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2.13 제주 출신 입법의원 문도배·김시탁, 서울 민전회관에서 입법의원 참가 거부 성명 발표
▶ 1947년
47.01.11 재일동포의 희사품을 싣고 오던 복시환이 서귀포 근해에서 밀수 혐의로 나포
47.01.12 제주도 민청(위원장 김택수) 결성
47.01.25 제주도 부녀동맹(위원장 김이환 ) 결성
47.02.01 광복청년회 제주도지회 (위원장 한효현 → 김인선) 결성
47.02.05 동아일보·서울신문 등 중앙지, '복시환 사건'을 둘러싼 모리행위 보도
47.02.10 제주읍내 중·고교생 1천여 명, '양과자 반대' 등 반미구호를 외치며 관덕정 광장서 시위
47.02.17 제주도 3·1투쟁기념준비위원회(위원장 안세훈) 결성
47.02.19 복시환 사건에 연루된 제주감찰청장 신우균 해임(3월 20일 파면 결정). 후임 청장에 강인수 발령
47.02.23 제주도 민전(공동의장 안세훈·이일선·현경호) 결성. 충남·충북경찰청 소속 경찰관 100명 제주 도착
47.03.01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 제주북교에서 개최. 제주읍과 애월·조천면 주민 등 3만 명 참가. 기념식이 끝난 후 일부 주민들 '통일 조국 독립 쟁취', '3상 회의 지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경찰 발포로 6명 사망, 8 명 중경상
47.06.06 구좌면 종달리에서 민청 집회를 단속하던 경찰관 3명이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한 세칭 '종달리 6·6 사건' 발생. 이 사건으로 43명 기소돼 이 중 10명이 실형 선고
47.06.11 하곡 수집량 북군에 10,800석, 남군에 6,200석 할당
47.06.20 여러 마을 청년들, 삐라 살포 혐의로 재판에 회부
47.06.24 독촉국민회·독청제주도지부 연합으로 60일간 세력확장을 위한 도내 순회계몽활동
47.07.03 제주농업학교 학생들, 삐라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퇴학처분을 받자 이에 항의해 집단 퇴학원을 제출
47.07.18 전 지사 박경훈, 제주민전 의장에 추대
47.07. 한림면 명월리에서 하곡수집을 거부하는 농민들과 우익청년단체원 간에 충돌
47.08.07 제주에서 '미군을 축출하자'는 반미 삐라 나돔
47.08.08 안덕면 동광리에서 마을 청년들이 곡물 수집 관리 3명에 집단 폭행
47.08.12 미군정, '8·15 폭도 음모 사건'과 관련해 좌파 세력에 대한 대규모 검거 작전 전개(전국 검속자 13,769명)
47.08.13 경찰, 조천면 북촌리에서 삐라 붙이던 소년을 추격하며 발포해 주민 3명 총상. 흥분한 주민 200여 명, 경찰관 3명을 붙잡아 뭇매를 가한 뒤 함덕 지서로 몰려가 항의 시위. 마을주민 40여 명 체포
47.08.14 경찰,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을 비롯 도청 간부·사회인사 등 30여 명을 '8·15 폭동 음모'와 관련해 체포. 박 의장은 3일만에 석방
47.08.19 제주도 전역에 곡물수집을 반대하는 삐라 살포
47.08.27 경찰, 애월면 하귀리 미수동에서 무허가 집회와 삐라 살포 혐의로 마을 주민 10여 명을 검속
47.08.28 유해진 지사, 사상 문제를 빌미로 도 과장급 4명을 권고 사직시키면서 인사 정비 착수
47.09.07 도 식량사무소장 박태훈, 자택에서 정체 불명의 청년들로부터 테러당함. 서청단원 소행으로 밝혀짐
47.09.15 중앙청 식량행정처, 제주의 하곡 수매 실적은 53%로 전국에서 가장 부진하다고 발표
47.09.17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미국, 한반도문제를 UN에 상정
47.09.26 제1구 경찰서장 김차봉 해임. 후임 서장에 문용채(평남출신) 발령
47.09.27 생필품영단 직원과 제주농업학교·제주중 교사 등 36명, 불온서류와 관련돼 검속됨
