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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빌 2:1-1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017년도 마지막 주일 아침입니다. 송년주일입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한 해였습니다.
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이나 탈도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한 해 동안을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힘드셨습니까? 기쁘고 즐거우셨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엄청난 권력을 가졌던 이들이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권력 근처에 가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셀 수 없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로 내 편 네 편 하면서, 서로 물고 무는 그런 이들을 보면서, “나는 참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손에 쥐고 있다고 행복이요, 손에 아무 것도 없다고 불행은 아닙니다.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은 참으로 귀합니다. 우리 마음은 한없이 넓고 높습니다.
“해활천공”(海阔天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활천공”이란 “우리 마음은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끝없이 넓습니다. 막힘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늙지도 않습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은 청춘입니다.
우리 몸의 나이가 많다고 해서, 우리 마음의 나이가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늙고 병들어도, 마음은 늙어지지 않습니다. 늘 젊음입니다. 청춘입니다.
1728년, 영조 4년에 “김천택”이라는 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시조들을 한데 모은, “청구영언”(靑丘永言)이라는 가집(歌集)(노래집)이 있습니다.
고려 말기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시조 998수와 가사 17편을 엮어서 만든,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대표적인 노래집입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마음아 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느냐 내 늙을 적이면 넌들 아니 늙을쏘냐 아마도 너 쫓아다니다가 남 웃길까 하노라”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나”는 “내 몸”을 의미하고, “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나, 내 몸은 이렇게 늙었는데, 너, 마음은 왜 늙지도 아니하냐? 나, 내 몸이, 너, 마음을 따라가다가, 남들이 웃을까 하노라”
그렇습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청춘이 아닙니다.
몸은 세월 따라 계속 늙어가는데, 마음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마음으로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남들이 나를 볼 때, 웃음거리로 보게 될까봐, 걱정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노는 경우를 노래한 글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언제나 젊기를 바랍니다. 마음 따로, 몸 따로 논다고 해도, 마음은 늙으면 안됩니다. 언제나 청춘이어야 합니다.
잠언 23:7절을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생각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마음의 생각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마음의 생각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젊어야 합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넓고, 높고, 깊습니다. 좁아지면 안됩니다. 막히면 안됩니다.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안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막히거나 좁아지면 안됩니다.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에 대란 이해심이나 배려가 부족한 경우를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속 좁은 인간아”라는 뜻입니다.
밴댕이처럼 마음이 좁으면 안됩니다. 속 좁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언제나 넓은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 15:1)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마 15: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꼭 손을 씻고 난 후에야, 밥을 먹습니까?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을 수도 있고, 안 씻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손을 씻고 먹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밖에 있을 때, 길을 가다, 배가 고파, 포장마차에서 떢복이를 사 먹고 싶은데, 손 씻을 때가 없다고, 안 사 먹을 것입니까?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가 이슬을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이슬을 먹으면 독으로 변합니다.
뽕잎의 이슬을 먹고 자란 누에는 아름다운 비단을 만듭니다.
똑같은 이슬이지만 극과 극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가 있습니다. 읽으면 아주 좋은 책입니다.
그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 실린 “좋은 것을 품고 살면”이라는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슬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서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어떤 이는 아픈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기쁜 일을 즐겨 떠올리며, 반짝이는 좋은 일들을 되새기며,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 중 어느 것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가슴에 품고 살면 됩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품어도 되고,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 하나, 미소 짓는 그리운 얼굴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품고 살면 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만 품고 산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굳이 나쁜 것을 마음에 품고 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좋은 것만 품고 살아갑시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습니까?
더러운 것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나쁜 것을 담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깨끗해야 합니다. 청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4:23절을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더러워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단단히 지켜야 합니다.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는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실용주의(實用主義)의 철학자요, 유명한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이 바뀌면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되어지는 일들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보다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항상 무언가를 품고 살아갑니다.
“무엇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에 무엇을 품었느냐에 따라,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교만과 악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가득찬 마음이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준비 중이던 바울은 방향을 바꾸어, 유럽으로 향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열심히 전도를 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밤 중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감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간수장이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말했을 때, 바울은 그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대답했습니다.
