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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암시와 외적 암시
- 타이완 타이뻬이, 대법회
1979년 8월 23일
*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의 한계 내에 존재하는 만물은 움직인다. 이 운동이 우주질서다.
마음의 파동의 평형성에 관련하여서 나는 자기암시와 외부적 암시의 두 가지에 대하여 말했다.
자기암시는 무엇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가? 여러분의 개인 만트라의 반복 [만트라의 의미를 느끼면서 하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만트라를 반복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트라의 반복은 내적 표현인가 아니면 외적 표현인가? [그것은 내적 표현(자기 암시)이다].
만약 그대가 ‘라마’라고 소리를 내어 표현한다면 그것은 성대를 이용한 외적인 표현이다. 만트라를 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기 암시 즉 내적 표현이다]. 여러분은 생각할 때 무엇을 하는가?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이란 것은 내적 표현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안으로 말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안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을 생각하려고 해보라. 무엇을?(참가자들의 웃음).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라. 그럴 경우에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 외적으로 성대를 이용하여 말을 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
세 번째 표현양식이 있다. 외부로 표현은 하되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경우다. 이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범어로 우팜슈 Upa’m’shu라 한다. (바바께서 크게 말한다). “라마, 라마, 라마”. 이것은 외적 표현이며 다른 사람들도 듣는다. (바바께서 눈을 감으시고 잠시 멈춘다.) 이것은 내적 표현이다. (바바께서 ‘라마’라는 소리는 내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라마’라는 소리의 동작을 보인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다[즉, 우팜슈이다].
타이난(대남)시에서, 나는 ‘진정한’ 진보는 물질적 이거나 정신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오직 영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여러분들의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는 자기암시와 외부암시가 필요하다.
슈다르샨 Sudarshan이라는 사람이 “이상적 인간이 되어라. 슈다르샨 Sudarshan아, 이상적 인간이 되어라. 슈다르샨 Sudarshan아.”라고 속으로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안으로 말하면 무엇인가? 자기 암시이다.
즉, 슈다르샨이 슈다르샨에게 자기암시를 한다. 그러면 그의 양심이 슈다르샨을 이상적인 마음을 지닌 슈다르샨의 경지로 이끈다.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라.” 마음의 상이 슈다르샨의 마음 안에 있다. 슈다르샨의 양심이 말한다. “슈다르샨,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라.” 슈다르샨의 양심이 그를 이상적인 인간을 향하여 달려가도록 한다. 이러한 심리 현상을 이해하는가? 무엇인가? 자기암시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세상을 위하여 무언가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한다. 천국이나 지옥의 어떤 힘도 나를 가로막지 못한다.” 이것들이 무엇인가? 자기 암시이다. 이제 자기 암시라는 말이 분명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DMC[대법회]에서 이 말을 사용했다.
어떤 사람이 슈다르샨에게 “슈다르샨, 선한 사람이 되어라. 슈다르샨,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라. 슈다르샨,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라.” 라고 말한다면 이는 무엇인가? 외적 암시다. 외부로부터 암시가 왔다.
최상의 자기 암시는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분이 받은 개인 만트라를 [의미를 느끼면서] 외워야 한다. 여러분의 이스타 만트라 Ista Mantra[개인 만트라]를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자기 암시(Auto-suggestion)이다. Auto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말한다. Auto-nomy 란 스스로 통치하는것을 말한다. Auto-matic이란 스스로 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최선의 외적 암시는 무엇인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최선의 외적(outer) 암시(suggestion)다. 이렇게 좋은 외적 암시를 받는다. 그런데 외부의 암시는 자기 암시를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외부의 암시가 필요하며 영적 진화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다. 이 외적 암시를 산스크리트어로 삿트상 Satsaunga이라 한다.
삿트상이란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외적 암시가 무엇인지 이해했을 것으로 안다. 좋은 논의들이 무성하다. 좋은 말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러분이 만나는 친구와 마음의 연상이 외적 암시를 제공한다. 도둑들의 소굴에 있다면 “훔쳐라, 훔쳐라, 계속해서 훔쳐라.”하는 외적 암시를 받을 것이다. 자기 암시의 경우 만트라의 반복에 의하여 완전한 성공을 할 것이다. 외적 암시의 경우에는 좋은 암시도 나쁜 암시도 있다. 나쁜 친구로부터 오는 나쁜 외적 암시는 진화의 길을 역행할 것이며 당신뿐만 아니라 전체 인류의 발전도 저해시킬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서 나쁜 환경을 없애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벗은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산스크리트의 삿트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것이다. 삿트 Sat 란 선을 뜻하고 상(가) Saunga [불교에서의 승가, 승단]는 모임을 의미한다. Sadvipra 사드비프라는 삿트상을 주는 선한 사람이란 의미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선악은 여러분의 마음에서, 우리의 사회에서, 나라 안에서, 전체 인류사회에서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있다. 선이 악을 극복할 때, 즉 선악의 투쟁에서 선의 승리로 생기는 결과물이 양심이다. 이 양심으로 인하여 올바르고 확신에 찬 판단의 힘을 갖게 된다. 라틴어로 이를 conscience 양심이라 한다. 선악간의 투쟁결과 선이 우위를 점할 때 판별력 또는 양심이 승리한다. 영어의 양심이란 말은 분별력을 의미한다. 양심 또는 분별력은 산스크리트어로 비벸(흔히 비베카) Viveka 이다.
