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5. 옆 건물로 이를 닦으러 간다
도대체 왜 일본인들은 그렇게까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1983년 2월 1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중년의 신사가 점심 식사 후 직장 세면대에서 이를 닦기라도 하면 “이제 데이트라도 가시나?” 하는 놀림 섞인 말이 날아온다. 그 바람에 큰마음을 먹고 점심시간에 양치질을 시작해도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 곧 그만두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A씨는 점심 식사 후, 동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옆 건물까지 원정(?)을 가서 이를 닦는다는 것이다.
식후에 이를 닦기로 마음먹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닦으면 될 일 아닙니까. (저도 휴대용 칫솔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어디에서 식사를 하든 반드시 이를 닦고 있습니다.) 그런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를 닦겠다고 매번 옆 건물까지 원정을 간다니, 그건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걸까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걸까요.
이런 모습 역시 일본인의 부화뇌동성(付和雷同性)의 한 표현이겠지요. 모두가 점심 식사 후 세면대에서 이를 닦는다면 자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데 자기 혼자만 하는 건 부끄럽다는 모양입니다. 뭐, 이런 분들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치주염에 걸린다면 나도 같이 걸리겠습니다” 라고 말할 것 같군요.
혐연권(嫌煙権) 문제를 보더라도,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혐연권을 주장하면 괜히 별난 사람으로 보이기 쉽지요. 반대로 미국 같은 곳에서는 담배를 꺼내는 쪽이 눈총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리 하나에(*森英恵1926~2022패션디자이너) 씨가 1983년 8월 29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이제 국제적인 남성 사회에서는 담배를 피우는가, 피우지 않는가, 혹은 끊었는가 하는 점이
인간의 질이나 생활 태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까지 했다. 외국어를 잘한다든가, 세계적인 시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이 국제파의 조건은 아니다.
모리 씨에 따르면, 한때 헤비 스모커였던 남편과 함께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내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성이
가방에서 소형 선풍기를 꺼내 조립해, 담배 연기가 자기들 쪽으로 오지 않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모리 씨는 이를 두고 “역시 뉴욕 사람들은 만만치 않다”고 적고 계신데, 일본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요.
다시 이야기를 돌리자면,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더 중시하는 분들, 꽤 많지 않을까요. 이 역시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1983년 4월 26일자)에서 본 이야기인데, 이번에는 독신자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의 경우입니다.
“주변의 주부들이 분주하게 가족 반찬을 고르는 옆에서, 서른 고개를 넘긴 여자가 ‘롤캐비지 하나만 주세요’ 같은 주문을 하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마치 초라한 혼자 사는 삶을 공개하는 것 같잖아요.” 이런 생각이 들어, 기분 탓인지 판매원의 시선에서도 신경이 쓰여져 사실은 필요도 없는데 함박스테이크도 두 개, 장어구이도 두 사람 몫씩 사서 마치 식구가 있는 사람인 척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초라한 혼자 살림’이라는 이미지는 이미 한 세대쯤 지난 인식이고, 독신자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도 더 많으니 오히려 식생활은 가정을 꾸린 사람들보다 더 풍요로운 경우가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 여성 '가와라반(かわらばん)' 이라는 칼럼의 필자가, 남의 시선을 몹시 의식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인은 외국어에 서투른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실력이 늘지 않느냐 하면 늘 부끄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かわらばん-瓦版 : 江戸 시대에 찰흙에 글씨나 그림 등을 새겨, 기와처럼 구운 것을 판으로 하여 인쇄한 속보 기사판)
(외국어를 못하는 민족의 예로 자주 비교되는 대상이 미국인인데, 그들의 경우는 영어가 국제어가 되어 버린 탓에 외국어를 연습할 필요성이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과는 처한 상황이 다르지요. 일본인은 외국어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놓여 있고, 어학 산업도 크게 번성하고 있는데도 전반적으로 외국어 실력이 서툽니다).
문법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점만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무엇을 말하려 하느냐는 내용이지, 발음이 조금 서툴거나 문법이 다소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언론계, 특히 기자회견이라는 자리를 보면 일본인의 이런 습성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외국인 기자들은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매우 자유로운 발상으로 질문을 던지지만, 일본인 기자들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질문을 합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질문이라 하더라도, 답변하는 쪽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열에 여덟, 아홉은 반드시 서두가 붙어서, 왜 이 질문을 하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배경이라는 것도 별로 새로울 게 없고, 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굳이 설명해 줄 필요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라면,
“일본의 경기 회복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라고 묻는 상황에서도, 일본인 기자라면 “미국은 주택 건설이 호조인 것 같고, 서독은 수출이 회복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개인 소비가 …” 와 같은 서두를 꼭 덧붙이는 것입니다. 답하는 쪽 입장에서는 “그런 건 다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테지만, 거기서도 예의 바른 일본인답게 그냥 침묵합니다. 반면 답변자가 외국인일 경우에는, “그래서 질문이 뭔가요?” 하고 말을 끊는 사람도 있지요.
그리고 질문의 범위라는 것도, 말로 드러나지 않은 규칙에 따라 정해져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이 질문 말고는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칙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하면 부끄럽다”라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외국인 기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하다 보면,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질문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때로는 “그런 것도 모르나?” 하고 어이가 없을 만큼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건 우연히 몰랐을 뿐이고, 다른 건 많이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다른 기자들 역시 그런 초보적인 질문을 결코 비웃지 않습니다. 일본인은 “모릅니다”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도 서툴러서, 괜히 안절부절못하고 어색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모르면서도 아는 척을 해버리기도 하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6. 5-7-5와 계절감
이건 뭐, 비교적 호감이 가는 성향에 속한다고 해도 되겠지요. ‘전 국민 총(總) 하이쿠 시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가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하이쿠(俳句)와 단카(短歌)를 창작하는 인구가 770만 명, (하이쿠·단카를 제외한) 시를 창작하는 인구는 98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꽤 대단한 숫자죠.
일본에서는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하이쿠 한 수쯤은 지어야 하고, 무슨 상이라도 받으면 단카 한 수를 읊어야 합니다. 직장 등에서 열리는 콘테스트도 활발하고, 물론 전국적인 우타카이하지메(歌会始 : 황실주관 와카발표식) 같은 행사도 의외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독자를 가진 전국지가 매일 1면에 시를 싣고 있으니, 일본인은 꽤 문학적인 민족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 코너는 선평을 맡은 사람을 잘 만난 것이 결정적이긴 하지만요. 어째서인지 5·7·5라는 음절 구조는 일본인의 신경을 찌릿하게 자극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라도, 간장 맛이 나는 것, 이를테면 라멘 같은 걸 먹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사람이 일본인 대다수인 듯한데, 그 간장의 맛과 향에 가까운 것이 바로 5·7·5라는 음절 구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힘을 빼서 축 늘어지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물론 하이쿠든 단카든, 짓는 쪽은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읽는 쪽은 생리적인 쾌감을 느끼며 읽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시도 아닌 교통안전 표어까지 왜 굳이 5·7·5 형식이 되는 걸까요?
ㅡ 갑자기 튀어나오지 마세요 차는 금방 멈출 수 없으니까요. 좁은 일본, 그렇게 서둘러서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지요ㅡ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내가 비뚤어진 성격이라서 그런지, 5·7·5라는 리듬을 들으면 왠지 엉덩이가 간질간질해서 기분이 나쁩니다. 그래서인지 5·7·5를 깨뜨려 버린 오자키 호사이(尾崎放哉1885~ 1926 俳人)의 아래와 같은 한 줄짜리 시들에 더 끌립니다.
ㅡ 그릇이 없어 두 손으로 받아든다
낙엽 히죽히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침묵의 연못에 거북이 하나 떠오른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 저녁 하늘
열쇠구멍 해 저물어 덜컥 맞물린다
참새의 따뜻함을 쥐었다가 놓아준다
텅 빈 마음에 눈이 두 개 열려 있다
마음을 정리하는 연필을 날카롭게 깎는다
데굴 하고 옆으로 눕는다 오늘이 끝나 있다
죽지도 못하고 감기에 걸려 있다
희끗희끗 날이 밝아온다 살아 있었다 ㅡ
이것은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저히 5-7-5의 리듬에만 몸을 맡기고 황홀해 할 수는 없습니다.
오쿠노 다케오(奥野健男1926~1997문예평론가) 씨는 1974년 6월 28일자 일본경제신문에서, 이것은 일종의 사고정지(思考停止)를 초래하는 주문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 일본인은 7-5조의 문장을 들으면 그 경쾌한 리듬에 휩쓸려 내용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감각적으로, 기분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개성을 잃고 집단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7-5조는 정착과 안정, 평화로운 한가로움의 음수율(音数律)처럼 보인다. 그것은 개성을 소거하고 집단의 안락함과 즐거움을 표현한다. 이렇게 7-5조를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우리는 7-5조와 일본인의 사상·감성의 관계를 규명해 나가되, 감성에서는 7-5조를 살리고, 이성에서는 7-5조를 깨뜨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새로운 이성과 감성이 통합된, 보다 현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調)’를 발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제안하고 있다. 하이쿠가 일본인의 심정과 생활 습관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언제나 계절감을 찾으려는 버릇, 말하지 않은 여백에 여운을 남기려는 습관 같은 것들은 하이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신문의 보도 기사 속에도, 기사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계절에 대한 서술이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아사히신문 가정면에 '아내들의 이륙(離陸)'이라는 연재가 있었는데, 그 1983년 4월 18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남편과, 서로의 체험까지 포함해 성(性)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같은, 꿈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거둬들인 빨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개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잠시 뒤, “역시 무리겠죠.” 하고 덧붙인다. 여기에 '해질 무렵의 창가에, 벚꽃이 희게 보인다' 라는 대목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벚꽃’이 등장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 미국, 영국,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서독의 신문과 잡지에 기사를 써온 적이 있지만, 어느 나라의 출판물에서도 기사 속에 이런 쓸데없는 요소는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은 신문용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지면에 낭비를 허락할 만큼 여유가 있을 리 없는데도, 이런 별 의미도 없는 센티멘털리즘이 자주 눈에 띈다. 한정된 지면인 만큼, 가능한 한 정보를 촘촘히 실어야지, 시시한 감상은 배제해 주었으면 한다.