간수장은 그와 가족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바울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바다를 건너가, 처음으로 전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감옥에 갇혔다가, 간수장과 그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4:2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유오디아”라는 여자와 “순두게”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교회 안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다투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처럼, 빌립보 교회는 유오디아파와 순두게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분열이 있었습니다. 다툼이 있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음이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 편에서 “무엇을 하자” 하면, 반대쪽에선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 안에,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각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같은 방향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각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로, 자연스럽게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아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눈먼 자를 고쳐 주시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열 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시고, 백부장의 죽은 딸을 고쳐 주신 것은 모두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제사장과 채찍으로 때리고 못 박은 군사들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시던 것도 모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네 인생은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인생의 반을 소모하고, 인생의 반은 타인을 비난하는데 소모한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반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헐뜯고, 욕하는데 사용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전부를 사랑하는데 쏟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고, 느끼고,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외면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그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도 마음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많기에, 우리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받았으면 베풀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머물러 있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흐리지 않는 물은 썩게 되어 있습니다.
흘러가야 합니다.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은 물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둘째,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온유”란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뜻합니다.
“온유”란 “자신만을 바라보지 말고, 이웃을 바라보며, 자기 일에만 마음을 쓰지 않고, 이웃을 돌보는 것”입니다.
“온유”란 “자신이 받을 이해득실(利害得失)만을 따지지 않고, 설령 내가 손해를 입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민수기 12:3절을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원망하고, 비난해도, 묵묵히 참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얻게 됩니다. 세상을 얻게 됩니다. 승리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고 말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 3:15-16)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온화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셋째,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3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태도, 자기를 높이지 않는 태도”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서, 귀한 생명까지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을 낫게 여기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사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남들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살기 보다는 남을 나보다 낫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품으라”는 것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탈무드에 보면, “교만한 자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기란, 당나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만하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도 주시고, 응답도 주시는데,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십니다. 그런데 왜 받지 못합니까? 교만한 사람이 그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 같은 것 필요없다”고 걷어차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 가운데,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질 때, 그때가 바로 은혜의 시간입니다.
깊은 물은 조용합니다.
속이 꽉 차있는 통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익은 벼는 머리를 숙입니다.
낮은 곳에 물이 고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성숙하면,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마음에 임합니다. 겸손한 마음에 은혜가 쏟아집니다.
잠언 22:4절을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십니다.(욥 22:29)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붙들어 주십니다.(시 147:6)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잠 3:34)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여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 5: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입니다.(시 22:26)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잠 11:2)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했습니다.(잠 15:33)
겸손하면 영예를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잠 29:23)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절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이사야 29:19절을 보면,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라고 했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더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덕을 말하면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교부 크리소스톰은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요, 기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에 사랑을 품고 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에 온유를 품고 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에 겸손을 품고 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예수님처럼, 사랑과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마음, 불의한 마음,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복이 오지 않습니다.
찬송가 538장입니다.
1절 :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내 맘 속에 주 영접하며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2절 : 정결케 되기를 원하거든 네 맘 속에 주 영접하며
생명수 마시기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3절 :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네 맘 속에 주 영접하며
네 맘에 평안을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4절 : 즐거운 찬송을 하려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후렴: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여러분!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우리 마음을 다듬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나쁜 일을 범하여 체포되어, 감옥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종종 “교회 다닌데”라고 말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우리 마음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 마음을 다듬어야 합니다.
어제 수염을 깎았다고, 오늘 깎지 않으면, 보기가 지저분합니다.
어제 세수했다고, 오늘 세수 하지 않으면, 어디 나가기가 불편합니다.
혹시 내 마음이 잘못되지나 않았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죄와 벌”이라는 책을 쓴 토스트예프스키는 “성령과 악마가 싸우는 곳이 내 마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원수, 마귀가 들어오면 안됩니다.
불평과 불만, 낙심과 좌절, 절망과 포기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안됩니다.
악한 마귀가 들어오고자 할 때에는 마음 문을 꽉 닫아야 합니다. 열면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이 시간만큼은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만을 모시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처럼, 사랑과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날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이 날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사랑하게 하옵소서.
온유하게 하옵소서.
겸손하게 하옵소서.
주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감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