47.10.06 제주지법, 포고령 위반으로 기소된 남로당 제주도위원장 안세훈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천 원을 언도하고 석방
47.10.07 구좌면 행원리에서 우익 조직 확장 운동을 벌이던 대동청년단원과 마을청년 충돌. 경찰 16명 연행
47.10.19 미 CIC 제주사무소, 우익정당 당원확장 과정에서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고 중앙에 보고
47.10.21 미 CIC 제주사무소의 개입으로 대동청년단 제주도 단부(단장 김충희) 결성
47.11.02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결성대회
47.11.05 미군 4명, 제주 읍내 식당에서 종업원들을 구타한데 이어 이를 만류하는 경찰관과 행인들에게도 폭행
47.11.18 서청단원들, 자금모금을 위한 광범위한 테러 행위로 인하여 미 CIC와 지방경찰로부터 경고 받음
47.11.25 CIC 제주사무소는 서북청년회 제주도단장이 '제주도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말해왔다고 상부에 보고
47.12.03 제3대 제주도 군정장관으로 맨스필드 중령 부임
47.12.07 조선민족청년단 제주도 단부(단장 백찬석) 제1차 총회
47.12.13 CIC 제주사무소, '제주도 경찰이 빠른 시일 내에 정의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제주감찰청에 대한 공격이 있으리라'는 여론을 상부에 보고
▶ 1948년
48.01.08 UN조선위원단 입국
48.01.12 구좌면 김녕리에서 지서,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등의 간판이 훼손되는 사건 발생
48.01.22 군정경찰, 조천에서 있었던 남로당 집회장 덮쳐 106명 검거. 미군 정보팀, 압수한 문서에 의하면 '2월 중순과 3월 5일 사이에 폭동계획이 있다'고 보고. 26일까지 전도적으로 남로당 관련자 115명 추가 체포
48.01.23 미군 정보팀, '제주도의 좌익은 반미적이 아니며, 최근의 테러는 우익이 자행했다'고 상부에 보고
48.01.30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1·22 검거 사건'을 언급, "경찰은 남로당에 가입한 자를 탄압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비합법적 행동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라고 발표
48.02.01 9연대장 이치업 중령 후임으로 김익렬 소령 임명
48.02.07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2·7 구국 투쟁' 발생
48.02.10 조병옥 경무부장, '2·7 폭동'으로 전국적으로 39명이 사망했으며 8,479명을 검거했다고 발표
48.02.14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함덕·성산포·조천·대정·하도·삼양·화북·두모 등지에서 시위가 있었고 사계리에서 경찰관 납치사건 이 있었다고 발표
48.02.25 김구·김규식, 김일성·김두봉에게 남북 협상 제의 서한 발송
48.02.26 UN 임시총회에서 'UN 한국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안이 채택. 단독선거 시행 현실로 나타남
48.03. 한림면과 애월면 중산간 지역에서 '청년들이 무장훈련을 한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 현지 출동
48.03.01 UN 한국위원단, 남한만의 단독 선거 결정 발표
48.03.02 함덕지서가 공격을 받았으나 경찰이 공포를 쏘아 시위자들을 해산시킴
48.03.04 조천지서에서 취조받던 조천중학원 학생 김용철, 고문으로 사망(고문치사 사건)
48.03.10 조천중학원 학생들과 주민들, 지서에 몰려가 고문치사 사건 항의시위
48.03.11 김구·김규식·김창숙·조소앙·조성환·조완구·홍명희 등 7인 공동성명으로 5·10 선거 반대