계절감을 소중히 여긴다, 혹은 그렇게 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철만 되면 우산을 쓴 사람들의 사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어 나르는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십 년 하루 같은 지면을 만들어 놓고도 지겹지 않은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보는 쪽은 이미 진절머리가 난다.
또 하나, 하이쿠(俳句)가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되는데, 일본인의 표현 방식에는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고 중간에서 멈춰 말 밖의 여운을 풍기게 한다’는 것이 있다. 주간지에는 특히 많고 신문에도 꽤 자주 등장하는데, “어쩌면…”, “혹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같은 형태로 문장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일본어에서는 일부러 끝까지 또렷하게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죠, 외국어로 말할 때만큼은 반드시 끝까지 분명히 말해 주기 바랍니다. 문장을 끝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대단히 인상이 나쁜 법입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에 대해서 기자들은 그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그녀는 문장을 반드시 끝까지 말한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7. 남자가… 남자가…
그렇군요. 그럼 먼저 나카소네(中曽根康弘 なかそね やすひろ 1918~2019) 총리부터 등장시켜 볼까요. 나카가와 이치로(中川一郎1925~1983 정치가)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는 “남자답고 당당한 정치가로서, 식견을 가지고 여론에 아첨하지 않으며, 신념을 관철한 인물이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식견을 갖추고 여론에 영합하지 않으며 신념을 관철한 당당한 정치가라면, 이치카와 후사에(市川房枝1893~1981) 씨 같은 여성도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굳이 “남자답다”라는 표현을 끌어다 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나카소네 씨는 아마도 무의식중이겠지만,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여성 멸시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애초에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다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히 칭찬할 만한 일도 아닙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나카소네 씨는 아마도 무의식적인 것이겠지만,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여성 멸시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다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 무엇을 특별히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굳이 칭찬의 말로 “남자답다”라는 표현을 끌어다 쓰는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성을 얕잡아보고, “여자와는 달리 한 단계 높은 종족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말로 뛰어나다면, 굳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고, 그 자체로 독립적인 우수성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남자로 태어났는지 여자로 태어났는지와 같은 우연성에 기대지 않고도, 그 사람의 뛰어남은 충분히 증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난히 “남자가, 남자가…” 하고 떠드는 사람은, 결국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처럼 “남자의 서재”, “남자의 요리”, “남자의 위스키” 따위로 ‘남자’라는 말을 마구 휘둘러야만 하는 상황은, 일본의 남성들이 총체적으로 자신감 상실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오분샤(旺文社1931년설립출판사)의 광고에는 “남자는 돌아왔다”라는 문구가 먹으로 크게 쓰여 있습니다. 오분샤 현대시점(現代視点) '전국·막말(戦国・幕末)의 군상' 전 100권. 가치관이 다양화되어 지침을 찾기 어려운 현대이기 때문에야말로, 이 격동의 시대에 두드러진 남자들의 삶의 방식을 묻는 데 의미가 있다. 가치가 있다, 는 것입니다.
철저한 취재와 새로운 사료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각도에서, 남자들이 20세기에 되살아난다. 뭐, 그렇게까지 힘을 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요. 또 다테모토 마사히로(建元正弘 1924 ~1997) 오사카대학 교수가 가나모리 히사오(金森久雄~2018) 저 '일본경제의 기초지식'을 평하며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일본경제신문 1983년 1월 9일자)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며,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간다는 ‘남자의 마음’에 공감하여 널리 추천하고 싶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인구의 절반에게 반감을 사려고 하는 걸까요.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며,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여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서평은 애초부터 여성 독자 따위는 독자 수에 넣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학자라면 이른바 남북 문제라고 불리는 개발도상국의 문제 같은 것도 분명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인종 문제든, 남북 문제든, 여성 문제든,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인간 사이에 상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본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리버럴한(*자유주의적인) 발언을 하는 학자, 평론가, 저널리스트들이,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무심코 툭 하고 흘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애초부터 여성 멸시를 정면으로 내세우는 저명인사도 적지 않습니다. 만화 '후지 산타로'를 보는 외국인들은 대개 깜짝 놀랍니다.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신문에, 당당하게 여성 비하도 이만저만이 아닌 만화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 후지산타로(フジ三太郎) : 사토 아이사부로(佐藤愛三郎)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연재(1954년부터 20년 이상 장기 연재)의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신문 만화 중 하나]
산타로 만화에 198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성 부장, 여성 계장이 등장합니다만, 그전까지 이 만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주름투성이의 할머니이거나, 머릿속이 텅 빈 여자아이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은 바람에 치마가 들춰져 팬티를 들여다보이게 되는 존재, 말하자면 그런 동물처럼 그려졌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여자아이들만으로는 재미가 없어졌던지, 마침내 여성 부장이 등장하게 된 것인데, 이 여성 부장은 예의 일본 남성 특유의 뒤틀린 열등의식을 묘사하는 데 있어 참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후지 산타로라는 인물은 질투와 비뚤어진 감정의 덩어리 같은 남자이고, 그런 점에서 일본인의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긴 하지만, 남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비장한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남자라면 해봐라”
“남자이옵니다”
“드디어 남자가 되었습니다”
“부디 저를 남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남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건 남자가 아니지”
“남자의 숙원”
…같은 것들 말이죠. 참으로 버겁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8. 자기주장보다 기술
1983년 9월 중순, 니카텐(二科展)의 심사위원인 니가타대학교(新潟大学) 교수가 모로코 사진을 모사(模写)한 유화를 출품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침 탤런트 아사히나 마리아(朝比奈マリア1962~화가)의 표절 소동이 일어난 직후였는데, 9월 13일자 아사히신문 지면에 실린 미술평론가 세기 신이치(瀬木慎一1931~ 2011) 씨의 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니카텐(二科展) : 1914년 창설된 二科会(니카카이 二科美術展覧会). 민간 주도의 대규모 공모 미술전으로 일본의 관전(국가 주도 전람회)에 반발해 생긴 전람회로 초기 일본 문부성 미술전람회(文展)에는 1과(일본화) 2과(서양화)가 있었는데 서양화(二科)를 중심으로 독립한 그룹이라서 ‘二科’라는 이름이 붙었음]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상상력의 세계이며, 그렇기 때문에 독창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요즘 화가들은 상상력이 아니라 기술에 의존하려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일본인의 작품은 그것이 그림이든, 작곡이든, 연주이든 간에 기술 편중이 두드러집니다.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와 호소하는 것, 즉 자기주장이 매우 적습니다. 대신 세세한 기술적 문제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 너무 많다고 느껴집니다.
뉴욕의 소호(SOHO) 지구 같은 곳을 걸어다니다 보면, 전위적 회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작품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기술적인 면은 뒷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력한 메시지가 거침없이 밀려와, 보는 이는 말문조차 막힐 정도로 압도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음악평론가 요시다 히데카즈(吉田秀和) 씨가 꽤 오래전에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음악의 세계에서도 일본인은 외부에서 무언가를 흡수하는 데 있어서는 실로 놀라울 만큼 성실해서, 이 사람이다 싶으면 스승을 찾아 필사적으로 수업을 받으며 수련한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기술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뛰어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것, 갈고닦은 기술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라는 단계에 이르면, 일본인은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해 버린다고 합니다.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와 주장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죠.
이 점은 아이들의 연주를 비교해 볼 때, 저 같은 문외한에게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입니다. 일본 아이들은 독주든 합주든 매우 능숙하고, 기술적인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외국 아이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즐겁게 연주하고 있으며, 연주하는 기쁨을 전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아이들과 외국 아이들이 섞여 나오는 연주회에 가 보면, 그 대비가 너무 뚜렷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일본 아이들은 오로지 기술을 겨루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대체로 일본인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모범을 얼마나 충실하게 모방하느냐에 엄청난 시간을 들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서예가 그렇습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본보기를 따라 써서 거의 똑같이 쓸 수 있게 된 다음이 아니면, 자기만의 서체를 시도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꽃꽂이도 그렇고, 일본무용도 그렇고, 나가우타(*샤미센 반주에 맞춰 부르는 일본 전통 가곡)나 거문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라는 마음보다는, 기술과 규칙을 ‘정확하게 익히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태도가 뚜렷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문의 세계도 사정은 비슷한 듯합니다. 오키 마사오(大木雅夫1931~2018)의 '일본인의 법의식'(도쿄대학출판회, 1983년)에서 저자는 “서양의 학문적 방법의 기초에는 비판 정신이 있으며, 선인의 학설을 답습하는 것보다 독창성을 중시하는 기풍이 있다” 라고 쓰고 있는데, 바꿔 말하면 일본인은 그와 반대로 독창성보다도 기존의 학설을 계승·해석하는 것(祖述)을 존중하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자기주장’이라는 말 자체도 일본에서는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듯합니다. 특히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라는 표현은 상당히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주장’이라는 말이 본래의 의미인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와 호소하는 것’을 떠나, ‘남의 일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이라든가 ‘책임은 충분히 다하지 않으면서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자기주장은 인간 존재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주장이 없는 인간이란, 얼굴 없는 노페라보(눈코입이 없는 요괴) 같은 게 아닐까요.
