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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朴生光:乃古 )화가( 1904년 ~ 1985년 )
안인기 _ 미술평론가
‘무서운 그림’, 그러나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무속화와 불화의 채취가 역력한 《색, 그대로 박생광》(2004. 4. 8 ~ 6. 12, 스페이스C)은 박생광(진주 생, 1904~1985) 회화의 마지막 단계인, 그리고 가장 눈부신 화업의 정수를 꽃피웠던 1980년 이후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뜻 깊은 전시이다. 탄생 1백주년이라는 추모의 기념성도 있지만, 80년 이후라면 작가의 나이 일흔 후반을 지나 1980을 넘기던 때로, 생을 마감하던 순간이 예술적 절정을 이루었다는 점은 박생광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드는 이유라 하겠다.
‘그대로’라는 아호를 쓰며 평생 야인처럼 화단의 변경을 떠돌았던 화가, 다들 왜색이라고 비난하던 채색화의 세계를 한 평생 정진하면서 우리의 미감에서 거의 사라졌던 색채에 대한 무의식적 감각을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박생광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한국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에 그림수업을 받았던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러했듯이 공부를 위해 현해탄을 건너야 했던 박생광은 16살 나이에 이미 일본으로 유학했고 이후 20여 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격동기에 징병을 피해 1944년 귀국하였고 그 후로 30년간 대부분의 삶을 고향에 파묻혀 그림에만 몰두하였다. 1974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미술원의 원우로 추대되는 등 국내에서의 은둔과는 다른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서나 국내에서나 주류 관변 아카데미즘과는 담을 쌓은 자유주의자요 예술에 대한 순수주의자로서의 작가적 철학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처럼 일본과의 오랜 관계가 지속된 이유도 있었겠으나 국내 화단의 대세가 수묵화를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에서 그의 그림이 근본적으로 채색화라는 이유로 그는 늘 변방의 화가로 남았으며 1977년 귀국 이후의 활동을 통해 조금씩 예술성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진수는 그의 화풍에 보다 짙은 토속성과 무속성이 표현되던 1980년 이후 그림에서 뒤늦게 발견되었다.
진채의 강렬함을 강조하는 채색화가로서 그의 그림은 색채를 단순한 장식이나 형식적 차원으로만 구사한 것이 아니었다. 전통의 오방색을 원색 그대로를 화면에 옮기며 다채롭고 격정적인, 사물놀이의 소리처럼 진동하는 색의 공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박생광 회화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박생광의 그림이 요란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박생광의 색이 뿜어내는 소리는 심금을 파고드는 호소력이 있는데, 그러한 효과는 분명 우리 고유의 탯줄에서 이어져 온 색채감각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가 창조하는 색이 얼핏 낯선 듯하지만 쉽게 친숙해지며, 거칠지만 은근하고, 화려함과 소박함을 함께 갖춘 때문이리라. 박생광은 이러한 표현성을 익히기 위해 오랜 연구와 남모를 고통을 감내하였다. 그는 고구려 벽화의 세련되고 다이내믹한 색채와 문양을 연구하였으며 주요 사찰의 불화, 탱화, 민간의 무속화, 무신도 등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단청 제작에도 직접 참여하는 수련을 지속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조선시대 민화, 자수문양, 복식, 목기, 나전, 도자기의 패턴, 전통탈, 부적 등 다양한 부분까지 작업의 모티브로 연구하고 수용하였다. 박생광의 채색화는 청록적황흑의 색채를 주조로 백색을 가미하는 제한된 색채를 화면 가득 여백 없이 채워 넣은 구성이 일반적인데, 그림 속에는 사천왕, 무당, 장승, 해태, 호랑이 등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벽사구복의 도상들로 가득하다. 벽사구복은 민초들의 평범하지만 절실한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사대부의 높은 기개와 격조를 상징하는 사군자나 수묵의 기운생동이라는 고급스러운 문인취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사사로운 여기이며 사치일 수 있었다면, 박생광은 평범한 다수 백성들의 삶의 소망과 염원이 스며있는 벽사구복의 도상을 현대적으로 복원함으로써 회화의 세계를 민족의 보편적 기원(祈願)의식과 연결시키고 전통적 공동체의 영속을 꾀하고자 하였다. 열정적인 색과 분방한 신명의 기운이 충만한 공동체로서 박생광의 예술은 여기에 닻을 내렸다.
