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진사 출신의 '이세정'이란 분은 지식과 학문이 깊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 60세가 넘도록 정작 과거시험만 봤다 하면 번번히 불합격입니다.
그는 결국 더 이상의 응시를 포기하고 글방을 열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한테 배운 학생들 중에는 김안국, 김정국 형제를 비롯한 이장곤, 성몽정, 김공석 등 정승, 판서, 군사령관과 같은 기라성같은 고관들이 나왔는데 출세한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비록 고지식 하기는 하지만 학문 깊지요 사람 올곧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데 저렇듯 야인으로 계시니 민망하여 서로 추천하여 요즘으로 치면 과장급 정도인 '의금부도사' 자릴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임기가 차서 이번에는 청양현감으로 발령이 났고 마침 그 쟁쟁한 '세정동문'들과 막역한 '최숙생'이 충청도 관찰사에 부임한다고 하자 이들은 남대문 밖까지 나가 전송을 하며 자기들의 스승인 이세정을 부탁합니다.
이 분은 우리들의 스승이고 학문과 맑은 지조가 있는 분이니 고과점수 매길 때 자네가 신경 좀 써달라고...그러자 최숙생은 "알았네" 허락을 하고 사이좋게 헤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세정은 고과점수 꼴찌로 파면되어 쫒겨오니 황당한 제자들은 최숙생한테 거칠게 따집니다. 아니 그래 충청도 안에 백성을 해치는 간악한 고을 수령이 그렇게도 없어 깨끗한 분을 꼴찌 점수를 주었는가? 혹시 뭐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이 말에 최숙생은 "다른 고을의 원들은 비록 간악하나 다만 저 혼자 도적이니 백성들이 견딜 수 있지만 청양현감은 비록 자기 혼자 청렴하지만 그 밑에 여섯 도적이 설쳐대니 백성들이 견딜 재간이 있나? 그리고 머릿속이 텅 빈 사람이 무슨 고을을 다스린다고..." 다시 말해 조직의 장악력과 실무능력이 없음을 그 이유로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이해불가의 잘난 제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우리 스승의 머릿속에는 육경(시,서,예.악,역,춘추의 선비가 기본으로 갖출 유학적 경전)이 가득하신 분인데 어찌 머리가 비었다고 하는가?" 따지자 최숙생도 지지 않고 "그래 알아 안다고, 이 현감의 머릿속에 있던 그 많던 육경을 자네들이 하나씩 다 빼다가 각자의 머릿속에 가득 채워 출세를 했으니 그 양반 머리통이 제아무리 커도 이렇게 다 퍼다 주고 남는 게 있겠는가? 당연히 텅 빌 수 밖에 없겠지." 이 말에 모두가 배꼽을 잡았답니다.
※요즘 새정부 들어 장관 후보자들 중에 교수 출신들이 많은데 솔직히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고 연구활동을 업으로 삼던 교수들이 과연 복잡 다난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관료사회에서 치고 나갈 실무능력이 있을까 우려가 됩니다. 실제로 교수출신의 유능한 관리를 많이 못 본 기억도 있구요. 그래서 오죽하면 예로부터 학자들을 얼굴만 희고 글만 안다고 해서 '백면서생'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겠습니까? 제발 문무겸전의 인물들이 나와 실력발휘를 해줘야 할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첫댓글 청문회와 림보게임.배나온 분들은 통과가 쉽지 않지요.