나는 저널리스트로서 여러 나라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왔지만,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주장이 적은 민족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 회사의 사장을 인터뷰해도, 말단 사원을 인터뷰해도, 들려오는 말은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거, 지난번에 닛케이에서 말하던 내용 아닌가요?”라고 자주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고들 하잖아요”, “○○ 씨 같은 사람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뭐, 대충 그런 거 아니겠어요?”라며 자기 의견을 내놓기보다는 이미 세상에 알려진 사람들의 견해 쪽으로 스르르 자신을 동화시켜 버리고 맙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자기주장이 강한 일본인을 만나면, 기자는 저도 모르게 반가워져서, 설령 조금은 엉뚱한 주장이라도 기사 속에 인용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저처럼 외국 신문·잡지에 글을 쓰고 있다 보면, 편집자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조금 더 컬러풀한 인물을 써 주세요. 원고는 정확하고 구성도 탄탄한데, 등장인물들이 너무 개성이 없어요.”
라고 불평을 듣곤 합니다. 예를 들어 호주의 은행가를 취재하러 가면, 나비 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를 매고 분홍색 쉐보레를 몰고 나타나기도 하니, 외모부터가 화려하고, 발언 역시 상식을 벗어나는 구석이 있어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에 비해 일본의 은행가라면, 회색에서 감색 사이의 수트에, 무슨 무늬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평범한 넥타이를 한 차림이니, 글을 컬러풀하게 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놀랄 만한 발언이 나오는 일도 거의 없고, 취미 이야기를 꺼내 보아도 어김없이 골프 이야기뿐이라 기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일본인을 대표하듯,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습관을 충실히 체현(体現)하고 있지요. 소련에 대한 제재 같은 사안을 결정할 때에도, 반드시 다른 선진국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둘러본 뒤, 조심스럽게 그에 따라갑니다.
일본은 결코 제재 조치를 가장 먼저 발표하지도 않고, “일본은 사정이 다르니 제재를 하지 않겠다”며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일도 없습니다. 전임자들에 비하면 분명 비교적 분명하게 말을 하는 편인 나카소네 총리이지만, 국제 정치의 무대에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부만을 비판하는 것도 온당하지는 않겠지요. 국민 전체가 전반적으로 자기주장이 부족한 것이니까요.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의 다니엘 얀켈로비치는 아사히신문의 시모무라 미쓰코(下村満子1938~) 편집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이 왜 반핵 운동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반핵 운동 역시 자기주장이 약한 편인 것이 사실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감상적으로 애도하는 일은 40년이나 계속되어 왔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운동처럼 핵폐기를 향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절차를 제시하는 움직임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에는 도쿄대학의 사카모토요시카즈(坂本義和1924~2014)교수를 비롯해 뛰어난 정치학자·평화학자들이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가들의 이론적 무장이나 일반 시민들의 사고 도구로서 이들 학자가 세운 이론과 주장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9. 흡연과 서서 소변 보기
이게 무슨 이야기일 것 같습니까? 일본인 남성들이 해외에서 몹시 평판을 떨어뜨리고 있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일단 끝까지 읽어보시죠. 1983년 9월, 아일랜드의 힐러리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궁중에서 천황이 만찬을 주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총리를 제외한 스무 명의 각료 가운데 열네 명이 결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한 각료가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변이 온통 외국인뿐이고, 서양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영 거북하단 말이야.”
(아사히신문 9월 14일자 기자석)
이 각료의 이름을 제대로 밝혀줬으면 좋겠군요. 외국인과 함께하는 식사조차 즐기지 못하고, 일본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각료 자리에서 물러나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 과소(過疎) 지역의 촌장이라도 맡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자리라면 별일이 없어도 굳이 얼굴을 내밀려고 하는 사람들이면서, 아일랜드 정도만 되어도 소국 취급을 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정치인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기자는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궁중 만찬의 참석자는 턱시도에 블랙타이를 착용하며, 요리가 나오는 동안에는 예절상 담배도 피우지 않는 것이 관례다. 헤비 스모커가 많은 각료들에게는 이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인 듯하다. 흡연 문제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리 하나에(森英恵) 씨가 말했듯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인간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이런 각료들은 그 점에서도 국제적 감각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말이죠, 식사 중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은 서양에서는 거의 만국 공통의 에티켓인데, 일본인과 중국인은 참을성이 부족한 편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도 그런 편일까요. 코스 요리 도중에 접시가 치워지고 다음 요리가 나오기까지의 그 잠깐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흔히 미식가라고 불리며, 스스로도 장황하게 미식가 행세를 하며 글을 쓰고 떠드는 사람들이 정작 식사 중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어이가 없어집니다. 일본에 거주한 적이 있는 미국인 힐러리 키타세이는 “식사 중에 담배를 피우는 건, 다다미 위를 신발 신고 걷는 것과 같다” 라고 했는데, 참으로 절묘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참을성 없음’이라는 점에서 한 가지를 더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성에게서만 보이는 버릇입니다. 대만 작가 황춘밍(黄春明)의 소설 '안녕·재견(さよなら・再見)' (다나카 히로시·후쿠다 게이지 번역, 문유사, 1979년)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ㅡ 마바(馬場)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리고, 내가 돌아보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황 선생, 운전사에게 말해서 차 좀 세워 달라고 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잠깐, 오줌 좀, 오줌요.” 우리 차는 멈춰 섰고, 뒤에서 사사키(佐々木) 일행이 탄 차가 따라잡아 왔다. 그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신이 나서 모두 차에서 내리더니, 길가에 일렬로 서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차 안에 그대로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침 관광버스 두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여서, 이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할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남녀 관광객을 가득 태운 유람버스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태연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소변을 보면서 유람버스 승객들을 바라보고 웃고 있는 남자까지 있었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일본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일본 남자들은 길가에서 소변 보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곤 했는데, 그 당시의 나는 그런 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일렬로 서서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을 때 소변을 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그 선배가 왜 그렇게 이 문제에 집착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일본인을 개라고 부르거나, 혹은 네 발 달린 존재라고 불렀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ㅡ
이 버릇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그 현장이 직접 목격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멸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총리 후보로 나섰던 국회의원이 국회 중정(中庭)에서 서서 소변을 본다 해도, 국내에서는 “어이쿠 그러면 안 돼!” 정도로 넘어가지만, 해외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국회의원이 술에 취해 신칸센 열차 안에서 오줌을 누었고, 국철 직원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뒤처리를 하는 모습을 목격한 구로야나기 테츠코(黒柳徹子1933~수필가 배우) 씨가 그 일을 신문에 썼다가 문제가 된 적도 있었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0. 다음 주에 또 전화해요
이런 성향은 스스로도 “아, 나도 그런데” 하고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인은 근면하다”라는 말은 전설에 가깝고, 실제로는 바빠 보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계획적으로 쉬는 시간이나 놀러 갈 시간을 만들어 두지 않고, 그저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계획성의 부족에는 정말 놀라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뜬 다음에야 그날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 아주 많거든요. 이것은 온대 지방 이북에 사는 민족으로서는 상당히 드문 습성이 아닐까요.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내년에는 몇 월 몇째 주부터 며칠간 휴가를 내겠다는 정도의 계획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일상생활에서도 “언젠가 점심 같이 하지 않을래?” “다음 주 화요일에 몇 사람이 우리 집에 모이는데, 저녁 먹으러 오지 않을래?” “조금 상담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아침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같은 제안들은 금세 정리가 됩니다. 대체로 석 달 이내의 일정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일정표를 한 번 훑어보고 바로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 가운데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다음 주 후반쯤이면 괜찮을 것 같으니까, 다음 주 중반쯤에 다시 전화해.” “다음 주 화요일은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참석으로만 해 둬.” “이번 주는 너무 바빠서 안 되고, 다음 주에 한 번 더 연락 주시겠어요?” 이런 식이 됩니다. 길어야 일주일 이내의 약속밖에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샐러리맨이 되고 나면, 그날 저녁의 약속조차 잡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일을 언제 끝낼지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전화 한 통으로 만날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정할 수 있는데, 일본인 상대일 경우에는 여러 번 전화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나는 집이나 직장에 늘 있는 편이 아니라서 자동응답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동응답기에 남겨지는 메시지도 외국인과 일본인은 확연히 다릅니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대개 이렇게 남깁니다.
“수요일 오후 다섯 시 반이나 목요일 오전 여덟 시가 괜찮은데, 제국호텔 메인 로비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어느 쪽이 편하신지 제 비서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이쪽에서 굳이 다시 전화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통의 전화로 일이 끝나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런데 일본인의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돌아오시면 전화 주십시오” 라는 전달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걸면, 이번에는 상대가 자리에 없어서 제대로 전달이나 될지 믿음직하지 않은 목소리의 사람이 수화기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원래는 간단할 연락이 불필요하게 번거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로 괜한 시간을 빼앗겨 바쁘게 보내는 사람은 많지만, 조금만 더 계획적으로 일을 정리하고 요령 있게 처리하면, 사실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물론 정말로 바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간을 쓰는 법이 엉망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잡은 뒤에, 부득이하게 일정을 바꿔야 하는 경우라도,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실로 간단합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지난번 약속을 변경해 달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 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해 주시겠습니까?” 라는 식입니다.