48.03.12 성산면 관내 청년 66명, 남로당을 탈퇴해 대동청년단에 가입한다는 성명 발표. 이후 남로당 탈퇴 성명 줄이음
48.03.14 모슬포지서에서 영락리출신 청년 양은하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고문치사 사건)
48.03.29 한림면 금릉 마을에서 미군정을 비판하던 청년 박행구를 경찰과 서북청년회에서 붙잡아 현장 사살(고문치사 사건)
48.03.30 전국 일원에서 5·10 총선거 선거인 등록 업무 개시
48.04.03 무장대, 무장 봉기
48.04.04 미군정, 제주도 사태를 '치안상황'으로 간주해 각 도의 경찰청에서 1개 중대씩 차출, 8개 중대 1,700명의 본토 경찰 병력을 제주에 파견하는 것을 승인
48.04.05 제주경찰감찰청 내에 '제주비상경비사령부'(사령관 김정호, 경무부 공안국장) 설치
48.04.06 조병옥 경무부장, 서울에서 기자 회견 통해 제주도 사태의 인명 피해 상황 밝히고 응원경찰대 급파했다고 발표. 조병옥, 서북청년회본부에 반공 정신이 투철한 서청단원 500명을 제주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
48.04.09 5·10 총선거 선거인 등록 마감(전국 등록률 91.7%, 제주도 등록률 64.9%)
48.04.10 타 지역과의 해상 교통망 일체 차단한다는 내용의 제주도 도령 공포.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모슬포 9연대 방문해 경비대 병력 지원 요청했으나 김익렬 연대장 '치안 상황에 군이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
48.04.13 9연대, 미군 주둔지와 정부 시설 경비 목적으로 특별 경비 부대 제주읍에 파견 미군 당국, 본토에서 제주에 미군 증파
48.04.15 남로당 제주도당 대회에서 무장 봉기 추인. 기존의 자위대 해체해 인민유격대 편성
48.04.16 제주도 인민유격대 총책 김달삼의 명의로 미군정을 상대로 '5·10 망국 단선 반대를 위한 무장 봉기 성명' 발표. 딘 군정장관, 만 18세 이상 55세 이하 남자는 모두 의무적으로 향보단원이 돼야 한다는 향보단 조직 계획 발표. 경무부, 전국적으로 선거 사 무 방해 사건이 143건에 이른다고 발표
48.04.17 미군정, 그 동안 관망 상태의 9연대에 진압 작전 출동 명령. 9연대 군사고문으로 정보장교 출신 드루스 대위 부임
48.04.19 미군정 경찰 고문관 레스터 코퍼닝, 제주 시찰한 뒤 '섬 북부의 주민 대부분이 산 속으로 들어갔으며 경찰관은 신경 과민 상태에 놓여 있다' 는 요지의 정보 보고. 김구·김규식 등 평양 남북 정당·사회 단체 연석 회의 참석
48.04.24 제주 비행장에 착륙하려던 미 군용기 C-47기가 저격 당함. 미군 정보기관, 제주도 유격대의 집결지로 애월면 어도지경 '샛별오름', 애월면 어도지경 '바리악', 조천면 선흘지경 '거문오름' 등 세 곳을 지목
48.04.25 평화 협상 추진 중이던 김익렬 연대장에게 딘 장군의 고문이 나타나 초토화작전 감행 종용. 김 연대장 이를 거부. 미군정, 부산 5연대 1개 대대(대대장 오일균 소령)를 제주에 파병 명령
48.04.25 제주도 경비사령부, 4월 3일부터 25일까지의 제주도 인명 피해 상황 발표. 이 기간의 사망자 83명의 인적 사항을 경찰관 7명, 양민 27명, 관공리 2명, 폭도 47명으로 분류
48.04.28 중산간지대인 구억초등학교에서 김익렬·김달삼 간의 평화협상 성사. 이 회담에서 - 72시간 내에 전투중지, 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 위반하면 즉각 전투 재개, 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의 신병 보장 등 - 3가지 조건에 합의
48.04.29 딘 군정장관 극비 제주시찰. 이 방문 뒤 미군정의 정책이 화평보다는 토벌 위주로 선회
48.04.30 제주읍 오라리에서 대동청년단 단원 부인 2명, 좌익청년들에 의해 인근 산인 '민오름'으로 납치 당함. 경찰의 추격전이 벌어진 가운데 1명은 숨지고 1명은 극적으로 살아남. UP통신, 4월 한 달 동안 남한에서 선거 관련 무력 충돌로 154명 사망했다고 전 세 계에 타전. 남북 정당·사회 단체 연석 회의에서 남한 단독 선거 반대와 미·소 주둔군의 동시 철수 결의 공동성명 발표
