까? 자연의 속박, 나쁜 관습으로부터 속박,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정치, 인간의 경제, 인간의 제도로부터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속박당하고 살아갑니까? 그 근본은 무엇입니까? 제도가 잘못되어서입니까? 물질이 부족해서입니까? 과학문명이 발달되지 않아서입니까? 근본적으로 죄입니다. 죄의 결과인 정죄로부터 해방되지 못한한 인간은 결코 참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롬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죄와 은혜의 선포입니다. 살리는 영 예수의 영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습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죽음의 포로가 되어, 죄의 포로가 되어, 돈의 포로가 되어, 질병의 포로가 되어, 실패의 포로가 되어 이제 내 인생은 쉰냄세가 나고 불행업습해오고 자포자기하시는 분 주님앞에 나오면 모든 불행의 에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만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12절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싶었는데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4절 하나님께서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물로 인하여 심령이 흡족해진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내 은혜로 내 백성을 만족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야 합니다. 돈으로 참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참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만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많은 감사 제물을 드릴 정도로 은혜를 부어 주어 풍요롭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렘 31:12)표준 번역에서는 “그들은 돌아와서 시온 산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고, 주의 좋은 선물,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양 새끼와 송아지들을 받고 기뻐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물 댄 동산과 같아서, 다시는 기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배드릴 성전도 잃어 버렸습니다. 농토도, 집도, 가족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근심이 밥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온갖 선물을 풍성하게 주어 모두 만족한 인생을 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만족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를 경배하고 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으로 만족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흡족하게 되고 물댄 동산같이 되는 것은 물질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으면 만족을 누리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먹으면 만족을 누리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만족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습니다. 어떤 욕구든지 한 번 이루면 그 욕구는 더 큰 욕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욕구 충족을 통해 만족을 누리려고 하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참 만족을 누리지 못하며 살다 갈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 만족했습니다. 그는 아내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재물도 없습니다. 건강치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끝없는 복음 증거로 육체는 피곤한 상태입니다. 복음을 전하고도 배신을 당하는 정신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 사도로 가짜 자칭 사도로 오인받았습니다. 난동자, 반란 선동자, 삯꾼, 위선자라고 비난받았습니다. 노년에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생활입니다. 만족할 만한 조건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는 주님으로 만족 하다고 하셨습니다. 초점을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대상29:11-14 사업의 성패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상상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지처럼 살던 사람이 죽었는데 알고보니 엄청난 부자였다더라"하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고귀한 것들을 다받았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이와같이 거지처럼 사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리스도 안에 참된 능력이 있음을 믿고 대처하는 것입니다. 자아를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자아를 주님께서 지배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능력이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더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능력은 전능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만족할 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수와 함께 있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환경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도 해결 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함을 가능케하심을 믿고 만족한 삶을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슬픔이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녀 노소가 함께 어우러져 기뻐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포로에서 해방되니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혹시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기쁨을 잃어버리신 분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여호와를 통해 기쁨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배경인데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성도의 3대 실천 강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전5:16-18"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도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보면서 감정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갖혀 있으면서 (빌 4: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삼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자연을 즐기는 것을 락천이라 하고 생활을 즐기는 것을 낙생이라 하고, 일을 즐기는 것을 낙업이라고 합니다. 공자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과 다릅니다. 소요리 문답 제 1번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을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가 기뻐할 만한 것은 구석구석에 남겨 놓았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써 노벨 상을 받은 베케트는 "울음과 웃음의 양은 같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꼭 반반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의 말처럼 삶이란 언제나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기쁨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환경을 어떻게 판단하고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즐겁게 가져야 우리의 삶도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기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참된 기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 우리가 변치않고 영원토록 마음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입니다. ①예수님을 만났으니 최고의 기쁨을 얻은 것입니다.(요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②우리에게 기도 응답을 주시니 그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요16: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쁨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줍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의 포로에서 회복되고 참 만족과 기쁨을 회복하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