일본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은 정말로 적습니다. 5년 뒤, 10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라는 목표를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내가 “1984년과 1988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미국에 거주하며 취재하고, 1989년에는 중남미나, 가능하다면 소련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라고 말하면, “그렇게 먼 앞날까지 생각하고 계신가요?” 하며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영어로 뉴스 기사와 칼럼을 쓰면서, 해마다 두세 권의 책을 일본어로 쓰고 있으니, 어느 쪽에서 봐도 바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쉬는 시간과 노는 시간은 제대로 챙기고 있습니다.
나는 1년에 4~6주 정도 휴가를 내고, 매주 한 번은 음악회나 연극, 혹은 영화를 보러 가며, 주 1회는 미술관을 찾고, 또 일주일에 한 번은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그 뒤에 식사를 하며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었다고 합시다. 식사가 끝난 뒤, 상대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어디 가서 가볍게 한 잔 할까요?” 하고 묻습니다.
여기서 함께 술을 마시러 가면 분명 즐겁겠지, 하고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오늘 밤 안에 끝내야 할 원고가 있어요” 라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자정 무렵. 거기서 마음을 다잡고 타자기 앞에 앉아 전속력으로 원고를 칩니다. 택시를 타고 원고를 제출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최고입니다.
저녁 식사 뒤의 유혹에 지지 않기 위해, 외출하기 전에 신문사 앞으로 “오늘 중으로 벤처 캐피털에 관한 원고 1,200단어를 보낸다” 같은 내용을 텔렉스로 보내 스스로를 묶어 두는 겁니다. 상대에게도 “조금 아쉽네” 라고 느끼게 할 정도의 타이밍에 헤어지는 편이, 결국은 더 좋은 법이니까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1. 남의 일에는 손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심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해요.”
라고 분개하며 말한 사람은 영국인 기자 앤 나카노였습니다. 그녀는 갓 태어난 아들을 어깨에 메단 그물 가방에 넣고 취재 현장을 뛰어다니는 아주 강인한 여성인데, 한 손에는 기저귀와 우유병이 든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취재 자료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게다가 날씨까지 궂어 우산을 겨드랑이에 낀 채로 헉헉거리며 역 계단을 오르고 있어도, 일본에서는 누구 하나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다른 나라라면 아무리 비뚤어진 남자아이일지라도 임산부나 젖먹이를 안은 어머니에게는 손을 내미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이런 타인에게 냉담한 일본인의 태도는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는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인은 한편으로는 ‘친절한 국민’으로도 알려져 있어서, 일본을 여행하며 친절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난민 구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 애니 가우는, 아사히신문의 오카다 미키하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일본인의 이중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 1983년 3월 21일자 '사람' 난)
“서구 사회에는 국적을 막론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 전통이 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가족이나 마을 안에서 서로 돕는 것이 관습이지요.” “인도차이나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도, 일본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까지도 동전을 모으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또한 아사히신문의 마쓰이 야요리 특파원의 방글라데시 보고에 따르면, 예를 들어 인구 350만 명에 불과한 아일랜드가 본국에서 원조 캠페인을 벌여 모은 금액은 9억 엔에 달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억 단위의 성금을 쏟아붓고 있는데, 일본의 민간 원조는 극히 미미하여 ‘헬프 방글라데시 커미티’의 연간 예산은 고작 500만 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이 커미티와 같은 봉사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모든 일본인이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버릇’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누카이 미치코(
犬養道子 1921~2017 자선가) 씨가 '아웃사이더로부터의 편지' (중앙공론사, 1983년)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1980년부터 죠치(上智)대학교가 시작하여 다른 대학의 학생들과 일반인들까지 참여하게 된 인도차이나 난민 캠프에서의 봉사활동이 있습니다.
이누카이 씨는 죠치(上智)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며, 현지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힘든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참가를 희망하는 학생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이누카이 씨는 적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도차이나 반도의 언어를, 모두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고도 했지요. 일본인도 그렇게까지 매정한 존재만은 아닌 셈입니다.
더 나아가 종교 관계자들의 활동도 있습니다. 일본 가톨릭 이주협의회가 편찬한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을 읽어보면, 전기도 수도도 화장실도 없는 나라에서 결핵이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여의사와 간호사 수녀들의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이렇게 가장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각자가 자기 생활습관을 그대로 가져와 살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괴로운 일이 되겠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에 만족할 수 있다면 물질적인 부족함마저도 기쁨으로 바뀝니다. 나 자신이 이렇게나 혜택받은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의 고통이 되어,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그런 말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지어 행동하려는 일본인들이 많은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수녀들은 단 한 사람으로 최빈국으로 떠나, 짧은 시일 안에 현지의 언어를 익히고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종교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사람들의 수 역시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적고,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행위’가 아주 적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사후 장기 기증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끝난 뒤에 안구나 신장 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본에서는 등록자가 매우 적어 미국이나 스리랑카에서 공수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2. 로마자 남용의 괴이함
이제 와서 내가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겠지만,
‘FREE’ ‘LEE’ ‘SAY’ ‘BILLION’ ‘WILL’ ‘ANAN’ ‘NONNO’ ‘CANCAM’ ‘WITH’ ‘MORE’ ‘JJ’ ‘BRUTUS’ ‘FOCUS’ ‘FRIDAY’ ‘VOICE’ ‘BOX’ 이런 것들이 전부 일본어 잡지의 이름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도 많고, 예를 들어 영어를 이해하고 영어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에게는 ‘BOX’가 잡지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몹시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한결같이 “박스라니, 그 B-O-X, 상자 말하는 거야? 도대체 왜?” 하고 묻는다는 거죠.
그리고 또, 일본인의 99퍼센트가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는 ‘LEE’ 같은 말을 잡지 이름으로 쓰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편집자들조차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것들에 비하면 "제군(諸君)!" "삶의 수첩(暮しの手帖) "사상(思想)" 같은 잡지들은 의미도 분명하고, 누구나 발음할 수 있으며, 잡지 제목으로서 전혀 어색한 데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잡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동차를 시작으로 음향기기, 화장품, 아이들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상품명이 로마자로 표기됩니다. 제대로 된 영어거나 프랑스어인 경우도 있지만, 국적을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말이나, 뜻이 완전히 잘못 사용된 단어도 적지 않습니다. 집합주택에 ‘맨션’ ‘팰리스’ ‘캐슬’ 같은 이름을 붙여 놓고도, 아무도 이상해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는 걸 보면 참 묘한 일이지요.
호주인 사업가 조지 필즈 씨가 '필즈 씨가 본 불가사의한 일본인' (山手書房 1982년)에서 썼듯이, ‘칼피스(カルピス)’라는 이름은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카우 피스(cow piss)’, 즉 ‘소 오줌’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또 ‘크리프(Creep)’는 영어로 ‘최악으로 싫은 녀석’이라는 뜻이고, ‘파콤(Facom)’ 역시 일본식 발음으로 하면, 문제의 그 네 글자 욕설(*fuck)에 M이 붙은 것처럼 들린다는군요. 이런 것들에 비하면, 모리나가 제과의 ‘누카요로코비(ぬかよろこび-헛기쁨, 잠깐의 기쁨)’ 라는 상품명은 정말 탁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단어를 일부러 상품 이름으로 쓰는 그 감각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지요. 이런 현상은 글자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TV 광고를 보면, 일본인에게 일본 제품을 팔면서도 어째서인지 서양인 모델이 등장하고, 백화점에 가면 마네킹은 전부 외국인 얼굴입니다. 기모노 매장에 가서야 비로소 검은 머리에 눈이 작은, 일본인처럼 생긴 마네킹을 만나게 되는 셈이지요.
뭐, 광고에 국제급 스타를 기용한다는 점은 이해 못 할 것도 아닙니다. “우디 앨런이 한때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백화점에서 쇼핑하자”라든가, “소피아 로렌이 잠깐이라도 타 봤을지 모르는 바이크와 같은 걸 사자” 이런 식의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디서 봐도 잘생기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백인 남자를, 단지 서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광고에 쓰는 심리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까지 서양인을 좋아하면서도, 일본인 가운데서 서양인처럼 영어를 하거나 독일어를 하고, 비슷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은 “일본인답지 않다”며 경멸합니다. 일본인이 같은 말을 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외국인이 말하면 일일이 감탄하는 습성도 있지요. 그래서 외국인이 쓴 일본인론(日本人論)은 대체로 잘 팔리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인의 근면함이라든가 경제성장의 눈부심을 칭찬한 책, 즉 일본을 한껏 치켜세운 내용일수록 특히 잘 팔리는 것 같네요. 일본인의 ‘외국인이 하는 말은 공손히 받아들인다’는 습성을 이용해서, 실제로는 일본인이면서도 이자야 펜다산이나 폴 보네 같은 외국인 이름을 필명으로 쓰는 사람까지 등장했습니다.
어떤 이슬람교도 아시아인이 일본에서 책을 출판했더니, 무려 1년 반 동안 4만 통이나 되는 팬레터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젊은 여성들의 편지도 많았는데, “이슬람교에서는 네 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다던데, 저를 그 아내 중 한 명으로 맞아 주시지 않겠어요?” 라는 내용의 편지도 꽤 있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3. 외국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나라든 저마다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본 역시 분명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여러 특징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일본은 어느 나라와도 다르기 때문에 외국인은 일본이나 일본인, 일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컬럼비아 대학 교수 도널드 킹은 『일본인의 질문』(아사히신문사, 1983)에서 이러한 버릇에 대해,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재미있게 쓰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보낸 편지 이야기입니다. 킹 씨는 아사히신문에 「일본인의 질문」이라는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읽은 한 중학생이 “당신은 아직 일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하며, 일본을 이해하는 데 믿을 만한 책을 추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킹씨는 “40년 전부터 일본어와 일본학을 공부해 온 내가 아직 일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열네 살 중학생은 이미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제적 상호 이해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라고, 짙은 아이러니를 담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꽤 많이 보고 듣고 있습니다.