48.05.01 서북청년회·대동청년단원들에 의해 제주읍 오라리에서 방화사건 발생. 이 와중에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총탄에 여인 2명 사망.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경비대는 '우익단체의 소행'으로, 경찰은 '폭도의 소행'으로 엇갈린 보고를 함. 미군정은 경찰의 보고를 수용. 특히 CIC 장교는 김익렬 연대장에게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 초토화 토벌 작전을 지시. 오라리 사건을 주무대로 촬영된 미군 기록 영화 '제주도의 메이데이'는 이 사건을 폭도의 소행으로 조작 편집
48.05.03 제주읍 남서쪽 야외에서 미군과 경비대의 인솔 아래 산에서 내려오던 귀순자 대열을 향해 경찰이 중기관총으로 난사. 이 사건을 놓고 경비대는 평화협상의 진로를 훼방하는 경찰의 소행으로, 경찰측은 폭도들이 경찰로 가장해서 저지른 소행으로 각각 주장
48.05.04 귀경한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기자회견에서 "제주 폭동에 팔로군 참가, 기관총 소지 등의 풍설은 전연 낭설이고 폭도들은 주로 제주도민이고 그 수효는 300∼400명으로 추측된다"고 발표
48.05.05 딘 군정장관, 제주도 미군정청 회의실에서 제주도사태의 진압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9인 최고 수뇌 회의 소집. 이 회의에서 경비대측은 화평 정책을, 경찰측은 토벌정책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다가 급기야 조병옥 경무부장과 김익렬 연대장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짐
48.05.06 김익렬 연대장 전격 해임. 후임 연대장에 박진경 중령 부임. 딘 군정장관, 박 연대장에게 최소한의 무력을 사용해 반란을 진압하라는 밀명 내림. 미군정, 수원에서 창설된 11연대 제주에 파병 명령. 귀경한 딘 군정장관, 외지인들의 선동에 의해 제주 폭동이 일어났다고 발표. 또 '현재의 제주도 분위기는 평온하며 경찰과 경비대가 협력 활동하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
48.05.0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사건의 치안 수습대책' 발표. 당면 대책으로 ①경찰전문학교 정예부대 제주 파견 ②유능 형사대 파견을, 영구 대책으로 ①제주경찰학교 강화 ②경찰인사 재편 ③경찰정원 증원, 2개 경찰서 신설 계획을 천명
48.05.09 UP통신, 5·10 선거 앞두고 남한의 상황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며 '그리스 사태의 완전한 재현'이라고 타전
48.05.10 5·10 총선거, 도내 각지에서 투표 거부 사태 발생
48.05.11 전국 200개 선거구 가운데 제주도 북제주군 갑구(투표율 43%), 북제주군 을구(투표율 46.5%)등 2개 선거구만 과반수 투표 미달 사태 초래. 전국 투표율 94.9%. 제주도 전체 투표율은 62.8%. 제주도 군정장관, 섬의 봉쇄를 위해 2척의 구축함과 전투기를 제주 상공에 보내줄 것을 요청. 미군함 '크레이크'호 등이 출동, 북부 해안 봉쇄. 미군 정 보 보 고 서, 7 ∼ 11 일 (5 일 간) 사 이 전국에서 경찰 8명, 후보 1명, 선거위원 4명, 우익 29명, 폭도 50명 등 모두 92명이 사망했다고 기록. 제주도의 인명피해는 경찰 1명, 우익 14명, 폭도 21명 등 36명으로 기록
48.05.12 박진경 중령의 9연대, 본격적인 수색 작전 착수해 첫날 제주읍 오등리와 애월면 광령2리에서 218명 체포
48.05 미 20연대장 브라운 대령, 제주지역 미군사령관으로 부임. 현지 진압 작전 최고지휘권 행사