그러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불선(악)인가? 삿트(선) Sat 과 아삿트(불선) Asat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영적 발전을 돕는 물질적, 정신적, 영적인 행동은 선이다. 신과 여러분의 거리를 좁히는 행동이 선이다. 신과 여러분의 사이에 놓인 거리를 늘려 가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행동이 악이다. 신, 여러분의 목적, 이념의 궁극점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선이다. 거리를 늘리는 것은 악이다.
친구를 선택할 때 말, 행동, 계획, 프로그램 등이 신과 당신과의 거리를 줄이는지를 심사숙고하라. 이것이 삿트상, 좋은 사귐이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에는 아삿트상이다. 매우 지적인 ‘설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신이라는 목적과 당신 사이에 놓여있는 거리를 줄이는 것이 아닐 경우에는 삿트상이 아니다. 그와 같은 지적인 ‘설법’들은 나는 허영에 찬 지적인 과시라고 부르겠다. 신으로 향하는 길을 갈 경우에는 삿트상이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항상 삿트상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삿트상은 좋은 외적 암시를 형성한다.
삿트상(친교)을 마련하고, 신과의 거리를 좁혀 가는 사람들의 행위를 일컬어 푼야 Punya 라 한다. 거리를 늘리려는 사람들의 행위를 일컬어 파터커 Pa’taka라 한다. 푼야는 선이며 파터커는 불선(악)이다. 경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KURU PUNYAM AHORA’TRAM
밤낮없이 푼야를 행하여라.
아호라트람은 밤낮을 의미한다. 아호 Ahor 는 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출에서 일몰을 의미한다. 라트리 Ratri는 일몰에서 일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호라트리는 24시간을 의미한다.
KURU PUNYAM AHORA’TRAM
밤낮없이 푼야를 행하여라.
하루 24시간 선한 행위를 행해야 한다.
“어떻게 자면서 선한 일을 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깨어있을 때는 푼야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 때 어떻게 푼야를 하는가?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할 수 있다. 습관(habit)과 본성(nature;사람의 됨됨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습관이 굳어지면 본성이 된다.
그대가 원래 술과는 거리가 먼 금주자(teetotaller)라고 가정해 보자. Teetotaller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알 것으로 본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그대에게 술을 주었고 3일 뒤에 또다시 술을 주었는데 다 받아들였다고 하자. 이후로는 습관이 되어서 술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마침내 음주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당신을 마시게 된다. 의사가 술을 끊으라고 권고하고, 다른 사람들도 이제 술을 그만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술마시는 것이 이미 그대의 본성(nature)이 되어버렸다. 끝없는 반복과 주변환경의 압력에 의하여 습관이 되어버렸고, 이것이 강화되어 결국 본성이 되어버렸다.
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그대가 “이제 푸자 (명상) Puja Meditation(심야 명상)을 해야지”하는 자기 암시를 잊지않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습관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푸자 명상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면 푸자 명상은 그대의 본능(본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습관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본능이 되어야 하는가? 물론 본능이 되어야 한다. 푸자 명상을 하지 않고는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왜? 푸자는 나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푸자 명상을 여러분의 본능으로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자기 암시가 본성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잠잘 때도 초의식 [마음의 높은 세 가지 층, 즉 무의식 층]의 마음은 주문을 외우고 있다. 잠을 자기 때문에 물론 의식층 [마음의 가장 낮은 층 : 오감을 작동하는 층]은 활동하지 않는다.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잠재의식 [의식층 위의 생각을 하는 층]도 또한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의식은 그곳에서 본능적으로 주문을 반복하고 있다. 24시간 푼야를 하는 것이다. 잠잘 때도, 활동할 때도 여러분은 주문을 부단히 암송하게 된다.
KURU PUNYAM AHORA’TRAM 밤낮없이 푼야를 행하여라. 24시간 부단히 주문을 반복하라.
또한 좋은 벗들을 사귀어야 한다. 푼야를 하는 친구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 나쁜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타락하고 다른 사람도 타락시키게 된다. 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파파 Papa 이고 다른 하나는 프라탸와야 Pratyava’ya이다. 파파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훔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훔치는 경우가 파파에 해당되는 악이다. 프라탸와야는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한다.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의무다.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프라탸와야를 범하는 것이다. 파파와 프라탸와야를 합하여 죄, 즉 파타카 Pa’taka라 한다.
선한 일을 할 것이고 언제나 파터커Pa’taka를 짓지 말아야 한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라. 나쁜 일을 하는 파터키 Pa’takii(Pa’taka를 행하는 자 들과 함께 하지 말아라.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선하고 긍정적인 외적 암시를 제공해 줄 것이다. 파터키들은 나쁜 외적 암시를 줄 것이며 이는 인간사회의 진보에 유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