일본 연구의 전문가인 미국인에게 아주 기초적인 가부키 지식을 잘난 체하며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람, 일본에 수십 년이나 살아온 독일인 기자에게 일본의 사계절 행사를 늘어놓듯이 설명하는 사람, ‘무담보채권’이나 ‘협조융자’ 같은 금융 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영국인 은행가에게 “한자 읽을 줄 아세요?” 라고 묻는 사람 등등, 사례는 끝이 없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가지나 오이가 미국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바퀴벌레는 일본에만 있다고 믿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하이쿠의 진정한 매력은 외국인에게는 알 수 없다”거나 “장어 맛은 일본인만 안다”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하지만 하이쿠에 푹 빠진 외국인은 얼마든지 있고, 장어를 아주 좋아하는 비(非)일본인도 얼마든지 있지요.
일본인 가운데에도 아프리카의, 그야말로 상당히 특수한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좀처럼 먹지 않는 유럽 어느 지역의 냄새 강한 치즈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요. 일본인 중에도 하이쿠가 도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고, 장어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국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인의 ‘특수성에 대한 과신’이 여러모로 위험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 민족은 특별히 우수하다” 라는 의식입니다. 패전 이후 일본 경제가 발전한 이유는 군사비를 적게 들일 수 있었던 점, 한국전쟁이 경기에 불을 붙여 준 점, 오랫동안 일본이 외국의 기술을 모방해 솜씨 좋게 값싼 제품을 만들어도 선진국들이 이를 어느 정도 눈감아 주었던 점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일본인은 우수하니까” 세계에서 GNP 3위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거라고 아무 생각 없이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국가 전체의 경제 규모가 커지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한 몫을 하는 선진국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 북유럽 국가들보다 낮고, 일반 시민들의 ‘위에 있는 권력’에 대한 지나친 순종성 등 일본 사회의 실제 모습에는 선진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인의 미각은 세계 최고이고 일본 음식은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것 역시 문제입니다. 일본인의 혀는 간장 맛에 마비돼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아무튼 날것에도, 구운 음식에도 간장을 뿌리고, 조림에는 반드시 간장이 들어가며, 심지어 맑은 국물 요리까지 간장 맛이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습니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회를 두고 “맛이 없고 형편없는 음식”이라며 싫어합니다.
생간장과 와사비만 찍어 먹다니, 그런 건 요리 축에도 못 낀다며 그들은 경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인을 ‘미각치’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일본 요리는 담음새의 아름다움과 저칼로리라는 점 덕분에 최근에는 여러 나라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맛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자기들만의 유니크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갖추어진 보편성, 다시 말해 ‘같은 인간끼리’라는 의식이 옅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 게르하르트 담프만은 『고립되는 대국 일본』(쓰카모토 데쓰야 - 塚本哲也 1929~ 2016 기자 작가 교수 - 옮김, TBS 브리태니카, 1981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이는 핵심을 정확히 짚은 지적이 아닐까요.
ㅡ 일본인은 자기 자신의 특수성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보완해 줄 요소, 즉 세계로 넓게 퍼진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낯선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존재와 연결시키고, 먼 나라의 불행을 자신의 인간적 비극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내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ㅡ
보시다시피, 일본인이 먼 나라의 불행에 얼마나 냉담한지, 멀리 있는 타인에게는 좀처럼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일본에서 발전한 문화가 오늘날에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 활발히 계승·발전되고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도입니다. 특히 여자 유도의 경우에는 유럽이나 미국, 호주 쪽이 일본보다 훨씬 더 성행하고 있으며, 실력 또한 훨씬 뛰어납니다.
일본의 고도칸(講道館:일본유도의 본산)이 여자 입문을 허용한 것은 1893년이라고 합니다만, 오랫동안 시합은 금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형(型) 연습만 주로 했던 셈입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계속해서 시합을 치르며 실력을 갈고닦아 왔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외국인 선수라는 게 거의 정해진 공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샤쿠하치(尺八)나 샤미센(三味線) 같은 일본 전통 악기들도 연주자와 애호가 모두 해외에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샤쿠하치의 경우에는 존 네프튠이라는 젊은 연주자가 서양 음악에 이를 도입해 연주하는 등, 해외 보급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尺八-しゃくはち는 일본의 대나무로 만든 전통 세로피리로 길이가 1자 8치(약 54.5cm)라서 ‘샤쿠하치’라 함. 취구(吹口)를 비스듬히 대고 부는 엔드블로운(end-blown) 관악기로 손가락 구멍은 앞에 4개, 뒤에 1개, 총 5개. 반음·미분음·호흡 소리까지 표현 가능해서 소리의 표정이 매우 많음[
(*사쿠하치 실제 면주 듣기 https://youtu.be/0bTvBA1YL6I?si=Mq-6mT_hPxBZPK8A )
(*샤미센의 신제연주 듣기 https://youtu.be/lsC9HZym7Uc?si=XKu7zDOGvjdR-crR )
「고토(琴)의 선율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음반 회사 광고에서 이치마루(市丸) 씨는
“우리 일본인의 마음에 끝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토의 음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고토를 일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입니다. 이런 국수주의적 색채의 광고 문구는 솔직히 좀 곤란하다고 생각되네요. (*고토의 실제 연주 듣기 https://youtu.be/ii8mbbxR8_0?si=RWl8JaASEipTken5 )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요리나 샹송이 훌륭하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고, 이탈리아 사람들도 오페라나 파스타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왜 일본인들은 일본의 좋은 것은 외국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미리 단정해 버리는 걸까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4. 꾸물거리는 여자들
이것은 안타깝게도 압도적으로 일본 여성에게서 많이 보이는 경향이며, 다른 아시아 국가의 여성들에게서도 관찰됩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회의 등에서 지명을 받으면 고개를 숙인 채 치마를 만지작거리는, 바로 그 모습 말입니다.
“여자아이는 얌전해야 한다”는 훈육을 받으며 자라는 사회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꾸물거리는 태도가 ‘귀엽다’고 칭찬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것이 최악입니다. 어느 날, 네덜란드에서 온 마술사의 공연을 백 명쯤 되는 아이들과 함께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이었고 일본 아이들도 섞여 있었는데, 다섯 살쯤 된 아이들끼리만 봐도 태도의 차이가 두드러져 인상적이었습니다. 서구권 아이들은 대체로 활발해서, 마술사가 “누군가 좀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하고 말하면 “제가 할래요”, “나! 나!” 하며 손을 드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고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아시아계 아이들은 큰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손은 들고, 지명되면 무대로 재빨리 걸어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 아이들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마술사가 “거기 있는 이린이” 하고 가리켜도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습니다. 겨우 재촉을 받아 무대에 올라가도, 시키는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입니다.
미국인 남자아이 같은 경우는 애교를 듬뿍 부리며 객석을 둘러보고, 이름을 묻으면 큰 소리로 대답해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알리려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시킨 말을 잘 이해하고 정확히 해내는 집중력은 뛰어나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힘은 눈에 띄게 약합니다. 다섯, 여섯 살 나이에 이미 이 정도 차이가 난다면, 어른이 되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꽤 오래전 일이지만, 도쿄의 프레스클럽(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저녁 무렵 칵테일 파티를 열어 일본의 저명 인사들을 초대해 담소를 나누자는 기획이 있었습니다. 저도 몇 차례 참석했는데,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 대학 교수로 활동하던 가토 슈이치 씨가 게스트였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화제가 끊임없이 이어져,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그에 비해, 어느 저명한 여성 작가 A 씨는 인사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도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성 피아니스트 E 씨도 마찬가지였는데, 함께 초대된 실업가인 그녀의 부친이 일본식 발음의 영어로 인사를 하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A 씨도 E 씨도 작가로서, 피아니스트로서 일류의 인물들이고 해외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인사 한마디조차 하지 않자 특파원들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외국인 앞에서도 머뭇거리지 않는 일본 여성들도 있습니다. 나카야마 치나쓰(中山千夏1948~작가 배우) 씨나, 구로야나기 테츠코(黒柳徹子1933~배우 수필가) 씨처럼요.
물론 TV 탤런트나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주눅 들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요. 이 경우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특히 여성이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면 미움을 받기 쉽습니다. 저만 해도 일본인 편집자들에게서 “표현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해 주세요”라는 말을 수시로 듣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덤프만(Dumpman)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 서구에서는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매우 존경받는, 다른 사람들보다 두드러지게 자신의 신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또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강한 개성을 지닌 인물은, 일본인에게는 불쾌감을 일으킨다. — 그래서 나카야마 씨나 구로야나기 씨처럼, 자기 개성을 소중히 키우고 그저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본에서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눅 든다(ものおじ)’ 같은 태도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미국의 비즈니스 사회일 것입니다. 포브스지 1981년 3월 16일 호에 실린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만약 같은 성을 가진 사람 앞으로 온 편지가 실수로 당신에게 배달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본인이라면 말없이 우체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만약 그 동성명이인이 유명 인사라면, 정중한 편지를 덧붙여 보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포브스의 기사에 따르면, 캐피털 시티스라는 TV 회사의 회장 토머스 소여 머피는, GM이라는 자동차 회사의 회장 토머스 아퀴나스 머피 앞으로 온 편지가 계속해서 잘못 배달되는 데 진절머리가 나, 그 편지들을 한데 모아 GM의 머피에게 보내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덧붙인 메모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바쁘고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의 종잇조각 같은 우편물을 더는 받지 않게 해 달라.” 미국인들 사이의 대화로서는, ‘정크 메일이 이쪽으로 오지 않게 해 달라’는 정도의 말은 가볍고 솔직한 표현일 뿐, 결코 거만한 말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인이라면 아마 이런 식의 말은 하지 않겠지요. 게다가 “나는 바쁘고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의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것저것 비판을 받기 십상입니다. 오가 노리오(大賀典雄1930~2011) 씨가 소니의 사장이 되었을 때, 일본경제신문의 '경제인' 칼럼에서 K 기자는 오가 씨에 대해,
— 합리주의자.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 쉽다는 안팎의 평가도 있다. 또한 ‘자신만만 거사(居士)’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의 자신감이, 때로는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는 원맨’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략)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점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가 오가 씨의 과제라는 목소리도 많다. — 라고 쓰고 있습니다.