48.05.1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폭동 진압 위해 정예 부대 파견했다면서 '그 동안 귀순 회오반성을 기다리던 소극적인 대책을 떠나 이 번에는 실력으로써 적극적으로 폭도들을 진압 섬멸 할 방침'이라는 담화를 발표
48.05.20 9연대 소속 군인 41명이 모슬포 부대에서 무기와 장비·탄약 5,600발을 갖고 탈영, 무장대에 가담
48.05.24 딘 군정장관, 제주도 2개 선거구에 대해 선거 무효 선언. 오라리 방화사건 혐의자로 모슬포 부대 영창에 구금됐던 대동청년단 단원을 박진경 연대장이 석방
48.05.25 제주경비사령부, 4월 3일 이후 5월 25일까지의 인명피해 상황 발표. 사망은 경찰관 23명, 경찰관 가족 13명, 양민 2명, 관공리 3 명, 폭도 119명, 부상자는 경찰관 29명, 경찰관 가족 2명, 양민 65명, 관공리 6명, 폭도 8명
48.05.27 최천 제주비상경비사령관,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과 회담한 후 ①절단된 전주복구 마을별로 할 것 ②1948년 하곡수집 철폐 ③하산자는 관용 포섭한다는 3개항 발표. 유동열 통위부장, 육·해 경비대가 제주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한 결과 5월 27일까지 포로 3,12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
48.05.28 경비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는 산악 소탕 작전 전개
48.5하순 미군정, 탈영 사건 일으킨 9연대 해체하고 제주도 토벌 부대로 11연대 재편
48.05.31 4·3 가담 혐의자에 대한 첫 공판이 제주지방 심리원 법정에서 개정(주심 매로 소령)
48.06.01 박진경, 진압 작전에 대한 공로로 대령 진급
48.06.10 딘 군정장관, 6월 23일 시행 예정인 북제주군 갑·을 선거구의 재선거를 무기 연기한다고 발표
48.06.11 5월 31일의 공판에 참석했던 서울 법조인들 제주 떠남. 귀경 후 제주도 사태의 원인에 대해 경찰·서북청년회·관공리의 잘못도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함
48.06.12 '조선일보', 경비대와 경찰에 체포된 자가 약 6,000명에 이른다고 보도. 조선신문 기자회, '미군정이 제주도 작전에 일본군을 투입했다'는 풍문의 진상을 밝힐 것을 하지 중장에게 공개 질의
48.06.14 미군정 이인 검찰총장, 제주도 사태의 원인으로 관공리의 부패 지적
48.06.17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출신 김봉호 총경 발령
48.06.18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숙소에서 피살
48.06.21 미군정, 후임 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임명
48.06.23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치안 수습에 대하여'란 담화를 통해 각계의 경찰 과오 지적을 반박하면서 "근본 원인은 소련의 야심 인 조선의 소련 연방화에 있다"고 강변
48.07.10 경무부, 철도관구 경찰청 소속 경찰관 300명 차출해 선발대 제주에 증파
48.07.12 박진경 암살사건의 혐의자로 문상길 중위 등 8명 서울로 압송
48.07.14 최경록 연대장, 기자회견에서 "폭도 수효를 정확히 모르나 약 200명 될 것 같다. 팔로군이나 북조선 인민군 가담 사실은 없다"고 피력
48.07.15 제11연대에 소속됐던 본래의 9연대 병력 배속 해제, 9연대 재편성. 9연대장에 제11연대 부연대장 송요찬 소령 발령
48.07.21 3여단의 제5연대와 6연대에서 1개 대대씩 차출, 9연대에 배속
48.07.24 최경록 연대장의 11연대, 수원으로 철수. 이후 제주도 토벌 작전은 송요찬 연대장의 9연대가 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