스스로 세상과 멀어져 외로운 화가로 살았지만 가슴은 더불어 연모하는 예술혼의 소유자 박생광은 오랫동안 화단의 정당한 평가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화에서 색은 일본풍으로 규정되어 배척받았다. 일제시대 일본화의 영향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채색화로 지목하고 식민잔재 청산을 위한 민족적 회화 수립을 주장하면서 제시된 것이 수묵화였다. 수묵화는 특히 문인화적 전통의 정신성이 강조되어 운필과 먹빛의 상징적 표현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수묵화의 이러한 전통 강조는 한편으로 민족성의 구현이자 서구에서 풍미하던 추상화 경향과의 관련성을 주장하면서 현대적 회화 언어로서 군림하며 새로운 회화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식민지시대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 출신 작가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 답습된 수묵화 그룹으로 이들은 국전을 장악하고 무기력한 아카데미즘을 연장시켰다. 이러한 수묵화 주도 현상에서 잃은 것이 바로 한국회화에서 색채의 솔직한 표현성과 풍부하고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성의 세계라 할 것이다. 색의 세계는 인간을 쉽사리 흥분시키면서도 즉각적이고도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회화 언어이다. 박생광은 그러한 색 위에 삶의 꿈과 신명을 더하여 모든 사람의 가슴을 물들이는 빛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 이후의 대표적인 채색화 외에도 1969년 < 한라산 >처럼 일제시대부터 진행했던 모더니즘적인 추상화, 색면화된 그림의 실험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과 함께 발묵과 선묘의 힘찬 묘법이 특징적인 1970년대 이후 수묵담채화도 다수 출품되었다. 수묵으로 표현된 박생광의 세계는 고향 풍경이나 화조도, 황소나 호랑이 그림처럼 전형적인 전통회화의 소재를 제시하여 채색화보다는 여유롭고 편안하게 일상을 바라보는 관조와 해학의 정감을 보여준다. 박생광의 채색과 수묵은 힘의 완급과 심리적 긴장의 균형을 잡아주는 천칭의 양 날개와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한편 전시가 열리는 스페이스C에는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가 있다. ‘화장박물관’의 상설전으로 과거 여성의 다채로운 규방문화를 가늠하게 해주는 다양한 장식품, 화장도구, 복식 컬렉션 5천여 점 중 선별된 1천여 점이 전시되어 맛깔스런 여인들의 체취를 전해주고 있다. ⊙
- 민족예술 2004년 6월호 54-55쪽
1984년. 탈 (Mask) Ink and color on paper,, 68.4 × 69.5 cm.
1984년. 탈 (Mask) Ink and color on paper,, 67.5 x 69 cm.
1981년. 탈과 학 (Mask & Crane) Ink and color on paper,, 69.6 x 68 cm.
소 (A Bull) 1984, Ink on paper, 69 × 90 cm.
비천상 (Flying Deva)》 Ink and color on paper, 45 x 34.4 cm
Shaman ; 무당(巫堂) 1980 Ink and color on paper, 68.0 x 45.7 cm.
‘동해일출도’ Ink and color on paper, : 진주시립미술관
무속(巫俗) (Shamanism) Ink and color on paper,, 135.7 × 134 cm.
1983년. 《 옛 4 (Ancient Times 4) 》 Ink and color on paper,, 136 x 136 cm.
1983년. 모란과 범 Ink and color on paper,, 135 × 256 cm
1980s. 여인과 민속 (Woman and Folklore) Ink and color on paper,, 71 × 69 cm.
Window (창) Ink and color on paper, 55 × 40 cm
1982년. 창과 무속 (Window and Shaman) Ink and color on paper,, 50.2 × 45 cm.
Cottage (초가) Ink and color on paper, 68.0 x 45.7 cm.
1979년. 십장생 Ink and color on paper,
1976, Silver, ink and color on paper, 100.2 x 101.0 cm.
Shaman ; 무당(巫堂) 1982, Ink and color on paper, 135.8 x 135.8 cm.
1975, Mt. HanRa 한라산도 , Gold, ink and color on silk, 176.2 x 152.0 cm.
1982, Shaman (무당) Ink and color on paper, 136.3 x 136.3 cm.
A Kid and Korean Milepost (장승) Ink and color on paper, 134.0 x 132.0 cm.
열반(涅槃) 1982, Ink and color on paper, 136.3 x 136.0 cm
1984, Ten Symbols of Longevity (십장생) Ink and color on paper, 257.0 x 135.7 cm.
1980, Nude Woman ; 나여(裸女) Ink on paper, 45.2 x 67.6 cm.
1967 Mountain ; 여의주(如意珠) , Gold, silver, ink and color on paper, 196.0 x 140.2 cm
A Kid and Korean Milepost (장승)Ink and color on paper, 134.0 x 132.0 cm
[출처] 박생광(乃古 朴生光 Park SaengKwang,1904 ~ 1985,경주 진주출생,폭넓은 정신세계를 전통적인 색채로 표현한 화가,진채화의거장)|작성자 미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