“생각한 것을 거침없이 말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 쉽다” 라는 문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어로는 번역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보통은 타인의 의견을 잘 듣고, 오히려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두려워서 남의 의견을 듣지 못하는 법인데 말이지요.
‘의견을 듣는 것’과 ‘찬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의견은 듣되 함부로 찬성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자신감 있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라는 목소리도 많다” 라는 표현은 일본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흔히 보이지만, 제가 거의 9년에 걸쳐 해외 출판물에 글을 써 온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런 애매한 표현을 쓰는 순간 원고는 즉시 퇴짜를 맞게 됩니다.
어쨌든 “합리주의자이며, 할 말을 분명히 하고, 자신감이 있는 인물”이라는 성격은 외국의 비즈니스 사회라면 경영자에게 필수 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특질인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5. 균형 감각과 감점주의(減点主義)
누구나 지적하듯이, 구미의 개인주의에 비해 일본에서는 집단주의가 사회 규범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심하고, 혼자 있는 사람을 딱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집단 안에서는 모두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은근한—때로는 노골적인—괴롭힘을 가하기도 합니다.
저는 수학여행이나 사원여행 같은 것이 너무 싫어서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는데, 여러분은 좋아하시죠?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그 수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협조성’이라는 성질이 유난히, 지나칠 정도로 중시됩니다. 1983년 1월 10일자 일본경제신문의 '샐러리맨'란에는, 미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고민’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화제는 사원 인사고과로 "샐러리맨으로서의 '우수함' 척도가 일본과 미국에서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 관리직은 부하 직원의 젊은 미국인 직원으로부터 '제 고과는 왜 이렇게 좋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지각, 조퇴가 많은지 적은지, 말투는 어떤지 등 세세한 부분부터 일에 대한 성실함, 신뢰성 등 추상적인 평가 등이 일본 인사고과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인사고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여된 목표에 대한 달성률과 업무 수행 능력(속도)입니다. "일은 느리지만 사람은 좋은 남자와, 건방지고 태도도 좋지 않지만 일은 빠른 남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미국은 분명히 후자를 선택하는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인 우리가 하는 인사평가에는, 현지 직원들로부터 불만이 나올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라고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좋다’거나 ‘건방지고 태도도 좋지 않다’는 식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가 급여나 승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모두 얌전하고 예의 바르기는 하지만, 야성미가 넘치는 사람이나 개성이 풍부한 사람은 극히 적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결코 자기 생각을 스트레이트하게 표현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을 때 주변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를 신중하게 예측한 뒤, 무난하고 흠 잡히지 않는 방식으로 말합니다. 실패는 곧 감점이 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대담한 행동이나 발언은 삼가게 됩니다.
이런 사회는 서구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앨빈 토플러는 아사히신문의 시모무라 미츠코(下村満子1938~) 편집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수할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새로운 창조가 태어나지 않는다. 소련처럼 실패를 처벌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결코 새로운 발상이나 창조에 도전하지 않는다.” 이 말을 빌리자면, 일본의 샐러리맨 사회 역시 그런 의미에서는 소련과 꽤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외국인 비즈니스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 문제는 제 책임 범위가 아닙니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시간만 맞으면 응해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 밖에는 어떤 분들을 만나실 예정입니까?” “다른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레벨의 분을 만나시나요?” 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홍보 담당자라는 사람들이, 이런 식의 '가로줄 맞추기(横並び)'를 유난히 좋아하거든요.
자기 회사를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보도해 줄 것인가, 혹은 이 기자를 어떻게 잘 활용해 회사의 PR에 도움이 되게 할 것인가 하고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다른 회사들과의 균형을 더 신경 씁니다. 득점주의(得点主義)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감점주의(得点主義)인 셈이지요.
구미의 학자들은 사회의 컴퓨터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나 대기업이 개인의 정보를 관리하게 되고, 그 결과 ‘개성의 사회’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컬럼비아대 로스쿨 대학원 교수인 켄트 그린월트는 백악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버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출세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좋은 기록’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체제에 순응하는 행동을 강하게 압박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의 기록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고,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삼가게 되겠지요.
그 결과, 각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취향과는 무관하게, 다양성과 사회의 활력은 분명히 손상되고,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개인적 사고가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주(州)마다 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사소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다른 주로 가면 과거의 기록이 지워져, 새로 시작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의 발달로, 개인에 관한 데이터가 주 경계를 넘어 모두 연결되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린월트 교수는, 컴퓨터에 의한 관리가 진전됨에 따라 개인의 ‘문제가 될 만한’ 혹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 제한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그로 인해 다양성과 활력, 그리고 개인적 사고가 감소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으로 본다면, 컴퓨터에 의한 관리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이미 ‘문제가 될 만한’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스스로 삼가고 있는 일본 사회는 지옥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6. 베이비파우더
앞에서 언급한 조지 필즈 저 '불가사의한 일본인' 에는 아주 흥미로운 베이비파우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아기 기저귀를 갈아 주는 횟수가 구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베이비파우더의 소비량도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에서 잘 팔리는 용기 모양이 구미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구미에서는 베이비파우더가 위에 구멍이 뚫린 원통형 용기에 담겨 있어, 그 구멍을 통해 몸에 파우더를 뿌리듯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는 일본에서는 잘 팔리지 않고, 가장 잘 팔리는 것은 둥글고 납작한 종이 상자나 금속 캔으로, 안에 들어 있는 퍼프(분첩)를 사용해 아기의 엉덩이에 살짝 두드리듯 파우더를 바르는 방식입니다. 구미식의 ‘뿌리기’에 비하면 낭비가 적고, 따라서 소비량도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걸까요. 필즈 씨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일본에서는 기저귀를 갈아 주는 장소가 여러 생활용품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원통형 용기를 마구 흔들어 뿌리면 파우더가 사방으로 흩어져, 심한 경우에는 식기 위에까지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납작한 상자와 퍼프가 가장 합리적인 사용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참으로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다만 저자는 파우더 사용량이 적은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라고 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일본인은 표제(標題)나 분류(標題)에 매우 꼼꼼해서, ‘베이비’라는 말이 붙은 물건을 성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저는 바로 이 점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구미에서는 베이비파우더나 베이비샴푸처럼 ‘베이비’가 붙은 제품을 어른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합니다. 이름보다도 그 물건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일본에서는 도저히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팔든지 간에, 아이에게는 아이용, 젊은 여성에게는 젊은 여성용, 중년 남성에게는 중년 남성용이라는 식의 네이밍이 필요하고, 거기에 걸맞은 디자인이 반드시 따라붙습니다. 이상하게도 만화책만은 예외라서, 원래는 소년소녀를 대상으로 그려진 것을 어른들이 아주 즐겁게 읽고 있긴 하지만요.
예를 들어 포도주라는 술은 남자든 여자든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여성이 마시게 하고 싶다면 여성적인 인테리어의 방에 여성 모델을 배치한 광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맛보다는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느냐’에 초점을 맞춘 카피가 반드시 따라붙지요. 이런 분위기 조성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여성이 정말 있는 걸까요?
분위기에 약한 것이 꼭 여자만은 아닙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유난히 '남자(男-おとこ)의 요리' '오토코(オトコ-男)의 요리' 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나 책이 많지요. 굳이 가타카나로 쓰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요. 요리하는 남자를 놀리는 걸까요? 아니면 요리하는 남자는 외국인 같다는 뜻일까요. (*가타카나는 외래어 표기 때 많이 사용함)
어쨌든 요리라는 것은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똑같습니다. (요리에 쓰이는 것은 손과 눈과 혀와 코와 머리지, 페니스나 바기나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남자의’라는 말이 붙는 순간, “그럼 한 번 해볼까” 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남자가 꽤 많은 모양입니다. '호노보노(ほのぼの-仄仄 : 어렴풋이)' 라는 잡지 1982년 10월호에는, 도쿄도에 사는 와타나베 노리유키(渡辺則之) 씨의 투고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가끔은 부모님을 놀라게 해 드리자는 생각에, 8월호에 실린 '데코레이션 카레'를 레시피에 의존해 재료를 갖추고 양념까지 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까지도 그저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이 카레 특집에는 세 가지 요리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모두 남성이 요리에 열중하는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의욕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 투고의 주인공은 스물일곱 살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로 젊은 사람조차도 일러스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이렇게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죠. 그래서 “청소나 세탁, 요리에 관한 기사를 실을 때는, 일러스트에 반드시 남자를 사용할 것.” 이런 운동을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틈만 나면 “남자도 가사를” 하고 글을 써대 봐야, 남자 일러스트가 붙지 않으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남자의' 라는 라벨만 붙으면 문제는 사라집니다. 그 순간 “그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니까요. 어쨌든 일본인은 분류에 집착합니다.
사람의 성격도 ‘노부나가형(*조급)’ ‘히데요시형(*간교)’ ‘이에야스형(*인내)’으로 나눕니다. 외국인에게 예의 그 두견새(호토토기스) 시를 가르쳐 주면,
울지 않으면 울지 않아도 좋다 두견새
울지 않으면 술이라도 마시자 두견새
울지 않으면 안아 주자 두견새
울지 않으면 내가 울어 주지 두견새
울지 않으면 테이프라도 틀자 두견새
울지 않으면 춤이라도 추자 두견새
(人間の性格は'信長型' '秀吉型' '家康型' に分ける。外国人に例のほととぎすの句を教えると、
鳴かぬなら鳴かなくてもよいほととぎす鳴かぬなら酒でも飲まそうほととぎす
鳴かぬなら抱いてあげようほととぎす
鳴かぬなら僕が鳴こうよほととぎす
鳴かぬならテイプでもいいほととぎす
鳴かぬなら踊ってくれよほととぎす)
이렇게 연달아 새로운 작품(?)들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인간을 단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가 금세 드러납니다. 일본인은 또 혈액형으로 성격을 나누는 것도 무척 좋아하지요. 반면 외국인 가운데에는 자기 혈액형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7. 두 개의 혀
안에서 말하거나 행동한 것은 밖으로 새지 않고, 밖에서 말하거나 행동한 것은 안에는 전해지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습니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나카소네 총리의 이른바 ‘불침항모’ 발언이 있지요. 1983년 1월 19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나카소네 씨의 발언으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방위청 장관을 지낸 적이 있으며, 일본의 방위에 대해서는 일본 열도 전체를 불침항모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소련의 백파이어 폭격기 침입에 대비하는 거대한 방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나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다. ”
(번역은 1월 22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른 것)
이렇게 보도된 내용을 두고, 다음 날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인 기자단이 총리에게 확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총리는 처음에는 “불침항모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워싱턴 포스트 측이 녹음테이프도 남아 있다고 반박하자, 21일이 되어서야 이를 인정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사건입니다. 통역이 부정확했다는 설까지 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나카소네 총리의 내외(內外)용 발언을 구분하는 태도였겠지요.
아마도 포스트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카소네 씨의 머릿속에는 포스트의 기사가 일본 국민의 눈에는 닿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럴 리가 있나, 한 나라의 총리 발언이 어디에서 이루어졌든 본국에 되돌아가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싶어지실 겁니다.
그런데도 일본인에게는, 외국인에게 한 말은 일본에 전해지지 않고, 일본어로 일본인에게 한 말은 외국에는 전해지지 않는다고 믿어 버리는 버릇이 있는 듯합니다. 나카소네 씨도 그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볼까요. 후지쯔 회장 고바야시 다이스케(小林大祐) 씨입니다. 1982년 9월호 문예춘추에, 동 잡지와 고바야시 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워싱턴 포스트는 이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재게재하고자 했습니다.
1983년 1월 18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어번 레이너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포스트의 요청에 대해 문예춘추 측은 OK를 했지만, 후지쯔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포스트는 인터뷰를 그대로 싣는 대신, 그 인터뷰에 대해 다시 기사로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이 인터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고바야시 씨가 놀랄 만큼 솔직하게, 미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때로는 거의 조롱에 가까운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후지쯔의 전략이나, 일본 산업과 정부의 결합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관민 일체의 산업 육성 방식은,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여러 나라들로부터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사안이기도 하지요.
고바야시 씨는 이 인터뷰에서, 과거 자동차나 철강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의 거인 IBM에 맞설 국산 컴퓨터 회사를 육성하기 위해 통산성이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과 관련해 후지쯔는 문예춘추에
“후지쯔가 말하고자 한 취지가 반영되지 않았으니, 워싱턴 포스트에 재게재 권한을 주지 말아 달라” 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지쯔는 정작 문예춘추 측에 기사의 정정이나 수정은 전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는, 국내용으로 한 이야기를 미국에 흘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뜻이었겠지요.
뭐, 이런 식의 두 개의 혀는 나카소네 씨나 고바야시 씨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제파’로 불리는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 1999) 씨도,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미국인을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나중에 홍보 담당자가 “그 발언은 영문으로 번역될 줄은 몰랐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레이너 기자가 쓴 내용입니다.
일본인들끼리 엘리베이터 안 같은 데서, 외국인이 타고 있는데도 “서양 놈들은 인색하잖아”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장면, 흔히 보지요. 함께 탄 외국인이 일본어를 이해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파티에서의 일입니다.
해외 특파원 경력도 있는, 소위 ‘국제파’로 통하는 일본인 신문기자가 제 곁으로 와서는, “아까 당신이 이야기하던 그 서양 여자, 누구야?” 라고 꽤 큰 소리로 물어왔습니다. 바로 우리 뒤에는, 그 여성의 남편인 일본인 잡지 편집장이 서 있었기 때문에, “○○ 잡지 편집장인 △△ 씨의 부인이에요” 라고 알려 주었습니다만, 그 순간 국제파라는 간판도 단번에 민낯이 드러나 버린 셈이었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8. 아부가 아니라…
일본인은 어쩐지 남을 칭찬하는 데 서툰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가 칭찬받을 만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인에게서 칭찬을 받아 본 경험은 정말로 적습니다. 가끔 (*내가 쓴 책에 대해) 칭찬을 들을 때조차도 “아부가 아니라,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식으로, 꼭 무슨 전제나 변명이 붙습니다.
이쪽에서는 딱히 “아부하는 거 아니냐?” 하고 의심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아부가 아니라 말이죠” “아부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하고 미리 선수를 쳐 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평소에는 늘 아부만 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걸까요?
“동료 칭찬으로 보일까 봐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그래도 써 두고 싶다”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도 흔히 보입니다만, 그런 변명 없이 솔직하게 칭찬하면 될 텐데 싶습니다. 정말로 내부 사람끼리의 이야기라면 애초에 밖에다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밖에 말해도 되는 이야기라면 ‘동료 칭찬’을 굳이 사양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칭찬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을 칭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사회는 아부는 있어도, 진짜 인정과 찬사의 말은 일상적으로 들리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아내가 멋을 내도 한마디 칭찬도 하지 않는 남편, 남편이 골프 대회에서 우승해 돌아와도 전혀 관심 없는 아내, 어머니가 차려 준 음식을 한 번도 칭찬한 적 없는 아이들. 그리고 무심코, 눈치채는 즉시 자연스럽게 칭찬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막상 칭찬하려고 하면 과도하게 추켜세웁니다. 칭찬받는 쪽이 오히려 민망해질 정도의 방식으로 말이죠.
결국 이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감탄하고 있다는 건 상대가 알아서 알 거라는 태도가 기본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평소에 칭찬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막상 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는 도저히 못 하고, 말이 과장되어 버려서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어색해지는 거죠.
이런 일본인의 실어증 같은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의사인 미야카와 가즈유키(宮川和幸) 씨는, 1983년 2월 21일자 아사히신문 석간에서, 최근 젊은 어머니들의 아기에 대한 지식 부족 문제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사와의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젊은 부모들의 국어 능력, 즉 표현력과 이해력이 빈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문제는 젊은 의사 쪽에도 공통되는 것이겠지요. 아기의 증상을 묻고, 지시를 내리는 데, 답답할 정도로 시간이 걸리고, 지시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중략)
인간은 말로 생각합니다. 관찰 또한 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말을 사용하는 힘이 약해지면, 관찰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사흘, 나흘이나 계속되던 아기의 고열이나 변비를, 의사가 보기 전까지 부모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야카와 의사는 “TV를 보면서 말없이 수유하는 것”의 위험성을 호소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이 가정에 들어온 이후 가족 간의 대화가 줄어든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TV가 보급되기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토론을 하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TV라는 편리한 기계가 등장한 이후로는 더욱더 자기 머리를 써서 자기 말로 표현하는 작업을 게을리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verbal(언어로 표현하는) 성향의 인간이기 때문에, 말에 의한 표현이 애매해지면 몹시 불쾌합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서 받은 연하장에 “가는 길은 달라도,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내게는 이 ‘같은 생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보낸 사람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은데, 뭘 가리키는 건지 저는 전혀 모르겠어요.
적어도 나는 고등학생 시절보다는 꽤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 생각하던 것과 지금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생각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엽서를 보냈는데, 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 전화가 와서 “그때 싸우고 나서 그대로 서먹하게 되어 버렸는데…”라는 말을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그저 상대가 말하고자 한 바를 분명히 이해하고 싶었을 뿐인데, 상대는 내가 화가 났다고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내 책을 읽고 감상을 보내 주신 분들께 내가 “○○에 관한 당신의 지적에 대해서는 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 말씀과는 정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같이 답장을 보내면, “제 편지에 화가 나신 것 같군요”
라는 회신을 받기도 합니다.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고, 나는 이견(異見) 대환영인데도, 일본인은 의견을 주고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듯합니다. 게다가 누군가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면,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거나, 싫어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왜 토론과 감정을 한데 묶어 버리는 걸까요.
책을 읽는 방식에서도 일본인은, 어떤 작가의 작품 하나에서 거부감을 느끼면 그 사람 전체를 싫어해 버립니다. 나는 이것이 참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고, 인간적으로는 맞지 않더라도 작품의 일부에서는 배울 점이 많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말이죠. 조금 옆길로 샜습니다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언어에 의한 표현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매우 복잡한 사회 현상이나, 극히 기술적인 정보, 혹은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 매일 놓여 있습니다. 직업적 훈련의 의미도 있어서, 예를 들면 보통 여행을 갈 때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카메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잘 관찰하고, 인상을 말로 바꾸어 메모하는 일을 매일 하지 않으면, 언어 표현력은 금세 녹슬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TV도 두지 않고, 뉴스나 보도 프로그램은 신문·잡지·책으로 읽거나, 라디오로 듣습니다. NHK의 '일본의 조건' 같은 보도 프로그램도 TV로는 보지 않고 책으로 읽습니다.
영화관에 가면 대사는 귀로 듣거나 자막으로 읽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배우의 표정이나 복장, 풍경 등은 스스로 말로 옮기면서 봅니다. 영화 평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이 아닐 때도 이 작업을 합니다. 물론 글을 쓰지 않는 분들이 이런 일을 하실 필요는 전혀 없겠지만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29. 음주와 관련한 습관
최근 여러 나라 사람들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선진국에서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술을 덜 마시게 되는 경향이 보입니다. 완전히 마시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고, 좋은 술을 소량 즐긴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요. 칵테일 파티에서도 건장한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스나 미네랄워터를 마시고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풀코스 요리가 차례차례 나오는 식탁에서 식전주, 식중주, 식후주까지 모두 술에 기대는 생활이 ‘좋은 생활’이라는 감각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습니다. 식후의 시가(끽연) 역시 ‘폐암 유발제’로 여겨지며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인의 술 마시는 방식은 서양인과 꽤 다릅니다. 우선 술의 종류가 매우 적습니다. 보통 일본인이 마시는 술은 일본주, 맥주, 위스키, 이 세 가지 정도겠지요.
식사 중에 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일본의 레스토랑에서는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나 온더록스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물을 타서 마시기 때문에 식사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왜 ‘미즈와리(물탄 위스키)’가 일본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일부러 위스키의 맛을 희석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일본인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곧 ‘술을 따라주고, 따라 받는 행위’와 동의어인 듯합니다. 일본주든 맥주든 물탄 위스키든, 자기 페이스로 마시는 것은 일본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술을 따라주는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바 카운터 너머에 서 있는 사람이나, 옆자리에 앉아 있으려는 여성입니다. 일본주라면 잔이 비어 있는 시간이 2초 이상 지속되는 일은 없고, 맥주잔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스키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얼음을 잔뜩 넣고 위스키를 조금 붓고는 물을 콸콸 부어 버립니다.
그 ‘위스키 향이 나는 물’을 조금 마시면, 다시 얼음과 위스키와 물이 보충됩니다. 이렇게 재촉받듯 계속 마시는 것이 일본인의 음주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술을 마신 뒤 전철을 타고 귀가하므로, 술자리는 의외로 빨리 끝납니다. 발음이 흐려지고 발걸음이 휘청거리기 시작하면 이미 너무 늦은 상태이지요.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기 때문에 일본어에는 ‘취함’에 관한 어휘가 빈약하다고들 합니다. ‘호로요이(ほろ酔い-살짝 취함)’ ‘도로요이(泥酔-만취)’ ‘후츠카요이(二日酔い-숙취)’처럼 ‘취할 취(酔)’ 자가 들어간 말뿐입니다. 서양 언어에는 나라별로 스무 가지 정도의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영어만 해도 mellow, tipsy에서 시작해 stoned, legles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이 있지요.
일본인은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취할 때까지 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대화를 즐기며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휴가 직전의 금요일이나 주말 밤에 새벽까지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아 꽤 취한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평소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진짜 하층계급의 사람들은 낮부터 만취해 길에 쓰러져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잠들었다가 어떤 일을 당할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멈추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일본은 치안이 좋기 때문에, 축제가 있는 날이 아니어도 안심하고 취해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일본인은 취객에게 관대하지만, 취객이 많은 것에 비해 알코올 중독 환자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낮부터 술을 마시는 습관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기 때문에 저 역시 그 소질이 있지만, 대주(大酒)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귀가 시간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가 불러주기만 하면 한두 집쯤 들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특별히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따로 살게 되자,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 내가 좋아하는 술을 내 페이스대로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집에서 마실 경우에는 매출을 늘리려고 잇따라 술을 따라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과음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누군가와 밖에서 만나 한잔하는 일은 있지만, 대개는 이야기가 더 바빠 술을 마실 틈이 별로 없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0. 대결을 싫어함
일본어를 모르고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 채 처음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대개 일본인의 예의 바르고 공손한 태도에 감격합니다. 백인이라면,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친절을 경험하고 일본을 좋아하게 되지요.
많은 일본인들은 외국인의 말을 들으면서 “예스, 예스”, “아이 씨(I see)”를 연발합니다. 이를 잘 모르는 외국인은 이 일본인이 자기 말을 매우 열심히 듣고 있고, 자기 의견에 찬성하며 존중해 주고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일본어의 맞장구인 “はい(네)”, “ええ”, “うん”, “なるほど” 대신 “예스, 예스”와 “아이 씨”를 쓰고 있을 뿐이지, 반드시 상대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일본에 거의 20년 가까이 살며 일본어도 유창한 미국인 비즈니스맨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평소 일본어로 대화하다 보니,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미국으로 미팅을 갔을 때, 상대 미국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의식중에 “아―”, “응”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상대가 그걸 알아차리고 묻더랍니다.
“그 ‘아―’나 ‘응’이라는 건 대체 뭐죠?” 그제서야 자신이 영어로 이야기하면서도 일본식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건 일본식 매너다”라고 설명했지만, 상대는 “이야기 도중에 그런 이상한 소리를 집어넣으면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하겠군요” 라며 불평했다고 합니다.
맞장구와 더불어 일본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습관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동의’로 오해받습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존 워로노프는 '비즈니스 뷰' 1983년 9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 경제의 병폐에 대해 한 강연회에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회장에 있던 한 일본인 비즈니스맨이 매우 열심히 그의 말을 듣고,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이 끝난 뒤에는 일부러 워로노프 기자에게 다가와 강연이 훌륭했다고 칭찬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일본 경제에 대해 극히 긍정적인 견해를 펼친 또 다른 외국인 경제학자의 강연회에 워로노프 씨가 갔더니, 거기에도 그 ‘열심히 듣던’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비즈니스맨은 이번에도 강연 내내 열심히 듣고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으며, 끝나자마자 강사에게 다가가 강연을 칭찬했습니다. 워로노프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에 모두 찬성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체류 경험이 긴 워로노프 기자는 마침내 깨닫습니다.
“저 끄덕임은 단순한 예의였던 것이다. 일본식으로 공손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격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예의상 찬성할 바에는, 차라리 찬성하지 말아 주는 편이 훨씬 낫다.” 이처럼 찬성이든 반대든 일단 고개를 끄덕여 두는 습관은, 많은 일본인이 ‘대결을 싫어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본인 이외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거의 없고, 그래서 웬만해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상대의 말에 찬성할 수 없을 때는, “잠깐만요”, “그건 찬성할 수 없네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고 상대의 발언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을 상대로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반대만 한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할 수 없을 때는 ‘침묵’하거나 ‘화제를 바꾸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 결과 일본인끼리 깊이 있는 토론을 즐길 기회는 매우 제한되고, 특히 처음 만난 사람과는 더욱 어렵게 됩니다. 논리적인 대결을 피하고, 의견이 맞지 않으면 그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되는 감정적 성향도 일본인에게서 강하게 보입니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격렬하게 토론을 벌여 서로를 완전히 논파하더라도, 토론이 끝나면 다시 친해지는 것이 당연한 태도이지만, 일본인을 상대로 하면 토론이 곧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웃집 아이를 맡아주었다가 물에 빠져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지요. 아이를 맡긴 쪽이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하자, 전국에서 익명의 협박 편지와 전화가 원고 부부에게 쏟아졌고, 결국 소송을 취하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쟁점 자체는 파티나 길거리의 화제로 크게 논의되었을지 모르지만, 어느 쪽 입장에 찬성하든 상대편에게 괴롭히는 전화를 거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 만에 백 통이 넘는 전화라니, 정말 대단하지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이런 식으로 감정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역시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대결 기피 성향은 타인의 논리와의 대결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 혹은 어려움과의 대결에서도 나타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암 환자에게 의사가 병명을 직접 알리지 않는 관습은, 환자의 대결 기피 성향을 배려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환자나 가족의 의학 지식이 늘어나면, 실험동물처럼 환자에게 여러 테스트를 해 볼 수 없게 된다는 의료 측의 사정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요.)
일본인 암 환자 가운데에는 자신의 병명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얼마 전 신문 투고에, 담당 의사가 암 전문의에게 전달하라고 준 봉투가 완전히 풀로 봉해져 있지 않아 들여다보았더니 자신의 병명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투고자는 봉투를 완전히 봉하지 않은 의사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알린 것이 오히려 의사의 배려였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한 게르하르트 담프만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들(일본인)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볼 만한 환영할 시련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운명의 타격으로 느낀다.” ('고립되는 대국 일본')
심리학자 미나미 히로시는 그의 저서 '일본적 자아' (이와나미 신서, 1983)에서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자기 결정의 회피’를 일본인의 의지 박약의 표현으로 보고, 그 의지의 약함에는 행동에 있어 무엇을 목표로 할지를 고르는 선택력, 선택의 결과 하나의 목표를 정하는 결정력, 결정한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 그 행동을 지속하는 지속력, 지속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해졌을 때 다른 목표로 전환하는 전환력, 그리고 실행을 중단하는 중지력이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의 약함과 대결 기피의 습관이 결합되어, 사물을 애매한 상태로 남겨 두는 관행을 길러 온 것이겠지요. “암일지도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히 알아버리느니 모르는 편이 더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실을 모른 채 늘 의심에 시달리면서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을 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ちょっとおかしいぞ、日本人 (1988年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